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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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생태학자 팀 블랙번이 작은 나방으로 거대한 자연의 퍼즐을 맞추어나간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나방의 탄생과 죽음을 생생히 관찰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깃든 생존의 번식, 자원과 경쟁, 피식과 포식, 군집과 이주의 규칙을 하나의 지도로 연결한다. 혼돈과 질서가 뒤얽힌 이 지도는 법칙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고, 자주 우연에 좌우되며, 인간의 방정식으로는 전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경이롭다. 책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는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시적인 문체로 '다양성'의 감각을 길러주는 생태학 입문서다.

이 책은 '1장 창문을 탈출한 에벌레: 번식의 힘, 2장 먹이로 그리는 지도: 한정된 자원의 결과, 3장 붉은 이빨, 붉은 발톱: 소비자도 소비된다, 4장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짧고 굵게 또는 길게 오래, 5장 모자이크라는 환상: 종의 공동체, 6장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동한다: 이주의 힘, 7장 분화와 멸종 사이의 춤: 다양성이 이끄는 곳, 8장 종을 잃다: 인류는 어떻게 생태계를 대변하게 되었나, 9장 연약한 실: 긴 반전의 역사'라는 9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내 나방 덫에 나타나는 나방의 종류와 수는 내 이웃 주민이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영겁의 시간과 대륙의 작용이 얽혔을 수도 있다. 자연의 일부에 울타리를 쳐놓고 번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니, 그 조각이 생존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저자는 나방에 관한 책을 쓰기보다는 나방과 나방에 대한 사랑을 자연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하여 눈길을 끈다. 저자는 우리가 나방이라는 작은 생명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그들의 상호관계, 더 넓은 생명 그물과의 연결 고리 그리고 생명에 관한 더 큰 진실이 우리 앞에 조금씩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한 환경의 서사를 고려하지 않고는 나방 덫의 내용물을 이해할 수 없다. 작은 상자 하나에 담긴 내용물은 자연의 작용에 달려 있으며, 동시에 그 자연의 작용 방식을 비추는 빛이다."

저자는 모든 유기체는 탄생과 죽음으로 그 시작과 끝을 맺지만 그사이에 무엇을 하는지가 그들 종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성장과 생존, 번식을 위해 이러한 필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삶의 역사를, 즉 빠르게 삶을 살아내고 일찍 죽음을 맞을지, 아니면 노년을 경험하는 삶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주제에 대한 그들의 선택은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시기를 결정하고, 나방 덫을 통해 드러나는 형태의 다양성도 결정하며, 나방의 삶에 왜 정답이 없는지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방은 어떤 점에서는 포유류와 유사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차이를 보이는 이유로 양육 방식의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나방은 양육을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방은 알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과 알을 낳을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것 말고는 양육을 위한 다른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손을 약육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 자손을 돌보기 위해 그 수를 조절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는 번식의 관점에서는 손해가 전혀 없는 선택인 것이다.

저자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생명이 지속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움직일 수 없다면 개체는 새로운 자원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며, 개체군은 성장할 수 없고, 군집은 다양화할 수 없다. 이동은 개인의 일상적 이동부터 대륙이나 해양 사이를 오가는 개체균의 밀물과 썰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동은 모든 수준에서 생태학적 복합성에 작용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편의를 위해 이를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생물체의 이동이 없다면 내 나방 덫은 그저 조명 달린 빈 상자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는 전 세계 자연 개체군에서 광범위한 감소세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죽음을 더하고 출생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종이 인간의 행동이 야기한 죽음 때문에 쇠퇴하고 있고, 인간은 의도적으로 곤충을 죽인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인간은 서식지를 소비함으로써 많은 종의 사망률을 높였다고 이야기한다. 포식자로서 인간은 소실과 멸종에 관한 가장 상징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살충제는 물론 농업을 방해하는 해충을 목표로 살포하지만, 화학 물질이 목표한 자리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공기에 날린 미세한 입자로도 나방과 다른 곤충이 죽을 수 있다. 다양한 물질이 액체 형태로 뿌려지며, 이 물방울은 바람을 타고 주변 서식지로 날아간다. 이렇게 표류한 화학물질은 해충을 죽이기 위해 권장되는 농도보다 훨씬 낮은 농도로 주변에 뿌려지지만, 매우 낮은 농도로도 나방과 다른 공충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저자는 인류는 끝없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연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패배를 겪게 되는 것은 인간일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방 덫은 내게는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환경의 표본을 채집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방의 숨겨진 세계를 그려낸 작은 조각들을 한데 모아 이 세계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완성해나가는 이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지나갈 때마다 그림은 바뀌어간다. 아무리 오랜 삶을 살아낸 사람일지라도 그림의 극히 일부만을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장면들에게 배우가 변화하고 이야기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오래 지켜보지 않아도, 장면 속 배우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저자는 나방의 삶은 규칙이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출생률과 사망률, 경쟁과 포식의 역할, 성장, 생존, 번식 간 자원 분배, 안정화와 평등화, 서식지화의 주체와 소실 위기 개체군 구조자로서의 이주, 시간, 공간, 에너지가 다양화에 미치는 영향 등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종의 풍부도와 공존을 촉진하고, 종의 서식지와 그 수를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것이 생태학의 기존이자, 나방 덫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한 답의 핵심이라는 말한다. 하지만 삶이 규칙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연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번식의 힘, 이주로 인해 선물처럼 주어지는 구조의 기회, 자연선택의 독창성은 분명 대단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는 모든 생물이 지금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 조상이 계속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종이 실패한 곳에서 살아남아 번식했다. 소행성 충돌과 혹독한 빙하기와 온실기후에서 살아남았으며, 수백만 종을 멸종시킨 해양 산성화와 산소 결핍 또한 견뎌냈다.

그들은 극심한 더위와 추위를 이겨냈고, 폭풍과 가뭄을 피했으며, 포식자를 피했고, 전염병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자원을 찾았으며, 개체 수 감소도 회복해냈다. 그들은 기회의 창밖으로 뛰어들었으며, 런던의 따스한 밤 속으로 날아올랐고, 눈부신 형광등 불빛이 그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규칙은 삶의 양상을 정의하지만, 그것에 색을 입힌 것은 바로 운이다."

저자는 자연의 작은 구석이 파괴될 때마다 자연계 전체가 결국 패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작은 손실은 우리 모두가 함께 탄 배에 조금씩 구멍을 뚫는다. 저자는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를 지탱해주지만, 우리를 한꺼번에 침몰시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방 덫을 운용하며 우리가 얻는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자연이 얼마나 연약한 실에 함께 매달려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게 해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나방 덫에는 때로 수많은 나방이 들어 있기도 하고, 비어 있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규칙이 이 수에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으며, 또 우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생명을 연결하는 실을 잘라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안다. 우리는 자연 대부분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그 운명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나방을 빛을 쫓지 않는다>의 저자는 인간은 자연이 없다면 살 수 없으며, 자연은 우리 삶에 가치를 더해준다고 말한다. 나방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아직 조용히 존재한다. 저자는 나방 덫이 있다면 그러한 존재를 빛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들의 존재는 자연의 규칙과 냉혹한 우연의 산물이며, 이러한 압력으로 빚어진 보석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나방 덫은 진정으로 어둠 속에 빛을 밝히고, 그것은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말하는 경고의 빛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현재 자연의 상태는심각하다. 영국의 나방 덫에 잡히는 나방의 수는 수십 년간 꾸준히 감소해왔다. 나방만 감소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야생동물 개체군의 대다수가 가차 없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 우리는 무자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나방 덫을 운용한다면 누구라도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균류는 자신의 먹이가 되는 조류를 보호하고, 지의류는 데번의 나방 덫 주변 나무를 푸르게 장식한다. 나방은 잎과 꿀을 단지 소비하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수분 매개자가 되어 자신들의 의존하는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우리가 나방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건강한 환경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소비와 파괴의 순환, 그리고 현재 인류 생태계에 내재하는 모든 부당한 것이 불가피하지 않다는 점 또한 인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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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
김랑 지음 / 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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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던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지리산 산청에 터를 잡았다. 그곳에서 저자 김랑은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집과 함께 여러 인연을 쌓아간다. 정성껏 밥을 짓고,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며, 민박집 손님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한다. 그들에게 전해진 선의와 온기는 또다른 사람에게 가닿을 테니.

가끔 지칠 때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느긋함을 즐기는 저자답게 여행지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를 만끽하며, 보고 먹고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한두 마디 나누며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도 한다. 그렇게 저자의 날들을 짙게 칠해준 인연들이 모여 책 <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이 되었다.

저자는 갑자기 시작된 시골살이 일은 순조롭게만 흘러가지 않았고 마음고생도 톡톡히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먹고사는 일로 여기서도 골머리를 앓았지만 도시에서 살던 과거와 달리 마음만은 자유로웠다고 이야기한다. 세 식구만큼의 고생과 시련이었기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열심히 생계를 살아냈지만 도시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항상 이방인 같았다. 밥 먹어먹는 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도, 기어코 모든 시간을 생계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달까. 주말마다 집에 있으면 당장 목숨줄을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쏘다녔다. 매주 도시락이나 주먹밥 또는 누룽지를 싸들고 아이와 들로 산으로 나가야 숨이 트였다. 각지를 다니면서 나물도 캐고 조개도 줍고 꽃도 땄다. 발이 닿지 않는 맡바닥으로 삶이 한없이 내려가면서도, 우리 가족 셋이 있을 때만큼은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하게 보냈다."

저자는 민박집 단골손님이 은주와 후회하는 것, 그럼에도 잘한 것, 이제 와 하고픈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덕분에 많은 것이 정리되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늘 운명을 저 건너에 두고 살았던 자신이 남편을 만난 것이 잘한 일이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은 가족과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은, 기회만 된다면 가족과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우리 곁에 없어도 같이 보낸 시간의 힘으로 일어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우리만의 시간을 모아두고 싶다. 그리움이 아픔 없이 담백하게, 내 어린 날처럼 아프지 않게, 그리움이 그리움만으로만 남도록. 정신없이 살다보니 하루하루 의미가 있었든 없었든 모든 게 쏜살같이 사라져서, 나는 여기쯤 와 있고 어느새 아이는 훌쩍 자라 우리 품을 떠날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함께 하고팠던게 엮어둔 굴비처럼 줄줄이 있는데, 이제는 할 수가 없네. 앞으로의 시간을 잘 나누는 수밖에 없겠지."

저자는 민박집에 등장하는 마리는 자신의 별명으로, 인터넷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해온 초창기 아이디 '꽃마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 작은 청보라색 야생화인 꽃마리는 땅으로 자세를 한껏 낮추어야지만 자세히 볼 수 있다. 저자는 아주 낮은 꽃,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마리라고 하기 시작한 것이 별명으로 굳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민박을 시작하며 남편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민박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놀러오시는 분보다 쉬러 오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항상 이야기의 맺음말이었다고 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방에는 TV나 별다른 전자제품이 없다. 자연 속으로 찾아들어오신 분들인 만큼 도시로부터 벗어나서 충분히 쉬다 가시게 하자는 우리만의 목표였다. 티가 덜 나더라도 우리가 여행자일 때 제일 힘들었던 부분을 정성스럽게 챙기고, 규정은 좀 구체적으로 까다롭게 잡았다. 그래서 일단 오시면 잘 쉬다 가실 수 있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기, 멍 때리며 지내기, 책 읽기, 마당에서 음악 듣기, 우리가 이곳에서 만끽해온 이 느긋한 즐거움을 손님들도 느끼기를 바라며 시작한 민박이다."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면 손님 수를 줄여서 그때부터는 우리에게 더 집중하자고, 쉬는 날을 늘여서 여유를 가져보자 했다. 나는 밥 짓는 일이 무엇보다도 좋다. 남편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리의 부엌'은 우리 부부가 선택한, 우리에게 제일 잘 맞는 '일'이다. 그러니 이 일을 지치지 않고 오래하고 싶다. 오시는 분들에게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행복하고 여유로워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저자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홀로 청아했던 엄마가 어느 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자신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게 마중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엄마가 자신의 손을 잡아줄 그때까지 지금을 살겠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 어떤 조건도 이유도 상황도 설명도 필요 없이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유일한 내 편이, 이제는 없다. 예전에는 나의 오만함으로 내가 우리 가족의 모탕인 듯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엄마가 우리의 모탕이었다. 그렇게 내 편은 가고 나는 살아남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걷는다. 나는 엄마 당신 때문이라도 함부로 살지 않을 것이고, 쉽게 살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떠올리면 말보다 눈물이 먼저 흐르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뜨겁게 아프지는 않는다."

저자는 지리산 자신의 집은 처마마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음악을 따로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지붕에 내리는 비의 연주곡을 제대로 감상할 준비만 하면 된다는 저자의 글은 자연과 함께 만족하며 살아가는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자연에서 살면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바람이 쓰다듬으며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해도 드러누워 편안해지는 오후에는 낯익은 햇살과 이야기하고 하늘을 볼 때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구름도 붙잡아 놀고 싶다. 여름밤에는 밖에 앉아 있기를 즐긴다. 뜰에 나와 앉아 있으면 골바람은 어느새 어깨부터 발목까지 조물조물 한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덥고 고단한 오늘을 어루만지면서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다 알고 있다고 나를 위로해준다."

"삶의 만족도가 백 프로인 사람이 흔하겠냐만은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의 이 삶에 만족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제일 아끼고 늘 잊지 않으려고 되뇌는 말이 있다. 오유지족. 내 안에 들어 있는 것에 만족하며, 남과 비교하는 대신 내가 가진 것을 즐기고 감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알아가기.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멍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자신에게 온전히 빠지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조지아 여행이 바로 그러기에 충분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트레킹할 때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고, 회귀점도 생각해두지 않고 걷다가 누구 하나라도 지치면 쉬거나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떠나온 이유가 그저 걷기 위해서였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사유가 필요할 때, 마음이 어지로울 때, 분노가 일어날 때, 가슴이 답답할 때, 간결해지고 싶을 때, 명쾌한 답이 필요할 때 나는 걷는다. 무작정 걷다보면 모든 것이 풀어지고 명료해질 때가 많다."

저자가 고대도시 유적지인 에페수스로 유명한 셀추크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여행은 늘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덜 보고 서툴러도, 사람이 좋으면 다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고 만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아무리 풍경이 좋고 아름다워도 사람과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향이 옅어지지만 그 풍경 안에 사람이 있다면 순간은 영원이 된다는 저자의 글은 우리는 결국 사람으로 인해서 온기를 느끼고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전한다.

"얼마쯤 지나야 그의 빨간 코와 웃음기 있는 굵은 목소리가 잊힐까. 사람에게 정을 주면 떠나기가 싶지 않다. 아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정한지. 그분들과 1층 펍에서 만나 맥주 한 병으로 시간을 흘러보냈던 그 순간 덕분에 오늘 본 하늘과 어제 본 하늘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떠나는 순간에는 모든 장면이 소중하니 이곳의 어떤 것들이 추억으로 남을지 알 수 없다. 훗날 다시금 돌이켜보면 그제야 이 풍경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음을 알게 되겠지."

저자는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거두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사람들은 이들이 주는 위안과 치유의 힘을 알 것이라고 말한다. 고운 빛깔의 감은 저자 자신에게 묵상이며, 시골생활의 순간순간을 넘기면 참 아름다운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곶감이 우리에게 꿈이라면 감말랭이는 묵상이다. 껍질을 깍고 반으로 가르고 씨앗을 들어낸다. 채반에 눕힌 후 이틀에 한 번, 날이 흐르면 하루에 한 번 감들을 뒤집어줘야 한다. 이 광합성 과정은 우리집 뜰에서 진행된다. 남편이 틀어놓은 음악이 가득 흐르는 뜰에서 나는 햇살을 등에 업고 뒷덜미가 뜨겁도록 감을 뒤집는다. 고된 작업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 모든 잡생각을 비우고 그저 감을 뒤집는 일은 제법 즐겁다. 누군가 전화나 문자로 나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있을 정도로 온전히 나에게 빠지는 시간은 흔치 않다. 이렇게 느린 작업들이 좋다."

작은 마당에는 춤추듯 향유하는 꽃들이 피고 지고, 시간과 계절을 달리하며 새들과 벌레들이 울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저자는 이 충만함이 벅차 가끔은 마당에서 기쁘게 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은 지리산 작은 집에서 민박을 운영하면서 자연과 함께 하며, 편리함보다는 고단함이 주는 생의 아름다움과 사람들과의 따뜻한 우정을 느끼는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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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포커스 라이프 - 삶의 질을 높이는 오픈 포커스 실생활 가이드북
레스 페미.수잔 쇼어 페미.마크 보레가드 지음, 김정은 옮김 / 샨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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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알아차려 이완과 집중, 몰입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상대, 바로 이 오픈 포커스 상태가 되면 우리의 뇌파는 알파파로 변하고 중추신경계는 안정되며 자신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삶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오픈 포커스로 가는 핵심은 바로 몸 안팎의 공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책 <오픈 포커스 라이프>에서는 공간을 알아차린다는 게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하며 그럴 때 어떻게 애쓰지 않고도 최상의 나를 경험하게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과 인간 관계,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는지 내담자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이 책은 '1장 주의 기울리기, 2장 사라진 공간을 찾아서, 3장 스트레스 해소, 4장 통증 해소하기, 5장 감정적 고통 해소하기, 6장 일상 생활, 7장 일과 퍼포먼스, 8장 가족과 커뮤니티, 9장 다채롭게 빛나는 사랑의 광휘'라는 9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주의 기울이기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간'은 자기 주변의 물리적 공간, 상상으로 떠올리는 우리 몸속 공간,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저자는 오픈 포커스 연습을 마음 챙김과도, 명상과도, 인지 행동 치료와도 구별되게 만드는 독특한 지점이 바로 지금껏 무시되어 온 이 공간이라는 차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픈 포커스는 우리를 물리적 공간에 더욱 가까이 연결시킴으로써 온전한 경험을 가로막던 그 분리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는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스트레스와 불안, 혼란스러움 같은 부정적 감정에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질의 무정적인 측면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생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우리는 여전히 공간 안에 몸을 가지고 존재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우리가 실제로 차지하고 있는 공간으로 주의를 보내 그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주의력을 통제하는 열쇠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몸이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에 연결되는 것은 여유로움과 차분함을 되찾고 신체의 여러 시스템들을 동조화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이렇게 주의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 뇌가 바라는 주의 기울이는 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해 왔다."

저자는 초점을 핸드폰 LCD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나 정보 콘텐츠로 매우 협소하게 좁히면 우리의 알아차림은 핸드폰 속으로 사라지고, 그렇게 계속해서 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간다고 말한다. 저자는 핸드폰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의 일부임을 상기하면서 사용한다면, 핸드폰으로 받은 문자가 아무리 열받게 하는 내용이더라도 그 메시지의 중요성은 줄어들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음번에 문자 알림음이 울리고 화면이 켜지면 이렇게 해보라. 화면에 뜬 문자 메시지를 읽되 그와 동시에 손과 핸드폰을 둘러싼 주변 공간을 알아차려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그 다음에는 자신이 있는 방을, 더 나아가서 집 밖을, 인도를, 사람들을, 자동차를 알아차려 본다."

저자는 유연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감정도 받아들이고 자신의 기억과 감정, 판타지도 모두 자신의 물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즉 유연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자신이 관찰하고 있거나 직접 참여하는 활동에 자신의 감정을 떨어뜨려놓지 않고 통합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만성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생각과 감정과 기억이 지금껏 내려놓지 못한 경험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또는 두려움의 흔적인 것도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이 우리 몸과 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들이기도 하다는 점은 사람들이 간과한다고 말한다.

"자신만큼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물리적 과정을 자각할 수 있다. 내 생각과 감정은 부피가 있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생각과 감정은 내 몸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느낌의 물리적 속성을 상기할 때 우리는 놀라우리만치 차분해질 수 있다."

저자는 눈을 감고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이 광대무변한 공간의 작디작은 일부임을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공간의 작디작은 한 조각, 그것이 생각의 본모습이고 우리의 본모습이라는 저자는 우리 몸속과 주변의 모든 것이 물리적 공간임을 알아차리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생각들은 이 공간의 일부이다. 생각이 몸이라는 공간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몸보다 훨씬 큰 이 방의 공간과 비교한다면 생각은 얼마나 더 작을까? 방 밖의 주변 공간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더 작을까? 우리 생각이 우리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광대한 물리적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통증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는 몸의 생리적 과정과 과거의 경험 모두가 포함된다고 말한다. 통증을 어떻게 떠올리는지, 통증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그 순간 통증에 대한 경험이 달라지고 통증을 해석하는 뇌의 신경 경로도 바뀐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스트레스가 통증과 고통을 유발하는 이유는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이 우리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가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사진이라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대상화하여 초점을 좁힌 비상 모드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안 좋은 뉴스라도 열려 있는 유연한 모드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평정을 유지하며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만성 통증은 주의 방식을 전환하고 공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 확연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결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이 몸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공간 속에서 통증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저자는 통증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충분히 의도적으로 경험하면, 그리고 우리 몸과 주변 공간에 넓게 주의를 기울이면, 통증은 가라앉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주의를 보내던 평소 습관에서 벗어나 좀 더 의식적으로 주의 방식을 선택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우리가 감정이나 대상, 사람 또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고 주변 환경과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의도를 갖고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는 말과 같다. 저자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고, 자유자재로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이 들며, 상황에 적합한 주의 방식을 선택할 줄 알게 되면, 만족감과 행복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다면 공간을 인식하고, '어떻게 주의를 기울일 것인지 의식적으로 선택'해 보라. 경험이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운수 나쁜 날을 운수 좋은 날로 바꿔주는 마법의 공식은 아니지만, 운수 나쁜 날을 좀 더 감당하기 쉬운 날로, 기분이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날로, 혈압이나 심박수, 장기적인 건강을 악화시키지는 않는 날로 바꿔주기는 할 것이다."

저자는 주의가 확장되어 일상적으로 알아차리는 신체 감각이 더 많아지면 자신의 감정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주변 공간에 대한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자기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 역시 커지는데, 이는 감정이 내가 있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변 공간과 내면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또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감정이든,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시험을 치르는 것은 충분히 잘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질문에 답을 하는 경험일 뿐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두려움이 올라올 때 그 두려움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 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지금 순간'에 존재하려면 '반드시' 공간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공간과 연결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시'공간과 연결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공간'이라는 단어는 모두 '시공간'으로 바꿔도 무방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시간이라는 개념보다는 감각 기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물리적 현실이 우리가 상상하고 또 연결되기가 훨씬 쉬우며, 공간과 연결되면 자연히 지금 순간에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물리적 환경에 주의를 기울여 그 공간과 연결되는 것은 우리의 알아차림 감각을 자기 의식, 즉 내가 생각하는 '나'와 통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공간의 힘'이나 '공간과의 연결'이란 말은 결국 '나'와 내가 기울이는 주의, 그리고 내가 놓여 있는 환경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런 특성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러한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복잡적이고 역동적으로, 또 유연하게 알아차리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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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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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초은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인 <꿀잠 선물 가게>는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에게 단 잠을 선물하는 곳, 꿀잠 선물 가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불면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꿀잠 선물 가게에 도착하면, 잠자는 일을 좋아하는 느긋한 주인 오슬로와 야무진 부엉이 조수 자자가 반겨준다. 푹신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자자가 가져다준 마법의 꿀차를 마시고, 잠을 이룰 수 없는 이유를 털어놓다보면 어느덧 스스륵 눈이 감긴다.

<꿀잠 선물 가게>는 꿀잠 선물 가게를 찾는 방문자들의 각자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주인인 오슬로가 고민에 맞는 제품을 골라주는 과정이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부엉이 자자가 꿀잠 선물 가게 손님들의 잠과 관련된 불면이 이어지는 부분을 여행하면서 취업준비생, 짝사랑을 경험하는 여성, 공허함이 찾아온 중년 여성, 아이가 태어나고 삶의 변화를 마주한 부모 등 인간의 다양하고 보편적인 고민들을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꿀차를 한 잔 마시고 잠에 들면, 저희 조수 부엉이 자자가 손님의 꿈 속으로 들어갑니다. 꿈을 잘 들여다보면 잠을 잘 수 없는 이유나 고민, 후회 같은 다양한 마음들을 알아볼 수 있거든요. 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잠깐 잠이 들도록 마법의 꿀차를 내어드리는 거랍니다."

"비록 지금은 아주 길고 느린 과정 속에 있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인생은 참 길답니다. 아주 천천히 가는 시계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찾으시면 좋겠어요."

"걱정 처방전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걱정 인형이에요. 먼저 걱정 처방전에 손님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서 글을 써보세요. 지금 어떤 마음인지, 무엇 때문에 죄책감이 심하고 어떤 것이 나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거죠.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써주세요. 솔직한 마음이 담긴 글일수록 걱정 인행의 능력이 더욱 잘 발휘된답니다.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눕기 전에 인형에게 말해주세요. 그 모든 걱정과 덜어놓고,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꼭 자기 전이어야 해요."

<꿀잠 선물 가게>는 사람들의 걱정과 고민을 알아내고 꿈잠을 선물해 그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오슬로의 꿀잠 선물 가게의 이야기를 통해서 따뜻한 치유를 전하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오슬로는 사람도 날씨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겉으로 볼 때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마음과 고민을 품고 있다고. 그래서 꿀잠 선물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사연이 다양하고 풍부한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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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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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쉰세 번째 소설선, 안보연 작가의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는 2024년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세상 모든 곳의 뒷면'일 뿐으로 존재감 없이 살았던 수영이 무작위적 폭력성을 가진 언니 수미, 이타적인 행위를 가장한 폭력성을 지닌 노견 클리닉센터 원장의 모습을 통해 선택 불가했던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변화를 갖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수영은 폭력적인 언니 전수미와 살면서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이 제일 참담하게 부러지는 줄은 모르고 악착같이 살았다. 하지만 수영은 전수미에게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던 생각과 달리 가는 곳마다 전수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수영은 전세사기를 당하고, 물류센터에서 인간다운 노동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개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성을 감추고자 하는 노견 클리닉센터 구원장의 직원으로 일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돌이켜보면 전수미는 자신을 해치는 일만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수치와 모욕을 견디는 건 항상 주변인들이었고, 평안을 구걸하는 것도 주변인의 몫이었다. 멋대로 사람을 휘둘러 지배력을 확인하는 것,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 전수미는 엄마 아빠의 불안을 양분 삼아 하루가 다르게 전능해진 셈이었다."

"전수미와 함께 사는 동안은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것도 누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전부 공포스러웠다. 쏟아지기 직전까지 물이 차오른 가느다란 물병처럼 집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견뎌야 했다. 존중받고 싶어 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나를 기를 쓰고 찍어 눌러야 했다.

나를 무시하는 것.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손쉽게 나를 짓이기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묵인하는 것."

"취업 준비를 해도 면접장에서 내게 주어지는 건 모욕적이고 치졸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고 제일 먼저 무시당하고 항상 크게 다쳤다. 급여의 상당 부분을 떼어먹히고 손쉽게 교체당했다. 그래도 나는 매일같이 노력했다. 전수미와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이 책에서 상황이 절박한 사람들을 우선해 직원으로 채용하여 그들의 약점을 잡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의 민낯을 보여주는 노견클리닉센터 구원장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나는 말입니다. 반려동물도 가족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같잖은 소리라고 생각해요. 의사결정권도 선택권도 권리능력도 없는 게 무슨 가족인가요. 개들이 짖거나 물건을 부수면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개를 내다 버립니다. 개가 이웃을 물기라도 하면 세상 합당한 이유를 찾았다는 듯 안락사시켜요. 그저 시간이 흘러 개가 늙었을 뿐인데도 인간들을 억울해합니다. 개한테서 악취가 난다고, 털이 빠지고 피부병이 생겨 흉측해졌다고, 돈이 많이 든다고 화를 내요. 세상에 그런 가족이 어딨습니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은 좋은 보호자입니다. 그분들이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고 자만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요. 주제넘게 굴지 말고."

"여기 개들은 모두 늙고 병들었어요.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또 필요합니까? 개들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죽기 위해 여기로 왔어요. 죽기 위해 마련된 곳에서 제때 죽는 거죠."

폭력적인 언니 전수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살아온 수영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비밀 속에 숨지 않고 가족을 상처 입히더라도 비밀을 토해내는 결심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수영은 언니 전수미가 자신이 저지른 형량을 받길 바라며 내부 고발자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자신은 언니 전수미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는 수영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비밀을 삼킨 채로는 자작나무처럼 위로 뻗어 나갈 수 없다. 비밀은 너무 크고 무거워 나를 땅속으로 가라앉힌 뒤 도무지 도망칠 수 없게 뿌리로 옭아맬 테니까. 그러니 나는 모든 비밀을 토해낼 것이다. 더는 세계의 뒷면에 나를 가둬두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전수미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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