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육 현장 보고서 - 핀란드 초등학교 선생님이 직접 쓴
리카 파카라 지음, 고향옥 옮김 / 담푸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핀란드와 한국, 공통점과 차이점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알려진 대로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할 바라는 것은 대개의 평이다. 다만 우리나라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역시 대다수가 이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이 정말 지향해야할 바라면 현실 운운하기 전에 그 나라 교육이 어떻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여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실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이번에 읽게 된 핀란드 교육 현장보고서는 핀란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리카 파카라씨가 쓴 핀란드 교육의 내밀한 부분과 그 학교 교사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책의 쪽수는 200쪽도 안되며 내용은 꽤 알찬 부분이 많아 읽을만 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 나온 내용 대다수는 한국의 교사들도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저자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수준별 수업도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보고 꽤 놀라웠다. 핀란드에서는 협동을 강조하기에 수준별 수업은 거의 안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당연하다 듯이 수준별 수업 이야기가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이많은 친구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점, 좋은 선생님이란 지식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 교수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7살 이전에 부탁합니다.’‘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를 가르쳐야 된다는 주장들은 짧은 교사 생활이지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책을 계속 읽어가면서 핀란드 교사들이나 한국 교사들이나 생각의 큰 차이가 없음을 알았다. 어떤 점에서 저자는 꽤 깐깐한 교사에 속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학교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곳이고, 한국 학교는 아이들에게 창살없는 감옥과 다를바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교사들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내 생각에 교사를 둘러싼 환경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교사는 교육부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다. 교사의 노력도 그 지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손댈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 재구성 뿐이다. 게다가 정부는 교사를 지원한다기 보다는 통제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핀란드는 교사들에게 많은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최소한의 지침에 그치고 있고 교과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에 교사의 평가는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약 한국이라면 교사의 멱살을 쥐는 학부모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물론 핀란드가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고 양극화가 심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부러운 면모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교사의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입학시험은 없다. 학생들의 진로는 초등 6+중등 3년을 합친 기초교육에서 결정하며 기초교육에서도 거의 시험은 치지 않는다. 이거야 말로 우리나라 수행평가의 궁극적인 지향점 아닐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수행평가는 요식행위일 뿐 중요한 것은 일제고사라 불리는 중간, 기말 평가다.

 

교사를 수동적인 객체로 보는 이상 교육혁명은 불가능하다. 다르게 말하면 이 사회가 교사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교사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동안은 교사의 수업능력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나마도 형식에 지우친 수박 겉핥기며 교사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교사의 통제는 더 강화한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어 왔다.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위시한 다양한 교사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분투하는 교사들이 있지만 교육행정의 목표는 평범한 교사도 최선의 교육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하다기보다는 평범한 교사에 가깝다. 어떻게든 교사를 경쟁시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교육부를 비롯한 윗분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는 교육의 양극화만 초래할 뿐 해결책이 아니며 그들의 책임회피이기도 하다.

 

 

몬스터 페어런츠와 학교, 외교능력

핀란드에도 자기 자식의 입장만 고려하는 학부모들이 있나보다. 교육열이 강한 우리나라나 일본에만 그런 학부모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이면서도 왠지 유대감이 느껴졌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부모들을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부른다.

 

이런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에 문제가 된다. 학교의 교육권은 부모의 양육권에서 비롯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모가 원하는 데로 학교를 운영할 수는 없다. 학교의 교육권은 부모의 양육원과 달리 공공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학교가 기업이나 학원처럼 운영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부모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현실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요구는 귀담아 듣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만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학교, 교사의 외교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 말하고 학부모를 대할 것인지 매뉴얼이 있어야 하며 우리학교에서 하고 있는 평화샘프로젝트에서도 학부모 대응 매뉴얼이 존재한다.

그런데 학부모, 특히 흥분한 학부모를 대할 때 교사 혼자에게 책임을 모두 떠안기는 것은 좋지 않다. 핀란드의 경우 교장은 물론 사회복지사까지 같이 힘을 합쳐 대응한다고 한다. 이는 핀란드가 교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교감, 교장 선생님이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해결책이 임시방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사나 학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학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사회복지사, 상담사, 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교사지원체계가 하루 빨리 구축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들의 조화, 누가 결정권을 가지는가?

저자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 같다. 일화로 8살 먹은 아이에게 심리검사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게 한 학부모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매우 특이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 아이는 독립한 존재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의견대로 하게 두는 것은 제멋대로 인간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학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많이 부여한 편이었는데 이는 자치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지나친 감이 있는 것 같다. 학교는 공동체이자 하나의 목표를 가진 집단이다. 그렇다면 그 집단 내에서 지켜야할 규칙이란 것이 있을 것이고 아이들의 결정권 역시 그 안에서 주어져야 한다.

 

민주적 공동체는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도 모두가 평등한 것은 아니다. 평등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인권에 한한 것이지 교사인 나와 아이들의 의견이 동등한 값을 가질 수는 없다. 나는 그동안 이를 간과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독재자가 되어서도 곤란하겠지만 아이들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면 때로는 내 뜻대로 밀어붙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내가 과연 옳은지 질문을 던질 필요는 있겠지만 아이들 뜻대로 움직이는 교사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 나이 많은 친구일 뿐이다.

 

 

밑줄긋기

당신은 꼭 모든 학생이 만점을 받길 바라는 것 같아. 하지만 아이들 중에는 공부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을 거야.

 

학교에서, 교실에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이 많은 친구가 아니라 어른이다. 물론 학생들과 친구가 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단지 교사와 학생과 똑같은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수준이 같다면 누가 가르치고, 누가 학교생활의 기준을 정할 것인지 모호해지지 않겠는가. 학생들은 교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학교는 개인 행동 뿐 아니라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배우는 장소이다. 이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숙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이외의 곳에서 여분의 공부를 해야 하고,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부모가 아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숙제는 학생에게 책임감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어린 아이들은 푹 자는 것이 중요하므로, 교사는 학부모들에게 제발 아이들에게 뉴스를 보여주지 말라고 부탁한다.

 

핀란드 인의 98%가 기독교인이지만, 대부분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교회가 사람들의 의문에 답해주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교통비다.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전화는 인터넷 접속은 물론 문자도 보낼 수 없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통화기능 밖에 없다. 당연히 학교 내에서는 사용금지다. 휴대전화가 범죄의 온상이 되는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린이용 GPS 기능만 있는 단순한 기계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예의범절에 관한 문제는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고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항상 일관성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해서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무조건 무시해버리면 절대 안 된다.

 

괴롭힘을 당하면서 강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랜 기간 같은 학생들을 담임하는 것은 교사에게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부모와 아이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PISA의 결과에 놀란 것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뿐 아니라 뒤처지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회전체가 교육제도를, 학생들을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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