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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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사다리 뻥(걷어차기) 이었다. 사실 제목이 좀 재미있어서 관심을 가지다가 좀 색다른 점을 발견하였다. 저자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 옮긴 사람이 있었다. 좀 특이한 책이라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고 읽다가 결국 사가지고 오게 된 것이 장하준 교수와의 첫 만남 이었던 것 같다. 책을 들고 집에 와서 단숨에 읽었다.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아니 배워왔던 경제논리와 많은 정보들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장하준 교수의 책은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오면서 원론적인 경제 논리 보다 비유와 사실적인 예를 들어서 경제 논리와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기초지식에 숨겨진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이렇게 시작된 장하준 교수의 글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자유시장 경제에 근접해 있는 우리의 경제구조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모순을 공감하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이 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도 역시 공감과 시원함을 동반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던 논리와 자본집중화 현상과 강대국의 논리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를 표방한 선진국의 금융 횡포가 가져오는 국가간의 불균형과 개인의 소득 분배에 관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23 단락으로 구성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 인과 전혀 다른 구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좀더 편하게 그리고 좀더 이해하기 쉽게 경제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장하준 교수의 논리는 국가든 개인이든 분배와 성장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의 고민을 던져 준다. 자본논리를 들이미는 강대국이나 자신의 시장을 봉쇄하고 환율로 방어하며 자국의 경제 논리를 부각하는 중국의 사례나 모두 국가간의 성장을 찾아가는 방법의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많은 사례 중에 나에게 가장 의미 있게 느껴지는 장 교수의 논리는 미국의 부의 집중이다. 상위 1%의 소득은 전체 국민 소득의 22.9%를 차지한다는데 있다. 개인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상위 1%의 개인이 77.1%의 소득을 99%의 국민이 나누어 가진다고 한다는 말인데 이것을 좀더 쉽게 설명하면 전 국민이 100명인 나라가 1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면 그중 한명이 22만 9천원의 이득을 가져간다는 이야기가 되니, 나머지 99명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고 해도 7788원 정도를 가져간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 명이 다른 사람들의 소득의 29.4배의 소득을 가져가는 셈이 된다. 숫자상의 계산이 이렇다는 것이지 후에 나오는 CEO의 소득과 노동자의 평균 소득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설명한 단락에서는 300~400배의 연봉을 가져간다고 하니 그 차이는 더 심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소득의 차이를 능력과 자본의 차이로 치부하기 보다는 장하준 교수는 부자감세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보는 시각도 빼 놓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국가간의 소득 불균형과 동일한 일을 하고도 임금의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다면 아마도 이 논리는 국가간의 자유 무역이 가져오는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유시장 경제 체계에서 필요한 일족의 제약이 어쩌면 그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 역시 아직 성장하지 못한 나라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1800년대 말 미국이 펼쳤던 보호무역의 장벽처럼 말이다. 지금 중국이 펼치는 무역장벽과 비교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개발도상국이 가져야 할 정책이 어떤 면인가를 말해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항상 드는 생각은 단 하나이다. 과연 우리는 소득분배에 관한 정책을 잘 펼치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자유무역 시장경제 체계로 놓아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이 잘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국가에서 보호무역이니 환율 장벽등을 만들어서야 위신이 서지 않겠지만, 정말 국민을 위한 국가의 정책은 잘 돌아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버릴 수 없다. 현대인이 가져야 하는 덕목 중에 하나가 경제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 나에게는 그런 덕목을 가질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최저 임금이라는 저 임금의 일자리를 통해서 받는 나의 서비스는 적은 돈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편의점 혹은 PC방 혹은 주유소, 음식점 놀이동산 등의 아르바이트 시간당 최저 임금이 만 원대라면 나는 지금의 현금으로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해택을 버리면서 까지 소득의 분배에 더 무게를 실어 주기에는 어쩌면 내가 지금 내는 세금의 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개인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또 하나의 혼란스러운 경제의 뒷이야기를 해보았다. 내가 느끼는 경제와 국가가 가야할 경제 그리고 세계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각 국가들의 정책 속에서 개인은 어떤 생각으로 경제 흐름을 보아야 할지 조금씩 세상을 알아 가는 일이 어쩜 최선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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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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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부모들의 인생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인생의 발자취를 내가 밟아 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충직한 일꾼이 되는 것이 사회의 가장 보람된 일이라 교육을 받아왔고 굶고 살던 아버지의 세대에서 좀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만 하면서 살았다. 가정도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오직 나에게 일을 가져다 준 그 사람을 위해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 왔고 나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스티븐스의 인생처럼 말이다.




스티븐스는 큰 저택의 집사다.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몸보다는 주인 나리의 생각과 행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하고 행여 나리의 마음이 상할까? 자신의 행동에 나리의 일에 방해를 받으면 어쩔까? 그리고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려면 부차 스러운 일들을 도맡아서 고민하는 그런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회상과 더불어 역설한다. 그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충직한 직업인이라면 자신의 일에 품격을 더하는 법이라 하였던가? 집사의 일에도 위대한 집사가 되려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스티븐스의 논리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읽는 도중에 스티븐슨 자신은 그의 인생에 없었음을 발견하고 못내 아쉽다. 이런 그가 황혼의 나이에 한 여인을 찾아간다. 켄턴이라는 젊은  시절 자신과 함께 총무로 일하던 여인이다.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던 여인의 편지 한 조각을 회상하며 그 여인을 찾아 나선다. 그 여인에 대한 어떤 연민이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에 후회가 없었던 스티븐스에게 켄턴 즉 벤부인이된 이 여인은 스티븐슨을 연모하였던 시절을 이야기 한다. 그를 골려 주기위한 청혼 수락이 결국 이 많은 세월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차분하게 자신의 일에 열중하면서 살아온 스티븐스와 당당하지만 자신의 순간적 판단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켄턴의 인생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모습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결국 모든 것을 자신의 일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이 즐거운 일인가? 조금 시행착오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이사람 저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 즐거운 인생인가를 물어 보고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의 자유이겠지만 우리가 선택할 길은 자명하다고 본다. 그리고 스티븐스의 생에 첫 여행이 된 황혼에서 느끼지 말고 인생의 초반에 느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노인의 말처럼, 삶의 굴레에 속박되어 자신의 생각도 나리의 생각과 일치시켜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려는 많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한 자기만의 논리가 아니라 정말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의 저녁은 즐기기 좋은 시기라고 한다. 저녁 무렵 행복해 지기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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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 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
김난도.최인수.윤덕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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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한국 사람들에게 커피를 왜 마시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였을까요? 궁금하죠?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냐고요? 아마도 커피 집을 창업하고 싶은 분들이나, 커피 판매 회상에 다니시는 분들 그리고 마케팅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주로 하고 다닐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분들에게는 아무의미 없는 이야기 즉 자신이 느끼는 솔직한 대답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분석하고 파악하고 동향을 예측하는 것 같습니다. 비단 커피만은 아니겠죠? 여러 가지 우리 일상에 관한 재미있는 통계와 우리의 생활 습관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마케팅이나 상품기획 그리고 미래 혹은 현재의 소비자 성향을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의 평범성과 나의 일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일치하기도 하지만 제가 좀 유별나기는 하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선택한 목록에 제 생각에는 없는 부분이 있네요. 모두 17개 부분에 대한 심층 조사를 통하여 우리 일상을 숫자와 데이터로 분석한 우리 소비자들의 성향에 대한 자료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요구사항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총 17개 부분에 대하여 심층적인 조사와 분석을 실시하였다는 이 자료는 58만 패널이라는 숫자가 말해 주듯이 보다 우리 일상에 근접한 자료를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그렇고 일단 커피에 대한이야기가 있으니 커피에 대한 분석자료를 조금 들여다보면 우리가 커피전문점에 가는 이유에 대한 응답에 있어서 가장 많은 이유로 응답한 부분이 커피 맛도 아니고 가격도 아니고 그저 거리가 가까워서 였다. 근접성이 가장 좋은 곳에 별다방이니 콩다방들이 위치하고 있어서 우리가 자주 이용한다는 이야기 인데, 각 매장들이 위치한 자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동인구가 가장 많고 교통편리성이 좋은 곳에 매장이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자주 이용하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을 치루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럼 단순히 근접성이 좋아서 커피 전문점을 이용한다면 조금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인데, 커피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맛과 성분을 생각한 설문 조사를 종합하여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하여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비자들에게 ‘믹스커피’는 개인의 필요성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카페인을 소비하게 하는 음료고, ‘캔 컵 커피’는 이동 시에도 즐길 수 있는 제품이고. ‘커피 전문점 커피’는 공간과 관계의 의미를 함께 고려하는 ‘사회적 매개체’라 할 수 있다. - Page 146




모든 조사 자료의 심층 분석을 하면 위의 세 줄로 요약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커피 한 잔을 패널들의 응답을 종합하여 분석한다면 커피 본질에 대한 의미와 커피 전문점이 가지고 있는 시장의 의미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커피 전문점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 깊이 새겨 둘만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커피 시장은 2008년 말 금융위기의 한파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는 시장으로 그 형태는 더욱 세분화 되고 특성화 되고 있다니 말이다.




이렇게 한 부분을 조금 언급하여 보았는데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의 성향은 일관성을 가지거나 획일화 되지 않는다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휴대용 디지털 기기 부분에 있어서는 시장을 예측하기가 도무지 어려운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MP3를 구매할 때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은 어떤 부분을 가장 고려하는가? 하는 질문에 가격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응답을 보인 부분이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MP3에 동영상 기능을 탑제 하고 저장 공간을 확장하는 많은 업체들의 전략이 어쩌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 각광을 받고 있는 핸드폰의 경우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오고 있지만 많은 기능과 달리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통화와 문자였다고 한다. 모든 것이 다 되는 핸드폰을 고가에 구입하고도 우리 소비자들은 그저 핸드폰의 고유기능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것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기능이 많은 핸드폰을 원하고 있으며 그 것에 대한 구매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한 면에 있었다. 이렇게 휴대용 디지털 기기는 자신의 고유영역을 가장 많이 사용을 하면서도 기능은 다 기능화 되게끔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어떻게 충족 되어 질지 궁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아이패드라는 신제품과 최근 국내 대기업에서 비슷한 종류의 휴대용 기기가 나온다고 하니 이 것의 용도를 소비자들은 어떻게 만들어 갈지 더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부분의 조사와 분석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갈무리한다.




‘다(多)’ 되는 휴재전화를 다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 ‘같은’ 기능이 있어도 ‘다르게’ 활용하는 소비자, 상품 기획자의 의도와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소비자, ‘없던 필요도 만들어서 사용하는’ 소비자. 차가운 디지털 기기의 운명은 이러한 ‘럭비공’ 같은 소비자들의 마음과 행동에 달렸다.




상품을 예측하고 성향을 파악하여 미래의 제품을 상상하여 만들어 낸 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닐 것 같다. 17개 항목을 두루 살펴보면 소비 일상의 모든 부분을 총괄 하고 있다. 하물며 소비성향에 대한 분석도 들어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분석된 자료의 광범위함과 보편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성향을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향후의 우리 생활의 전반을 지배할 부분이 무엇이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것 같다.  상품기획을 하시는 분이나 창업 혹은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프 하나 만으로도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던데, 수만은 통계자료와 분석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일상과 나의 일상에 대한 비교를 많이 하게 하였다. 때로는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조금은 다른 내 생각 때문에 고민도 해보고, 교육 시장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갑갑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이렇게 우리 소비 시장을 분석한 자료를 접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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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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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이 막대한 분량의 책을 들고 중압감 있게 찾아왔다. 사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만나면 왠지 모를 부담감 때문에 시작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된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고민을 뒤로하고 그가 만들었다는 그의 사상의 종합판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중압감을 이겨내는 순간부터 책을 술술 넘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그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들고 나온 단어 공감이라는 것이 우리 지구가 처한 현실을 공감하고 늦지 않게 준비하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손가락 하나를 펴고 나머지 손가락을 접어서 턱을 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의 고민이 너무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은 모두 3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면 1부에서는 호모 엠파티쿠스 즉 공감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그리고 성장과정과 발달 과정에서 공감하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공감하는 문명으로 인류의 역사를 고대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건과 현상을 통해서 공감을 통해 발전한 인류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사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분량도 많고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고 있어 당황하였지만 인류사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제러미 리프킨이라는 사람이 글을 써 내려가고 논리를 만들어 나가는 배경지식이 이런 곳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3부는 개인적으로 공감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공감을 통하여 만들어 놓은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 속에서 미래를 위해 공감하고 준비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제거하여야 할 위험 요소는 무엇이고 그리고 공감의 기반이 형성된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여 주고 있다. 각 장별로 제러미 리프킨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두꺼운 책을 시작하면서 제러미 러프킨이 선택한 첫 이야기는 세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군 사이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휴전에 관한 이야기 이다.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면서도 크리스마스라는 공감을 이야기 하면서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엔트로비에 대한 언급을 시작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은 공감을 하게 되어있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결국 남의 고통의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분노하고 움직이는 힘을 말하고 있으며 이런 힘은 원초적으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연약하지만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힘의 근원이 되었다. 이런 공감의 현상은 생물학적 진화를 겪게 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미미하게 지만 관찰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성장은 결국 공감의 능력을 극대화 하면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에 되며, 규범을 통한 공감 능력을 향상하게 되고 추리훈련을 통한 공감능력 향상과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 수치심 역시 공감능력과 결부하여 분석할 수 있다. 결국 이타심에 관한 문제와 이기심에 관한 문제로 결부되어 지는 공감에 대한 생각은 이타심이라는 공감능력의 가장 성숙한 단계로 사람을 끌어 올리게 된다. 이렇게 인간의 성장과 발달 과정 속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성과 감성 경험의 교류에 대한 생각 진리와 자유에 대한 생각 등을 이야기 하는 끝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를 찾게 된다.  1부에서 언급된 여러 장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의 언급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해석 할 수 있었다. 인간은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생명체이며 그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의 유한함을 알고 있는 즉 유한한 생명체이기에 그 의식 속에서 인간이 유한 생명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시작하였다고 분석하면 너무 좁은 의견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1부의 이야기는 공감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 장에는 인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인류의 문명은 공감은 초기 종교적 의미의 공감대를 만들어 주는 대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이 가져온 고대 신학의 공감의 물결에 대한 이야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기독교의 시작과 로마의 급속한 성장은 인류에게 급격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요구하였으며 이런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현제까지도 유효하다. 이렇게 엔트로피의 증가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인류가 인쇄술의 발달과 휴머니스트의 발달 유년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통해서 민족 국가의 태동까지 인류의 역사를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고민하던 인류는 많은 철학자를 배출하였고 그 시기에 따라 생각과 사상의 변화를 거쳤으며, 저자가 말하는 최초의 공감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게 된다. 그의 말 중에 저자가 집중한 부분은 고통을 수반한 공감이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따라서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우리는 그 고통을 그의 것으로 느끼고, 그것이 우리의 고통이라고 상상하지는 않는다. - Page 440




결국 인류역사 속에서 공존하여 왔던 공감의 사상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 준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가 공감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한 또 한 번의 엔트로피의 위기를 만들어 간다. 화석 연료의 등장과 좀더 효율적인 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전쟁 속에서 결국 인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늘리는 스피디한 발전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사회의 발달은 개인에게 있어서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삶을 살면서도 글로벌 경제를 도외시하는 등 갈수록 개인화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리학 적으로는 자신을 더욱더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의식이 더욱더 활성화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장에 와서 저자의 음모가 서서히 들어난다. 결국 제러미 리프킨은 이 마지막장에서 그의 근심과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저자의 고민과 이 두꺼운 방대한 양의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제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 Page 761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지구촌 경제는 생명의 파괴와 자연정화능력 상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재앙의 위기에 있다. 더욱이 고갈 되어가는 화석연료는 국가간의 이권 싸움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제러미 리프킨은 많은 방법으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키 워드가 공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양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반도 공감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지구의 현실도 인류의 공감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의 두주에 걸쳐서 책을 읽은 것 같다. 재미는 있었는데 도무지 저자가 책을 쓴 의도를 잘 몰라서 고민하다가 중반이후에 그의 전작들을 둘러보다가 아마도 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세상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인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제러미 리프킨도 그 중 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아직 책을 읽고 공감하는 수준의 생존을 위한 밥벌이에 치중하는 나로서는 조금 먼 나라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현실 적이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의 관심이 어쩌면 나비효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세상은 쉽게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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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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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버릴 수 없는 생각은 작가의 인생이다. 어떤 책은 시작부터 자신의 자전적 소설임을 밝히고 시작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다 보면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 져서 뒤적이다 작가의 인생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주인공을 발견하게 된다. 도스토예스스키의 돌은 후자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글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작가의 인생과 비슷한 시점을 지나면서 공간적 구성도 비슷하게 이야기 되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기위해 글이 좋아서 들어간 문창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글을 쓰기위해 모인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씩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 글을 갈망하는 주인공의 열정이 처절하게 베어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방송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써왔던 자신의 단편을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하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성장과정과 주변에서 글을 쓰는 친구들의 평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은 충격적인 장면은 주인공과 남편사이에 일어난 소설 말살 사건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글을 모두 지워버린 남편을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신이 담았던 꿈과 열정에 대한 배반감이 처절하게 남아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책의 전반을 흐르는 글에 대한 열정과 인생의 흐름은 아마도 다음 한 줄로 정리 될 것 같다.




괴로울 만큼 괴로워야 끝나는 거야. 재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 Page 181




사랑의 아픔을 담아 놓았던 글이지만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절하게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감동과 흥미의 줄타기를 하는 그런 작가의 고민을 담은 말처럼 들리는 것은 글쓰기가 아마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위한 고통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주인공의 처절한 글쓰기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을지 모른다. 작가가 말하는 글 속의 글에 나온 것은 아마도 지하의 방을 두고 한 말이겠지만 지하의 방을 쓴 작가는 주인공의 가정사에서 글에 대한 열망을 가볍게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운명적인 존재인 동시에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Page 234




상처가 되지만 위로가 되는 존재. 글 속에 담겨있는 상처는 위로를 전재로 하여 따뜻함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감동의 근원이라면, 요즘은 그 따뜻함을 버림으로써 쓸쓸하고 외로움을 강조하는 글쓰기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은 위로를 좋아하는지 위로를 전재로 하는 글쓰기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내가 외롭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나의 글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이렇게 끼적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고 자신의 흔적을 남겨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은 외면당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을 동반하기에 더욱 처절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를 만났고 형식 또한 작가의 습작이라고 하여야 할지는 모르지만 신춘문예 당선작을 포함하고 있어서,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출간한 소설이기에 더욱 그 무게감이 가볍지 않게 받아들여졌으며, 자신의 꿈과 열정을 사르는 일생의 방법과 일생의 성장 속에서 만들어진 글의 방향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글을 쓴다면 아마도 나를 닮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되기가 가장 쉬울 것 같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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