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는 끝났다
이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코미디는 끝났다.

이진수는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을 다시 한 번 음미하기 시작했다.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라는 독특한 작품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은 씨의 신작 <코미디는 끝났다>(그런데 소설은 2005년 초에 계약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미술관의 쥐>보다 먼저 계약되었다는 얘기인데).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에서의 스피노자는 철학자가 아니라 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개를 죽인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입니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는 그런 추리소설의 형식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개 주인의 범인 잡는 추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환상타운의 거주하는 다섯 명의 용의자들의 성적 담론을 둘러싼 거짓과 위선 등에 대해 까발리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 분들에게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하고 나름대로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로서의 장르적인 재미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고요. 그래서 <코미디도 끝났다>도 뭔가 사회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추리소설이 아닌 그런 추리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은 추리소설다운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물론 현대 사회(현대인)에 대한 문제점도 보여주고 있고요.

범인이 잡히면서 소설이 시작됩니다(범인 잡는 추리소설은 아닌가?). 그리고 형사의 취조가 시작됩니다. 죄명은 살인. 범인의 닉네임은 면도칼 연쇄살인범(레이저 킬러). 최고의 개그맨 이진수를 면도칼로 잔인하게 살해를 합니다. 물론 이진수가 첫 번째 희생자는 아닙니다. 이진수가 살해되기까지의 과정(D-10 day)이 묘사됩니다. 시작은 익명(발신자를 추적할 수 없는)의 문자 "너는 열흘 후에 죽는다, 반드시. D"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런 문자를 그냥 흘려보내죠. 할일 없는 미친X이 보냈다고 보통은 생각은 하죠. 개그맨 이진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점점 자신의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냉정하게 버린 여자 친구와 선배 개그맨, 그리고 유명 영화배우, 현재 연애하고 있는 마담 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살인사건의 현장을 보는 듯한 환영에 시달리게 됩니다. 왜 그는 그런 환영을 보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이 죽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신이 의심하는 인간들은 정말 D(아니면 레이저킬러)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미친 것일까요? 암튼 사건은 계속 의문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인기 개그맨 이진수뿐만 아니라 성공이라는 태양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죠. 가장 일반적인 것이 친한 친구를 잃는 거죠. 저 사람은 성공하니까 변했다는 소리 많이 하잖아요. 또한 평소에는 없던 초조감. 자신의 성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친한 지인까지도 믿지 못하는 의심(보통 성공한 연예인들이 이런 고통으로 인해 자살을 하기도 하죠. 물론 이러한 이유만으로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소설은 그런 성공한 개그맨 이진수의 심리를 다룬 추리소설입니다. D-day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변해가는 개그맨 이진수의 심리 변화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던 그가 지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환영을 보기 시작하며, 점점 초췌해지며, 나중에는 거의 침몰의 수준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공을 거머쥐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 성공을 놓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라는 것. 장난스러운 문자메시지 하나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이진수라는 개그맨은 정말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성공 강박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비극을 다룬 소설로 읽어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심리를 주로 다룬 추리소설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 문장으로 소설을 다시 한 번 음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죠. 사실 아직도 범인이 조금 헷갈립니다(조금 이해가 안가서 작가노트를 살짝 읽었는데 저의 의문에 대한 답은 없네요. 오히려 의문점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바로 서술트릭이라는 말. 이 소설에 서술트릭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서술트릭으로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암튼 잘 모르겠네요). 범인은 A일수도 있고, B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지막 문장에 범인이 밝혀집니다. 그런데 그 범인이 실제 범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조금 설명 안 되어지는 부분이 있더군요.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또한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이진수의 핸드폰으로 온 D로부터의 메시지. 결정적 증거인데. 암튼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A가 범인이야? B가 범인이야? 그렇다면 그 범인은 언제부터 범행 계획을 세웠을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이진수가 보는 환영은 무엇일까? 핸드폰으로 온 메시지는? 결정적인 궁금증은 생략. 암튼 <코미디는 끝났다> 쉽게 읽힙니다. 카운트다운 형식의 소설은 확실히 잘 읽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친근합니다. 인기 개그맨이 등장하니까요(연예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도 나오고요). 무엇보다 성공한 인기 개그맨의 심리 변화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모호성. 마지막으로 은근히 잔인하다는 것. 스토리의 구조는 조금 단조로울 수도 있으나 웃음을 주는 개그맨을 주인공으로 한 잔인한 추리소설이라는 참신함과 신선함 면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추리소설의 소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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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미 2011-10-2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오늘 이책 끝까지 봣는데
마지막에 범인이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랑 너무 달랐고
왜 얘가 범인인지에 대한 설명도없어서 당황했어요;;
나중에 작가의말을 보니 그이유는 아무래도
작가가 전하고싶었던게 '범인이 누구다.'
이게 아니라 현대인을 말하고싶었기때문인것 같아요.
정말 잘읽었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