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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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는 현직 일간지 기자인 저자 허남설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못생긴 곳들을 직접 걷고 찍고 주민들을 만나서 깊숙이 들여다본 우리 시대 도시의 자화상을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중계동의 '백사마을' ,경사도가 60~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골목길이 회오리치는 다산동 주택 밀집 지역, 정화조가 없는 집들이 많아 똥냄새가 진동하고, 불이 나도 골목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창신동, 비행기 빼고는 다 만들어낸다는 기술 장인들이 몰려 있는 청계천 인근과 세운상가 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못생긴' 서울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른바 '못생긴' 서울은 살기에 불편하고, 소음을 유발하며, 미관상 좋지 않은 삼박자를 갖춘 '재개발'의 이슈를 품고 있는 공간들이다. 말이 재개발이지 그것에 착수하는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되고, 끝내 재개발 계획이 백지화되거나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도시는 '못생긴'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이라는 경제논리로는 넘어설 수 없는 도시의 오래된 생태 논리를 저자는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다닌다.



저자는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은 오랜 승패의 역사를 한번 뒤집어보고자 했는데, 결국 패색이 완연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원주민 세입자의 재정착, 이웃 공동체를 담아냈던 공간의 재현 따위는 정책에서 우선적인 지위를 얻어내지 못했다. 저자는 앞서는 건 오로지 토지주의 비용을 더 절감하기 위한 분양주택 확대, 그리고 자산 가치를 더 높여줄 대단지 아파트로의 전환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가 양적 논리뿐만 아니라 질적 논리까지 점유한 주거 유형으로, 모든 재개발이 대단지 아파트로 귀결되는 게 논리적으로 마땅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서울 곳곳에서 이 논리적 귀결의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동네를 완전히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세입자는 말할 것도 없고 토지주가 치러야 할 비용까지 막대하게 물린다. 그런 곳에서는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만다. 또한 저자는 재개발하는 곳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사회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 전반에도 패배의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재개발은 '덩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그 결과가 지금 1만 세대까지 불어난 대단지 아파트라고 말한다. 재개발의 진화를 이러한 방향으로 이끈 유전자는 '비용'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재개발의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준다고 이야기한다. 당장 재개발해야 할 것 같은 허름하고 조그만 집들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복작복작 모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부분 소유주가 아니라 세입자이다.

저자는 우리는 도시에서 산동네, 달동네가 흉물스럽다며 파괴한 결과, 도시 구석구석으로 침투한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걱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산동네를 모두 밀어서 아파트로 만든다고 해도 3~4인 가족이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없다. 저자는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 만한 집을 자꾸 도시에서 내몬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람이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그들을 내몬 것은 아닌지,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낡고 불편한 동네는 낡고 불편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저렴하고, 그런 곳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건 어떤 사람들이 간절하게 찾는 집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과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도시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사람들끼지 자원을 주고받으며 이뤘던 공동체 역시 무너진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현대에도 '최소한의 공동체'는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더라도 사람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그리고 잘 만든 제도에도 항상 빈틈은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해보이는 '간섭'이 어느 순간에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관심'이 될 수 있으며, 그 관심이 체계적으로 잘 조직되면 공동체를 지키는 '사회안전망'으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개발의 덩치를 한껏 키우면서도 속도는 재촉해 내재한 문제를 단기간에 폭발시켰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같은 큰 땅덩어리를 단기간에 개조할 수 있다는 환상,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는 실물경제를 구성하는 산업과 종사자들이 있습니다. 8000개의 사업체와 여기에 엮인 협력업체들, 2만 명의 종사자와 이들에게 의존하는 가족들을 고려하면 그 산업은 결코 작은 규모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서로 일감과 자원을 주고받는 산업 생태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10만 평 땅에 집적된 산업체를 다른 어딘가로 고스란히 옮기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산업을 불과 몇 년 만에 일소하는 개발 계획은 애초 성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게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또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축구장 40개만 한 공간인데,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개발 속도전을 지향했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스텝이 꼬여 무참히 실패했습니다."

저자는 누군가 보기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의 풍경, 거기에는 그 나름의 복잡한 맥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공공의 책무는 그 맥락을 최대한 존중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지, 앞장서 무시하고 파괴하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니며, 도지는 백지가 아니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의 저자는 이제는 거리에 서야 하며, 거리에서 조감도가 아닌 투시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보존할 대상은 천막이나 지붕 같은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삶이며, 그 삶을 보존하는 일이 슬레이트 지붕이나 타이어 올린 천막을 지키는 일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공공의 책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어떤 때는 못생긴 도시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집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겠지만, 도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안에는 아름답지 않은, 못생긴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심지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곳이 서울에는 아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 못생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할 때,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조감도의 시선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경꾼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구경꾼은 이미 기울어진 쪽에 서서 기울기를 한층 더 가파르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입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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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갇힌 사람들 - 화면 중독의 시대, 나를 지키는 심리적 면역력 되찾기
니컬러스 카다라스 지음, 정미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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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중독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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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갇힌 사람들 - 화면 중독의 시대, 나를 지키는 심리적 면역력 되찾기
니컬러스 카다라스 지음, 정미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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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울증, 외로움, 불안, 약물 중독, 증오 범죄, 자살 등 나날이 최악을 경신하는 정신 건강 위기를 겪고 있다. '비대면'을 권장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이러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현실이 아닌 화면에 몰입하며 전에 없던 '틱톡 투레트 증후군'이 퍼지고, 가짜 경계선 성격 장애가 관찰된다. 알고리즘으로 인해 편견이 강화되며 여기저기서 극단적 대립과 폭력이 난무하고, 중독과 자살로 인한 '절망사'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것일까?

미국 최고의 중독 치료 전문가 니컬러스 카다라스 박사는 책 <손 안에 갇힌 사람들>에서 기술에 대한 집착과 소셜 미디어가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성인에게 끼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가 디지털 기기에 미치게 되면서 기기는 우리를 점점 더 미치게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회사의 수익을 위해 극단적인 감정, 의존성, 우울감을 유발하여 사용자를 정적인 고립으로 이끌도록 설계되오 있다. 이러한 플랫폼한 또한 사용자의 사고방식과 정보 처리 방식을 흑백의 이분법적 구조로 단순화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인해 양극화된 사고는 정치와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이 책은 이처럼 탐욕과 오만에 사로잡힌 빅테크의 '신테크노크라트'에 의해 조종당하여, 소셜 미디어에 집착하며 현실 속 진짜 관계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화면 중독 시대에 대한 통렬한 진단과 해법을 이야기하여 인상적이다.

이 책은 '1장 매트릭스에 중독된 세상, 2장 몰입할수록, 단절된다, 3장 소셜 미디어 팬데믹, 4장 번져 가는 폭력, 5장 디지털 꾀병, 6장 전지전능한 기술의 시대, 6장 독잠 디스토피아, 8장 신이 되려는 자들이 꾸는 꿈, 9장 중독자의 고백, 10장 회복력 빈곤 시대의 진정한 치료, 11장 철학자 전사'라는 11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 건강을 해치는 기술 중독은 디지털 세뇌와 행동 수정으로도 이어진다.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감금하거나 두려움을 자극해 권력에 순응하도록 강제할 수 있었을 뿐인 이전의 독재 정권들과 달리,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이 한때 자유 사회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인간의 사고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구소련의 글라크에서 나치 강제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전체주의적 탄압이 가장 심했던 때에도 독제자들은 죄수들의 몸은 망가뜨릴 수 있어도 마음까지 지배할 순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마음은 전쟁터이고 거대 기술기업은 이 전쟁처를 완전히 지배하기를 원한다."



저자는 스마트폰 때문에 지구상의 어떤 사람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손끝만 움직여 끝없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스마트폰의 중독적인 특성 때문에 우리는 진정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대화형 소셜 미디어는 의제 중심의 이야기를 증폭시키며 끊임없이 우리를 추적하고 생활 속 데이터를 캐낸다. 그리고 저자는 소셜 미디어의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고, 현실 도피를 위해 비디오 게임에 늪에 빠질 때, 우리는 매우 조작적이고 절망적이며 부자연스러운 곳,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을 급증시켜 우리의 습관을 형성하는 디지털 기기에 갇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기중심성과 양극화된 이분법적 사고를 낳는 소셜 미디어의 임상적 악영향은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숙주의 몸 전체를 병들게 하는 이 침습성 디지털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 전반과 시민들이 모두 병들어 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저자는 양극화된 소셜 미디어 반향실에서 우리 사회는 기술 중독적이고, 충돌적이고, 과민하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순간적 만족만을 추구하게 되엇고, 여기서 분노하고, 너그럽지 못하며, 자기도취에 빠지고, 경계선에 선 불안한 사람들이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사회문화적 풍경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다.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할머니와 화상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앞으로 보게 되듯 예상치 못한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숀 파커는 고급 행동 수정 기술로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 참여를 늘리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소셜 미디어라는 괴물은 단순한 기술 중독을 넘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태롭게 하며 기록적인 수준으로 자살을 늘리는 정신 이상 유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저자는 우리는 공허함을 채워주는 디지털 습관을 필요로 하고 사랑하도록 속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디지털 새장과 사랑에 빠져 우리가 그 안에 갇혀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는 우리를 중독시키고 노예화할 뿐만 아니라, 감시하고 세뇌할 수 있으며 우리의 성장과 번영을 막을 수 있는, 세계적으로 연결된 작은 스크린 감독들에 갇혔다는 개념이 었다고 이야기한다. 기술 집착에 눈이 멀어 우리는 기술에 의존하는 지금의 무력한 상태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201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의 사회심리학자 크리스티나 자기오글루와 토비아스 그라이트마이어가 수행한 흥미로운 연구는 우리 삶에서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후에 우울해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자신들이 보낸 시간이 의미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삶에서 진짜, 진정한, 진실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겉치레와 독설, 진정한 관계의 부재를 겪으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소셜 미디어는 의미 있는 삶과는 정반대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가장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은 명성을 쌓는 일 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인풀러언서 집단 사고 패러다임은 질이 아니라 인기를 주요 가치로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면('좋아요'도 없고 소식이 공유도 안 됐다면), 나무 때문에 큰 소리가 난다 한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소리가 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사람이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에만 중요하거나 가치가 있다. 공허함은 공허함을 영속시킨다. 우리가 이 습관성의, 아무 알맹이 없는 내용을 밖으로 퍼뜨릴수록 우리는 더 많은 공허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저자는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기념하는 데 집착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 모든 것을 기념한다. 저자는 예를 들면 우리의 저녁 식사,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 그리고 통근 열차에서의 강간 같은 것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지금, 어떤 것에 대한 전자적 기록이 없으면 마치 그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결국 우리가 무관심해진 이유는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력적인 이미지에 너무 둔감해져서 이제 매일의 고통과 폭력을 그저 일종의 오락물로 본다. 또한 저자는 우리는 관음적 오락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 가면서 도덕적 나침반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AI의 일은 사용자가 영상을 연이어서 보도록 시청 욕구를 적절히 부추기는 영상을 추천하고 자동 재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구글은 AI 연구팀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신경과학, 신경경제학, 인지 및 행동심리학, 도덕적 추론, 심층적 사고를 코드에 적용했고 이 과정에서 개발자들은 알고리즘에 극단화 루프를 끼어넣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진정한 핵심 가치가 담긴 본질적 정체성 없이, 비본질적인 디지털 세계에서 형성된 빈 자아를 지닌 십 대는 진짜가 아닌 세상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거나, 더 나쁘게는 대개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디지털 세뇌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용자들은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에 끌리기 때문에, 알고리즘은 사용자를 점점 더 극단적인 콘텐츠로 몰고 가 사용자가 계속 참여하게 만든다. 결국은 모든 사용자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분열을 초래하는 정치 콘텐츠는 이에 아주 적합하다."

저자는 차갑고 계산적이며 도덕관념이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끝없이 조회수와 사용자의 관심을 늘리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알고리즘은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알고리즘은 그저 사용자의 시선을 화면에 붙들어 매기 위해 점점 더 강도 높은 콘텐츠를 공급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론 머스크는 "어떤 소수의 사람들이 마치 신과 같은 초지능을 개발하게 된다면 그들은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 ... 사악한 독재자는 어쨌든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AI에겐 죽음이란 없다. AI는 영원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불멸의 독재자를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스티브 워즈니악,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폴 앨런, 잭 도시 등 우리 세대의 기술 거물들은 '신테크노크라시' 지배 계급이 되어 우리 삶 전체에 전에 없던 통제력과 권력을 행사한다고 이야기한다.

"신테크노크라트는 상상도 안 되는 부를 축적하고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새로운 석유'라 불리는 정보를 통제하기도 한다. 그들은 정보뿐만 아니라 기술과 미디어를 통해 다른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들은 우리가 보는 것을 통제하고,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며, 우리가 투표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조작한다. 또한 우리가 그들의 제품이나 플랫폼을 지속해서 소비하도록 우리를 중독에 빠뜨리기도 한다."

저자는 데이터 유출, 감시 자본주의, 디지털 배기가스의 수익화로 마치 <1984>처럼 되어버린 세계에서 AI의 예측 알고리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는 새로운 신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아마도 그중 최악은 기술에 중독되고, 현실에 어려움을 겪고, 행동이 수정되는 동안, 대부분 사람이 더없이 행복한 상태가 되어 자신의 데이터가 채굴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파리의 사자처럼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노예화와 착취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거대 기술기업에 중독은 실제로 필수 요건이다. 우리의 데이터를 채굴하려면, 그들은 우리를 그들의 기기와 플랫폼으로 유인해 매트릭스에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확할 디지털 배기가스는 없을 것이다.

거대 기술기업과 신테크노크라트는 최신의 행동수정 기술을 확보하고 가장 진화된 예측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우리의 작은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게 한다. 기분을 좋게 해줄 다음 도파민을 기다리며 모이 배출 레버를 정신없이 쪼는 스키너 상자의 닭처럼 말이다."

저자는 노예와 같은 조건에서 고되게 일하는 가난한 중국 노동자와 콩코 광부들 덕분에 우리 또한 디지털 수갑을 차고 그들처럼 노예가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또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인도와 필리핀의 콘텐츠 모더레이터들 덕분에 우리는 계속 소셜 미디어에 빠져 살 수 있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갇혀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며, 기술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이 디지털 새장 안에 갇혀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더 갇히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류의 가장 야심 찬 발명과 기술 발전은 그것이 지닌 어두운 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이카로스부터 오펜하이머에 이르기까지 지식이라는 나무의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면 엄청난 대가가 따르게 되어 있다. 저자는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창조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괴물을 창조했듯이, 우리는 원자의 신비를 발명했지만, 동시에 우리 종 전체를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폭탄을 만들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신 콤플렉스가 있는, 영광에 눈이 먼 과학자들이 새로운 바이러스부터 마이크로 블랙홀, 지각 있는 AI에 이르기까기 모든 것을 창조하고 있으며, 과학과 오만은 결코 잘 어우러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술은 혁신적 발전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분별력을 앞지르고 있고, 우리는 대체로 과학자들을 신격화하지만, 그들은 윤리와 도덕적 의사 결정에 거의 숙련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의 의도는 선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흔히 야망에 눈이 멀거나 아니면 그저 새로운 혁신을좇느라 한 가지에만 몰두한다. 오펜하이머의 경우처럼, 일단 지니를 병 밖으로 나오게 하면 과학잔는 더 이상 자신의 창조물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창조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거나(가령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나 인터넷처럼), 경이로운 새 발명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다른 계획과 지침이 있을 수 있는 더 강력한 기관(가령 정부, 기업, CEO, 신테크노크라트)의 재산과 소유물이 된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는 한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중요한 힘, 본래의 바른 정신을 유지하는 힘을 없애버렸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지만, 경험 대신 트위터가 있다. 우리에게는 직접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게임이 있다. 우리에게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쌓는 사회적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소셜 미디어가 있다. 우리에게는 자연에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인스타그램으로 보는 자연 사진 몇 장이 있다. 저자는 진정으로 건강하고, 강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러한 상황을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내라는 삶의 기본적인 기술을 익히지 못하고 즉각적인 만족만을 찾는 우울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알렉사에게 명령하는 시대는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기도 했다. 말 몇 마디로 모든 일을 다 해주는 비서가 있으면 내가 무언가를 직접 해야 하는 것은 정말로 귀찮은 일이 된다. 우리는 게을러졌을 뿐만 아니라, 지나친 디지털 자극으로 지루함도 쉽게 느끼게 되었다. 전에 말한 세상에 무관심한 십 대들 처럼 말이다. '지루해, 이미 다 해봤고, 다 알아.' 물론 그것은 모든 허구의 메타버스 경험일테지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저자는 선구적인 심리학자 카를 융이 전에 말했듯이, 현대성은 새로울 정도로 우리 세계의 신비성을 없애버렸다고 말한다. 융은 우리에게 신비와 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저자는 신비와 신화는 무감각한 것에 감각을 불어넣고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불어넣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진정으로 영혼을 만족시키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진짜 도전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유명한 말처럼 자신만의 천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16세기 르네상스 작가이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가 다재다능한 사람은 철학자, 전사, 그리고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첼리니가 언급한 세 가지는 21세기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하려는 이가 꼭 길러야 할 속성이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수백만 개의 유혹적인 디지털 콘텐츠가 바로 손끝에 닿아 있는 세상에서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 이야기한 이성과 명예를 통해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성은 행동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성찰적, 비판적 분석의 형태이고, 명예는 우리의 행동을 자기중심적 충동의 렌즈로 바라보고 실행하는 것이 아닌 더 큰 사회 계약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실행하게 한다.

"원형적 경험이 없으면, 즉 인간의 정신을 평가 절하하는 이 압도적이고 고도로 기계화된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면, 우리는 생각 없이 캔디 크러시나 하고 소셜 미디어에 빠지게 된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내면의 힘과 지혜를 찾는 것이다. 매혹적으로 깜박이고 트윗을 전하는 기기의 유혹에 정신을 팔거나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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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러는 거야?
노주선 지음 / 길벗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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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바로 인간관계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 인간관계 속에서 한 번도 고통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말 꼴도 보기 싫지만 직장 상사여서, 친구여서, 사랑하는 사람이여서 힘들어도 참고 지내는 것 뿐이다.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고 지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성격' 때문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면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고 인생이 행복해진다.

책 <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러는 거야?>는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성격 유형을 이해하고, 성격진단표를 통해 각각의 성격 유형을 진단하여 이런 성격의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가 만약 이런 성격이라면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실천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책은 제10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으로, 30년 경력의 심리전문가 노주선이 전하는 이해 안 가는 사람들과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쓴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죽도록 싫은 사람이 있다면, 한두 명의 대화와 경험 안에서 답을 찾기보다 수많은 사람을 연구한 심리학 이론과 상담 경험을 공유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사람이라는 복잡한 동물의 더 복잡한 마음과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사람과 어울리고 함께 행복과 즐거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먼저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서 함께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1장 왜 이렇게 그 사람이 힘든 걸까요?, 2장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는 성격심리학, 3장 이성의 마음을 이해하는 성격심리학, 4장 평화로운 친구 사이를 위한 성격심리학, 5장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하여'라는 5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원인은 바로 성격이 다를 때라고 이야기한다. 성격은 한 사람을 특징짓는 인지, 정서, 행동적 특징들을 말한다. 성격은 일을 하거나 인간관계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으로 일관적이고 안정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어느 정도는 타고나며 성장 과정의 경험들이 쌓여서 나타나는 심리적 결과이다. 저자는 이렇게 사람의 성격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상해 보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또 다른 원인은 역할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자신의 성격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그 역할을 수행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 요구되거나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이상하게 보이는 마지막 원인은 나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실제로는 이상한 행동이 아닐 수 있으나 나의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이상하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이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납득이 되지 않고 나에게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를 준다면 이상하다고 판단해 버린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는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이상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돌보는 것도 돌봄 받는 것도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말한다. 다만 성격이나 역할에 따라서 그 비율과 비중이 달라질 뿐이며 한쪽에 대한 본능이 전혀 없지 않다. 저자는 두 가지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며, 모두 만족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내적 신념이나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서 한쪽만을 너무 충족하는 것도 문제이고, 나머지 욕구가 지나치게 결핍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에, 이 기본적인 본능을 모두 건강하게 충족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고 리드하면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으며, 반대로 누군가에게 돌봄 받으며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된 부분이며, 두 가지 모두 어느 정도는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다만 나의 성격을 정확히 알아서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거나 한쪽이 너무 결핍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격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지나치게 자기존중감이 높은 경우는 두 가지라고 말한다. 첫 번째는 충분한 근거나 성과 없이 빈껍데기 같은 자기존중감을 가지는 경우고, 두 번째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본인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자기존중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누군가와 깊이 있는 관계가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객관적 수준이나 성과보다 잘난 척을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더욱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보통 부모들이 무조건적으로 자녀에게 긍정적인 경우 자기애적 성격이 되기 쉽다고 말한다. 부모로서 자기애적 성격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노력하고 열심히 한 것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칭찬과 인정을 해주고, 대신에 잘못이나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히 지적하고 개선하도록 양육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나에게 자기애적 성격 성향이 있다면 스스로를 직면하기, 목표 정하기, 성과 쌓아가기를 통해 긴 여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멀리 보고 장기적으로 이루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건강한 자기존중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과를 만들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목표가 분명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 너무 많은 목표를 세우는 것은 모든 목표를 대충 달성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한 목표가 모호하고 애매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편집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의심 자체가 습관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의심이 습과이 되는 것은 첫째, 별거 아닌 사소한 일에 과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를 하고, 둘째, 과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우치며, 셋째, 이를 서로 엮어서 관련성이 높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만들어버리는 과정을 거친다. 저자는 이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상당히 체계적이고 정교하고 완고한 부정적인 의심 프레임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편집적 성격은 우선 스스로가 긴장과 의심을 풀고 편안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의 에너지를 쓰는 데 '균형적인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사소하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일에만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는 것이 좋으며, 사소한 일에는 작은 에너지만 쓰는 것이 낫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생각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부정적인 측면에만 집중해서 해석하지 말고, 긍적적인 측면을 고려한 균형 잡힌 관점에서 상황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내가 편집적인 사람이라면 내 생각을 통제하기, 사건과 생각의 중요도 따져보기, 다양한 해석 적용하기를 실천해 보라고 말한다.

"편집적 성격의 사람들의 경우 생각이 깊고 진지한 것과 더불어 생각의 방향이 나쁜 쪽으로 치우치는 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상대방과의 사건에 대해서 중립적인 해석이나 긍정적인 해석을 함께 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연습이 충분이 되면, 생각이 부정적으로만 흐르는 것을 예방하면서 동시에 균형 잡힌 생각을 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마치 다중인격 같이 다채롭고 다양한 행동 특성들을 번갈아가며 보이는 성격이 바로 경계선적 성격이라고 말한다. 일정한 한 범주가 아닌 다양한 행동 범주의 경계선에 있어서 양쪽 또는 다양한 행동들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런 다채로운 모습은 이들이 가지는 강력한 매력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내적인 혼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경계선적 성격의 특성으로 극단적인 감정 변화, 낮은 자기존중감과 불안정안 자아상, 이상화의 실망이 반복되기 등을 소개한다.

"긍적적인 정서 상태일 때는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세상 모두에 대해서 한없이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열정적이고 자신감을 보이며, 상대방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우호적입니다. 특히 관계 초반에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많이 보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정서 상태일 때는 본인과 상대방,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뚜렷해집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책과 자기 비난에 빠지며, 열정과 적극성은 사라져 버립니다. 연인관의 관계에서는 이런 패턴이 더욱 뚜렷해지는데 의심과 분노, 폭발적인 감정 표출 등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같은 부정적 감정의 화신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저자는 경계선적 성격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두 가지는 상대의 일관성과 신뢰라고 말한다. 배우자나 연인이 일관되고 지속적인 긍정적 피드백과 조건 없는 인정을 해줘서 장기적으로 건강한 자기존중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동시에 그들도 상대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대신 현실적인 기대와 요구를 함으로써 이후에 나타나는 좌절과 실망, 그로 인한 분노와 적대감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경계선적 성격인 것 같다면 진지하게 장기적인 관점으로 상담과 심리 치료를 받으라고 권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내가 경계선적 성격이라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감정관리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과정이 먼저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감정의 수준을 평가하고, 감정을 확인하고, 함께 나타나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정리해 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내가 경계선적 성격이라면 감정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저자는 분열성 성격의 분열은 '나누어짐' 또는 '분리됨' 정도의 의미라고 말한다. 분열적 성격은 세상에 대한 '선 긋기' 정도의 분열을 보인다. 저자는 이들이 보이는 '분열'과 '선 긋기'의 영영은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인간관계와 감정이다. 인간관계에 관심 자체가 없으니, 관계를 맺어야 할 동기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의 스킬이나 노하우에서도 미숙하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인 희로애락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이를 인식하거나 관리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과 같은 깊은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사이에서는 관계나 정서적 교류가 약해서 서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로빈슨'의 모습은 인간관계가 버겁고, 그 안에서 온갖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막연한 동경과 탈출구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람들 속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도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의 삶이 그만큼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꼭 산속에서 살지 않더라도 도심의 빌딩 속에서도 나만의 공간 몇 평만 있다면 모든 생활의 문제들을 해결함녀서도 인간관계와 불필요한 감정싸움과 신경전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래서 생기는 '디지털 자연인'이 바로 분열형 성격의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내가 분열성 성격의 사람이라면 기본만 하면서 살기, 모든 관계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감정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를 실천해 보라고 말한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대한 부담감이 클 때는 기본만 하고 산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몇 가지만 하면서 살면 됩니다. 그 기본 중에는 정중한 거절도 포함됩니다. 내가 하기 싫거나 거절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한 멘트를 미리 준비해 정중히 거절한다면 충분합니다. 꼭 그렇게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나 교류를 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회피적 성격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거절이란 비난이나 반감 같은 강하고 뚜렷한 거절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와 행동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인간 관계 회피'는 낮은 자기 존중감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객관적인 자신의 수준에 비하여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 저자는 내가 회피적 성격이라면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장단점의 양을 비교하기,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것을 실천해 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수동 공격'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으나 그 안에 내포된 의미나 태도는 공격적인 것을 말하는 표현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수동공격적인 행동방식의 습관은 자신의 좌절이나 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긴다고 말한다. 상사나 친구들이 불편하거나 그들에게 불만이 있는 경우 업무를 지연시키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게 나타남으로써 그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은 끝도 없이 변한다고 말한다. 상화이 변하고 마음속 요구가 변하면 그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한다. 저자는 상황마다의 감정의 변화까지 고려한다며느 사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분명히 비합리적인 신념이라고 이야기한다. 학창시절 둘도 없을 것 같던 친구도 성인이 되면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된다. 이제는 순수한 마음으로만 관계하는 학창시절을 벗어나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은 실망과 분노만 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변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음의 상처들이 쌓여갑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순간순간의 상황과 감정, 그에 따른 마음의 요구들로 인하여 다르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고 그게 사람이 행동하는 기본 원리입니다. 사랑도 변하고, 약속도 바뀌며, 원칙과 신념도 달라집니다."

저자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성격은 크게 변하기 어렵지만, 행동 습관이나 태도 등은 비교적 쉽게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변화가 쉬운 것은 아니며, 상당히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들여야 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본인 스스로의 진지한 반성과 문제의식, 그리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동기와 강한 의지, 그리고 피나는 노력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나의 성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을 이해해야 하며,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최적화된 맞춤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성격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에서 나에게 닥친 고난과 좌절을 변화의 밑거름으로 삼아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는 적절한 수준의 좌절이란 없습니다. 나에게 닥친 좌절과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냄으로써 '나를 무너뜨리는 좌절'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적적한 수준의 좌절'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겪으면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전에 비슷한 문제를 겪었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거나 변할 필요를 못 느꼈다면 결국 나에게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성격이란 이미 습관이 되고 안정된 나의 행동 패턴입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며, 비슷한 상황일지라도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고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결과를 선택하여 반복적으로 실행하고 노력하는 게 필요합니다. 문제의식과 변화의 필요성에 기초하여 이를 개선하려는 '엄청난 노력과 실행'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새로운 행동 패턴이 새로운 습관으로 안정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충분히 연습하고 습관으로 만들어 안정적인 행동으로 자리 잡지 않으면 이는 반쪽의 성공일 뿐입니다."

<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러는 거야?>의 저자 노주선은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열심히 노력해서 문제가 되는 몇 가지만 겨우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격의 이 작은 변화는 노력한 것의 몇 배, 몇 십 배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고, 오랜 고통과 힘들었던 마음을 줄일 수 있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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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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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나온 할리우드의 모습을 그려내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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