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나무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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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 도시가 아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니 그 속에 있는 내가 더 싫어 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선택을 한다. 여행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나를 던져 놓던지, 아니면 그들의 간섭과 관심을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 영영 나오고 싶어질 때 까지 버티는 거다. 이런 단계보다 더 증상이 심해지면 그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난다. 나와 같은 사고 같은 환경 그리고 같은 교육과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완전해 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나의 과거가 어땠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것에 대한 나태함을 버릴 수 있다. 둘의 절묘한 조합이 상승작용을 한다면 어쩌면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과거의 나는 내 몸에서 조금은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만일 외국에 나가 산다면 아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 책은 이 생각이 맞는지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 그렇게 택하고 읽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일본? 정말 이들의 일본에서의 삶이 어땠을까? 생김새나 생활습관이 비슷할 것 같은 일본, 가깝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는 나라, 대부분의 성인 아니 나이가 조금 있거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이름만 나와도 흥분하는 나라, 나도 다른 건 몰라도 이 나라에게만큼은 우리가 져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게 하는 나라.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아마도 열등감 혹은 패배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누가 심어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민족이나 국가라는 가치관이 만들어낸 내 사고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실패는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고 성공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도쿄에 오기 전의 내 인생은 절망적이었지만 도쿄에 와서 모든 것은 매우 희망차게 바뀌었다. - Page 142

 

모두의 삶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삶에는 위의 두 줄의 맥락을 같이 한다. 아마도 내가 생각한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한다. 공부를 위해 떠나기도 하고 무작정 떠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더 멀게 느껴질 터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의 삶과 사랑은 참으로 훌륭하다. 외국인이라는 차별, 문화의 차이 그리고 고된 외국이라는 곳에서의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자신의 꿈을 이루니 말이다.

 

2장에서는 그들의 사람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일본에 살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될 지도 모르는 그 많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되어준 사랑, 한국인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을 깨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편협한 사고를 가진 나에게 이들의 모든 삶을 이해하게 한, 한 줄의 글귀는 이 책의 백미였다.

 

내가 사랑한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닌 어쩌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 남자다. -Page195

 

아마도 이들이 일본에 살고 일본으로 떠난 이유는 어쩌다 좋아하는 것이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한 장소가 일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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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변명 - 타인의 시선에 맞추지 말고 홀로 춤추듯 살라
홍신자 지음 / 판미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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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에 지어진 이야기가 지금에 와서 다시 찾는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렇게 지난 말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저자인 홍신자는 지금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이고 세상은 그 나이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지 않는다. 홀로 그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쌓아 온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작은 의심은 첫 장을 넘기면서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오롯이 나를 찾아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글들을 찾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자신 혼자의 생활을 하고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 그렇게 홀로 있는 것이 싫어서 세상과 항상 이어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사람들에게 홍신자의 첫 마디는 자신만의 정글에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그렇게 휩쓸리다 보면 나의 본질을 잊고 살게 된다는 것이고 분주함이 미덕인 세상에서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은 나의 본질과 나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외침을 외면하는 일이라 말한다. 지금도 누군가 소통하고 말을 잘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의무인 것처럼 알리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나라는 본질을 잊고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본질 그 것을 찾는 것에 몰두하다 결국은 그 것이 나의 관념이 되어 버리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흐름을 막기 위해 홍신자는 다시 나를 잊기 위한 작업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 것을 찾는 가장 좋은 환경은 자연이었다 한다. 관계 속에서 잊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다가 결국은 그것마저도 놓아버려야 하는 그런 관계 즉 나를 온전히 놓아주는 단계가 되기 위해 자연 속에 혼자서 흔히 세상이 말하는 외로움 속에서 나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 관념은 다시 속박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다시 내가 마음속에서 외치는 그 것에 집중하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과 만들어 놓은 틀, 아마도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는 더 많은 것에 제약이 있었을 그 시대에 그녀는 오롯이 내 감정과 외침에 집중하고 그 것을 마음에 가슴에 담아 두지 않는 연습을 한다.

 

새벽의 마지막별이 사라질 때까지 웃기만 한다면 도통할 수 있으리라 (Page43)

 

나를 놓아주는 작업 속에서 내 외침을 표현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게 될까, 감추고자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모토로 본다면 결국 사람이기에 관계의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나를 찾고 외치고 보여주고 나 스스로가 자유로워 진 상태여야만이 관계의 진실성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닐까. 이런 나에 대한 가치관이 만들어 진 후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한다. 라는 한 줄을 만들어 내고 늦은 나이에 무용을 배우기 위해 고된 유학의 길을 떠난다. 그길 속에 자신이 담겨져 있었겠지만.

 

모든 사람이 언제나 혼자이다. 혼자인 것에 대한 불안감은 관계를 널브려 놓고 그 정리되지 않은 관계는 가식을 만들고 가식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며 자신을 속이는 일은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한 속박의 단계로 들어간다는 말처럼 읽혀진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혼자인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시 그것을 말하고 강조한다. 이렇게 찾아간 자신의 모습에서 그녀는 두려움의 근본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던진다. 외롭기에 두려운 것인가? 솔직하지 못해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그녀의 해답은 사람은 생물 즉 살아있는 것이기에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죽음과 같이 생활 하는 것.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해골을 끼고 생활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죽음이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이성적인 관념이라면 두려움은 모든 것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두려움 역시 모든 것에 존재하고 상실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감정 혹은 이성의 발단이 아닐까 한다. 결국 모든 두려움은 죽음에서 출발하지만 그 두려움의 이면에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에고라는 표현으로 말한다. 그 에고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철학책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이 시대를 살아온 여인의 삶속에서 많은 사색을 요구하는 제도에 대한 저항 같기도 한 느낌이다. 여인으로 결혼하고 양육하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삶에 대한 전반적인 고뇌가 담겨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한다. 남들과 조금 다른 아니 스스로는 평범한 삶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책의 전반부의 묵직함이 뒷부분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아마도 내가 여인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어서 공감이 부족함이 아니었나한다.

 

자유로움, 외로움, 두려움, 죽음, 여러 가지 철학적 단어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세상의 눈으로 판단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가 어쩌면 더 돋보이는 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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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편애 - 전주부성 옛길의 기억
신귀백.김경미 지음 / 채륜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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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없애고 지우는데 타당성을 부여합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에게는 그런 옛것들의 흔적이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주성 역시 발전이라는 미명하게 그렇게 사라져간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전란과 혼란 속에서 사라져간 전주성을 다시 세우고 복원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삼남지방 최고의 성이었다던 그 성도 그렇게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흔적에 남아있는 이야기와 지금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체취를 담아내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달랩니다.

 

갑오동학혁명시 전주화약을 채결하고 돌아간 전주성의 북문 주변은 이제 영화의 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임금을 향하는 문이라고 공손해야 한다던 북문도 1907년 헐립니다. 그 북문의 이름은 공북문(拱北門) 이었다고 합니다. 이 문을 중심으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이 골목에서 제국관 그리고 전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영화가 소개되고 그 극장의 역사가 지금 북문 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화관의 역사 속에 배우가 주연을 하였던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1회 개봉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영화와 같은 삶을 살 것 같은 아름다운 여 배우도 현실의 삶은 모두에게 짊어진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 같습니다. 북문을 따라 조성된 걷고 싶은 거리를 벗어나면 창극골목, 주전부리 골목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주전부리 골목 이름만으로도 들려 보고 싶은 곳이 아닌가요? 이곳에서 튀김을 상추에 싸서 먹기 시작하였답니다. 전주를 몇 번 가보았지만 아직 접하지 못한 것을 보면 진정 전주에 갔었다고 하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객사의 마루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자는 외지인과 전주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객사 주변으로 젊음의 거리가 형성된 것을 보면 새로움과 옛것이 한 곳에서 공존하고, 옛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같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 같은 느낌입니다.

 

서문 근처의 차이나 거리는 화교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화교들은 세 자루의 칼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하는 데요 하나는 단발령 이후 머리를 자르기 위한 가위, 그리고 비단을 자르기 위한 가위, 마지막으로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칼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단발령은 그 시대의 세대상을 보여주는 물건이고, 비단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최대 교역품이었고 부를 상징하던 시대의 물품을 보여주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최고의 외식 메뉴가 된 중화요리의 근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의 모습에서도 현재를 살고 있는 그 줄기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그들만의 이야기가 인상 깊은 점은 한 겨울에도 채소를 팔았던 화교들의 농사 방법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비법으로 세계 곳곳에서 살아남은 화교들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니 복원된 풍남문이라 이름 지어진 남문은 지금도 호남제일성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어 전주성의 옛 정취와 흔적을 가늠하게 합니다. 동문 근처에 남아있다는 예술거리와 서점거리는 책을 즐겨 읽고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았을 그 시대의 고민을 담았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호남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비빔밥을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오색 가득 담아 올린 비빔밥에 대한 유래나 전통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겠죠.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전주성을 중심으로 사대문 주변을 거닐면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이야기가 있는 도시의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다음에 전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한옥마을의 번잡함 보다는 이렇게 전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리와 문화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모두가 즐겨 찾는 그 곳에 담겨있는 이야기도 놓칠 수 없지만 소소하게 남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산책하듯 둘러보며 걷는 느낌의 이야기가 더 잔잔하게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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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그녀
가키야 미우 지음, 김은모 옮김 / 콤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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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시코는 남편이 바람을 핀 것을 알게 되고 그 상대가 자신보다 절반은 어린 나이의 이제 스무 살의 호시미임을 알게 된다. 당연한 행동이지만 사단을 내야하나 아니면 단판을 지어야 하나 고민을 하던 히시코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녀에게 사정을 하러간다. 제발 남편을 놓아달라고 부탁을 하기위해서 말이다. 그 곳에서 그녀와 호시미는 이상한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몸이 스위치 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서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상대의 모습을 이해하면서 살아가는데....

 

이야기의 시작은 조금 황당하다. 바람피운 남편의 여인과 몸이 바뀐 상황에서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에피소드 자체는 관심을 끌만한 상황이다.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다른 것인지 아니면 요즘 세대가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것인지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것을 상의하러 간 히시코의 친구는 결별을 결사반대하면서 그 이유를 금전관계에 대한 즉 돈에 대한 궁핍함을 느끼지 못해서 히시코가 발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돈에 관한 사안보다 자존심 혹은 서로간의 믿음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 말을 받아들이는 히시코의 행동도 의아했지만 하여간 소설이니 몸이 바뀐 두 여자의 삶을 따라가 보면서 서로의 삶을 이해할 것인지 혹은 소심하게 살았던 히시코의 삶을 호시미가 대신 살면서 대차게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처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면서 오히려 문제가 잘 해결 되는 것을 보면 삶의 방식의 선택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모두가 아님을 알게 된다.

 

동갑내기인 호시미의 엄마를 만난 히시코의 행동역시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행동을 벗어나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가정주부로 소심하게 살아온 히시코에게 직장에서의 행동은 어쩌면 호시미가 그렇게 바라고 해 보고 싶었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의 그녀의 삶을 살게 된 히시코의 삶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찾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서로의 삶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마도 작가는 몸이 바뀐 상황을 설정하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소설은 바뀐 삶을 코믹한 에피소드에 끝나지 않고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해결하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여준다.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정작 서로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남편의 그녀가 찾게해준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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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폴 어빙 지음, 김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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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히 크다. 특히나 출산율은 낮아지고 고령화 속도가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중압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면에서 고민하는 노령화는 어떤 해답을 주고 있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노령화 사회가 그렇게 비관적이지 만은 않다. 다만 사회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은 염두에 두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안고 같이 준비해 가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희망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인류가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자원의 역량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자원은 바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노년층이다. ( Page 68)

 

이 한 줄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노년층이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연륜을 잘 이용하자는 이야기인데, 안타까운 점은 우리 사회의 노년층은 어떤 일자리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까? 40,50 대만 되면 회사에서 뒷방 신세를 지어야 한다는 말이 개인적인 역량의 문제일까?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까?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노년층에 대한 경고를 보면, BMW에서 실시한 생산성 관련된 실험을 한 가지 예로들 수 있다. 나이가 있는 팀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연령대에 적합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최고의 생산성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어찌 보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일수 있다는 점이다. 은퇴하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버린 지 오래 되었다면 또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제 2의 직업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2의 직업을 찾아 즐거움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일자리는 노년층에 경제적인 사회적인 안정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에 자신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하며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정책적으로 변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청년 일자리에 포커싱하고 있는 우리는 또 다른 숙제를 받은 것 아닐까? 아니면 개인적으로 노년을 준비하라는 일종의 메시지일까?

 

노년을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건강이다. 건강은 수명이 연장되는 것에 비례하여 사회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고 개인적인 삶의 질을 저하 시킬 수 있으니 스스로 또는 사회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획일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적용할 수는 없으나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은 개인에 맞는 건강관리 시스템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이에 맞춰 개인이 해주어야할 건강의 적이 되는 일들은 삼가라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고, 심지어 은퇴 이전의 삶 즉 50대의 삶부터 준비 기간을 거쳐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준비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50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정말 수명이 연장된 삶에 맞는 복지를 받고 있으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까? 많은 부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연령대이며 금전적으로 더 낳은 삶을 살고 있을 그들과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층과의 마찰이 없는 사회적 공감대가 재도적인 굴레가 주는 방법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령 친화적 사회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어 의료시스템을 고령 사회에 맞추고 때로는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봉사 활동 단체와 제2의 직업을 알선해 주고 복지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할 젊은 세대와 노령화 세대의 반목이 없는 세상이 먼저 만들어 지는 것이 우선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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