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셰프 -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셰프의 24시간
마이클 기브니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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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요리하는 프로그램이고 요리를 통해 경쟁을 하는 프로 혹은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또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방송에 요리사의 등장은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들의 등장과 요리하는 장면은 일반인들에게 경외감을 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다. 그리고 임기응변도 강하다. 부족한 재료로 자신이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내고 먹을 사람의 취향에 맞게 요리한다.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볼 때마다 멋지다 혹은 철저하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일상은 어떠하기에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며 제약된 재료와 시간 속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내는 데 주저함이 없을까? 하는 의문은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부분 해소 될 수 있을 것 같다.

 

열여섯 살 냄비닦이로 취직한 저자가 토한 음식을 치우기 싫어서 결심한 셰프의 길은 생각하는 만큼 녹록한 길은 아닌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일상을 나열한 주방의 모습은 전쟁터 혹은 난장판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을 주문할지 모르는 손님들 같은 시간대에 몰려들어 들어오는 주문, 그리고 조리시간은 달라도 동시에 테이블에 올려 져야 하는 음식을 시간에 맞춰 조리하는 수고로움. 300인 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만들어 내고 서빙하는 과정의 이야기들은 한 마디로 치열하다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는 셰프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접시닦이부터 시작하여 중간단계를 거치고 지금 당장이라도 구멍 난 곳을 매울 수 있는 셰프의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고 다독이며 손님들의 음식이 정상적으로 테이블 위에 올라가게끔 만드는 것이 셰프의 역할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가끔 등장하는 요리사들의 까다로운 성격, 조금의 허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꼼꼼함, 그리고 맛없는 음식에 대한 가감 없는 혹평이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직장은 매일 다른 주문을 하고 다른 코스의 음식을 요구하는 손님들의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재료가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되고 같은 음식이 대량으로 주문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식당의 모습이 아마도 이 책의 셰프의 하루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최고의 실력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조직을 강하고 혁신적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면 주방과 같은 조직을 만들어 야 하지 않을까? 좀 딱딱하기는 하지만 실력을 갖춘 사람들의 모임이고 그들의 역할은 철저하게 배분 되어있으며 사장도 건드리지 못하는 주방만의 깔끔한 독립된 공간 그 것이 어쩌면 주방의 모습일 것 같다.

 

길거리에 조리복을 입고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자.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5 10분의 시간을 그들은 그렇게 자신을 위해 소비하고 나머지 많은 시간은 식당을 찾은 손님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므로,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주방용어나 요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조금 불친절한 책이다. 읽다가 책의 뒤편을 뒤적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읽기에 방해가 된다. 주방용어를 뒤편에 두지 말고 주석으로 달아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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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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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현란하다. 광고 문구만큼이나 재미있을까?

배경은 구소련의 혁명시기를 담고 있다. 첩보 혹은 살인 미스터리 혹은 실화?

가지가지 궁금증은 책을 넘기면서 사라진다. 그냥 이야기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아이들의 살인이 아닌 공산 체제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한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찾은 것은 결국 형과 동생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의 엉킨 인연을 보게 되지만 말이다.

 

바실리와 레오의 대결 구도는 하나의 권력과 조직이 가진 모순 그리고 공산권이 가진 감시체계와 그 허와 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구성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나라하게 현실을 보자면 정의, 도덕 이런 것 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권력은 역겨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바실리의 목표는 권력이었을까? 레오였을까? 하는 의문은 소설의 끝자락에 나타난 그의 허탈감이 말해 주듯 그의 증오는 레오였다. 다만 그 것이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는 바실리의 최후의 발악이 표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맞는 대목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사와 레오의 이야기는 제도와 체계에 얽매여서 정작 부부라는 것을 잊고 살았던 그들의 사랑 찾기 과정이 그려진다. 권력의 숲에서 자신의 영역을 다시고 살았던 레오, 부하인 바실리로부터 모함을 받고 축출 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던 그는 부인을 고발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좌천 된다. 그 속에서 같이 살면서 보지 못했던 라이사의 삶을 보게 되고 전쟁 중에 여인들의 삶이 어떤 것이 었는 지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대화가 없었던 그들의 삶에 대화할 소재가 생기고 역경이 생기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레오와 그의 동생과 살인범의 관계의 복잡성과 혼합성 그리고 형을 향한 그리움이 가져온 이상한 살인의 동기는 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서 주 소재로 사용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체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전개 포인트로만 보여 진다. 책을 다 읽고 난 시점에서 보았을 때 살인은 신호에 불과 하였고 그 신호 때문에 형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을 찾아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구소련 사회의 불합리성과 부당성을 고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오래간만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긴장감 넘치게 읽은 책이다. 많은 사람들의 찬사가 있었다는 점은 이해 할만하다. 지루하면 던져버리고 느릿느릿 읽는 내 습관이 보여 지지 않을 정도로 궁금해지게 만드는 사건들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하나의 체제에서 불합리는 없을 수 없다 치더라도 사람의 모습은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이기에 소설의 주제가 극단의 살인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버금가는 상처와 굴림을 요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이 있다면 항상 도덕과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소설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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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꿈결 클래식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민수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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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딱딱한 등껍질을 가진 벌레였을까?

가느다란 다리를 가지고 두꺼운 껍질을 버텨내야 하는 딱정벌레 같은 그런 모습이었을까?

애처롭게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집어 지면 버둥거려야 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한 것일까?

 

카프카를 처음 만나 변신을 읽었을 때는 이런 느낌은 없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벌레로 변해서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가족들도 그를 버렸구나. 이렇게 딱 한 줄로 정의 내려버리고 잊혀 진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의 변신은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지금도 읽혀지고 앞으로도 읽혀질 것이고 또 나처럼 다시 읽게 될 것이다. 다시 읽는 그 사람에게는 그 나이에 맞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하겠지?

 

셀러리맨으로 살았어야 하는 카프카는 그의 글쓰기가 치열했을 것이다. 월급쟁이의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고 그 느낌에 공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나도 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벗어나고 싶어서 때론 도망치고 싶어서 다람쥐 어쩌고 하는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서 무의식으로 선택한 변신은 흉측한 모습이다. 비록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고 동생이 넘겨주는 음식으로 살아야 하지만 아마도 월급쟁이의 생활은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책임져야 했던 생계의 굴레를 던져 버린 순간 가족의 모습은 상상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자신의 책임을 버린 가족의 구성원에게 돌아올 화살이었을 것이다. 카프카는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변신 속에 담아 놓았다. 내가 바라는 변신의 결말을 말학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게 된 최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쉽게도 해피앤딩은 아니다. 그래서 카프카의 단편이 읽혀지는 것 일거다.

 

내 기억으론 카프카의 단편은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두 번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학생일 때, 한 번은 사회 초년병 때, 그리고 지금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처음은 우화집을 읽는 듯 한 느낌, 두 번째는 나는 그런 황당한 일에 휘말리지 않을 거야, 지금은 내가 꿈꾸는 변신의 최후는?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번에 읽은 카프카의 단편은 전반적으로 우울한 느낌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느낌과 생각을 다르게 전하는 것이 명작이라는 것은 알지만, 회사원이었던 그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비유된 모든 것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사이렌의 침묵 역설적 단어의 조합이 가져오는 공허함과 불안감, 팽이 돌아야 하는 운명과 채찍, 포세이돈 이후의 행복을 위해 반복해야 하는 계산,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그 옛날의 나의 모습을 그리워 하지만 갈 수 없는 현실 뭐 이런 잡다한 생각들로 단편을 읽으면서 좀 짠하게 느껴졌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의 글은 자신의 삶을 비유와 우화로 남겨 놓은 듯하다. 그가 살던 세상은 분명 지금의 세상과 달랐을 것인데 지금의 나는 그의 글 속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변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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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글은 우화 같은 형식이라서 그런지 매번 읽을수록 느낌이 달라져요.

잠자자 2015-05-17 20:40   좋아요 0 | URL
우화 형식이라 더 느낌이 남다른 것 같네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을것 같아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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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읽는 것에 집중하였다. 읽는 것이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읽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읽는 것. 다른 세상으로 나를 잠시 이동시켰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것에만 집중하다가 문득 책을 쓰는 사람들이 궁금해 졌다. 어떻게 이런 구상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무엇으로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그려가는 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글을 세상으로 던져 놓았을까? 그리고 왜 글을 쓸까?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궁금하던 차에 정말 딱 맞춤한 책을 만났다. 한창훈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의 소설을 접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곤 문창과 교수님 정도로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 생각은 책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상상력과 경험 역시 글을 쓰는 사람들의 범주를 짐작할 수 없다. 그리고 돌아본 나의 발자취는 치열한 삶보다는 안정된 것을 선호하고 작은 것에 행복을 모르며 무례하다 싶을 정도의 용기가 없다. 아마도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차이리라.

 

처음 글을 읽으면서 산문집이라는 것을 잊었다. 아주 짧은 소설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지금 소설이 아니라 수필을 읽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타는 노부부의 이야기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운동회의 쪽지 속의 어머니라는 쪽지는 어른이라는 것에 대한 창피함이 들었다. 직업을 나열하는 치기 어린 술자리 속에 두 사람의 대화는 단 하나의 직업으로 장시간을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한심스러웠고, 막걸리 한 사발이 곤궁해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에서 작은 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읽어 본적 없는 작가의 소설은 그의 삶의 전반을 지배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등장하고, 때로는 그의 친구도 이웃도 가족도 등장 할 것이다. 작가는 그런 경험을 글로 남겨 사람들에게 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전해 주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이 책을 통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커졌다고 해야 하나?

 

크게 네 가지 단락으로 구성된 책은 첫 부분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그 시간을 같이 공유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두 번째 부분은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세 번째는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듯 같은 느낌은 그는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며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하며 상대와의 이야기 보다는 글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인생 속에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하는 이야기 말이다. 홍합 아주머니들처럼 그렇게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목수가 십수 년 동안의 망치질 총량을 어느 날 문득 헤아려보고는 몸서리를 치는 행위와 소설쓰기는 비슷하다. 책 속에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변서 다시 망치를 잡듯 그다음 소설을 쓴다. - Page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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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란 무엇인가(파리리뷰)>에서 목수일에 빠져있던 치버에게 인터뷰어들이 찾아갔을 때, 자신들에게 그걸 시킬까봐 겁먹었던 기억이 나네요ㅎ
목수일과 글쓰기를 비교한 마르케스도 있었죠^^!
 
숫자의 법칙 - 생각의 틀을 바꾸는 수의 힘
노구치 데츠노리 지음, 허강 옮김 / 어바웃어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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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가 0.1mm인 종이를 50번 반으로 접을 수 있을까?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더니 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안하게 가능하다고 대답을 하곤 그 두께를 계산해 본다. 이런? 사람의 힘으론 아니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숫자가 나온다? 0.1mm 라는 숫자와 50이라는 작은 숫자에 현혹되어 가능하다는 대답을 하게 된 것이지. 숫자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와 이렇게 연결이 되어있다. 고정관념과 규칙과 법칙 그리고 사람의 심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2:8의 법칙 2080의 법칙이라고도 말하는 법칙. 복권의 당첨 확률 보다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권 파는 곳만 보이면 무단횡단을 해 서라도 꼭 사고야 마는 습관. 일 년에 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고 성공 확률이 90%라고 했을 때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확률은 35%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 번의 실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좌절감(결국 직장 생활이고 인생이고 실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숫자로도 증명할 수 있다는 논리?), 마케팅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숫자들의 원리와 심리 등. 알고 있어도 우둔한 행동을 다시하고 설마 내가라는 확률 전쟁에 나만의 행운을 바라고 사는 것은 아닌지..

 

민감한 숫자지만 잘 모르고 있었던 숫자의 경계를 보았다고 해야 하나? 심리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 마케팅에 활용되는 상품의 가짓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처음 본 숫자에서 인식이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숫자를 보면서 그 크기의 편차를 잃어버리는 숫자의 허점? 아니 사람의 심리의 모순이라고 하는 것이 낳을 것 같다. 그리고 스팸 메일을 보내는 마케팅의 원리 혹은 사람을 속이는 숫자의 비밀, 속을 수밖에 없는 구조, 때로는 진실이 아님에도 넘어가는 플라시보 효과 등 일상 속에 숫자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당첨 확률을 놓고 사람들이 제비뽑기를 한다. 그런데 한 번 뽑은 공은 서로 자신이 가지고 있고 순서를 정해서 뽑는데 사람들이 순서에 민감하다. 어떤 순서가 당첨 확률이 높을까? 결과적으로는 똑 같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순서를 가지고 투닥 거리는 것을 보면 사람은 숫자 속에서 살면서도 숫자에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알았던 것 몰랐던 것 그리고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숫자의 개념을 잡았다. 다만 가끔 복권을 사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단 횡단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사 줘야겠다. 이웃돕기를 핑계로 불가능한 확률에 도전하면서 숫자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가끔 웃음을 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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