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2
문보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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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부터 시작된 '시소' 프로젝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한 권으로 올해의 좋은 시와 소설을 만나고,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단행본으로 기획되어, 2022년 <시소 첫 번째 : 2022 선정 작품집>이 출간된 바 있다.

올해도 이어진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은 세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간다. 하나, 시와 소설을 함께 담는다. 둘, 계간 '자음과 모음' 지면에 매 계절 다른 외부 선정위원과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을 실어 독자와 작가에게 공개한다. 셋,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작가 인터뷰, 선정 과정 등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은 계절의 시와 소설을 차례로 읽으면서 마치 시소 위에서 오르고 내리는 것처럼, 다양한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소설을 쓴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더욱 깊고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봄편"에서 임솔아 작가의 "특권"이라는 시를 읽고, 노태훈 문학평론가와 임솔아 시인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전업 작가로 지내게 된 임솔아 시인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다채로운 글들을 통해 "특권"이라는 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두 사람의 심정은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갛합니다. 갖고 있는 태도나 입장도 닮은 바가 있겠죠. 그러나 상황은 다를 수도 있겠어요. 서로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다르니까요. 이들이 딱히 어떤 종류의 희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햇빛을 더 오래 가져가기 위해 계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 버리기 위해 계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라서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소원을 비는 것조차 회의감을 느끼는 상태. 그러면서도 작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상태.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폐를 덜 끼치려 하는 사람에 가까울 거예요. 아무것도 빌지 않겠다는 이들의 다짐은 언뜻 보기에는 냉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냉소가 아닌,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집까지 가져가서 버리겠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고통스럽겠죠. 고통에 빠져 있을 때에는 자신의 고통만 보고 있었을 테지만, 망해가는 것도 특권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바깥을 둘러보게 되었을 거예요. 그제야 사실을 인지했을테죠. 자신만 인지하고 있다가 세계를 함께 인지하고 나면 자신의 고통을 예전처럼 볼 수는 없을 거예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여름" 편에서 윤혜지 시인의 시 '음악 없는 말'을 읽고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윤혜지 시인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나름의 결점도 있고 엄청 매끈하게 잘 쓴 작품은 아닌데도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는 작품, '이상한 좋음'을 가진 시를 쓰고 싶다는 윤혜지 시인의 인터뷰 내용에 공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상하게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위안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윤혜지 시인의 이야기와 함께 시 '음악 없는 말'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볼 수 있는 글들이 인상적이다.

"일흔 살이 되면, 여든 살이 되면 그렇게 오래 사는 느낌은 어떤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요. 살면서 계속 반복되고 패턴화된 어떤 일상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되게 자잘한 차이들을 감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관성적으로 사는 사람과 일상의 사소한 균열이라든가 차이를 하나하나 보면서 생각하는 사람. 이 시에도 나와 있듯이 노인은 살면서 수없이 눈 오는 광경을 보고 겨울을 겪었겠죠. 하지만 어떤 노인은 그냥 눈이 눈이지, 이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인이 되면 흔하게 봐운 것도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노인이 되고 싶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된 사람이란 한자리에 계속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자리에서 세계가 흘러가는 걸 보고 세계의 일부가 사라지거나 멸종하는 걸 목격하는 존재로서의 노인을 생각했어요."

"이 시를 통해서 '말 없는 음악'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의례적인 말들을 많이 쓰고 있잖아요. 근데 저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을 안 써야지, 하면서도 형식적인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 마나 한 말이요. 정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싶을 정도로요. 상대방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영혼 없는 말은 한 하고 싶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정말 차라리 침묵하자 싶고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 정말 이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말, 그런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담고 싶었어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가을' 편에서 주민현 시인의 시 '밤은 신의 놀이'를 읽으면서,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주민현 시인의 인터뷰를 통해 시에 대한 짙은 여운이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의 일상은 되게 매끄럽고 아름답고 평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일상을 한 겹 벗겨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밝은 곳에도 어둠이 있고, 사람에게도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고요. 저에게 시 쓰기란 바로 그 모두가 바라보는 아름답고 밝은 면과 함께 그 한 겹 아래의 어두운 면을 모두 바라보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적 진실이라는 것은 매끄러운 일상을 한 겹 벗겼을 때 나타나는 그 무엇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제목도 그 어둠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밤은 신의 놀이'라고 쓰게 되었어요."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밤은 신의 놀이'는 "밤은 신의 놀이/삶과 죽음은 주사위 놀이"라는 연에서 하나의 행을 제목으로 가지고 온 건데, 인간이 절대적이고, 완벽하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 아주 많은 종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인간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강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짓게 되었어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겨울' 편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홈 스위트 홈'이 실려 있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최진영 소설가와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인터뷰 내용은 '홈 스위트 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최진영 작가의 생각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최진영 작가는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 '죽음'이 있고, 이 소설을 쓰던 때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고 말한다. 최진영 작가는 '만약 나의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그런 질문들이 소설에도 꾸준히 드러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최진영 작가는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의 '죽음의 미래'가는 기획 시리즈 기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엔드 게임: 생이 끝나갈 때>를 찾아보는 동안 자신 안에서 뭉쳐진 생각이 있어 소설로 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저는 죽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해요.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건강검진만 제대로 받아도 아플 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건강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강박에 빠져 있는 사회보다는 아프다고 불행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제가 이십대 때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분노하는 소설을 쓸 수 있었는데,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는 그렇게 분노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우리 모두 망해버릴 거야'라는 분노와 절망에서 조금은 시선을 돌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가능성이 있어'라는 것도 소설에 같이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가능성 중에 제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랑이고, 아직은 그보다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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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좋아합니다 - 거침없이 떠난 자연 여행
이은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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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 삶을 계획대로 하며 사는 것에 익숙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는 몽골의 은하수 사진 한 장을 보고 몽골로 훌쩍 떠났다. 그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거침없고 갑작스러웠다. 그렇게 떠난 첫 여행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의 자연을 유랑한 ‘자연여행가’ 이은지의 이야기를 책 <미지의 세계를 좋아합니다>에 담았다. 이 책은 낯선 길 위에서 저자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자신을 마주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긍정적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법을 배운 성장 여행기이다. 자연 속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간 여행의 장면들과 내면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기록한 글은 우리에게 여행의 의미를 돌아보게끔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몽골 여행에서 바라던 별을 바라보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글이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앞으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까이에 존재하는 나의 행복'에 두기로 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잠든 고요한 사막에, 홀로 깜깜한 하늘을 가득 메우던 달빛이 기세가 꺾여 서서히 물러가는 새벽 5시경. 잠시 동안 지나가는 나그네 구름 뒤로 찰나의 순간 반대편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들. 신발도 신지 못하고 뛰쳐나간 것은 간절했던 나의 마음이 만들어 준 신의 부름이었을까? 별과 바람과 사막, 그리고 나의 숙소 게르. 이 모습은 바로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갈망핟닌 진정한 몽골의 모습이었다. 오로지 눈 속에만 담아올 수 있었던 그 모습!"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사람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했지만, 누구나 품은 근본적 열망은 '사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고 말한다. 저자는 많은 순례자가 고된 수양의 길 위에서 고난과 힘듦을 겪어내면서 일상의 사사로운 행복과 여유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무모한 미국 횡단을 강행한 것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사건 사고를 미흡하더라도 스스로 헤쳐 나가고 해결해가면서, 걱정 많고 우유부단한 자신이 그 속에서 핫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뉴욕에서의 출발부터 남쪽 아래 플로리다주의 패너마시티를 거쳐 서쪽 끝의 샌디에이고까지 장장 7,000km에 달하는 기나긴 거리를 일주하는 동안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전거 여행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면 모르는 분이 없는 웜샤워는 미국 횡단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생각하기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필수 플랫폼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국 여정은 웜샤워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렇게 나의 여정은 하루하루 새롭게 만나는 좋은 인연과의 끈을 단단하게 매듭지어 주었다. 절대 나 혼자만 열심히 자전거를 타서 만든 여행이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받은 감사한 도움의 손길들로, 무너지고 견디기 힘들었던 매 순간에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고, 한층 더 강인해질 수 있었단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의미가 있는 여행, 특별한 도전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깨닫고 느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여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행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여태껏 만나보지 못했던 무수한 경험을 하고, 더 넓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예전과 달리 자신에게 익숙하지 못하거나 다양한 것을 경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우리의 여행은 각각 다르며, 여행은 이미 여행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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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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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에는 왜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에 대해 깊이 탐구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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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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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타임스>에서 편집자 및 칼럼리스트로 20년간 근무하며 정치와 경제, 페미니즘, 육아 및 인생 전반을 주제로 글을 써 온 메리 앤 시그하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성편견의 광범위한 영향'을 조사했다. 시그하트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했고, 부머상 수상자인 버나딘 에바리스토와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 메리 매컬리스, 줄리아 길럳, 헬레 토르닝슈미트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여성뿐 아니라 남성, 트랜스젠더, 흑인 및 유색인, 장애인 및 비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방대한 연구 자료들을 모으로 정리해서 책 <평등하다는 착각>을 발표했다.

태어나서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여성의 삶은 차별의 또 다른 기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례를 나열하며 단순히 공분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그 너머로 부단히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에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평등 실천법은 물론, 조직과 사회의 인식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구조적 방법까지 소개한다. 저자의 의도는 분노가 아니라 평등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이제는 성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걷어내고 편향적 시각을 재조정할 때다.



저자는 은밀한 편향은 과거에 대놓고 차별했던 것보다 더 여성에게 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은밀한 차별은 훨씬 더 자주 일어나고 그 효과가 빠르게 축적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끼어들고, 무시하고, 의심하고, 말허리를 자르고, 과소평가하고, 얕잡아보는 행위는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사소할지 몰라도 누적되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은밀한 평향은 지적하기 어려운 까닭에 대처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권위 격차가 나타나는 한 가지 원인은 남성이 여성보다 자기 견해에 자신감을 내비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바라는 바를 요령 있게 얻어내고 자기 주장과 자기 홍보를 하도록 사회화되는 반면, 여성은 똑같이 행동했을 때 불이익을 당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여성도 이러한 편향을 내면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도 겉으로 내비치는 게 늘 좋은 결과를 불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모와 교사는 가정과 학교에서 남자아이만큼 여자아이의 자신감을 키워 주면서 다음 세대에서 이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노력만큼 재능고 칭찬해 주고 교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해야 한다. 남자아이는 자기 말만 앞세우지 않도록 가르치고 자기 능력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또 '자신감이 부족하다'거나 '자신감이 넘친다.'는 이유로 여성을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 그보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 납성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조지타운대학교의 언어학 교수 데버라 테넌의 말을 인용하며,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말을 훨씬 적게 한다는 것은 확실하며, 이는 여성이 쩍벌남식 대화법과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쩍벌남식 대화법은 남성이 대화의 지분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데다, 자기 주위에 앉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곧 상대보다 자신이 더 흥미롭다는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현상은 권위 격차를 보여 주는 동시에 권위 격차가 나타나는 원인을 설명해준다고 이야기한다. 남성이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여성이 발언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여성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제가 보기에 여성이 회의에서 발언을 덜 하는 건 말이 너무 많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여성은 물리적 공간을 덜 차지하듯 대화의 공간을 덜 차지하려는 거죠. 극장이나 비행기에서 자리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가능하면 여성 옆에 앉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경험상 여성은 옆 사람 공간을 침봄하지 않으려고 팔다리를 모으로 앉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이와 비슷한 이유로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여성들은 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간결하게 발언하며 대화의 공간을 적게 차지하려고 노력해요."

저자는 온화함과 호감은 남성에게는 필수가 아니지만 여성에게는 필수라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호감을 얻어야만 영향력을 행사하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남성은 호감을 얻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일반적으로 호감을 얻은 후에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의 견해에 귀 기울이게 만들려면, 여성은 호감 가는 사람이 되고자 무던히 애써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모든 문화권의 남성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든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든 여성의 목소리에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니엘 스틸, 조조 모예스, 제인 오스틴, 마거릿 애트우드 등 여성 작가들의 책 중에서 가장 잘 팔린 책 열 권을 살펴보니, 독자의 19퍼센트만이 남성이었고 나머지 81퍼센트는 여성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찰스 디킨스, J.R.R 톨킨, 리 차일드, 스티븐 킹 같은 남성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잘 팔린 책 열 권은 독자의 55퍼센트가 남성, 45퍼센트가 여성으로 훨씬 더 균형 잡여 있었다. 다시 말해서 여성은 남성 작가가 쓴 책을 읽었지만, 남성은 여성 작가가 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여성 작가의 책 판매 실적에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경험하는 세계를 편협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그리고 저자는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을까요? 문학은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와 생각을 탐색하며 지성과 상상력을 개발하는 방편이에요. 여성 작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쓸 때면 여성의 경험을 다뤄요. 그리고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남성의 경험도 다루고요. 그러니까 남성들이 여성의 글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은 정말 많은 것을 얘기해 줘요. 굉장히 안타깝고 걱정스런 현상이죠. 저는 이것이 여성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큰 문제예요."

저자는 문학 평론가, 즉 사회로부터 책을 평가하는 권위를 부여 받은 평론가는 대체로 남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남성이 쓴 책에 권위를 부여한다. 저자는 소설가 앤 엔라이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나는 종종 남성들이 다른 남성들이 쓴 책에 너무나 쉽게 찬사를 보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그들이 바로 돌아가며 찬사를 주고받는 방식에 질투를 느낀다. 이런 남성들의 애정은 문화를 관통하여 소용돌이처럼 휘몰라치며 남성들의 자신감과 명성을 높여 준다. 남성의 작품은 여성 평론가에게도 읽히고 논의된다. 이 등식은 오직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남성들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없다."

저자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상은 비단 여성 작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여성은 문화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만약 문화를 이루는 성인의 절반에게 목소리가 없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절반은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로 인해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세울 수도 없게 된다. 저자는 여성의 작품은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 남성이 보고 공감하게 도와주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무의식중에 남성들을 가두고 있는 공기 방울을 터트려 새로운 생각과 통찰 그리고 아이디어가 싹트게 도와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술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육체적 힘을 요구하지 않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만큼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런 인식에 걸맞게 여성의 재능을 알아보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여성을 팔로우하고, 여성이 쓴 책을 읽고, 여성이 만든 영화를 보고, 여성이 창조한 예술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여성의 전문성에 기분 좋게 놀라게 될지 모른다."

저자는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편향을 보이는 행위인 '내면화된 여성 혐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자라온 양육 환경에서 눈에 비친 사회 현상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의 지배적인 태도로 인해 여성 혐오를 내면화한다. 저자는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고정관념에 빠지기 쉽고,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휴리스틱이 형성되면 뇌는 지름길을 애용하여 판단 기준을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성별에 두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 다른 여성에게 힘이 되어 주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는 훨씬 많은 여성이 서로를 자매처럼 도우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여성에게 부당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여성은 스스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의심하고 바로잡으려고 할 공산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려고 TV를 켜면 최근까지도 연륜과 권위를 갖추고 사건을 설명하는 사람은 모두 남성이었다고 말한다. 여성은 주름이 생기는 순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밀려난다. 반면 남성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도 밀려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 머릿속에서 나이는 권위와 연결되기 때문에 TV에서 나이 든 여성을 몰아내는 일은 '남성'과 '권위'를 동일시하는 무의식적 편향을 강화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여성의 견해가 남성의 견해만큼 권위를 가지려면 여른을 이끄는 오피니언 면에 남녀가 동등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편집 회의에 참석한 경험에 따르면 고위직의 다양성은 정말 중요하다. 남성이 이끄는 언론사의 뉴스와 특집 기사는 남성의 관심사와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여성 관련 이슈는 하찮게 취급되어 배제될 공산이 크다. 나는 육아나 워라밸을 다루는 특집 기사를 제안했다가 남성 동료들이 눈알을 부라리는 모습을 봤다.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여성 언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언론에 비친 세상이 남성 쪽으로 편향돼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편향된 시선은 무의식적인 태도와 편견에 영향을 미쳐서 결국 권위 격차를 지속시킨다."

저자는 사회 계층 같은 다른 요인이 더해질 때 권위 격차가 얼마나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내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이 흑인인 데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정중하게 대접받기가 훨씬 어렵다고 말하는 에바리스토의 말을 인용한다.

"성별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아요. 그런데 인종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성별과 인종이 얽히고설키기도 해요. 거기에 내가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하죠. 내가 살아온 기간뿐 아니라 기나긴 영국 역사의 대부분 동안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상류층 백인 남성이었어요. 오늘날 정부는 인력 구조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지만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백인이 이끌어 가고 있죠.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자'라고 하면 상류층 백인 남성을 떠올려요. 그러니까 흑인이거나 아시아인이거나 여성이거나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면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해요. 사람들이 저절로 우리를 권위자로 봐 주지 않으니까요."

저자는 극보수 진영에서는 여성이 세상을 뒤엎으려 한다고 주장하고, 남성이 겪는 모든 문제는 페미니스트 탓이라며 불안한 남성과 남자아이들을 선동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취직에 실패한 이유는 여성이 나대기 때문이거나 그들에게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는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을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은 세상을 뒤집어엎어서 남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평등하다는 착각>는 다양한 학계 및 전문 영역에서 여성의 권위와 영향력, 능력, 그리고 권력에 관한 연구와 구체적인 증거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모든 성별이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운 세대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거대한 변화에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자 메리 앤 시그하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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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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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걸친 어머니와의 애증을 그린 <사나운 애착>으로 자전적 에세이의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사한 비비안 고닉의 두 번째 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노년의 나이가 된 비비안 고닉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이라는 장소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우정과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비안 고닉은 사랑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여 자신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동시에 타인과 함께했던 흔적의 장소를 펼쳐낸다. 


비비안 고닉은 삶이 불능의 총합처럼 느껴지려 할 때면 타임스스퀘어까지 산책을 나섰고, 세상에서 가장 요령 넘치는 하층민들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면 금세 통찰이 회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비안 고닉은 가면 갈수록 사회 변두리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응어리진 쓰린 가슴을 달래주는 건 오직 도시를 가로지르는 산책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비비안 고닉에게 뉴욕의 거리를 거리는 시간은 해방감과 자유로움, 시간의 확장성, 그리고 삶의 깊은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 순간-어쩌면 하루아침에-거리에서의 우연한 마주침을 계기로 깨닫게 됐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내면의 공백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걸. 한 주가 지나고 또 다른 마주침이 있은 후 이상하게도 생기가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 마주침 만이었다. 피자 배달부와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좀 전에 주고받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풀이됐고 더 깊어졌다. 무언가 다음어지지 않은 풍성한 에너지가 가슴속 텅 빈 공간에서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비비안 고닉은 뉴욕의 다양한 장소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들여다보며, 사적인 서사를 들여줄 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를 지닌 우정의 의미를 고찰한다. 비비안 고닉은 관능적인 사랑의 모습을 닮은 친구 에마와의 우정,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사회로부터 거부되는 삶의 동질성을 경험하며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동성애자 레너드와의 우정 등 관계가 지속되면서 어떻게 우정이 변해가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비비안 고닉이 우정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임 속에서 성장해가는 그녀의 진실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핵심은 사랑하는 이가 존재할 때 표현하는 자아가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다. 모든 것은 그 활짝 핀 자아에 얹힌다. 하지만 각자의 내면에 있는 그 불안한 것, 유동적인 것, 변덕스러운 것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만개한 자아를 꾸준히 갉아먹고 있다면 어떡해야 할까? 실은 표현을 하고 싶어하는 자아라는 가정 자체가 환상이라면? 안정적인 친밀감에 대한 열망이-그보다 더하진 않더라도 그에 못지 않게 무진장한-불안정해지려는 열망에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면? 그럼 어떡해야 하는 걸까?"


비비안 고닉은 주변부보다 변방의 경계에서 삶을 살아온 여성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세계를 바라보는 비평가답게 여성 작가들의 내밀한 삶과 작품의 이야기를 꺼내며 여성들의 목소리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에서 작가 조지 기싱의 <짝 없는 여자들>에 관해 비평하는 비비안 고닉의 독보적인 눈이 인상적이다. <짝 없는 여자들>의 캐릭터 로라가 느꼈던 혼란이 그녀를 생생한 인물로 만들어 내듯이, 실패의 순간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과정은 여성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짝 없는 여자'란 거부당한 존재가 당당히 홀로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의미한다. 뉴욕 변방의 브롱크스에서 자라난 비비안 고닉은 노년의 나이가 되어 두 번의 결혼과 이혼, 평온함과 안정을 가져다 주지 못한 사랑의 속박과 두려움과 같은 삶의 다양한 실패와 거부를 받아들이고 인간 존재의 경이로운 순간들을 깨닫는 변화의 과정을 마주한다.   

    

"19세기 말, 현대 여성을 다루는 대단한 책들이 문학계 천재 남성들의 손에 의해 쓰였다. 20여 년간 토머스 하디의 <이름 없는 주드>,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 조지 메러디스의 <교차로에 선 다이애나> 등의 작품이 나왔다. 하나같이 강렬한 감동을 주는 소설들이었지만 내게 직접 말을 걸어 온 건 조지 기싱의 <짝 없는 여자들>이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내가 실제로 아는 여자들 남자들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를 '짝 없는' 여자들 중 한 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프랑스대혁명 이래 페미니스트들은 반백년 주기로 '신'여성이니 '자유로운' 여성이니 '해방된' 여성이니 하는 이름으로 불려왔지만, 기싱만큼은 제대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우리는 '짝 없는' 여자들이었다."


비비안 고닉은 누군가는 떠나고 사라지는 뉴욕의 거리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기 표현력이라는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비안 고닉은 뉴욕의 도시 위에 쌓여진 무수한 목소리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뉴욕의 거리 위를 산책하면서 사라지지 않는 장소 위에서 질곡의 시간들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오늘날의 뉴욕이라는 도시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는 골목 돌길이며 허물어진 교회며 유적이 된 건축물마다 민중이 심겨 있다. 하나같이 몇백 년 동안 한 번도 파헤쳐진 적 없이 그저 켜켜이 포개어 올려진 것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이의 삶이라는 건 구조물이 아니라 이 목소리들-그 어떤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뉴욕이라는 도시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실패와 거절을 딛고 진정 원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비비안 고닉의 솔직하고 빛나는 글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깨끗한 길이 아닌 번잡스럽고 지저분하고 어수선하지만 삶의 민낯이 그대로 보이는 뉴욕의 거리를 걷는 비비안 고닉은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책은 스쳐간 장소는 한 인간의 역사이며, 그 역사들이 모여 도시를 만들고 그렇게 인간은 서로를 기억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는 진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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