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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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설파하며 수천만 독자를 사로잡은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 있는 시간을 발판 삼아 정상에 우뚝 선 사람들을 '단독자'로 명명하면서, '고독'이야말로 최고의 성장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사이토 다카시의 최신간 <단독자>에는 이른 나이에 대학교수로 임용된 저자를 비롯해 탁월한 성과를 낸 수많은 단독자들이 무리에서 숨는 대신 홀로 고독을 자처하며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소개된다. 또한 탁월한 단독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인간관계를 담백하게 유지하는 처세술부터 에고 서핑과 멀어지는 법, 자존감을 회복하는 쓰기의 기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행동법, 독서를 통한 마인드 셋까지, 한 번의 시도로 두 발짝 나아가는 최적의 기법들을 담았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두려운 사람들에게 사이토 다카시는 의미 있는 삶에 필요한 인생 무기를 쥐여준다.

이 책은 '1장 잃어버린 고독의 시간을 찾아서, 2장 친구가 많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 3장 고독을 교양으로 만드는 축적의 시간, 4장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은둔의 기술, 5장 나이듦에 관한 4가지 프리즘'이라는 5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독이라는 말 대신 '단독'이라는 표현을 써서 눈길을 끈다. 저자는 혼자서 행동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주위를 의식하며 고독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고독 속을 걷고 단독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하루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고독감이 '홀로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홀로 애쓰는 시간 그리고 주위 동료들과 서로 돕고 경쟁하고, 자극을 주고받는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고독감에 눌리지 않는 '고고한 사람'이 되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탁월한 능력이 있어도 주위에 어필하지 않는 이유 두 가지는 첫째, 실제로 실력을 보여줬을 때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고, 둘째, 어릴 때부터 '겸손하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지나친 겸손은 '자기긍정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려울 것 같아도 용기를 내보는 것, 성공하면 자신감이 붙고, 실패하더라도 '그래도 도전했다'는 마음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무엇으로 고독감을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책'을 꼽는다고 강조한다. 책이야말로 '단독자가 단독자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은 저자가 홀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엮어낸 글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저술하는 시간은 저자 혼자만의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책은 단독자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단독의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대학원의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그저 책만 읽고 연구를 했으니 하루 대부분을 홀로 보낸 셈이지만, 고독감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유는 책이 자신의 친구였기 때문이고, 자신에게 고독감이 파고들지 않도록 책장이 막아주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알찬 작품으로 열매를 맺으면,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그 열매의 숙성된 맛을 즐기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연쇄작용 속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고독감을 느끼지 않는다. 마음은 늘 저자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즉,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더라도 책을 읽는다면 그 고독감을 해소할 수 있다. 이것은 책이라는 단독자의 숙성물 덕분으로 내 안에 있는 '고독'을 '단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소설 속 인물은 나를 대신해 나는 걷지 못한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아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등장인물을 내 분신처럼 여기며 책을 읽는다면 고독감을 떨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로서는 짊어지지 못할 무거운 '고독의 십자가'를 등장인물에게 지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SNS상에는 친구가 많지만 마음에 고독감이 퍼져 힘들다면, 어떤 장르든 좋으니 일단 책을 펼쳐보면 고독감을 해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고독감을 두려워하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은 문학 전반에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다. 그중에서는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죄스러운 행동을 하고, 그 죄의식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다. 서스펜스 장르는 모두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누군가에게 고독의 십자가를 짊어지우자'라고 의식하고 책을 읽으면, 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글을 쓰는 일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내 생각을 쓰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단독자로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쓰는 행위를 하면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고 그럼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된다고 이야기한다. 생각을 말로 바꾸어 '밖으로 표출하는 행위'이다. 저자는 말의 실을 엮으며 마음속에 엉켜있던 기분이 확 풀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고독감이 줄어들기 위한 방법으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만의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안네의 일기>를 쓴 여성 '안네 프랑크'에 대한 이야기와 <안네의 일기> 속에 등장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나는 쓰고 싶다.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저 밑바닥을 뒤덥고 있는 것을 씻어내어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어째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는 그런 진정한 친구가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불행 속에서도 늘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을 찾을 마음만 있으면 그만큼 많은 아름다운 것들, 많은 행복을 발견하고 마음의 조화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한 용기와 신념을 가진 사람은 결코 불행에 쓰러지지 않는 법이다."

<단독자>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고독감은 '지성의 힘'으로 날려버리고, 교양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고독감은 더는 적이 아닌, 단단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아군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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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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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다채로운 작가들의 깊이 있는 글을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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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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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사유'를 발견하게 하는, 가산 이효석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명실상부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이효석문학상의 수상작품집이 제24회째를 맞이하여 출간되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은 2022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기성 문예지 및 웹진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김인숙 '자작나무 숲', 신주희 '작은 방주들', 안보윤 '애도의 방식', 지혜 '북명 너머에서'가 최종심에 올랐고,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이을 제24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대상 수상작인 안보윤 작가의 '애도의 방식'은 학교폭력 가해자의 사망 이후 남겨진 피해자와 그 유족의 각각의 애도의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애도의 방식'은 주인공 동주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승규의 죽음 이후 승규 어머니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장면들이 눈길을 끈다. '애도의 방식'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던 동주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승규의 죽음에 관한 소문의 당사자가 되어 경험한 심리와 아들 승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승규의 엄마의 심리가 부딪히며 기존의 학교 폭력 피해자의 서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예상을 뒤엎는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여자는 승규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끝까지 모른 채 살 것이다. 승규가 마지막의 어떤 표정으로 나를 마주했는지 모른 채 섬에서 시금치들을 돌볼 것이다. 고요히 평화롭게 늙어 갈 것이다. 그를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라는 주인공 동주의 독백을 통해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소란한 곳에 방치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곳에 시선을 두면 안 된다. 누구에게도 동조하지 않고 피곤한 기색으로, 두 팔을 원숭이처럼 늘어뜨린 채 서 있어야 한다. 그런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는 드물다. 누가 시비를 걸더라도 그 자세 그대로 꾸뻑 사과하면 그만이다. 소란한 곳에 소란스럽지 않은 인간으로 멈춰 있을 때 나는 가장 안전하다."

"여자가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한다. 구운 파인애플을 도막도막 잘라놓지 않고 먹는다. 노른자를 터뜨려 끼얹은 고깃덩어리를 죄다 으깨놓고 먹지 않는다. 여자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비린 것을 물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동주야, 여자는 내가 지나다닐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나는 못 들은 척 움직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접시를 치우고 덜걱대며 테이블을 닦는다. 간이 싱크대에서 찾잔을 씻다가 커피잔을 하나 깬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알 리다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소란은 소문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소문을 불신하고 누군가는 소문을 맹신했다. 소문 속에서 나는 승규의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승규를 등 뒤에서 힘껏 떼밀기도 했다. 학교 복도나 급식실에서 했다면 대수롭지 않을 행동들이었으나 난간이 없는 옥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당했으니 동주 개도 한 번쯤은 암만 억울해도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누군가는 동조하고 누군가는 비난했다. 매일매일이 소란했다.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2023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상 작가 안보윤의 자선작으로 실린 '너머의 세계'는 학교 안에서 교사들의 교권이 무너지고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엄성을 위협받는 현실의 세계를 깊이 반영한 작품으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연수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비밀로 했다. 작은 현관이 붙은 교실을 떠올릴 때마다 구토와 어지럼증이 솟는다는 걸,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호흡이 가빠진다는 걸, 교탁 앞에 서면 시야가 급격히 졸아들면서 머릿속에 암흑이 찾아온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들키는 것이 있었다."

"연수는 소란한 복도를 뒤로한 채 걸었다. 걸을수록 복도는 더 길고 어두워졌다. 계단을 내려가 중앙 현관에 있는 거대한 유리문을 열고 운동장으로 나가는 장면을 연수는 계속 상상하며 걸었다. 그것은 적어도 복고 창 너머 크고 단단한 돌덩이를 상상하는 일보단 나았다. 중앙 현관을 넘고 나면 이제 다시는, 어떤 문 안으로도 몸을 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연수는 너머의 세계에 있기로 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선택이 아니었다. 적어도 연수에게는 그랬다."

김병운 작가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성적 소수자인 '진무 삼촌'의 생존 사실을 알고서 그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 '나'와 친구 '장희'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세월은 우리에 게 어울려'는 퀴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혐오가 만들어내는 편견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을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평등한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는 퀴어의 세대를 뛰어넘는 이야기로 진정한 소통의 과정을 표현하여 인상적이다.

"이영서 씨는 말했다.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오늘 장희 군한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삼촌은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삼촌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장희가 왜 P를 떠올렸는지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다 P를 잃었으니까. 중죄를 지은 듯이 자책하고 선처를 바라듯이 관용을 구걸하다 P를 빼앗겼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나는 어떻게 되었나? 배제되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나는 어떻게 되었나? 박탈당했다.

그 시절 장희는 도대체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가만히 있느냐며 나를 한심해했지만, 사실 나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내가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믿으라면 믿는 그런 충직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당신들 못지않게, 아니 당신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모범적이며 무해하므로 내게도 자격이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기꺼이 참고 견뎠던 것이다. 오직 내가 원했던 단 한 자리. P의 곁에 있기 위해서. P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서."

이밖에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에서 김인숙 작가의 작품 '자작나무 숲'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자작나무 숲'은 어느 것도 자신의 혈족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 '쓰레기 호더' 할머니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할머니의 집,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애증 섞인 시선과 신랄한 서술을 만나볼 수 있다. '자작나무 숲'의 주인공은 죽은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의 집을 상속받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더욱 열심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어린 나이의 아버지의 죽음이 존재했던 집에서 모든 기억을 안고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었다. '자작나무 숲'은 자작자작 타는 자작나무의 소리처럼 애타는 마음들을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김인숙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다.

"할머니와 함께 뒷산 아래에 죽은 동물을 묻어줄 때부터 알았다. 왼발 오른발 하며 꽝꽝 땅을 다질 때부터 알았다. 얘들은 이제 열심히 살아 있지 않아도 되지. 얘들은 이제 피 안 흘려도 되지. 얘들은 이제 꿈을 안 꿔도 되지."

"숲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할머니를 버리러. 어쩌면 아빠도 버리러. 가다가 자작나무 숲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껍질 한 껍질 벗으면서도 맨몸이 되지 않는 나무들의 숲. 환한 나무들의 숲. 그런 숲에 이르면 나는 마침내 물을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탔어, 뭐가 그렇게 애타게 자작자작 힘들었어, 할머니.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다시 궁금해진다. 죽음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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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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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한 깊은 깨달음을 주는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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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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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는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내를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작가 정보라의 신작이다. 이 책은 붉은 칼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정보라 작가 특유의 치밀하고 치열한 설정과 서늘하게 파고드는 문장, 어둡게 번뜩이는 사유가 더욱 돋보인다. 이야기는 고통을 무력화시킨 진통제 'NSTRA-14'를 만든 제약회사와, 고통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단체의 갈등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보라 작가는 소설이라는 매혹적인 가능성의 도구를 통해, '고통'이라는 감각의 뿌리까지 낱낱이 해부하며, 독자들에게 철학적 통찰과 내면을 집요하게 찌리는 이야기의 쾌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중독성이 없고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진통제의 등장. NSTRA-14가 보편적인 진통제가 되자, 고통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뀐다. 그러나 고통이 사라지자,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신흥 종교 '교단'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하며, 제약회사를 테러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테러 사건 후, 잠잠해진 교단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온몸이 고문 흔적으로 가득하고, 체내에서 다량의 약물이 검출된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교단의 지도자들이다. 형사들은 진범을 밝히기 위해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어 있던 테러 사건의 범인 '태'를 세상으로 불러들인다.

'태'의 기억은 교단에서 시작된다. '태'는 형인 '한'과 교단의 시설에서 자랐다. 고통을 섬기며, 고통의 무게를 모든 사람들에게 지우려 했던 '태'의 신념은 무고한 피해자를 낳았을 뿐이다. 제약회사를 경영한 '경'의 부모도 이때 목숨을 잃었다. '태'의 도움으로 형사들은 교단에서 떨어져 나와 은거 중인 '한'을 붙잡지만, 어떤 진실도 밝히지 못한 채로 풀어준다. 호수 근처, 제약회사가 철수하며 사람이 모두 떠나 폐촌이 된 황무지를 조사하던 형사들은 그곳에서 불법 약물 제조 시설과, 유치장에서 풀려난 뒤 숨어 있던 '한'을 발견한다. '한'은 자신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태'도 형은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만 무수한 증거가 '한'을 범인이라고 가리킨다. 한은 다시 유치장에 갇힌다.

토네이도가 들이닥친다며 기후 경보가 울리던 때, 또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유치장에 갇혀 있던 '한'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CCTV는 고작 3분 동안 작동을 멈췄고, 그 3분을 전후로 유치장에 드나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서에 설치된 CCTV를 모조리 뒤지며 조사해 보아도 모든 사람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단 한 명, '태'의 담당 정신과 의사 '엽'을 빼고. 형사들은 CCTV를 돌려 거기 찍힌 의사를 찾으려 하지만, 그 순간 불어닥친 토네이도에 경찰서 건물이 정전된다. 한참이 지나 토네이도가 물러가고,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의사는 어디에도 없다. 유치장에 혼자 남겨진 '태'는 그를 떠올린다. 테러에 관한 질문, 교단을 향한 냉철한 태도, 고통에 관한 특별한 통찰력. '태'와 그를 둘러싼 '고통'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던 '엽'의 정체와 교단과 제약회사의 싸움에서 그는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고통에 관하여>는 인간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내내 삶의 일부로서 고통을 느끼고 삶의 끝으로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고 결국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어떠한 존재 방식인지, 무엇을 바라고 어떤 이유에서 그 고통을 견디는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건네며 고통에 대한 삶의 통찰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의사가 신증 종교 고단으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이고 큰 믿음을 갖도록 길어진 태에게 건네는 이야기가 삶의 의미와 믿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글로 흥미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요. 뭘 크게 믿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닥치는 상황들에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의미는 그 뒤에 찾는 거죠. 절대적인 믿음 같은 게 없어도 살아갈 수 있어요."

이 책에서 긴 투병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경험한 욱이 삶의 의미를 직접 찾기 위한 과정에서 신흥종교 교단에서 활동하며 파국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통증이라는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로 인한 외로움을 경험하는 욱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욱을 떠났다. 욱이 겪은 것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욱의 투병과 회복을 경험할 수 없었으므로 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했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욱을 매료시킨 것은 고통을 경험하고 극복한 뒤에 혹은 고통을 경험하고 극복해야만 초월을 얻을 수 있다는 교단의 주장이었다. 한의 설명에 따르면 욱의 삶과 경험이야말로 초월에 가장 가까운 형태였다. 고통에 의미는 없으며 고통을 겪고 나면 사람은 초월이나 경험이나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과 마음이 지쳐 쇠약해질 뿐이라는 욱의 절망을 한은 의미와 목적으로 바꾸어주었다. 욱은 한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을, 자신이 경험한 방식 그대로 혹은 그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오로지 고통만을 통하여, 절망만을 통하여."

여기에 더해 이 책에서 고통을 무력화시킨 진통제 'NSTRA-14'를 만든 제약회사를 만든 부모로부터 실험 대상이 되며 자라온 '경'이 고통에 관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를 통해 깊은 공감을 느낀다. 경은 부모가 이룩한 세계로, 경을 가루었던 과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서 점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경은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다르며,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경은 고통의 탐색에 매몰되면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고,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고 말한다. 경은 태가 상처 입은 방식은 자신과 유사했으나 같지 않았고, 회복의 과정과 고통의 기억을 이해하는 자신의 방식과 달랐다고 이야기한다. 고통과 공포가 지배하던 과거를 지나 사랑하는 현과 함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삶을 나아가고자 선택한 경의 모습이 독자에게 위안을 선사한다.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도 성욕도 아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었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이었다."

"고통스럽지 않은 기억으로 삶을 채우고 흉터가 아닌 증거들로 남은 생을 함께 축복하고 기념하기를 원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경은 알지 못했고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시도는 해봐야만 했다. 현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고 경은 현을 사랑했으므로 최대한 노력을 해봐야 했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보라 작가의 '작가의 말'의 깊인 여운을 선사한다. 정보라 작가는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하며,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충분히 잘 먹고 충분히 잘 쉬고 내 몸을 잘 돌보았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러면 괴로운 상황을 탈출할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탈출할 길이 있어야 한다.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야 한다.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탈출해서 잘 살 수 잇어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나는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으면서 좀 더 구제척으로 배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떠들고 글 쓰고 집회하고 행진하고 요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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