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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의 철학 - 예술과 일상을 대하는 세련된 감각
지바 마사야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추천 / 베가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센스가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말은 참 다양한 상황에서 쓰인다. 가령 옷을 입을 때나 밥을 먹으로 갈 때, 옷이나 식당을 고르는 일상생활의 '선별하는 센스'가 있다. 그림이나 음악을 아는 '예술적 센스', '사람과 소통하는 '대화 센스'가 있는가 하면, 일을 잘하는 동료에게는 '일 센스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센스라는 말에는 예외 없이 사람의 마음을 슬그머니 뜨끔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도저히 노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가시 돋친 의미가 단어 안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센스'라는 이 모호한 단어를 말로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책 <센스의 철학>은 한마디로 '센스는 이런 것이다'라는 하나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일상과 예술을 대하는 센스를 '리듬'과 '흐름' 그리고 '부재와 존재'라는 측면에서 풀어 설명하는 저자 지바 마사야의 관점은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로부터 즉각적인 공감과 강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음악에서, 미술작품에서, 실내장식에서, 놀이에서, 심지어 우리가 늘 만나는 음식에서조차 '센스'의 의미와 탄생을 읽어내는 저자의 고감도 '센스'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장 센스란 무엇인가?, 2장 리듬으로 파악한다, 3장 까꿍의 원리, 4장 의미의 리듬, 5장 나열하는 것, 6장 센스와 우연성, 7장 시간과 인간, 8장 반복과 안티센스'라는 8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센스는 '직관적으로 아는' 것으로 다양한 사안에 걸친 종합적인 판단력이라고 말한다.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력, 그리고 감각과 사고를 연결하는 것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센스'라고 하면 백지 위에 선을 그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는 것은 미술도 음악도 아니다. 이는 작품이나 보고 들은 경험, 어떤 인상 등의 소재가 있고 그것을 기억해내서 선택하고 조합하고 변형하며, 거기서 훌쩍 날아올라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창조 행위의 밑바탕에는 '선택'이 있다."
저자는 '헤타우마'란 재현이 중심에 놓이지 않고 자신의 선의 움직임이 앞서는 경우를 말한다고 전한다. 선의 운동이 주를 이루되 거기에 재현성도 포함되는 식이다. 대상을 재현하려 했음에도 재현하지 못했을 때가 아니라, 자유로운 운동 속에서 뭔가를 포착할 때, 그 개성을 '헤타우마'라고 부른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사진처럼 그린 그림만 '잘 그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인기가 아주 많은 모네와 고프의 그림은 풍경과 물건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하지만, 사진 같지 않고 개성 넘치는 맛이 있다. 모네의 그림은 붓 터치가 거칠어 사물의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반 고흐가 그리는 형태에는 바로 반 고흐임을 알 수 있는 개성 만점의 왜곡이 있는데, 거기에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사진과 같은 정확성에서는 어긋나 있지만, 그 어긋남이 매력이며, 그 어긋남이 유머러스하다고 해서 이른바 '헤타우마'가 된다."
저자는 크게 말하면 같은 자극이 반복되는 규칙성, 그리고 그것이 중단되거나 혹은 다른 유형의 자극이 들어오는 일탈, 이러한 '규칙과 일탈'의 조합으로 리듬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리듬은 대개 복잡하고 다층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의미에서 벗어난 리듬의 재미, 그 재미를 아는 것이 최소한의 좋은 센스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것은 20세기에 여러 장르의 예술이 지향했던 방향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기서 말하는 센스란 의미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시대를 벌서나 좀 더 자유롭게 소리와 형태를 구성하게 되는 근대화 혹은 현대화, 그 모더니즘을 좋게 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놀이로서의 '까꿍'은 단지 존재와 부재의 대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 자립해가는 리듬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언가가 없는 혹은 숨겨진 상태에서 드러난 상태로의 전환, '없다'에서 '있다'로의 전환, 아이들이 이 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놀이가 인간의 뿌리에 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까꿍' 놀이는 근본적인 '불안과 안심'의 교차를 의미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놀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불안과 안심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라는 형태로 그것을 포장해 간접화하고 있다. 놀이를 통해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까꿍 놀이는 '0'과 1의 비트를 파도에 말려들게 하는 리듬'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부재하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거이 아니라 잠재우면서 극복하는 형태다. 모든 놀이와 게임, 그리고 예술을, 까꿍 놀이의 원리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놀이란 굳이 스트레스를 즐기는 것이고, 이야기에서 '서스펜스'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 누군가가 실종되었다, 어딘가 자신의 정체성이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등 결핍에 의한 긴장 상태가 서스펜스로 해소되는, 즐 결핍을 메우는 쪽으로 향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서스펜스는 곧 '까꿍놀이'이고 이것은 '0->1'이란 변화가 반복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좀 더 복잡하고 리듬감 넘치는 재미가 있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서스펜스(suspense)란 '허공에 매달리다'라는 뜻의 영어인데, 해결에 이르기까지 긴장 상태로 지연되고(허공에 매달려서), 넘어야 할 작은 산이 차례로 발생하며 그 하나하나가 0에서 1로 나아가는 작은 해결인데, 그런 것이 연속되고 중첩되며 굴곡을 만들어 복잡한 리듬이 된다."
저자는 커피를 천천히 내릴 때 일부러 시간을 들이는 그 즐거움과 비슷한 것으로서 라우션버그와 같은 추상 회화를 볼 때 잘 모르는 형태를 따라가는 즐거움이라든지, 소설을 읽고 좀처럼 주인공의 태도가 결정되지 않는 담담함을 쫓아가는 재미 등을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바로 그 작품의 볼륨 혹은 물량이 되는 법이다. 작품에는 크기, 길이, 정보량 등 일정한 양적 규모가 있다. 예술작품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것, 즉 '자기 목적적'인 것이 예술작품이며, '서스펜스(다시 말해서 까꿍놀이)'를 지연시키는 것이 곧 작품의 볼륨이다."
저자는 센스란 희로애락을 중심으로 하는 대략적인 감동을 절반으로 줄이고, 다양한 부분의 재미에 주목하는 구조적인 감동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 저나는 작고 사소한 일을 언어화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소한 일을 언어화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풍족하게 전개하는 연습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회화든 음악이든 실내장식이든 패션이든, 요소를 나열하는 것은 곧 리듬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나열된 것(리듬)을 감상하거나 만든다는 것은 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예술에 대한 이론'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예술과 생활에서 재미있다고 할 수 있는 배열(리듬)이란 무엇인가, 그걸 아는 것, 그걸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센스가 '좋은' 것이다."
저자는 반복과 차이의 균형이 깨지고 예측오차가 숭고하게 커지는 균형의 '붕괴'에서 예술의 자유를 본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경우,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을 뿐 아니라, 센스가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또 하나의 정의도 얻을 수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연성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그것이 리듬의 다양성이 되고 개성적인 센스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우연성이 얼마나 작용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우연성이 적당한지 아니면 강하게 작용하는지에 따라서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그러데이션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에 관여하는 것은 애초에 쓸데없는 시간을 음미하는 것이며, 혹은 예술작품이란 말하자면 '시간의 결정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정답에 도달하기보다는 도중에 주위를 오락가락하거나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자유로운 여유의 시간이 예술 감상의 본질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센스의 철학>의 저자 지바 마사야는 여러 작품을 동일 평면상에서 보기 위해서는 우선 의미를 향한 관심을 일단 내려놓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 단순히 사각형이나 선이나 페인트가 튄 자국만 있는 화면이든, 혹은 인간이나 풍경을 그려서 '의미'를 알 수 있는 작품이든, 어쨌건 리듬의 재미라는 같은 관점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센스의 철학>은 센스가 좋아지는 방향을 목적으로 하여, 일종의 예술론으로 미술, 음악, 문학 등 좁은 의미에서의 예술뿐만이 아니라 예술을 생활과 연결해서 설명하여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센스를 통해서 예술이라 불리는 것의 이미지를 넓히고 살아가는 데 새로운 색채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