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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살아남는다는 건 자꾸 번져가는 공백을 보는 일이다.”
멜랑콜리하고 서사성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조금은 기괴한 작가의 등단작인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읽었을 때는 조금 혼란스럽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암튼 복잡 미묘해서 이 작가의 작품은 앞으로 읽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의 신작 『새벽의 나나』를 읽었는데 기존의 작품 스타일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네요. 우선 멜랑콜리하지 않고 어느 정도 서사성도 갖추었으며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중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힘든 환경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에는 전혀 아깝지 않은 속물적인 추천을 날립니다.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나라, 매춘과 범죄와 마약의 나라, 동남아시아의 유명 향락가인 태국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식되어져 있고, 실제로도 위험하면서도 분방한 자유로움이 흘러넘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데 태국이라는 나라는 묘합니다. 대니 팽과 옥사이드 팽의 영화 《방콕 데인저러스》에서 방콕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네요. 범죄의 도시, 방콕. 참으로 무서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요즘 반정부 시위로 나라가 엄청 혼란스럽기도 하죠. 태국이라는 나라는 더럽고 무서우며 고약한 나라라는 인식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나 《친애하는 당신》을 보고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에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더군요. 두려우면서도 그리운 묘한 감정, 소설 속 주인공 레오는 그러한 감정 때문에 태국 매춘부들의 거리 수쿰빗 소이 식스틴에서 몇 년을 마약과 술에 절어 살았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모든 것이 변한다. 레오도 그걸 알고 있다. 아이는 청년이 되고, 다시 장년이 되어 늙어간다. 붉은 흙길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낡은 건물이 있던 자리엔 깨끗한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노점상은 가게가 되고, 가게는 대형마트나 연쇄점이 된다. 하지만 아는 것과 좋아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p.394)
『새벽의 나나』는 매춘부들의 거리 수쿰빗 소이 식스틴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매춘부들뿐만 아니라 부패경찰, 게이, 장사꾼, 외국인 등 다양한 인간들이 먹고, 싸고, 마시며 끝내는 죽어가는 이야기. 활기가 넘치면서도 씁쓸한 여운이 남기는, 마치 허물어져 가는 낡은 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 그리고 지아를 시작으로 플로이, 그리고 라노까지 수쿰빗 소이 식스틴의 삼대에 걸친 연대기입니다(물론 지아는 이름으로만 등장하고, 라노는 아직 어리고, 주로 플로이의 이야기이지만요. 그들은 연결되어 있고, 지아가 플로이고, 플로이고 라노이고, 라노는 지아이기도 합니다. 윤회와 전생).
이방인이지만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독일인 우웨, 그런 우웨와 똑같은 이방인임에도 거리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는 주인공 레오. 왜 한국인 레오는 머나먼 태국까지 가서 매춘부들에게 돈을 털리고, 잃어버리며, 얻어터지면서,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사는 것일까요? 그리고 하필, 지금 시기에 작가는 우리나라도 아닌 머나먼 태국의 매춘부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남자들에게 몸을 팔아서 번 돈으로 마약과 술을 마시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거리의 여자. 누구의 삶은 고상하고, 누구의 삶은 쓰레기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닭장 같은 빌딩의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반복되는 일을 하는 엘리트(라 부르는) 삶은 고상하고 가치가 있는 걸까요? 수쿰빗 소이 식스틴의 매춘부들의 삶에서는 생동감과 자유스러움이 느껴집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때로는 비참해지기도 하지만요. 슬픔의 감정. 죽음을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씁쓸함. 작가는 거짓 희망이나 기대감을 주지 않고, 사실적으로 매춘부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과 태국 거리의 매춘부의 사랑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수쿰빗 소이 식스틴에서 맞고, 강간당하고, 밟히고, 짓이겨져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캐릭터의 생생함과 애정 어린 묘사는 책을 덮어도 머릿속에 계속 떠올리게 하네요. 우웨, 라노, 레오, 리싸, 욘, 똠, 나왈랏, 쏭루언, 플로이, 솜, 빠빠, 콴, 아팡, 까이, 지아, 샨 모두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