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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성 살인사건 ㅣ 성 시리즈 1
키타야마 타케쿠니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염세주의적이면서 물리적 트릭을 다루고 있는 조금은 무거운 라이트 노벨’ 정도로 이 소설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을 듯싶네요. 세계의 종말. 1999년 9월의 어느 날. 9월 안으로 세계는 멸망한다고 합니다. 힘들게 머리 쓰면서 살인을 할 필요가 없죠. 더군다나 밀실살인은 말이죠.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런 설정이 우선 재밌더군요. 뭐 증오나 복수심이 너무 강하면 자연사보다는 그래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겠죠(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밀실살인은 조금 낭비 아닐까요? 공권력 자체가 무의미한 멸망하는 세계에서는 그냥 죽이고 도망가면 되거든요. 아무래도 살인자가 밀실살인에 무척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의문 사항들은 중반을 넘어가면 모두 다 밝혀집니다. 그 전까지는 판타스틱한 미스터리의 느낌이 많이 납니다. 게슈탈트의 조각(설명은 생략합니다)을 볼 수 있으며 세상이 어찌되든 상관없는 탐정의 등장 자체가 이상합니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상한 여자도 그렇고요. 클락성의 내부 벽에 얼굴이 있다는 믿기 힘든 사건을 의뢰한 소녀도 그렇고요. 모두 비정상적입니다. 그리고 뭔가 불운한 기운이 맴도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고요. 암튼 세 개의 (독립적인) 관으로 이루어진(각 관에는 거대한 시계가 있습니다) 클락성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밀실살인(구체적인 내용은 역시나 생략). 이 밀실트릭을 풀어야 합니다. 도대체 범인은 어디로 들어와서 죽이고 어디로 사라지고, 또 머리는 왜 저기다가 놔두었을까? 밀실트릭을 푸는 것은 둘째 치고 동기 자체가 미스터리입니다. 왜? 죽여야 했을까? 뭔가 비현실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트릭은 또 제 정신입니다. 물리적인 트릭. 개인적으로 이런 비슷한 트릭은 접했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이런 트릭은 처음이라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이 트릭은 중반까지 이어진 소설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트릭은 풀렸습니다. 사건 종결. 책장을 덮으면 되는데, 아직도 페이지가 많이 남았습니다. 아니 범인이 잡혔는데, 도대체 무슨 궤변을 늘어놓으려고 작가가 이러는 것일까? 조금 불충분하고 미심쩍었던 몇 가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뒤죽박죽. 반전의 반전. 그리고 (물론 이제는 익숙하기는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들. 사건은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면 세상은 망합니다. 뭐 소수는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모두 죽겠죠. 곧 죽을 인간들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면서 막을 내리는 암울하고 절망스러운 미스터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