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부터 가르쳐라 - 강하게 키워 행복하게 만드는 독일 학교의 행복수업
에언스트 프리츠-슈베어트 지음, 김태희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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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부터 가르쳐라

  오늘날 학교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다. 학교가 문제일까? 가정이 문제일까? 아니면 다른게 문제일까? 오늘날 학교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육학에서 탈피하여 아이를 존중하는 교육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부족한 감은 있지만 예전보다 학교가 부족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문제는 가정일까? 물론 가정교육이 잘 안된 탓도 있겠지만 불행한 학생들이 태반인 지금 과연 이를 가정만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옳을지 의문이 든다. 그보다는 사회전반적인 변화가 원인이 될 것이다.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유혹할 많은 재미있는 유흥거리가 넘쳐난다. 티비를 틀면 얼마든지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고 인터넷을 뒤지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영상과 글을 찾을 수 있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교훈은 아이들에게 있어 따분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유흥거리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 분별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여기에 함몰되어 자기 자신을 성찰하거나 지식을 쌓을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를 무조건 막는 것은 옳다고 보기도 힘들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이러한 문화를 아이들이 직시하게 해주고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자극적인 문화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에언스트 프리츠-슈베어트는 하이델베르크 빌리-헬파흐 학교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특이하게도 '행복'이란 이름의 교과목을 창설하여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행복이 과연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다양한 사례와 이론들은 이러한 행복교육이 가능함을 역설하며 동시에 이를 학교에서 해야만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는 주장을 선입견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정말 원하는 것은 행복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이를 찾는다면 행복감은 저절로 생겨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행복에 대한 정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복권당첨이나 어떤 새로운 제품을 접하는 것에서 생기는 즐거움은 행복이라기 보다는 행운으로 인한 것으로 외부적 요인에 좌우되는 것이다. 즉, 그러한 외부적 요인이 없다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면 일반적 관점에서 행복하고는 무관하게 여겨지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장애인을 돕는데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지는 않지만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시장이 모든 가치를 결정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일은 일종의 오류에 해당된다. 그러나 분명 일어나는 일이다.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행하는 일에서 어떤 삶의 의미, 즉 행복의 의미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감을 느낀다기 보다는 행복감을 만들어낸다고 표현하는게 더 옳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삶은 우여곡절과 우연성이 가득차있고 이러한 삶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행복을 누리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여기서 행복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에언스트 프리츠-슈베어트 교장은 이 책에서 학생 뿐만 아니라 병원의 환자나 그 외 성인들이 그가 제공하는 수업에 참여하여 어떻게 이러한 의미를 찾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거기에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경험에서 비롯한 이야기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복을 가르칠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가 사용한 몇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온수샤워   2. 장점용지/장점나무   3. 4대원소 연습   4. 엄지초첨 훈련   5. 동물에 비유하기   6. 마라톤/봉술 등등

  물론 이러한 방법은 말 그대로 방법론이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싫증만 내는게 아니라 이를 하나의 도전으로 여기게 되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용어 중에 긍정심리학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사회현상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긍정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다. 사회의 모순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게 만드는 이야기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내가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현상을 비판적으로 볼 줄만 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긍정적 태도가 있어야 비판을 근거로 행동에 나설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여러 주장들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면 어떤 극한의 고통도 이겨낼 수가 있다. 빅터 프랭클 자신이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가 사회의 부조리를 참게만 만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운에 저항하고 이를 발판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학교에서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치자. 왜 자신이 살아가는지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자. 머릿속에 지식만 쑤셔 넣으려고 할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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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의 제도문화풍습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성립된 것이지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어떤 나라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대한민국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고는 해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라어디서든지 유교 문화를 발견할 수 있으며 같은 유교라 할지라도 중국하고 일본의 그것과는 다른 독특한 측면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를 잘 알려면 국사를 배우는 것은 기본이다다른 나라들이 왜 국사 교육에 공을 기울일까국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국사는 국민에게 국가 정체성을 확립시켜줌은 물론이려니와 애국심을 길러주고 국가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물론 오늘날 세계는 글로벌 사회이고 개인의 인권을 강조하는 시대이니 꼭 국사를 교육시켜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들 수 있다그러나 우리의 성장과정을 한번 생각해보자인간이 홀로 성장하는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이다또한 지금의 나로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나와 가족국가 공동체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그런 관계이다그러므로 이러한 공동체에 귀속될 필요는 없지만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국사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대학 입시의 관문이 수능에서 국사는 푸대접 받고 있으며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우리나라 역사에 무지하기 그지없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00821220631431&p=imbc)

  이런 상황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과연 10년 뒤에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라이트에서 만든 교과서를 보면 안중근과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소개하고 있다물론 이 두 분의 방식이 테러와 유사하다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일본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는 현실에서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뿐이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가 아닌 한일병합에 앞장선 일본 정치인을 표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는 것은 불합리하기 그지없다백번 양보해서 테러리스트라고 하더라도 그들 덕분에 지금 존재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말하면 안될 것이다.

  지금은 뉴라이트에서 만들어진 교과서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이대로 역사가 선택과목으로 유지되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우리 후손들은 뉴라이트의 교과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중국의 동북공정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우리 주변의 국가들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득을 쟁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부 세력들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다른 나라에게 이득을 내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 같다이러나다 우리 후손들이 아니라 우리부터 왜곡된 역사를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이미 그러한 조짐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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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공부 - 내 삶의 기초를 다지는 인문학 공부법
윌리엄 암스트롱 지음, 윤지산.윤태준 옮김 / 유유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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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미국에서 출판된 책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의 이름은 '단단한 공부'인데 처음에 나는 공부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소개해 주는 책으로 알았다. 그러나 읽어보니 공부방법을 소개해주기는 하지만 어떤 방법론에 치우친 책은 아니었다. 도리어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권하는 어떻게 보면 공부철학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책은 한국어 이름인 '단단한 공부'보다는 본래 이름인 'Study is HARD WORK'를 직역하는 것이 책의 내용과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공부를 위해서는 열망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노력을 기울여야 될지 알려주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지은이는 노력에 대한 찬사를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이 책에서 어떤 효율적인 새로운 공부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책은 출판된지 60여년이 다 된 책이고 이 책에 나오는 방법은 사실 우리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나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분명히 아는 것들이고 색다른 것은 없었지만 그러한 방법들의 의미를 설명하고 가치를 강조하는 지은이의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나의 나태한 공부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부에 왕도가 있겠는가? 프톨레마이어스의 말을 굳이 첨언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떤 요행으로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어떤 계산이나 단순 암기라면 타고난 재능으로 다른 사람보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21C 정보화 시대다. 그러한 재능보다는 우리가 직면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수집능력, 문제해결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노력을 기울여 습관으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물론 이러한 능력에도 유전자의 차이는 있지만 노력없이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깨어나지 않는다. 또한 유전자의 차이란 이미 상수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을 기울이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 방향을 잡는데 관심을 가져야 하다.

  노력을 강조하는 책이지만 이 책에는 공부를 위한 여러가지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고 그 가치를 잘 설명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각 과목별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나와있다. 그러나 그 공부법들은 하나같이 배우는 사람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때문에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뢰가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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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밥상 - 농부 시인의 흙냄새 물씬 나는 정직한 인생 이야기
서정홍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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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자 시인인 서정홍 저자는 이 책에서 농촌에 대한 강한 그의 신념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나오고 있는 주제는 바로 농촌, 농업, 생명, 땅이다. 이 주제들은 저자에게 있어 하나와 같은 것으로 저자는 농촌이 희망이며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정직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다. 농촌이 쇠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농업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다수의 농가들은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수입농산물과 겨뤄야 하기 때문에 가격만 보면 경쟁력이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이 희망이라는 저자의 말은 왠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내 생각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나 역시도 자본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포섭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우리나라 헌법은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있으며 사람들 대다수가 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나쁠 것이야 없다. 문제는 이를 넘어서 재산을 불리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집중을 하는데 최적인 제도이며 또한 이러한 행동을 부채질하고 정당화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부채질과 정당화가 인간이란 존재를 한없이 추락시킨다는데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과거의 봉건적 신분제는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속박은 해결되지 않았다.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라는 말로 대변되는 경제적 계급이 생겨난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주의가 이를 허용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일어난 백혈병 환자나 쌍용차의 경우만 봐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격차가 사실상 과거 봉건적 신분제와 별 다를 바 없음은 분명하다. 아니, 사람들이 그 격차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신과 비슷한 계급에 있는 사람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 최악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의 최고 근본인 땅까지 사유화시킴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집 문제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땅이란 다른 물건과는 다르게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품목(?)이다. 필요하다고 더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독점이 쉽게 가능하고 가격 역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나라 인구 17%60%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을 팔면 미국도 살 수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환경이다. 자본주의의 철학에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은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념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현실과 들어맞는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 이념이 자연의 유한함을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받아줄 만큼 강인하지 못했다. 인간의 지속적인 개발과 성장은 자연이 소화하기 힘들 정도였고 그 결과 지구 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다.(아메리카에서 셰일 가스 층이 터졌다고 하니 이야기가 좀 다를 수 있겠다.)

 

자본주의가 비록 공산주의를 이겼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난점들이 산재해 있는 이상 완전한 제도라고 볼 수 없으며 비인간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사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농부이자 시인인 서정홍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그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아는 사람이다. 도시에서부터 농업과 관련된 사회운동을 해온 그는 직접 농사지어 얻은 작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잘 역설한다.

 

그에게 있어 땅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그 땅을 경작하는 농부는 성직자다. 땅과 하늘은 거짓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부는 정직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몸을 부단히 움직이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쁜 생각을 먹을 겨를도 없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미친 돈바람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확실히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이는 국가적 위기로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관여해야할 문제다. 저자의 말만 따라 수입농산품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건강을 떠나서 식량주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불리하며 제대로 된 주권국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농촌이 가지는 존재의미와 그 필요성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결심이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겠지만 저자와 다르게 현대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다수고 나는 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인류가 이룩한 진보를 누리는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과거 수렵채취 생활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극단적 결론까지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60억이 넘는 인구가 농업에만 종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 책의 근본 목적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대안적 길을 제시하는 것이고 저자가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러한 나의 아쉬움은 투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저자의 생각에 동조한다 하더라도 과연 이를 행동으로 옮길 사람이 몇이나 될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농촌과 도시를 도식적으로 이분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력적이다. 자신의 여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편한 길을 버린 농부로서 느끼는 감정을 글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저자의 모습은 너무 편한 길만 가고 있는 나에게 왠지 열등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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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관계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아주 소수의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같은 인간과 어울려 이 세상을 살아 나간다. 

때문에 인간이란 누구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관계를 잘 풀어 나가는 사람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행복함을 그만큼 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해도, 일반인들의 경우 그 관계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지속적으로 입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살다 보면 잘못된 관계를 맺거나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정 맘에 안 맞으면 안보고 살면 그만이다. 굳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대학생 이상 어른들에게만 해당된다. 고등학생 이하의 경우 학교라는 그다지 개방적이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면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관계가 잘못 맺어진다면 매우 큰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가 아주 극단적으로 나타나는게 바로 왕따현상이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이 현상은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성급하면서 배려없는 접근은 도리어 피해자가 입은 상처를 치료한답시고 헤집는 것과 별 다를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가해자 훈계 및 처벌, 피해자 상담 및 보호라는 방법을 통하여 해결한다. 물론 이러한 해결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 방법은 근본적으로 어른들이 더 큰 힘으로 아이들의 세계에 관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피해자가 찌질이로 낙인찍혀 더 지속적이고 은밀한 괴롭힘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지속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일회성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그동안 학교에서 고수해온 방법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http://ebs.daum.net/knowledge/episode/1214 이 영상을 참고하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문제는 학교에 만연한 '서열'이라는 이름의 문화다. 공포와 억압을 근본 동력으로 하는 이 문화를 똑같은 공포와 억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넌센스다. 그러나 학교 행정의 움직임 역시 이를 하나의 동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은 지금도 애용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학교가 문제를 감추는데 급급하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학교폭력문제를 학교나 교사의 문제로 몰지 않는다. 때문에 이를 감추는 일이 없으며 또한 학교폭력 문제를 사회 모두의 책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에 상담사, 복지사 등등 다양한 지원인력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먼저 이뤄지기 때문에 사건을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아지자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한 해결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교사가 방관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학교폭력문제는 그 학급 구성원 모두의 문제다. 기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로 봤지만 이러한 일이 학급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그 학급 구성원들이 피해자를 돕기보다는 방관하는 위치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만약 피해자를 도우려는 방어자가 3~4명만 있었더라도 학교폭력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학교폭력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상담사인가? 상담사의 조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학교폭력문제는 학급의 문제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심은 교사가 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학급의 고착화된 위계질서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은 교사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적절한 방법 더 필요하다. 

이 어려운 문제는 이미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선진국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노르웨이의 경우 올베우스 프로그램, 핀란드의 경우 키바 코울르 프로젝트 같은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제도들을 본받아 한국에 맞게 조정한 평화쌤 프로젝트가 대두되고 있다. 

급선무는 교사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히 애들끼리의 일로 여기면 곤란하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방어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더불어 학생들의 문화를 괴롭힘으로 가득한 서열 피라미드에서 서로간의 어려움을 보살펴주는 민주적인 문화로 바꿔야 하다. 즉 방관자의 역할을 고수하고 있는 학생들을 방어자로 전환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때로는 신체적인 폭력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신체적인 폭력도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근본으로 두고 있다. 학교의 경우 폐쇄적인 공간에 가깝기 때문에 그 위험도가 현실화하기 딱 좋다. 이러한 학교의 폐쇄성과 위계질서는 피해학생을 자살로 몰고 있다. 더 최악은 이러한 문화가 기존의 방관적인 학생들도 가해자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더 이상 임기응변의 처벌과 보호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학급의 전체적인 관계, 즉 문화 또는 분위기다. 결코 폭력이 용납되지 않으며 괴롭힘 당하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학교 전체가, 사회전체가 머리를 모아 강구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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