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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버릴 수 없는 생각은 작가의 인생이다. 어떤 책은 시작부터 자신의 자전적 소설임을 밝히고 시작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다 보면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 져서 뒤적이다 작가의 인생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주인공을 발견하게 된다. 도스토예스스키의 돌은 후자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글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작가의 인생과 비슷한 시점을 지나면서 공간적 구성도 비슷하게 이야기 되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기위해 글이 좋아서 들어간 문창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글을 쓰기위해 모인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씩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 글을 갈망하는 주인공의 열정이 처절하게 베어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방송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써왔던 자신의 단편을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하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성장과정과 주변에서 글을 쓰는 친구들의 평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은 충격적인 장면은 주인공과 남편사이에 일어난 소설 말살 사건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글을 모두 지워버린 남편을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신이 담았던 꿈과 열정에 대한 배반감이 처절하게 남아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책의 전반을 흐르는 글에 대한 열정과 인생의 흐름은 아마도 다음 한 줄로 정리 될 것 같다.
괴로울 만큼 괴로워야 끝나는 거야. 재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 Page 181
사랑의 아픔을 담아 놓았던 글이지만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절하게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감동과 흥미의 줄타기를 하는 그런 작가의 고민을 담은 말처럼 들리는 것은 글쓰기가 아마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위한 고통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주인공의 처절한 글쓰기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을지 모른다. 작가가 말하는 글 속의 글에 나온 것은 아마도 지하의 방을 두고 한 말이겠지만 지하의 방을 쓴 작가는 주인공의 가정사에서 글에 대한 열망을 가볍게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운명적인 존재인 동시에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Page 234
상처가 되지만 위로가 되는 존재. 글 속에 담겨있는 상처는 위로를 전재로 하여 따뜻함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감동의 근원이라면, 요즘은 그 따뜻함을 버림으로써 쓸쓸하고 외로움을 강조하는 글쓰기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은 위로를 좋아하는지 위로를 전재로 하는 글쓰기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내가 외롭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나의 글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이렇게 끼적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고 자신의 흔적을 남겨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은 외면당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을 동반하기에 더욱 처절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를 만났고 형식 또한 작가의 습작이라고 하여야 할지는 모르지만 신춘문예 당선작을 포함하고 있어서,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출간한 소설이기에 더욱 그 무게감이 가볍지 않게 받아들여졌으며, 자신의 꿈과 열정을 사르는 일생의 방법과 일생의 성장 속에서 만들어진 글의 방향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글을 쓴다면 아마도 나를 닮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되기가 가장 쉬울 것 같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