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육 현장 보고서 - 핀란드 초등학교 선생님이 직접 쓴
리카 파카라 지음, 고향옥 옮김 / 담푸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핀란드와 한국, 공통점과 차이점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알려진 대로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할 바라는 것은 대개의 평이다. 다만 우리나라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역시 대다수가 이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이 정말 지향해야할 바라면 현실 운운하기 전에 그 나라 교육이 어떻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여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실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이번에 읽게 된 핀란드 교육 현장보고서는 핀란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리카 파카라” 씨가 쓴 핀란드 교육의 내밀한 부분과 그 학교 교사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책의 쪽수는 200쪽도 안되며 내용은 꽤 알찬 부분이 많아 읽을만 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 나온 내용 대다수는 한국의 교사들도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저자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수준별 수업도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보고 꽤 놀라웠다. 핀란드에서는 협동을 강조하기에 수준별 수업은 거의 안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당연하다 듯이 수준별 수업 이야기가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이많은 친구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점, 좋은 선생님이란 지식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 교수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7살 이전에 ‘부탁합니다.’‘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를 가르쳐야 된다는 주장들은 짧은 교사 생활이지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책을 계속 읽어가면서 핀란드 교사들이나 한국 교사들이나 생각의 큰 차이가 없음을 알았다. 어떤 점에서 저자는 꽤 깐깐한 교사에 속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학교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곳이고, 한국 학교는 아이들에게 창살없는 감옥과 다를바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교사들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내 생각에 교사를 둘러싼 환경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교사는 교육부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다. 교사의 노력도 그 지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손댈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 재구성 뿐이다. 게다가 정부는 교사를 지원한다기 보다는 통제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핀란드는 교사들에게 많은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최소한의 지침에 그치고 있고 교과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에 교사의 평가는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약 한국이라면 교사의 멱살을 쥐는 학부모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물론 핀란드가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고 양극화가 심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부러운 면모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교사의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입학시험은 없다. 학생들의 진로는 초등 6년+중등 3년을 합친 기초교육에서 결정하며 기초교육에서도 거의 시험은 치지 않는다. 이거야 말로 우리나라 수행평가의 궁극적인 지향점 아닐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수행평가는 요식행위일 뿐 중요한 것은 일제고사라 불리는 중간, 기말 평가다.

 

교사를 수동적인 객체로 보는 이상 교육혁명은 불가능하다. 다르게 말하면 이 사회가 교사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교사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동안은 교사의 수업능력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나마도 형식에 지우친 수박 겉핥기며 교사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교사의 통제는 더 강화한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어 왔다.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위시한 다양한 교사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분투하는 교사들이 있지만 교육행정의 목표는 평범한 교사도 최선의 교육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하다기보다는 평범한 교사에 가깝다. 어떻게든 교사를 경쟁시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교육부를 비롯한 윗분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는 교육의 양극화만 초래할 뿐 해결책이 아니며 그들의 책임회피이기도 하다.

 

 

몬스터 페어런츠와 학교, 외교능력

핀란드에도 자기 자식의 입장만 고려하는 학부모들이 있나보다. 교육열이 강한 우리나라나 일본에만 그런 학부모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이면서도 왠지 유대감이 느껴졌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부모들을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부른다.

 

이런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에 문제가 된다. 학교의 교육권은 부모의 양육권에서 비롯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모가 원하는 데로 학교를 운영할 수는 없다. 학교의 교육권은 부모의 양육원과 달리 공공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학교가 기업이나 학원처럼 운영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부모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현실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요구는 귀담아 듣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만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학교, 교사의 외교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 말하고 학부모를 대할 것인지 매뉴얼이 있어야 하며 우리학교에서 하고 있는 평화샘프로젝트에서도 학부모 대응 매뉴얼이 존재한다.

그런데 학부모, 특히 흥분한 학부모를 대할 때 교사 혼자에게 책임을 모두 떠안기는 것은 좋지 않다. 핀란드의 경우 교장은 물론 사회복지사까지 같이 힘을 합쳐 대응한다고 한다. 이는 핀란드가 교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교감, 교장 선생님이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해결책이 임시방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사나 학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학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사회복지사, 상담사, 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교사지원체계가 하루 빨리 구축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들의 조화, 누가 결정권을 가지는가?

저자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 일화로 8살 먹은 아이에게 심리검사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게 한 학부모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매우 특이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 아이는 독립한 존재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의견대로 하게 두는 것은 제멋대로 인간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학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많이 부여한 편이었는데 이는 자치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지나친 감이 있는 것 같다. 학교는 공동체이자 하나의 목표를 가진 집단이다. 그렇다면 그 집단 내에서 지켜야할 규칙이란 것이 있을 것이고 아이들의 결정권 역시 그 안에서 주어져야 한다.

 

민주적 공동체는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도 모두가 평등한 것은 아니다. 평등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인권에 한한 것이지 교사인 나와 아이들의 의견이 동등한 값을 가질 수는 없다. 나는 그동안 이를 간과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독재자가 되어서도 곤란하겠지만 아이들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면 때로는 내 뜻대로 밀어붙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내가 과연 옳은지 질문을 던질 필요는 있겠지만 아이들 뜻대로 움직이는 교사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 나이 많은 친구일 뿐이다.

 

 

밑줄긋기

당신은 꼭 모든 학생이 만점을 받길 바라는 것 같아. 하지만 아이들 중에는 공부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을 거야.

 

학교에서, 교실에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이 많은 친구가 아니라 어른이다. 물론 학생들과 친구가 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단지 교사와 학생과 똑같은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수준이 같다면 누가 가르치고, 누가 학교생활의 기준을 정할 것인지 모호해지지 않겠는가. 학생들은 교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학교는 개인 행동 뿐 아니라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배우는 장소이다. 이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숙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이외의 곳에서 여분의 공부를 해야 하고,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부모가 아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숙제는 학생에게 책임감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어린 아이들은 푹 자는 것이 중요하므로, 교사는 학부모들에게 제발 아이들에게 뉴스를 보여주지 말라고 부탁한다.

 

핀란드 인의 98%가 기독교인이지만, 대부분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교회가 사람들의 의문에 답해주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교통비다.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전화는 인터넷 접속은 물론 문자도 보낼 수 없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통화기능 밖에 없다. 당연히 학교 내에서는 사용금지다. 휴대전화가 범죄의 온상이 되는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린이용 GPS 기능만 있는 단순한 기계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예의범절에 관한 문제는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고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항상 일관성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해서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무조건 무시해버리면 절대 안 된다.

 

괴롭힘을 당하면서 강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랜 기간 같은 학생들을 담임하는 것은 교사에게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부모와 아이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PISA의 결과에 놀란 것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뿐 아니라 뒤처지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회전체가 교육제도를, 학생들을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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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 이 한 권의 책이 한국 교육을 살린다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 수호믈린스키 지음, 수호믈린스키 교육사상연구회 옮김 / 고인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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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아이들이 마음이 들떴는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애는 교사인 내가 보여주거나 하는 활동에 딴지를 걸거나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교실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 역시 화도 나고 답답하고 그래서 애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온전한 마음을 쏟기가 어렵다. 물론 책임감까지 저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임감으로 애들을 억지로 이끌다 보니 어느덧 나도 강압적인 교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행정형 교사가 되어간다는 소리다.

그 와중에서 우연히 알라딘에서 수호믈린스키의 명저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이란 책을 보게 되었고 특이한 제목에 관심이 생긴 나는 바로 구입해 읽게 되었다.

책이 일반적인 책보다 두꺼워 읽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그러나 읽어보고 나니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이 책은 정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수호믈린스키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왜 이런 교육자를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아쉽다. 이 책은 단순히 교육방법을 이야기하거나 아동중심교육을 하자고 권하는 책이 아니다. 그의 교육철학이 담겨져 있으며 그 철학을 구현하기 위하여 어떻게 교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는지 그 실천과정이 잘 나와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과 어떻게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는지, 문제있는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지간한 교육학 책들을 읽기보다는 아마 이 책 한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이 교사에게 더 나을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문제, 뇌의 작용에 대해 고심하고 특히 자연을 교재로 삼는 그의 교육활동은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그가 쓴 글들의 한 구절구절을 읽을 때마다 그의 혜안에 감탄이 나온다. 어떻게 이런 깊이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또한 공부에 대한 관점 및 지도방법은 교사로서 기억해둘만 하다. 학생이 앉아서 꾸준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지식에 대한 목마름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영어 광풍에 언어적 인지능력에만 초점이 맞춰진 한국 사회현실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어른들의 눈은 아이들의 기운을 꺾어버리고 모든 일에 무관심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아이들의 내면세계에 주목하는 그의 교육론은 지금 한국의 교사는 물론 부모, 기타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교사들의 내면세계의 힘에 주목하는 파커 J 파머처럼 수호믈린스키는 어떤 교육활동이나 교재든 아이들의 내면세계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아동중심교육은 아동의 원대로 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동을 존중하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교육에 대해 듀이는 물론 수호믈린스키 역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과 세상을 연결짓는 교육이야 말로 아동중심교육이다. 우리는 이런 기초적인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장 닥친 진도나 평가라는 암초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이라는 긴 항해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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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최은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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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에 읽은 책은 최은희 선생님이 그동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이야기를 하나하나 조금씩 모아 이루어진 아름다운 콜라주와 같은 이야기다. 선생님은 이 책에서 아이들이 그림책을 만나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그 만남에서 본인은 어떤 것을 배웠고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라는 제목처럼 최은희 선생님이 읽어준 그림책 이야기들이 있으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색깔을 내고 있는지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 비로소 그림책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그림책을 듣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림책을 관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그림책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고 그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같이 엮어가는 능동적인 탐구자다. 책을 읽어줘도 자기 이야기만 하는 우리 반 아이들과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 차이다. 때문에 이러한 교육활동이 고학년에게도 통할지 의문이 든다.

비록 고학년 학생들에게도 이런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에서 작은 희망을 얻는다. 최은희 선생님의 말처럼 책 한권이 아이들을 확 변화시켜주지는 않는다. 사실 변화한다면 그것도 나름 무서운 일이리라. 이러한 이야기,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가슴에 쌓여 비로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라고 다를까? 그동안 읽어온 책들이 비록 그 내용 자체는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것이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읽어온 책들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 중 하나(126)가 있다. 크고 당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부모건 교사건 교육이라는 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 닿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매일 크고 당위적인 이야기, 흔히 훈계라고 불리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한다. 그러나 그다지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아이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구분할 줄 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책의 구절처럼 우리 삶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좋은 그림책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것도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아닌가 싶다. 대학에서 아동문학에 대해 겉핥기로만 공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 지금도 그쪽 분야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른다. 일단 나부터 그림책을 읽어 봐야겠다.

그림책은 단순히 어린 아이들이 읽는 책이 아니다. 아이들이 발견해가는 그림책의 다양한 의미와 상상의 나래를 보면서 그림책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선생과 중등학교 선생 사이에 무슨 교육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림책이 비록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 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성인용 책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하나의 작품이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되돌아보는 저자처럼 나도 그렇게 내 삶을 되돌아보고 치유하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삶을 나누는 그런 수업을 해봤으면 좋겠다. 이미 중학교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언젠가, 언젠가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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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습관
낸시 앳웰 지음, 최지현 옮김 / 북라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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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린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삶을 가꾸기 위해서 일기를 쓸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책을 읽는 것, 즉 독서다.

물론 독서는 간접경험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가급적 직접 부딪혀보고 좋은 스승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직접경험은 제약이 많다. 직접 경험하기에는 시간과 자금이 부족할 수도 있고 원하는 사람을 바로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독서를 하지 않고 지식과 경험을 쌓는 사람은 그 생각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독서다. 때문에 교사는 물론이려니와 학부모, 일반 시민들도 학생들이 훌륭한 독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계속해서 독서지도를 하는 것이고 이를 권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국가에서도 독서이력을 모아 포트폴리오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열심히 책을 읽기를 얼마나 사람들이 바라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난립하고 있는 다양한 독서방법론들은 아이들을 독서인으로 만들기보다는 책을 기피하도록 만들고 있다. 출판되는 책의 양은 세계 순위권이라지만 가만 보면 대다수가 수험서이고 교양을 위한 서적들은 잘 팔리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자기계발’이라는 장르가 대세로 정말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은 인기가 없다.

왜 국가와 어른들이 이렇게 정성을 쏟는데 아이들은 책을 싫어할까? 스마트폰 때문일까? 아니면 TV? EBS에서 방영된 ‘읽기혁명’에서는 본래 인간의 뇌는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한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책 그 자체가 좋아서 읽기 보다는 출세 또는 성공을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 대한민국을 보면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운에 맞기고 그냥 포기해야만 하는가?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의 저자 낸시 앳웰은 아이들을 훌륭한 독서인으로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낸시 앳웰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골라서 읽게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주장은 도날린 밀러의 훌륭한 책 “수업 중 15분 행복한 책읽기”에서 주장하는 바와 일치한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기 위하여 해야 할 것은 한 아이 당 20권 이상의 책을 준비하고 그들이 책을 읽는 것을 격려하는 것뿐이다. 그 외 특별한 전략을 아이들에게 전수하고 그에 맞추어 책을 읽게 하는 것은 도리어 아이들의 독서를 방해한다.

이러한 사례가 책에 등장하는데 자신의 독서지도방법을 체계적으로 만들기 위한 욕망에서 그녀가 저지른 실수였다. 그녀가 적용했던 이해전략이라 불리는 독서 방법은 아이들을 포스트잇 붙이는 작업에 집중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리딩존’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노자의 ‘무위’를 독서로 풀이한 것과 같은 그녀의 독서지도는 확실히 느슨해 보이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다. 아이들이 1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책을 읽는 것을 사랑하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평생 독서인을 만드는 것 아닌가? 문제 풀이는 어디까지나 그 과정에 불과하다. 비록 평가가 가지는 사회적 힘 때문에 그 관계가 역으로 바뀌긴 했지만 교사인 우리는 그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이야기와 글의 힘이 강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논픽션을 선호하는 지라 그동안 사 모았던 책들도 그런 종류가 많았는데 조금 후회가 된다.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요즘 스토리텔링이 각광을 받는데 이야기의 힘을 나 먼저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홀리데이, 챌린지, 저스트라잇이라 불리는 도서 수준 분류법도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학년별 권장목록이 있어 책을 학년 수준에 맞추어 분류하였다. 이 방법은 학생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으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아이들 입장을 전혀 고려한 것이 아니어서 실용성이 떨어졌다. 반면 낸시 앳웰의 학교 CTL에서 사용하는 이 분류법은 아이들의 읽기 수준에 따라 분류한 아이들 시선에서 바라본 기준이기 때문에 독서지도에 더 유용하다.

그 외에도 교환일기 방식을 적용한 것과 독서편지, 북토크 같은 독서지도법이 소개가 되어 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노력하는 교사인지 알 수가 있다. 또한 독서지도에 필요한 지식 3가지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잘 볼 필요가 있다. 독서지도에 대한 의욕만 있을 뿐 여전히 그에 필요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읽고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하루 15분 책읽어주기” 다음으로 나온 책이다. 개인적으로 “하루 15분 책읽어주기”도 좋았지만 이 책은 부모가 주 독서대상인 만큼 이번에 읽은 책을 1학기에 읽어야 되지 않나 싶다. 독서지도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길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교사가 직접 실천해보고 얻은 결과를 실은 책인 만큼 그 의미가 더 크다. 독서지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부터 다시 되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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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귀에 들리지 않았던 불쾌한 소식이 다시 들린다. 고용부에서 10월 23일까지 해직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폐기하지 않으면 ‘노조아님’을 선포하겠다고 한다. 즉 전교조가 누리고 있던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며 그동안 체결한 여러 단체협약 등이 무효화 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용부의 권고를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해고자가 제대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고 여하튼 3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며, 대법원 재판에서도 그 권고가 부당하지 않다고 판결한 이상 이를 계속 무시할 명분은 없다. 비록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 법이 아주 부당하지 않는 이상 일단은 따라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후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용부의 권고를 설령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시행령의 한 조항만 가지고 노조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분명 과다한 조치다. 그냥 벌금을 때려도 되지 않은가? 그런 논리라면 법 조항을 신나게 무시하는 대기업들은 다 폐업조치 시켜야 옳은 것 아닌가? 왜 대기업에게는 솜방망이 벌금만 때리면서 전교조에 대해서는 ‘노조아님’을 선포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다. 법과 원칙? 물론 법과 원칙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정원에 대해서 묵묵부답으로 있는 청와대는 물론이려니와 노동자들의 탄압에 실눈만 뜨고 있는 고용부가 이를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더불어 법과 원칙의 중요성과 아예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조치는 전혀 상관이 없다. 법과 원칙은 민법과 민사소송법처럼 이를 지키기 위한 법과 원칙이 따로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에 근거하여 지켜져야 옳다. 노조 지위 박탈이 과연 법과 원칙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조치인가? 노조 지위 박탈에 대해 법률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아직 조항도 없고 판결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지금 국회에 해고자의 노조원 지위를 인정하자는 법률이 계류된 상태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조치에 대해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현재 국제 노동계는 전교조 입장에 서 있으며 해외 선진국 어느 나라도 해고자의 노조원 지위를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다. 심지어 시장 자유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조차 그러하다.

최근에 청년(15~39세) 근로자와 구직자들이 만든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전국 단위 노동조합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구직자도 노조원으로 인정되는데 해직자가 노조원으로 인정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법률도 아니고 시행령으로 이를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법과 원칙은 언제나 그것이 정말 옳은지 점검받아야 한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50211293466471

밤에 우울한 소식을 들으니 더 우울하다. 일단 법외노조가 되는 것은 너무 손해가 막심한 일이고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시행령을 거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약자에게만 발휘되고 허구헌날 글로벌을 외치면서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정부의 법과 원칙 적용이라는 구호는 정말 밥맛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근 국정원녀에 대해서는 인권을 드높이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이 인권 중 하나인 부당 해고자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왜 갑자기 법과 원칙만 되풀이 하는지 아마 알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자기 입맛에 맞게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어떤 분석도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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