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위의 권력 슈퍼리치 - 2천 년을 관통한 부의 공식
존 캠프너 지음, 김수안 옮김 / 모멘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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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하는 생각에 인류의 역사상 많은 부를 축적했던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 졌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부는 어떻게 형성을 하고 그 돈으로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책은 인류 역사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일구며 살아갔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생각만큼 행복해 보이지 않아 씁쓸함이 남기는 하지만 말이다.

 

돈과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세상의 기록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의 이름 보다는 업적에 중시하여 이름을 기억한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세상의 질시는 그들의 행적을 고운 시선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세상의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한 곳으로 쏠리기 위해서는 많은 서민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정복을 바탕으로 재화를 끌어 모으고, 사업혁명 시대에는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도 역시 기술과 금융을 바탕으로 돈을 끌어 모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초기 인류는 재화를 바탕으로 신분상승을 노렸지만 지금의 인류는 돈을 바탕으로 명예를 얻으려 한다. 다만 돈이 모이는 과정에서 비도덕적 행동은 명예를 수반하여 주지 않는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고 난 소감을 몇 자로 정리하여 보았다. 그리곤 생각해 본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슈퍼 리치의 반열에 들어가 보고 싶을까? 그리고 그 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을까? 결과적으로 소시민의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재벌 혹은 슈퍼리치의 기회가 와도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프란시스코 피사로처럼 잉카의 문명을 멸망시키고 원주민을 학살하며 금을 모을 만큼의 배짱도 지니지 못했고, 루이 14세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도 없고, 신분 사회도 아닌 지금에서 로버트 클라이보 처럼 신분 상승을 꾀하지도 않을 것 같고, 알프레드 크루프처럼 사람들을 화장실 가는 것까지 감시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카르텔이나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속여가면서 돈을 모으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카네기의 말처럼 돈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숭상하지도 않기에 나는 슈퍼리치가 될 가능성도 기회도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조금 편안하고 느긋한 삶을 살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 남는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부의 역사를 통해 한 곳으로 편중된 사람들의 역사와 시대상을 같이 볼 수 있었으며, 과거 30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를 축적하는 방법에 대한 공부도 같이 할 수 있었다. 현재를 살면서 물질 만능이 만들어 놓은 사항이 카네기를 숭배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삶에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냉철함 혹은 남을 지배하는 수단으로서의 방법론이 될 것 같다. 현재의 부를 거머쥔 인물들 역시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탄생한 거부들의 삶 역시 시대가 더 지나면 어떤 평가가 내려질 것인지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처럼 한 번쯤 돈 걱정 없이 살아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있다면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줄지도 모른다. 제한된 자원이 한 곳으로 편중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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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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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처음 만난 날 나는 세상에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짜라투스트라를 만난날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으로, 그가 말하는 초인은 슈퍼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의 이야기는 정말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읽다가 덮어 버린 짜라투스트라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다른 판본으로 내게 다가왔다. 여전히 슈퍼맨과 거만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나의 머리는 또 다시 책의 마지막 장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니체를 설명하는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니체의 정신세계는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영역이었다. 결국 내가 무모한 도전을 하였던 것을 후회하고 해설서 혹은 그의 일편을 담은 아포리즘들을 읽으면서 니체와 조금 가까워 졌다. 아직도 짜라투스트라를 읽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그리고 한 줄에 머물러야 하는 생각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이 책을 선택하고 읽는 것 역시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니체의 말을 들으면서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가 죽었다는 신의 존재는 허상의 신을 위해 허비하는 인생 보다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간과 인생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음을, 그리고 어떤 철학자 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으며, 스스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게으르지 않고 지혜의 세계로 나아가고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 가는 데 이만한 인물과 말을 전하고 있었던 사람이 없었음을 이해한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거만한 말투가 전해오는 부담감은 그가 가진 맑고 넓은 지식세계에서 전달하는 충격 요법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 같다.

 

이 책 역시 니체의 생각과 말을 우리에게 편하게 전달하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책이다.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자신이 소속에서 떨어져 있을 때, 때로는 나의 목표가 어떤 방향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좌절 이라는 것에서 허망하게 시간을 보낼 때 니체가 전하는 정갈하고 깔끔한 조언들을 마음에 다시 새겨 보자는 의미이다.

 

일본인 저자라서 그런지 일본 문학과 역사가 예를 들어 설명이 되어 있고 자주 인용하는 부분이 사기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여서 동양적인 부분에 많이 치중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으나 저자의 한계를 벗어나 현실적인 우리가 공감하는 우리의 말로 풀이가 되었다면 좀 더 가슴깊이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어떤 말을 하건 니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글을 읽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부분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니체를 읽다 때로는 니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읽고 해설을 읽는 이유는 나의 생각이 나만의 틀에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초기 니체의 글이 우리나라에서 번역이 될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번역 한 줄에도 의미가 달라지는 그의 함축된 말들을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 것에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니체의 지혜를 빌릴 수 있을까 하는 진리만 전달하면 될 것이다.

 

아직도 니체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자꾸 읽고 생각하고 고민해 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말하는 가도 고민해 본다. 그의 말이 삶의 지혜가 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세상과 그리고 외롭지 않게 나 자신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그가 산속에서 내려와 전해 주고 싶었던 말들 속에 삶의 지혜가 있을 것 같다.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와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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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글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오독하기 쉬워요. 그래서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 까다로워요.

잠자자 2015-08-14 22:01   좋아요 0 | URL
그렇겠네요. 전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조심스럽게 읽 고 있어요...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 기이하거나 별나거나 지혜로운 괴짜들의 한살이
권오길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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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삶은 치열하다. 때로는 비겁하고 야비하게 보일지 몰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사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때로는 다른 생물을 범하면서, 때로는 다른 생물과 공존하면서, 때로는 있는 듯 없는 듯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눈에 띄면서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게끔 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간다. 수만 마리의 알을 낳아도 살아남아 성어가 되는 것은 몇 안 되는 갈치, 후손을 위해 알을 낳고 죽는 문어의 수놈과 암놈, 자신의 몸을 바쳐 후손을 위해 암컷의 먹이가 되는 사마귀 모두가 삶의 치열함과 종족 보전의 본능의 숭고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주변에서 자주 보고 항상 내 몸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몰랐던 생물들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구수한 방언과 일상의 기억과 추억이 같이 있는 이야기가 있는 생물들의 삶의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 혹은 추억의 모습 때로는 잊혀 진 입맛을 기억하게 하였다. 어릴 적 바구미 때문에 쌀을 볕에 널어놓고 구멍 난 쌀을 골라내던 기억, 아주 어린 나이 시골 잔치에서 돼지를 잡던 풍경, 동해 바다에 놀러가서 먹었던 작지만 맛있었던 양미리의 맛, 사마귀가 나면 사마귀를 잡아 놓고 입을 가져다 놓고 사마귀를 없애라고 장난치던 기억, 아까시나무 꽃에서 꿀을 빨아 먹던 추억 등등 생물 이야기를 하면서 옛 기억이 새록 떠오르는 것은 저자의 입담과 구수한 방언 그리고 그 시절의 공통된 사회상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야기 속에 지식이 있고, 추억 속에 지식이 있어서 책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양미리와 까나리를 구분하고, 바닷가에 가서 갑각류처럼 보이던 생명체를 보고 바다에도 바퀴가 사나 했던 기억이 갯강구였다는 것을, 피부에 붙어사는 세균, 내장의 세균 모든 것이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책벌래가 책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곰팡이를 먹는 데 책을 못 쓰게 만드는 해로운 생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 등등 저자가 알려준 잘못된 상식과 그 생명체의 입장에서의 변명을 들어 줄만 하다. 배좀벌레조개가 나무에 굴을 파고 톱밥 가루를 뒤로 밀어내는 형태를 지켜보다가 땅굴 파는 기계가 발명이 되었다는 것 역시 처음 접하고 기억해 둘 만한 지식이다. 발명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많은 생명체들이 나와서 책장을 덮은 지금 기억나는 것은 대부분의 생명체는 자신을 번식하고 생존하는 것에 치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밀접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모두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해로운 것인가? 사람에게 정말 필요 없는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조충을 몸에 담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니 말이다.

 

생물에 대한 지식을 암기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이 책의 의미는 일상에 같이 존재하는 생명체와 우리가 먹고 생활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지구 위 생명체로서의 일상과 그들의 한 살이를 같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생명을 바라보는 눈의 편견이 사라질 것이고 때로는 몰랐던 지식을 알 수 있으며, 그리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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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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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잊고 싶어지는 일이 있다. 잊고 싶어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 있을 때 괴로움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있다. 그래서 괴롭고 괴로움은 또 다른 연민을 낳는다. 사람은 혼자 살수 없고 살아간다는 것은 잊어야 할 일과 기억해야만 하는 일로 인생을 만든다. 알코올중독으로 순간의 기억을 잊은 여인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또 다른 갈증을 만들어낸다.

 

상처 속에 살아가는 레이첼의 일상은 자신의 삶을 조망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일상적인 아침의 출근길 그녀는 한 쌍의 행복해 보이는 남녀를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고 단정 짓는다. 그녀의 남의 삶을 엿 보기는 자신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관찰하던 부부의 사고 속으로 그녀도 빨려 들어간다.

 

남의 삶을 엿보고 싶은 욕망은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속성으로 생각했는데 레이첼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삶의 한 부분을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려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곤 잊어버리고 싶은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술에 의지하여 지워버리고 그 속에서 그녀의 진심을 말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건의 열쇠는 그녀가 잊어버린 기억 속에 있었다. 그 기억을 찾는 과정과 지면을 통해 공개되는 사건의 열쇠들의 조합이 이 소설의 전체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다.

 

등장하는 여인들의 삶은 아이에 대한 집착 혹은 죄책감으로 얼룩져 있다. 레이첼과 메건 그리고 애나의 삶속에 등장하는 아이에 대한 세 여인의 행동은 서로 다른 여성의 삶속에 다르게 자리 잡은 아이에 대한 생각과 그로인한 삶의 지배적인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남자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여성의 자녀에 대한 애착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폴라 호킨스가 보여주려는 세 여인의 삶속에 여성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범인일까? 하는 질문은 책의 초반부터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알코올 중독으로 잊어버린 레이첼의 기억 속에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야기는 세 여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매력이 있다. 기억을 찾는 것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임을 알면서도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세 여인의 심리와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상처의 흔적이다. 그 흔적 속에서 범인에 대한 화살은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오고가지만 여성작가의 눈에 남자의 이기심은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의외의 인물이 범인 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추리와 멜로 그리고 심리묘사가 적절하게 배합되어진 소설이라 할 것 같다.

 

많은 분량임에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었고,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시간적 배열도 적절 하게 놓여 있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착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된 사람이 범인이라는 점은 세상의 호의에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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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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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시를 읽을 때, 그리고 또 다른 책을 읽을 때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비평이라는 분야에 대한 것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있다는 것은 날고 있었지만 어떤 것이 비평이고 어떤 것이 감상인지 잘 알지 못하는 우매함이 있어서였을까? 읽는 동안 내내 밑줄을 그어 대며 생각을 해본다.

 

가끔 책을 읽을 때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은 있다. “ 어떤 의도로 이런 문장을 넣었을까? 갑자기 이 에피소드는 무엇이지?” 대부분의 경우 그냥 넘어간다. 주요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으니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이 무심코 넘어갈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인 정문순의 평론은 여성 작가들에게 박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평론한 신경숙의 표절 관련 문제가 2000년에 재기 하였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신경숙은 자기 입으로 [외딴방]을 연재할 당시 소설을 읽고 보내온 산업체 특별학교 교사의 편지를 본인의 허락 없이 다른 글에 그대로 가져다 쓴 적이 있다고 한 적이 있고, [외딴방]에도 그 교사의 편지 한 통이 실려 있다. -Page 27

 

신경숙의 작품에 표절 문제가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최근에야 이야기 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표절이라는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별다른 의식이 없어 보인다. 혹자는 글만 재미있으면 됐지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지만 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대부분의 여성작가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여성을 고착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상업적인 글쓰기에 얽힌 것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출판도 사업이라 상업적 가치를 떠날 수는 없겠지만 문학적 양심이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가령 패배의식과 무기력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개인 내면의 탐색은 집단에 대한 개인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파편화된 개인을 낳을 뿐이라는 건 1990년대에 신경숙을 위시한 인기 여성 작가들이 절실히 보여준 바 있다. - Page 225

 

한 때 이문열을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조금 실망하고 그의 작품을 멀리하였는데 작가의 의식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실랄한 비판 한 줄이 눈에 들어 왔다.

 

소설의 몸을 빌려 우익파시즘을 열렬히 전도하고 있는 이문열보다 그의 소설 아닌 소설에 대한 평단의 침묵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그의 소설을 짐짓 평범한 텍스트로 소비하고 지나치려는 태도는 가장 위험한 독서 태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age254

 

그냥 이야기로 재미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들린다. 철저하게 작가의 의도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책을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아쉽게도 나는 그냥 재미로 읽었었는 데... 평론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좋은 글로만 느끼고 무력한 현실에 수긍하는 삶을 그린 작품을 보면서 위로 받았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생각을 텍스트에 숨긴다면 나는 무의식 속에서 그의 의도에 수긍하게 되는 것인가? 의식 없는 독서가 가져올 미래를 생각하면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생각하며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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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0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서평에도 신랄한 악평이 필요하다고 봐요. 칭찬 위주의 서평에 익숙해질수록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잠자자 2015-08-04 21:5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서평을 쓰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담아야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