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한글이라 불리는 이 문자는 본래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불렸다. 훈민정음이라는 단어에는 문자 그 자체와 이를 풀이한 책의 이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불리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구분은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이 훈민정음이라는 28자로 이루어진 문자가 왜 그리고 어떻게 창제되었으며, 이 문자가 당시와 지금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더 중요하다.

 

당시 조선은 중국 문자인 한자를 글자로 사용했다. 어디 그때 뿐 일까. 삼국시대부터 이미 우리민족은 우리말을 표시할 문자를 갖지 못하여 한자를 빌려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불편함이 있어 신라시대에 설총이 이두라는 한자를 다루는 법과 음독법을 만들긴 했지만 한자는 여전히 불편하고 백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문자였다.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곧 힘이다. 문맹자가 거의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말이겠다. 그러나 당시에는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 교양이 있는 지식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지금은 좀 위상이 약화되었지만 문자는 중요한 기록수단이자 전달 수단이다. 문맹자가 많은 사회에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여론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종교개혁 시기의 성직자들이다. 마르틴 루터, 칼뱅 등이 활약하던 시기, 성서는 라틴어로만 써져 있기 때문에 일반 민중이 직접 읽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성서의 해석은 성직자들이 독점하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그들은 막강한 종교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개혁과정에서 마르틴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민중이 직접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 이를 뒷받침 하여 만인사제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개신교가 태동하게 된 것이다. 만약 루터의 독일어 번역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의 불씨는 타다가 곧 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최만리를 비롯한 보수파가 반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이 종교개혁 시기의 성직자들처럼 자기들만 아는 반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시대 상황에서 이들의 반대는 사실 상식에 가까운 것이다. 계급제 사회에서 하층 계급이 상층 계급에 반할 수 있게 만들지도 모르는 도구를 왕이 만들겠다는 데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저자 김슬옹은 이를 왕이 백성들과 직접 교류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힘들다. 계급제는 구조의 문제로 일단 그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최상위 계급이라고 무사할 수는 없다. 단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에서 루이 16세가 어떻게 죽었는지 보면 된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전 세계를 둘러봐도 최상위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그 분이 민주사회가 아니라 군주제 사회에서 최고 권력자라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당시 지성 사대주의를 펼치던 조선의 입장에서 이러한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문화적으로야 대단한 업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당대 명나라 황제는 그 유명한 영락제이고 그 세종 본인이 지성 사대주의 입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하들의 반대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진의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더라도 백성들을 위하여 이 문자를 창제함은 분명하다. 스스로가 그렇게 밝히고 있고 당시 반대파들과의 논쟁에서 이러한 뜻은 잘 드러난다. 또한 훈민정음이 이후 하층민의 투쟁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세종대왕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당시에는 언문이라 불리며 한자 다음의 문자 역할을 했던 훈민정음(이하 한글로 표기)이지만 일제 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이 성립되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고 우리나라 공식 문자가 되어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한글의 과학성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이며 몇 백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근대적이다. 특히 말을 하는 기관과 말소리를 분석하여 만든 점은 정말 극찬을 받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노력이 후대에까지 내려와 오늘날 대한민국은 문맹자가 거의 없는 국가가 되었다. 물론 이는 한글의 우수성에 우리나라 의무교육의 우수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훈민정음)이 문자혁명에 가까웠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문맹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오늘날 민중의 삶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최고 학문인 성리학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제대로 된 문해력은 문자만 읽을 줄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주장을 참고하자. 언론의 부화뇌동과 권력 계층의 달변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학문 전공자들이 쌓아놓은 언어의 장벽은 문맹이 아니라는 것만 가지고 넘어서기에는 너무 높다.

 

당시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만들어낸 혁명을 넘어선 새로운 혁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민중을 위한 언어(단어, 용어)를 만들어내고 권력을 쥔 자들이 하는 말의 진의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전자는 지식인들이 하지만 후자는 교육자가 한다. 교사들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사가 혁명적 마인드를 갖추어야 하는 이유기도 한다.

 

세종대왕의 민본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에 비하면 한계가 있는 것이며, 신분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시혜적 민본주의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백성들을 위하여 문자를 만든 그 의의는 우리가 기억해야하며 다시 되살려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 집중제를 채택한 상황에서 권력의 견제를 위해 우리는 더욱더 문해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누가 해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4-09-30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훈민정음을 지은 까닭은 무엇보다 `한국 지식인이 한자 소리를 통일해서 말하고 쓰도록 규범을 세우려는 뜻`이 가장 컸다고 느껴요. 조선 시대에서 `백성`은 농사짓는 여느 사람을 아우르는 말까지는 담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요즈음 `국민`이라는 낱말을 쓰듯, 그때에는 으레 하는 말이 `백성`이었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은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달리, 한자를 한국에서 소리값을 제대로 적으려고 만든 `발음기호` 수준이었던 셈이라고 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다만, 어떻게 만든 글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잘 쓰니까 다 괜찮게 여길 만하지 싶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97289&cid=47303&categoryId=47303

데카로그스 2014-11-07 22:03   좋아요 0 | URL
오... 그럴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