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무법자가 되다 탐 철학 소설 23
박민미 지음 / 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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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에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북한을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이며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들과 싸워 쟁취해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안녕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좀더 깊게 파헤져보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논쟁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직역하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체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지분을 행사한다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긴 하지만 잡음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의민주주의라는 대표를 선택해서 그 대표가 위임받은 권한을 행세하는 체재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독재자들도 자신들이 독재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 북한의 독재자들도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한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는 헌법을 수정하여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이를 대표를 통해 행사한다로 문구를 바꾸어 간선제로 대통령 선거를 바꾸기도 했다. 단순히 백성이 주인이 된다고 치면 어쨌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까 저 문구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하는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정말 백성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이 부분이다.

몽테스키외는 이에 대한 답으로 '법의 정신'이란 책을 집필했다. 그 책에 따르면 세상에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3개 체재가 있고 이들 정치 제재는 체재마다 중요시 하는 것과 돌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특별히 몽테스키외가 어떤 정치제재를 더 내세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절대 반대했던 정치 제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제정'이다. 조선시대 시스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군주정이라고 해서 군주가 멋대로 하는 경우는 연산군처럼 폭군이란 소리를 듣고 쫓겨나기 마련이다. 전제정 하에서 지배자는 법이 아닌 '공포'를 지배 메커니즘으로 사용한다. 그런 점을 포착했다는 면에서 몽테스키외는 탁월한 통찰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법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여 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바로 그 유명한 '삼권분립' 개념이 나온다.

이 책에서 전제정을 추구하는 세력은 '모나크'라는 회사다. 정확히 말하면 그 회사의 주인인 독고재이다. 책에서는 그가 어두운 측면도 있지만 마냥 악인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제거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반 민주주의자이며 독재자이다. 그리고 반인간주의자이다. 설령 그가 꿈꾸는 미래에 긍정적인 결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서 사람들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할만한 삶인가?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시기에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한다쳐도 우리는 그를 독재자로, 헌법을 어긴 무법자로 볼 수 밖에 없다. 그 경제성장의 주체는 박정희며 그 과실 역시 대다수의 민중은 그가 죽은지 한참 후에야 투쟁 끝에 맡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대가로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뭘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다른 사람의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주의는 안녕하지 못하다. 자본의 막강한 힘 앞에 민주주의는 시녀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자본을 견제하기 보다는 자본의 확대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경제에만, 그것도 꼭 재벌에게만 적용되는 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이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다 포퓰리즘으로 몰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삼권분립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가?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과연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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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되어 줄게! 웃어라! 어린이 2
서순영 지음, 김수경 그림 / 분홍고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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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 발맞추어 동물권이라는 생소한 말 역시 돌아다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동물도 인간과 똑같은 생명이라는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반려동물이라고는 해도 결국 소유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인간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볼 때 똑같은 생명 운운하는 것은 위선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과는 별개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상당부분 포기하면서까지 동물을 돌보는 모습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인디스쿨에서 받아 읽은 이 책은 유기견을 키우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유기견과의 만남부터 시작하여 소녀가 반려동물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는지 어떻게 돌봐야는지 여행할 때는 어떻게 해야는지 등 동물을 키울 때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에피소드로 나온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헤어지는 모습으로 마무리 된다.


이렇게 이 책에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얼마나 많은 품이 필요한지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잘 나와 있다. 특히 반려동물과 여행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잘 나와있어 도움이 된다. 


내 주변에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이 분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보면서 나도 가끔은 반려동물을 키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은 한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생각하기에 생각으로만 접어두고 있다. 


나도 언젠가 반려동물을 키우게 될 날이 올까? 알 수 없지만 키우게 될 때 이 책에서 배운 것처럼 물건처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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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도시 동물들의 권리 투쟁기 사계절 아동교양 문고 9
김향금 지음, 이갑규 그림 / 사계절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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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명이 발전하고 그 힘이 인간을 제외한 자연의 힘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재생능력을 넘어선 파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동물 멸종이다.

동물이 멸종하는 것이야 오랜 지구의 역사를 비추어봤을 뭐 그리 새삼스럽겠냐마는 문제는 이 진행속도가 가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다가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이 사라지지는 않을까하는 우려가 우려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 인간을 위협하지 않을까?

특히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지능이 있어서 그런지 자기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존재를 사유화하여 재산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21세기 들어와서 인간끼리의 차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동물은 인간의 배려 바깥에 있다.

달빛도시 동물들의 권리 투쟁기에 나오는 나챙겨 시장은 오늘날 인간이 동물에게 보이는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그에게 있어 동물은 그저 재산에 불과하다. 동물이 받는 고통보다는 농부가 입을 손해가 더 소중하며 동물의 권리는 그에게 잠꼬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의 동물에 대해 무심한 태도는 바로 우리의 거울 아닌가?

이야기에서 나오지만 사람제일주의를 내세운 나챙겨 시장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가 선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말 민주주의가 선인가?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100%에 가까운 지지로 총통으로 만든 사례야 선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되는 민주주의 사회도 과연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인간에게나 아닐까? 오늘날 화장품이나 다른 약품 실험에 동물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출마한다면, 과연 그 사람이 당선될 확률은 몇%나 될까?

.. 그렇다고 내가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애완동물이란 호칭이 차별이라며 반려동물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결국 그 동물들의 권리는 그 소유주에게 달려있다. 소유하면서 동등함을 추구할 수 있나?

하지만 이미 인간이 야생동물의 시달림에 벗어났고 전 세계 인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재화를 구축한 상태에서 이제 동물들의 권리에도 눈을 돌릴 차례가 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미 동물권에 대해 고민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동물권을 법제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이 추세는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동물권은 어디까지 보장될 수 있을까? 책에서는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습성을 존중해주는 선까지 나아갔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가능하려면 우리 인간은 그동안의 습성을 바꿔야만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습성을 고쳐야 동물들의 습성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류는 이제 도약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하나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동물들의 고통에 대해 잘 몰랐고 또 소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잘 몰랐다는 것이다. 설마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오늘날 분업화된 산업시스템에서 자기가 무슨 일 하는지도 잘 파악 못하는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분업화는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자신이 하는 일만 가지고는 양심에 거리낌이 남는 사건이 완성되지 않기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동물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식물과 달리 동물, 특히 포유류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고통을 으로 여긴다면 동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게 맞겠는가? 인간은 그동안 같은 인간끼리 만들어낸 평등을 이제는 동물과 나눠야할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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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다. 예전에는 트위터에 푹 빠져 지냈으나 지금은 페이스북을 더 즐겨한다.
SNS의 최대 장점은 새로운 관계 맺기다. 페이스북의 경우 내 말, 일상에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면서 긍정적인 관계가 구축된다. 또한 자존감을 세워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관계맺기가 오로지 온라인에서만 이루어지는 폐해가 있긴 하지만 내 생각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트위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트위터는 정치관련 글이 대다수인데 내 의견이 리트윗 될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헛된 욕망일 수도 있지만 무릇 인간이란 인정받기 원하는 존재 아닌가?
이러한 SNS의 특성을 교실에도 끌고 올 수 있지 않을까? 관계를 맺는 데에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SNS마다 특성이 다르듯 어떻게 관계를 구축하는가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역할을 정하며 구조를 구축하는지에 따라 만남과 관계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관계를 마냥 잘 맺게 하는데 집중했다면 지금부터는 관계의 질과 구조를 어떻게 생성해낼 것인지를 고민할 시점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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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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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들이 있다. 매춘, 도둑, 사기 등등. 그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며 가장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왜 끔찍한가? 인간은 선악을 나누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평화를 전제로 해야 발휘 가능하다. 전쟁이 벌어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 아니라 아군인가 적군이가 그 뿐이다. , 누구 편이냐가 문제이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이를 문제삼기에는 '생명'이라는 가장 고귀한 가치가 실시간으로 위협 받는다.

그렇기에 전쟁은 끔찍하다. 그 시간에는 정의가 없으며, 그 장소에는 생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기가 쉽지 않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서 전쟁을 벌이고 나중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며 전쟁을 멈춘다고. 그 와중에 이득을 보는 것은 소위 지배자들이라 불리는 최상류층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것이 오로지 물질적 욕구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그럴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는 욕심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자들조차 자신이 겉치장으로 내세운 명분을 신념으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 꿈들'이란 책은 미군에 의해 일어난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 이야기가 담겨있다. 먼 곳에서 숫자로만 접했던 그 곳의 참혹한 현장과 삶이란 그 어찌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이라크에서 철군을 하려 하지만 치안 문제 때문에 철군을 쉽게 못한다니 이들의 삶이 언제 나아질지 의문이다.

나는 조지 부시가 확신범이라 생각한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모르겠지만 조지 부시는 정말 본인이 성전을 펼친다고 믿었다 본다. 그렇기에 더욱더 위험한 사람이고 그 결과는 앞뒤 잴 것 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나타났다. 그 몰아낸다는 독재자와 그 집안이 나름의 커넥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부시 만이 아니다. 그 당시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수는 과반수를 한참 넘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석유라는 이익을 쫓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정말 독재에 대한 증오로 자신을 정의라 생각한 미국인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원인을 볼 때 이 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북한과 대치한지 거의 반백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미 실제적 이익은 사람들의 뇌리에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으며 그렇기에 그들은 나쁜 국가라는 수사법이다. '국가'라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체가 이데올로기로서 지배하고 있기에 아무런 이익없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야 어떤 이익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민중들에게 현 대치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상당수 민중들은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는 중요하다.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에 대놓고 군을 파견해서 식민지로 지배하지 못하고 자본으로 공략하는 것은 대의명분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에 취해버리면 아무런 이익없이 전쟁을 하게 된다. 물욕에 의한 전쟁은 거래라도 가능하지 신념에 의한 전쟁은 많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며 멈추게 된다.

전쟁이 일단 터지면 그 어떤 인간의 존엄한 가치도 밑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적과 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차별하게 된다. 전경에서 복무하다 제대한 동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시위 단체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했다. 그런 것이다. 전쟁이란.

전쟁은 안 벌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기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와 지혜다. 평화를 위해 용기있게 나서는 것과 슬기롭게 문제를 헤져나가는 것이 둘다 중요하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지 생각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반드시 필요한 전쟁이란 자유와 혁명을 위한 몇몇 외에는 없었다. 그것은 남북, 이라크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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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8-2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슬픈 만평이지만
바로 사회를 똑똑히 보여주는 만평이네요.

전쟁터에 나간 군인도
군인을 둔 부모도
우리 모두도
이를 하루 빨리 알아챌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