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현란하다. 광고 문구만큼이나 재미있을까?

배경은 구소련의 혁명시기를 담고 있다. 첩보 혹은 살인 미스터리 혹은 실화?

가지가지 궁금증은 책을 넘기면서 사라진다. 그냥 이야기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아이들의 살인이 아닌 공산 체제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한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찾은 것은 결국 형과 동생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의 엉킨 인연을 보게 되지만 말이다.

 

바실리와 레오의 대결 구도는 하나의 권력과 조직이 가진 모순 그리고 공산권이 가진 감시체계와 그 허와 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구성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나라하게 현실을 보자면 정의, 도덕 이런 것 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권력은 역겨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바실리의 목표는 권력이었을까? 레오였을까? 하는 의문은 소설의 끝자락에 나타난 그의 허탈감이 말해 주듯 그의 증오는 레오였다. 다만 그 것이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는 바실리의 최후의 발악이 표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맞는 대목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사와 레오의 이야기는 제도와 체계에 얽매여서 정작 부부라는 것을 잊고 살았던 그들의 사랑 찾기 과정이 그려진다. 권력의 숲에서 자신의 영역을 다시고 살았던 레오, 부하인 바실리로부터 모함을 받고 축출 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던 그는 부인을 고발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좌천 된다. 그 속에서 같이 살면서 보지 못했던 라이사의 삶을 보게 되고 전쟁 중에 여인들의 삶이 어떤 것이 었는 지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대화가 없었던 그들의 삶에 대화할 소재가 생기고 역경이 생기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레오와 그의 동생과 살인범의 관계의 복잡성과 혼합성 그리고 형을 향한 그리움이 가져온 이상한 살인의 동기는 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서 주 소재로 사용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체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전개 포인트로만 보여 진다. 책을 다 읽고 난 시점에서 보았을 때 살인은 신호에 불과 하였고 그 신호 때문에 형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을 찾아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구소련 사회의 불합리성과 부당성을 고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오래간만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긴장감 넘치게 읽은 책이다. 많은 사람들의 찬사가 있었다는 점은 이해 할만하다. 지루하면 던져버리고 느릿느릿 읽는 내 습관이 보여 지지 않을 정도로 궁금해지게 만드는 사건들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하나의 체제에서 불합리는 없을 수 없다 치더라도 사람의 모습은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이기에 소설의 주제가 극단의 살인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버금가는 상처와 굴림을 요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이 있다면 항상 도덕과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소설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