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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파는 일 - 콘텐츠로 먹고사는 이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뉴스레터 탐구
차우진 지음 / 유유 / 2025년 11월
평점 :
AI의 등장 이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너무 쉬워졌다. 버튼 몇 번이면 글도, 그림도, 음악도 쏟아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쉬워진 만큼 귀해지기는커녕 흔해졌다. 차우진은 『관점을 파는 일』(유유, 2025)에서 이 역설을 정면으로 다룬다. 콘텐츠가 무한히 풀리는 시대에 정작 희소해지는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관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은 다른 어디도 아닌 '나'라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AI가 흔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값은 오른다. 다만 모두의 값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르는 것은 자기만의 관점을 가진 사람의 값이다.
읽기는 다 읽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읽기의 목표는 책을 다 읽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을 갖기 위해 읽어야 한다." (p.50) 당연한 말 같지만, 곱씹을수록 서늘하다. 우리는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지 자랑하고 밑줄의 양을 성취로 여긴다. 그러나 그 책을 통과한 뒤 내 문장이 한 줄도 남지 않았다면, 그 읽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쇼펜하우어는 이미 19세기에 비슷한 경고를 남겼다. 생각 없이 읽기만 하면 머릿속은 남의 생각이 뛰노는 운동장이 되어버린다고.
독서는 식사와 같다. 입에 넣는 것이 아니라 씹고 소화하는 것이 영양이 된다. 씹지 않고 삼킨 음식이 몸을 거쳐 가듯, 생각으로 갈지 않은 독서는 머리를 거쳐 흘러갈 뿐이다. 공자가 2,500여 년 전에 짚은 것도 같은 이치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논어』 「위정」편). 그러니 읽기의 마지막 동작은 책을 덮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 문장을 뱉는 것이다. 읽기는 입에 넣는 일이고, 관점은 그것을 소화해 내 것으로 삼는 일이다.
브랜딩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향한다 — 절반의 진실
저자의 두 번째 도발은 통념을 뒤집는다. 사람들은 브랜딩을 세상에 나를 알리는 기술, 곧 바깥을 향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이 사실 안쪽을 향한 일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고, 무엇을 할지 또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기준 — 그것이 브랜딩이라는 것이다.
이 재정의는 번아웃의 시대에 꼭 필요한 닻이다. 외부의 박수에만 매달리면, 박수가 멎는 순간 일도 멈춘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물러서고 싶다. 브랜드 이론의 정설은 오히려 반대편에 가깝기 때문이다. 브랜드란 내가 나에 대해 말하는 무엇이 아니라 남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무엇이다. 즉 브랜드는 타인의 머릿속에 쌓인 평판이다. 특히 SNS는 이 진실을 극단까지 증폭한다. 좋아요·공유·댓글·리뷰처럼, 한 브랜드의 상(像)은 이제 본인이 올린 게시물보다 남들이 퍼 나르고 덧붙인 반응 속에서 만들어진다. 알고리즘도 내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보고 노출을 정한다. 그러니 SNS 시대의 브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타인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곱셈이다. 안쪽의 동기는 연료이고, 바깥의 평판은 그 연료로 굴러간 자동차가 남긴 바퀴 자국이다. 저자의 말은 다들 바퀴 자국에만 정신이 팔린 세태에 던지는 따끔한 일침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그 말을 이야기의 전부로 받아들이면, 정작 브랜드의 실체인 밖의 평판을 소홀한 채 내 안의 동기에만 갇혀 세상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데이터는 안전한 곳을, 크리에이티브는 미지의 장소를 향한다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여기다. "데이터는 안전한 곳을 지향한다. 크리에이티브는 미지의 장소를 향한다." (p.157)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과거를 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뒤에 남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데이터에 자신을 최적화하면, 결과물은 약속이라도 한 듯 평균값으로 수렴한다. 추천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노래와 영상이 점점 서로 닮아가는 동질화가 바로 그 증거다. 음악평론가 출신인 저자여서인지 이 대목에서 그 감각이 유독 또렷하게 읽힌다.
다만 데이터와 창의성을 적으로 못 박으면 거짓 이분법이 된다. 둘은 지도와 나침반의 관계에 가깝다. 데이터는 무엇이 이미 행해졌는가를 보여주는 지도이고, 창의성은 아직 비어 있는 곳을 향하는 나침반이다. 좋은 창작자는 지도를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도에서 빈칸을 먼저 찾아내는 사람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데이터가 창의성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창의성이 갈 곳을 가리켜 줄 수는 있다.
AI는 모두를 창작자로 만든다 — 그래서 인간이 더 귀해진다
저자의 통찰 중 가장 멀리 내다본 대목은 이것이다. AI는 창작자를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용자를 창작자로 바꾼다. 그 결과는 창작물의 인플레이션이다. 공급이 무한대로 풀리면 컨텐츠의 값은 떨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저자는 재능의 자산화, 곧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IP, 지식재산권)를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구조를 든다. 다만 여기엔 시대의 단서가 붙는다. AI 시대에는 '소유한다'는 토대 자체가 흔들린다. 학습 데이터의 권리도, 생성물의 저작권 귀속도 아직 세계 곳곳에서 다툼 중이다. IP는 자산인 동시에 최전선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의 제목이 한 바퀴 돌아 스스로를 증명한다. 사람들이 점점 검색 대신 AI에게 묻고, AI는 기존의 것들을 합성해 답한다. 하지만 AI가 AI의 출력물을 다시 먹고 자라면 품질이 무너지는 '모델 붕괴(model collapse)'가 일어난다는 연구가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관점의 유일한 원천인 인간이 사라지면 이 체제는 빈혈에 걸린다. AI가 흔해질수록 인간의 날것의 관점은 오히려 더 비싸진다. 관점을 파는 일은, 그러니까, 사라지는 직업이 아니라 이제 막 단가가 오르기 시작한 직업이다.
그래서, 읽었으면 뱉어야 한다
네 갈래의 이야기는 결국 한 곳으로 모인다. 읽기는 나의 생각을 빚기 위한 것이고, 브랜딩은 그 생각의 안쪽 기준을 세우는 일이며, 창의성은 데이터가 가리키지 못한 빈칸으로 걸어가는 용기이고, AI 시대의 생존은 그 모든 것을 '나만의 관점'으로 묶어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다.
콘텐츠는 흔해졌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말로 정리한 관점은 여전히 단 하나뿐이다. 그러니 다음에 좋은 글을 읽거든, 다 읽었다고 덮지 말자.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나의 것으로 뱉어 보자.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콘텐츠의 소비자에서, 관점의 생산자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