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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호라이즌>은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역작이다. 뿐만 아니라 <호라이즌>은 배리 로페즈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집대성한 책으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하면서도 장소와 사유를 옹골차게 엮은 논픽션이다. 북극, 남극, 북태평양, 남태평양, 아프리카, 호주 등 여섯 지역을 갈무리해, 하나의 교향곡처럼 아름답고 치밀하게 재구성해냈다. 로페즈는 이들 장소를 배경으로, 북극권 지역으로 용감하게 파고든 선사시대 사람들, 아프리카를 침략한 식민주의자들, 태평양을 항해한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인들, 외교의 문을 걸어 잠근 아시아로 건너간 미국인들 등을 엮어 탐험과 여행을 둘러싼 인류의 오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한편, 인류의 기원, 땅의 역사, 생물들의 뒤섞임, 탐험과 식민주의,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 과학적 성찰 등 다양한 영역의 주제들을 탐색해나간다.
이 책의 키워드가 되는 '여행'은 로페즈에게 지혜를 모으는 활동, 자신을 바꾸는 행동이다. 그는 익숙한 것의 경계를 넘어가 미지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났고, 눈앞의 풍경을 보면서 기꺼이 경이로움에 사로잡혔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더불어 각각의 장소를 거쳐 간 인물들을 호명하고 서로를 탁월하게 연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노정하는 모순을 외면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기꺼기 끌어안으며 끝내 초월한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했을 때, 그리고 다윈과 월리스가 인간은 우주 최상의 피조물이 아니라고 선언했을 때, 이어서 융과 프로이트가 합리적인 정신이 호모 사피엔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을 때, 신학은 그에 적응하거나 최소한 반응이라고 해야 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오늘날 여러 선진국에서 인간이 처한 실제 환경이 삼차림 단종 재배 '숲'과 오일샌드 석유, 목축으로 거덜 난 초원, 한때 물고기가 번성했던 바다에 스모그처럼 떠나니는 미세 플라스틱 구름이라면, 인류의 문화는 상실에 대한 감상성과 생존의 긴급성을 구별한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민국가의 경쟁적 정치보다는 더 의의 있는 정치를 확립하고, 영리가 아니라 보존에 기초한 경제를 세워야 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다양성은 단순히 생명의 한 특징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다양성은 전반적으로 생명에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부여하는 생물학적 긴장을 조성한다. 저자는 영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바로 다양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양성을 잃으버리면 모든 생명은 별종의 위험에 놓인다는 저자의 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생태계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전략을 아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의 모든 공동체에서 지혜를 전수하는 이들의 핵심적 책무였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경제'라 불리는 저 압도적 괴물에게 인류가 저항할 방법은 그 괴물을 움직이는 본질적 연료인,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떨쳐내는 것이다. 개벌은 건강한 경제가 아닌 생명에 대한 무관심의 외적 신호다. 그리고 벌목이 끝난 뒤 새로 들어와 일부 토착종을 대체하며 '잡초 종'이라고 멸시당하는 종들 역시 더 하찮은 생명이 아니라, 멸종 위험에 대항하는 생명의 근본적 저항을 보여주는 신호일 뿐이다."
저자는 토착민들은 역동적인 사건 안에 자신들을 집어넣었고, 또한 그 사건에서 즉각적으로 의미를 해석해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들의 접근법은 그 사건이 계속 전개되도록 둔 채 모든 것을 알아차리면서, 거기 있는 의미가 무엇이든 알맞은 때에 그 의미가 드러나도록 두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만약 내가 사건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바란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관찰하는 동안 정의하거나 요약하려는 충동에 저항하고 머리로 분석하는 일을 유예하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미를 파악하려는 익숙한 충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나는 토착민들이 관찰하는 방식의 핵심적 특징도 흡수해야 했다. 그들은 개별적인 대상들보다 자신이 만난 것에 내재한 패턴들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저자는 교도소는 갱도 안의 사나리아와 같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우리는 정확히 어떤 이들이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인지 항상 질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교도소는 심지어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자행되는 악의적인 불관용을, 예를 들어 재판관들과 그 외 재량권을 지닌 다른 사람들이 타인에게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사회질서를 만들려면 교도소가 인간 본성의 전체 스펙트럼에 관해 폭로하는 바를 받아들여야 하고, 수감자들이 사회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라는 순진한 믿음도 버려야 한다. 내가 보기에 난민의 이산과 야생동물의 개체군 감소, 신경증적 소비주의의 원인들을 오로지 자신의 재정적 안녕을 확보가히 위해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 큰 위험이다."
저자는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환경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들이 우리를 그토록 불안하게 하는 이유는, 그 변화들로 우리가 좋은 미래를 맞이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보다는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가 처한 물리적 환경의 대대적 변화들이 과학자들이 보기에 전례 없는 속도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기술 혁신이 세상 상당 부분의 문화를 동질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많고 주의 깊은 떠돌이 여행자에게 여행은 세상 어디에도 완전히 똑같은 장소는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여행은 과거부터 이어진 상식을 수정하고 선입관을 떨려버리도록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의 정신이 맥락을 고려하도록 유도하고, 인류에 대한 절대적 진실의 독재에서 정신을 해방한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주고, 사람은 똑같은 길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관점 하나는 그들이 위기에 처한 환경에도 아랑곳없이 특정한 정통적 신념을 고수하느라 스스로 함정을 팠다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문화는 진보한다는 신념 또는 사회적 동물이 개인의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일은 정당하다는 신념이 그들을 함정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함정을 내파하고 해체하려면 인류는 오랫동안 신념으로 품어왔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셈법을 사용해 항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함정에 대처할 유망한 첫걸음은 전 세계 다양한 전통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한데 모으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철학은 다윈이 모든 생물학적 현상에 내재해 있다고 암시했던 바로 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소산이다. 그러한 오래된 지혜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어느 세기 어떤 격변에도 잘 대응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류의 가장 급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기술혁신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해결책은 인간이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을 심층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저자는 풍경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기를 원하고, 해충들을 제거해 풍경을 개선하기 원하며, 환경과 함께 진화하지 않은 탓에 환경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지닌 식물들과 동물들을 제거하려는 현대의 충동은 생물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 실질적으로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욕망이라고 말한다. 생물학적으로도, 어떤 풍경오 고스란히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다.
"한 장소에 식물들과 동물들을 다시 들여놓는 행위는, 인간이 이런저런 조작으로 한 장소를 파괴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조작으로 원래로 되돌릴 수 있다는, 대범하지만 잘못된 관념을 품고 있다. 진화의 방향은 뒤집을 수 없으며, 코가 풀린 스웨터를 수선하듯 풍경을 다시 수선할 수는 없다. 복원은 다른 동식물을 제치고 특정 동식물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므로, 사회공학 프로젝트나 한 국가의 인종 및 민족 차별 정책에서 맞닥뜨리는 것과 똑같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호라이즌>의 저자 배리 로페즈는 남극 대륙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무언가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빙관에서 소행성의 조각을 집어드는 일, 남극 뮤온 및 중성미자 감지 간섭계 프로젝트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는 남극점의 블루 라이트 터널을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지나가본 일, 크로지어곶의 거대한 펭귄 서식지, 미라가 된 물범의 이마에 손을 대어본 일, 이런 일들은 저자가 다른 곳에서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위안이 되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경험을 존중하고 흡수하고 싶었고, 누구든 그 경험이 필요할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