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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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히키모코리의 에세이이자, '루마니아어'라는 희소한 언어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언어 오타쿠의 에세이이다. 저자 사이토 뎃초는 흔히 청춘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뒤 방 안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남아도는 것은 시간밖에 없지만, 그 1분 1초를 맨정신으로 보내기 어려웠던 저자는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았고, 이윽고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은 세계 각국의 인디 영화들에까지 시선을 돌린다. 그런 그의 인생에 운명적인 한 편의 루마니아 영화가 등장한다. 운명적인 사랑이 모두 그러하듯이, 한순간에 루마니아어와 사랑에 빠진 저자는 이후 희귀하고 특수한 '루마니아어'를 홀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사회와 융화되지 못하고 오직 모니터만 쳐다보던 히키코모리가 어떻게 희소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루마니아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소설을 쓰며, 세상에서 하나뿐일 유일무이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데 대한 여정을 담고 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라는 제목이 아깝지 않게 가능성과 희망을 있는 그대로 증명하는 이 책은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인 사이토 뎃초는 4년간의 고독한 대학 생활과 취업 실패로 인해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이후, 우연히 루마니아의 영화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의 영화 <경찰, 형용사>를 접하며 독학으로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루마니아어를 독학하면서 루마니아의 문화에 더욱 깊게 빠져들었고, 루마니아어로 소설과 시를 쓰던 중 온라인 문예지에 엽편소설을 발표하며 '일본인 최초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되었다. 루마니아어에서는 독특한 필치의 일본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중 난치병인 크론병에 걸렸고, 투병 기간에 개인 블로그 note에 에세이나 자작 소설을 올렸다.

"말하자면 그거다. 히키코모리. 그러니까 은둔형 외툴이라는 거. 타고나기를 은둔하는 체질. 어린 시절을 보낸 방구석에서 아저씨로 늙을 운명을 짊어진 존재. 호두 껍데기에 갇힌 사회 부적응자. 무, 그런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어떤 초월적인 존재는 나를 거기에서 끝나게 하지 않았다."

저자는 히키코모리 생활에서 가장 최악의 친구인 초조감이 고개를 불쑥 들 때 시작한 일이 바로 영화 비평을 쓰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처음에는 트위터에 대학 시절보다 길어진 감상문을 마구 적었고, 그게 더 길어지자 '하테나 블로그'라는 서비스를 이용해 장문의 영화 감상을 적었다. 저자는 영화 비평가 흉내를 하며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요즘 세상은 세계 영화제에 쉽게 갈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일본에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볼 수 있지만 그런 확대가 너무 급속도이고 끝없이 이루어지니까 이런 걸 다루는 비평가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 영화사에 매달리거나 일본에서 개봉하는 영화에 근시안적으로 주목할 뿐이며, 저자는 그런 것이 시시했다고 이야기한다.

"영화를 볼 때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내 상황과 전혀 다른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고급 차가 멋지게 폭발하거나, 아이들이 컬러풀한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거나, 할리우드 미남미녀가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광경이 그 무렵의 내게는 참을 수 없이 눈부셨고 그 자체만으로도 울컥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가끔 기어가득히 영화관에 간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TV나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봤다. 그러니 화면도 작았다. 그래도 내 마음 상태는 훨씬 나아졌다. 이 현실 자체를 향한 폭발적인 애수, 파괴적인 불안, 차분한 분노를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흉내 내기가 사실 중요하다.

비평이든 창작이든, 스포츠든, 어학이든, 나아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부 모방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영화를 보고 영화 비평을 쓰고 영화 비평을 읽으면서, 나는 일본 영화 비평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일본의 영화 비평가는 영화가 말하는 방식에 대한 미학만 비대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미학이 없어 보였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그들은 일본에서 일본어 자막을 달고 상영하는 작품만 언급한다. 또 돈을 주지 않으면 쓰지 않고, 어떤 매체에서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을 매료한 대상은, 남에게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저 자기가 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에 영화 이야기를 마구마구 써대는 재야의 시네필들이었다고 말한다. 온라인 세상에는 제한이 없으니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영화에 관해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았고, 구작이나 신작이라는 구분도 없고, 국경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일본 영화 비평가 중에는 계속 확장되어가는 세계에 흩어진 개개의 작품을 선으로 연결하려는 지성이 아예 사라진 듯했고, 자연스럽게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닥치는 대로 보고 비평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운명처럼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루마니아 영화 <경찰, 형용사>를 만난다. 저자는 영화 <경찰, 형용사>는 영화 비평가로서는 영화에 푹 빠져서 루마니아 비평가나 시나리로 작가와 관계를 맺은 계기가 되었고, 돌고 돌아 소설가로서 활동하기 위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말한다.

"루마니아어를 배우게 된 계기로서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 영화가 언어, 바로 루마니아어 자체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수없이 루마니아어가 화제로 오른다. 이를테면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왕년의 명곡을 듣더니 루마니아어 수사법을 토론하기 시작하거나, 주인공이 연인과 말다툼하는데 왜 그러니 지켜보면 정관사를 잘못 쓴게 원인이다.

즉 언어학적 통찰, 그것도 보편성보다는 루마니아어의 독특함을 둘러싼 통찰이 풍부하다. 영화도 훌륭하지만, 루마니아어 그 자체에 푹 빠지게 되는 작품이다."

저자는 루마니아어가 심금을 울릴 정도로 깊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요소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루마니아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마이너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이다.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시작한 루마니아어 오타쿠가 된 저자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대학에서도 일본 문학을 전공했지만, 강의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일본 문학 자체에 혐오감까지 들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해서 울적함에서 시작한 자신만의 영화 비평 쓰기가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비평을 쓰기 위해 이야기의 구조와 구성, 연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야기와 연출의 교합이 어떤지를 끝없이, 영원히 분석하며 약 600편이나 되는 글을 올렸다고 말한다.

"이렇게 무사 수행을 하다 보면, 이야기를 어떻게 쓰면 좋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느 시기부터 나는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 문학처럼 외국을 무대로 일본과 전혀 관련 없는 작품을 썼다. 영국, 아르헨티나, 슬로바키아...... 문학상에 응모하기에는 너무 짧은 외국'풍' 문학이었는데, 나도 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성공 체험을 선물해주었다. 이렇게 문학에 자존감을 키운 나는 필연적으로 일본 문학에 회귀했다. 대학 강의에서 그렇게 노이로제가 걸렸는데도 마침내 내 언어로 일본에 관해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저자는 로이로제와 은둔을 거치며 자신을 둘러싼 일본이라는 사회에 깊은 절망과 허무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니 쓰고 싶은 주제도 바로 거기에서부터 농밀하게 피어났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여성 차별이나 외국인 차별, 일상에서 마주치는 놀라운 악의, 그런 것에 대한 분노가 자신에게 언어를 내뱉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저자는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루마니아의 '사소설' 작가 랄루카에게 자신이 쓴 단편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한 작품을 읽어봐주기를 권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면서 떠오르는 루마니아 신진 작가 미하일 빅투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내는 대담함을 선보인다. 특히, 히키코모리로 별 볼일 없이 살았던 자신이 루마니아 문단에 데뷔하게 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다른 나라인 루마니아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좋은 형태로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작품을 보냈으니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러는 동안 <LiterNautica>에 올라온 작품을 읽으려고 하는데, 심장이 폭발할 듯이 긴장한 상태로는 루마니아어가 완전히 수수께끼 상형문자로 보였다. 그걸 해독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놓인 상황이 대체 무엇인가. 흥분과 불안이 교차하는 공격적인 찌릿찌릿한 모호함이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일그러져서 한순간은 가속한 것 같다가 처절하게까지 그려졌다.

히키코모리로 지내는 것이 극에 달했을 때의 시간 감각과 비슷해 보이는데, 그게 완만한 자살 같다면 이건 좀 더 극적인, 세계가 적극적으로 내 어깨를 붙잡고 덜컥덜컥 흔드는 느낌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휘말려 내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회전하는 것 같았다. 머리통에서 뇌가 쑥 날아가서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감각을 느꼈다."

저자는 루마니아 출판업계는 유럽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소설을 써도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한다. 애초에 소설을 쓰는 사람 중에 소설을 써서 돈을 벌려는 인물이 거의 없고, 이런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루마니아에서 소설가라면, 일본으로 말하면 자동으로 '겸업작가'가 된다. 미하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겸 소설가, 랄루카 씨는 인류학자 겸 소설가, 이런 겸업이 기본이다.

다들 소설 밖에서 생활비를 벌고, 여가 시간에 아무런 걱정도 염려도 없이 그저 쓰고 싶은 소설을 쓴다. 그러니 소설을 쓰는 것은 직업이 될 수 없다."

"루마니아에서 소설 집필은 돈과 연결되지 않는다. 즉, 소설이라는 예술은 자본주의 논리 밖에 존재한다. '예술이 돈과 결탁하면 쓰레기가 된다'라는 고풍스러운 생각을 지닌 내게는 루마니아, 참으로 매력적이다."

저자는 일본은 작가가 신인상에 응모하는 형식이고, 상을 받으면 프로로 데뷔하는 권위주의적인 형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루마니아는 언제나 편집자와 일대일이어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이 편집자의 마음에 들면 실리고, 마음에 안 들면 탈락하는 방식을 반복하면서 소설가로서 일희일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루마니아 이주를 꿈꾸고 있었는데, 크론병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완전히 무너진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에 산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고, 일본인인 자신이 왜 루마니아어를 알고 있는가, 지금 자신은 왜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을때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에 대한 집필 의뢰가 들어왔다고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좋은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있는 게 최대의 강점"이라는 저자의 좌우명은 우리 자신이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작업은 나 자신의 인생, 루마니어와 함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의미를 끄렁내는 과정이 되었다. 내 인생에도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런 내 옆에는 늘 루마니아어가 있었다. 지금까지 과거는 전부 쓰레기였고 미래는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저 고통만 가득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과거도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는 크론병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다. '동유럽의 상상력' 시리즈에서 내 작품집을 내고 싶다... 제법 괜찮은 기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은 나 자신을 위해서 썼지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쓰기도 했다. 즉 문학을 좋아해서 문학으로 세계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약하거나 재력이나 시간이 없어서 일본에서 우물쭈물하며 방에 틀어박힌 녀석을 위한 거다.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외국어로 소설이나 시를 쓰고 문학을 연구하는 인간과 비교하면 나 같은 건 쓰레기라고 좌절한 당신 말이다. 게다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지금은 모든 게 다 최악이니까, 일본 여기저기에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가득하다.

그래도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였으니까. 나 같은 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 외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안 할 것이다. 갈 기회가 있다면 가는 게 좋다. 그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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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디톡스 - 지친 마음에 시동을 거는 마인드 부스팅 수업
윤대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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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심각한 무기력 모드에 빠져 있다. 국가와 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무기력을 경험하는 '집단 무기력'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팬데믹 후유증과 사회 전반의 대전환에 따른 정신적 에너지 고갈, 일상에 침투한 미세 스트레스와 번아웃, 기후재난 등의 환경적 요인이 무기력 현상을 부추기는 주원인이다.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무기력의 심각성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이에 현대인을 위한 무기력 매뉴얼을 전하고자 정신과 의사로서 30여 년간의 임상 경험과 연구를 집약하여 <무지력 디톡스>를 출간했다. 무기력을 해결하는 단발성 처방에서 벗어나 마음의 시스템을 바로잡는 방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마음이 아닌 몸을 움직여 의욕을 만드는 근본적인 의욕 활성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를 책에서 '마인드 부스팅' 4단계 전략으로 체계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지친 마음을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실천법과 함께 미니 브레이크, 역설적 마인드셋, 행동적 항우울제 등 최근 정신의학과 뇌과학을 기반으로 한 멘탈 관리법을 전하며 반복되는 무기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저자는 정신건강 관리의 제1원칙은 바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무기력한 상황에서 억지로 마음을 긍정적으로 돌리려고 정면 대결하면, 이미 에너지는 떨어질 때로 떨어져 있고 부정적인 감정은 증가된 상황이라 완전히 녹다운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묵묵히 견디는 태도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무기력한 마음을 디톡스로 활성화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무기력한 상황에서는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견뎌낸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 상황처럼 보이지만, 그 상황을 그저 묵묵히 버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무기력한 마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마인드 부스팅' 4단계 전략을 소개하여 실천해보고 싶다. 무기력 마인드 부스팅 1단계는 2차 스트레스의 길목을 막기, 2단계인 자기 연민, 내 감정에 공감하기, 3단계인 무기력의 늪, 반추 사고의 고리를 끊기, 4단계인 마음에 시동을 걸기이다. 저자는 반추사고를 물리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동적 힐링이 아닌 능동적 힐링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하기 싫은 활동을 억지로 하고 나면 오히려 힐링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바로 능동적 힐링이다. 때로는 마음에 저항해서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까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억지로 뭔가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행동을 하면 반추 사고의 회로를 끊을 수 있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면서 조금씩 동기가 차오른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 스스로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게 의욕과 자신감을 되찾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행동 활성화의 원리다."

"보통 먼저 동기를 부여해야 행동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선 동기부여 후 행동'이 자연스럽고 우리가 노력하는 일반적인 흐름이지만, 요즘 같은 무기력의 시대에는 동기부여가 되기를 기다리다 의미 없이 시간만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묵묵히 버텨낼 때 효과적인 전략을 '선 행동 후 동기부여', 즉 액션을 먼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몸을 먼저 움직여 의욕을 만드는 것, 이것은 실제로 우울증 치료에 활용되는 행동 활성화법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활성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은 성취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동과 기분 간의 긍정적 피드백 루프를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삶에 활력을 주는 작은 행동을 '행동적 항우울제'라고 한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항우울제라고 하면 복용하는 약물을 생각하는데 행동적 항우울제는 항우울 효과를 일으키는 행동을 직접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서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세 번 깊게 호흡하며 호흡의 흐름 느끼기, 조용한 곳에서 음미하며 식사하기, 일주일에 한 번 슬픈 영화 감상하기, 일주일에 시 세 편 읽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등 저자는 환자들에게 주로 추천하는 항우울 행동 리스트를 참고하며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를 권하는 글을 읽으며 일상에서 행동 활성화를 위해서 실천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과거를 관리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고 멘탈 관리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멘탈 관리를 잘한다는 것에는 여러 측면이 있지만 메모리 관리, 더 자세히는 매일 쌓인 오늘의 메모리를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하루에 대한 기억을 마무리하는 감성인 '엔딩 감성'이 긍정적으로 쌓이면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기억 일지 작성하기, 나 자신과 대화하기, 긍정적인 기억 떠올리기라는 저자가 추천한 방법을 꼭 실천해보아야겠다.

"매일 저녁, 오늘 경험한 긍정적 순간을 기록한다. 하루 동안 있었던 사건을 정리하고, 그중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해보자.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경험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확대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런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인 기억을 저장하는 도구가 되며, 힘든 날에 다시 꺼내 보며 기분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런 기록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 긍정적인 상태로 잠자리에 들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역설적 마인드셋은 역설적 사고와 접근 방식을 채택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황을 개선하려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특히 어려운 상황이나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전통적 논리와 반대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통찰과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유용하다. 의도적으로 문제와 반대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기존 행동 패턴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마음 관리 측면으로 설명하자면, 역설적 마인드셋은 겉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생각이나 감정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여, 두 가지 상반된 가능성을 동시에 인식한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전통적 방법 대신 반대되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무기력을 느낄 때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 대신, 잠시 물러서서 휴식을 취하거나 그 상황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안을 해소하려고 하면 더 불안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불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느끼도록 허용하면 불안이 감소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에서도 역설적 마인드셋을 갖고 있는 이들이 실제로 긴장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문제에 대한 새롭고 더 나은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반면에 역설적 마인드셋이 부족한 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혀졌다."

저자는 사람들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한다. 열린 질문이란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붇는 대화 기술이다. 정해진 단답형 대답이 아니라 자유롭고 능동적인 대답을 끌어내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각을 자주 하는 이에에 "오늘도 지각이네요. 또 늦잠 잤나요?"라고 묻는다면 닫힌 질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든가요? 자꾸 지각하는 이유가 뭘까요?"가 열린 질문이다.

열린 질문을 하면 상대방의 저항을 낮추면서 마음을 열 수 있다."

저자는 현재 관계에 만족하지 못해 외로움과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면 이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내면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면 소통이란 내 감정을 살피고 타인과의 감정 및 관계를 살피는 사회 인지, 그리고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는 기억 강화 기능, 마지막으로 내 과거, 현재, 미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계 소통에서 얻은 새로운 감정과 정보를 통합해 내 인생의 서사, 스토리텔링을 그리는 작업이다.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이를 수용해보면 외로움의 감정을 관리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내면 소통은 자신의 내적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으로 감정, 생각, 경험 등을 성찰해 자기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가치관 등을 명확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도 내면 소통의 일환이다. 이는 자신과 깊이 연결되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억지로 마음을 컨트롤하다가는 오히려 좌절감을 느끼고 무기력이 심화될 수 있다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의 책 <무기력 디톡스>를 통해 직접 마음을 조정하기보다 행동을 통해 우회적으로 활성화하는 방법을 소개하여 무기력의 시대를 건너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실천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무기력과 번아웃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지친 마음에 시동을 걸어 의욕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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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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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며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별해온 김유정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의미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왔다. 2024년 올해 김유정문학상은 배수아의 '바우키스의 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신화 속 '바우키스'라는 인물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을 통해 소설가 배수아는 누구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무는 문학의 순간, 그 아득한 곳을 향한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함께 실린 수상 후보작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 박지영 <장례 세일>,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 전춘화 <여기는 서울> 다섯 편의 작품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과 문학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바우키스의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우키스'의 일화를 변형한 작품이다. 나그네를 정성스레 돌봐준 바우키스와 그의 남편 '필레몬'은 소설 속에서 '나'와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 비유된다. 모형 비행기 수집가에게 선물받은 구형 타이프라이터를 거쳐 '나'의 말들은 편지 속 글자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편지를 보내려고 할 때마다 그 마음이 나무가 되어 '나'의 입을 뒤덮는다. 영원히 말해지지 않을 것 같던 '나'의 말은 언어가 아닌 음악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화된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작별을 앞두고, '내'가 쓴 편지의 어휘들은 '음악가'의 곡으로 승화되며 그들은 영원히 두 그루의 나무로 남게 된다. 배우가 작가는 끝없이 이어지고 움직이는 신비로운 장면들을 통해 작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잎이 나무껍질로 완전히 변하기 직전, 바우키스는 작별인사를 건넨다. 마침내 나뭇가지가 얼굴을 뒤덮기 시작한 최후의 순간, 일생 동안 내 입에서 살던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뉴욕 맨해튼에 허리케인이 휘몰라치던 어느 날 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집에 물이 차오르는 걸 알게 된 '나'는 고등학교 동창 '피터'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되며 과거 그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와 자신 사이 끝끝내 훔칠 수 없는 '계급'을 실감한 '나'에게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위태로움이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허리케인 나이트>에서 누군가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는 대체되고 소비될 수 있다는 계급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을 '피터'의 롤렉스 시계로 은유하여 눈길을 끈다. 그리고 <허리케인 나이트>는 인간이 가진 부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각자의 몫만큼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상상을 했다. 아이 우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의 정체에 관해. 완벽해 보이는 피터와 당신 뒤에 존재할 비밀과 그림자에 관해. 우리가 모두 어쩔 수 없이, 그러나 공평하게 빠져 있는 시궁창에 관해."

박지영의 <장례 세일>은 아들 '현수'가 평생을 '실패한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을 세일즈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로, '장례 세일'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생동감 있는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장례 세일>의 주인공 현수가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애도를 확장하고 가치 비용을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죽음의 화제성과 특수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글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현수는 거짓된 감사라 해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감사를 모아 아버지 독고 씨의 삶과 죽음을 축복하고 애도하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독고 씨의 죽음 비용을 결정하는 데 고려할 것은 공정함이 아니었다. 불공정함, 그 불공정한 축을 어떻게 최대한 내 쪽으로 기울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불공정함을 위해 죽음의 흥행성을 결정할 오락적인 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과할 것인가가 현수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독고 씨의 죽음에 어떻게든 높은 가격표를 붙여놓고 그게 정가인 양 속이며 기간 한정 파격 세일을 붙여 소비자를, 더 많은 조문객을 끌어모으고 더 두툼한 조의금으로 장례 비용을 충당하고 이왕이면 영업이익도 남기는 것, 독고 씨의 죽음을 싼값에 자신의 슬픔과 애도로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현수가 하고자 하는 장례 세일의 목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독고 씨의 죽음을 비싼 값에 세일즈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진짜 팔아야 하는 건 독고 씨의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삶이었다. 독고 씨는 그렇게 예비된 애도객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애도 가격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독고 씨의 그래도 싼 죽음이나 그에 대한 슬픔이나 연민, 죄책감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인품을 지닌 과거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과 뿌듯함이었다. 그리하여 독고 씨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그 감사한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만나게 되기를, 보여줄 기회를 희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그래도 싼' 인생은, 본인이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무 관계 없는, 이유 없는 타인의 완전한 선의에 의해서 다른 의미의 '그래도 싼'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현수는 먹먹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싼 가격을 매기더라도 그래도 싸다, 그래도 싸, 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한 사람 몫의 공정. 그러니 현수뿐 아니라 그 누구도 타인과 자신의 인생에 함부로 싸구려 인생이라는 가격표를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독고 씨의 죽음은 오늘 밤, 낯설고 온전한 선의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그래도 싼' 죽음이 된다."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은 운동권 세대였던 아버지 '태수'의 딸 '수민'이 상주를 맡게 되며 그의 장례식 풍경을 그려낸다. 작품 속 부녀의 모습과 그 세대 차이를 통해 과거와 오늘날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달려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던 아버지 '태수'의 장례식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와달라는 아버지의 바램이 이루어진 후 장례식의 풍경이 뒤바뀌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있잖아, 수민아.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우리는 그렇게 태수 씨의 죽음에 관해 우스갯소리를 하고 이것저것 계획하며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것은 죽음을 도모하며 삶을 버티는 행위였다. 태수 씨는 자신이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 두 가지는 태수 씨에게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태수 씨는 나와 수진에게 자신의 장례식에 관한 계획 하나를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말이야, 아빠도 좀 이상한 건 아는데, 유자가 내 장례식에 와줬으면 좋겠다."

이서수의 <몸과 무경계 지대>에서는 무대에 오른 주인공 '윤세진'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첫사랑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 세진이 만나고 있는 '단밤'과의 일화 사이사이 삽화처럼 등장하며, 몸이 하나의 경계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질문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세진이 자신이 과거에 만났던 인물들을 떠올리며 타인이 경계를 짓고 타자화하며 대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눈길을 끈다.

"어떤 지역에서 나고 자랐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본래의 기질을 따라 몸이 확장되는 데 일조하는 장소적 기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 몸은 그렇습니다. 경계가 없는 다양성 속에선 확장되고, 상상력이 부재하는 획일성 속에선 축소됩니다."

"사람들은 내 몸을 보고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본다는 게 실은 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나는 혈연 기반의 원가족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잘 알아. 웃으면서 내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얼굴들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운지. 자기들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너무 싫었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빨리 도망쳐 나와 내 가족을 이루고 싶었고. 당연히 혈연일 필요는 없고. 지금은 사랑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네 감정이 뭔지 묻지 않고서 나랑 같이 살겠냐고 물어도 될까?"

"새로 정착하게 될 동네는 어떤 곳일까요. 그곳에서 저와 단밤의 기질은 얼마나 발현되고 확장되고 소거되고 움츠러들까요."

전춘화의 <여기는 서울>은 20대 조선족 여성 청년이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안정적인 짜임새로 중국 교포의 시선에 담긴 현재 한국의 청년 세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혼란 속에서 과거와 연결되기도 하고 주위에 감응하여 확장되고 하며, 가끔은 볼품없이 축소되고 부정당하는 자아를 견디며 서울에서 살아가는 중이라고 아버지에게 전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는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고 따뜻하게 누울 곳이 있으며 선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고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저를 둘러싼 환경을 탐색할 의욕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서울이 만화경처럼 복잡한 세상이라면 저는 아주 천천히 셔터를 계속 눌러 기하학적인 그 무늬들을 남김없이 오래도록 응시할 것입니다. 서울이 회전무대처럼 느껴져서 멀미를 느끼는 날도 있지만 줄을 꼭 잡고 그 속도를 견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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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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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작가는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장해 소설집 '개그맨', '국경시장'. 에디 혹은 애슐리', 중편소설 '이슬라' 등을 통해 환상과 실재가 뒤섞인 총천연색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왔다. 그는 한계 없는 상상을 읽는 이를 순식간에 자신이 만든 세계 속으로 빨아들이는 탁월한 이야기로, 삶의 비의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문학적 서사로 구현해왔다.

<화성의 아이>는 김성중 작가가 등단 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무려 삼백 년 후 미래의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백 년 전 지구에서 미래의 화성으로 쏘아보낸 실험체가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던 각양각색의 존재들과 조우한다. 시시때때로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는 수다쟁이 유령 개, 마음을 가진 만능 화성 탐사로봇, 눈꺼풀 제거형을 받고 지구를 탈출한 소녀, 아득한 시간과 아흔아홉 우주를 가로질러 화성으로 날라온 정체불명의 존재까지.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은 유사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며 연결의 순간을 빚어낸다.

<화성의 아이>는 화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SF 소설은 아니다. 소설 속 '삼백 년 후 화성'은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 황량한 행성이 아니라 수풀이 우거지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호수가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작가 김성중이 탄생시킨 또하나의 매혹적인 세계다. 어쩌면 화성판 <오즈의 마법사>라고도 말할 수 있을 이 이야기 속 매력적인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밤하늘에 두 개의 위성이 떠 있는 미래의 화성에 발 딛고 선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책은 다양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먼저 300년 전 지구에서 미래의 화성으로 쏘아올린 실험체 '루'의 시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뿐만 아니라 루는 자신이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화성에서의 폐허가 더이상 냉혹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라이카와 데이모스가 생활이라는 리듬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멸이라는 끝을 향해가는 운명 앞에서 루가 태어날 아이를 향해 말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동료들이 꿈에서 죽음으로 항로를 바꾸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충실하게 바이털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박동이 사라진 심장과 얼어버린 신체 속에 동면해 있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화성은 붉은 벌레, 붉은 옷, 붉은 구름의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 춤을 추었다. 나는 얼음으로 된 그릇이었으나 꿈만은 얼지 않았다. 몇 세기가 단지 기나긴 낮잠 같았다."

"그러나 나의 감정은 진짜이고, 진실이다. 알 수 없는 세계에 알 수 없는 존재로 내던져진 내가 스스로에게 분명히 해두는 소리였다. 이 감정은 진실이다. 나만의, 나만의 고유한 진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루의 딸인 '마야'는 어머니를 죽음이라는 상실과 함께 태어난 마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은 마야가 데이모스와 라이카를 통해서 따뜻한 연대을 경험하고 연인 키나를 만나서 사랑을 꽃피우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먼저 어머니의 죽음이 있었고, 그다음에 나의 출생이 있었다. 그전에는 우주인의 공격이 있었고, 그전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전에는 쿠키처럼 구워진 별들이 노란 태양을 따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모든 이야기의 끝은 쿠키처럼 바싹 구워지다 부서져버리는 별의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내가 없다."

"‘화성은 얼어붙은 사막, 금성은 타오르는 지옥.’

오래전에 지구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은 그렇게 춥지만은 않다. 아늑한 우주선과 간헐천이 솟아오르는 우물, 무엇이든 가르쳐주는 데이모스와 모닥불처럼 따뜻한 라이카의 등이 있으니까."

"꽃잎에 눈이 가려진 키나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소를 만들었다. 얼굴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 나는 홀린 듯이 몸을 굽혀 입을 맞췄다. 화성을 떠나는 순간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도 이 모습이다. 꽃잎을 덮은 채 웃고 있는 키나. 나의 친구, 나의 연인. 영원히 붉은 별 키나."

"오래전 우리가 쌍둥이 로봇으로 화성에 함께 왔을 때, 우리는 모든 모험과 실험을 함께했다. 화성의 크레이터를 샅샅이 찾아내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가 떠나온 ‘창백한 푸른 점’을 향해 데이터를 전송했다. 우리는 ‘애정’이라는 말을 알았고 ‘그리움’이라는 말도 알았다. 그것은 끝없이 한 방향으로 데이터를 송신하는 행위였다."

라이카는 과거 모스크바를 떠돌던 유기견이었지만, 출산한 새끼를 잃었고, 인간을 믿고 사랑한 결과 실험동물이 되어 스푸트니크 2호에 올라 수다쟁이 유령 개가 되었다. 이 책에서 인간에게 상처과 고통, 소외를 경험한 라이카는 비스듬히 처박힌 우주선에서 냉동 상태였다가 깨어난 루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루의 딸 마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또한 유령 개 라이카는 진실한 사랑이 슬픔이 아니라 연약한 존재들을 연결하고 강인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붉은 별에 도착했을 때 평화를 느겼다. 이 별에는 인간은 고사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으니까. 황폐한 오렌지 빛 사막이 성모상 뒤의 덤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사랑할 인간이 없으므로 안전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가 왔다. 삼백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죽음밖에 남지 않은 짧은 생을 시작하기 위해 나에게 왔다. 루는 연약했다. 보호가 필요했고 아는 것이 적었으며 가진 것은 더 적었다. 고장난 우주선과 짧은 수명. 그게 다였다. 하지만 웃음만은 태양처럼 밝았다. 그 환한 웃음은 인공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온기가 내부를 다뜻하게 데우고 밖으로 흘러넘치는 듯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마야의 지성과 환상은 모두 루에게서 기인한다는 것, 마야가 어떤 식으로든 루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마야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마야가 더 많은 꿈의 물감을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짠해진 나는 마야의 앙상한 어깨를 핥아주었다."

마음을 가진 만능 화성 탐사로봇 데이모스는 통증과 다정한 마음을 지닌 라이카처럼 자신의 존재에 의심을 품지 안않는다. 이 책에서 비인간인 유령개 라이카와 화성 탐사로봇 데이비스가 루에게서 태어난 딸 마야를 함께 양육하는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꿈을 꾸고 신기루를 본다. 나는 꿈꾸지 못하고 신기루 또한 보지 못한다. 나는 이 결함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결함은 로봇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개성이다. 금간 부분이 있어 특별해지는 도자기처럼 특정한 것에 대한 나의 무능이나 유치하게도 인간 흉내를 내는 것, 이런 것들이 데이모스라는 개별 주체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도중인 이곳. 마야보다 앞서 태어난 것은 '우물'이라 불렀던 작은 샘뿐이다. 우물은 점점 깊고 넓어져 호수가 되었고 가장자리에는 작은 파도마저 찰싹거리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생명들은 순수하고 진실했다. 순수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무언가'의 의도이다. '무언가'를 신이라고 부르든 우주의 질서라고 부르든 파악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의도로 우리에게 자꾸 '선물'을 주는 거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바퀴 근처에서 새로운 버섯을 발견했다. 나는 버섯의 삿갓 부분을 조금 떼어내 조직을 관찰하기로 했다. 또다시 선물을 받은 셈이다."

"라이카는 펼쳐진 대기를 향해 윙크를 했다. 우유의 강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가졌다는 게 중요하지 기도가 이뤄지고 이뤄지지 않고는 상관없다고 라이카는 말했다."

키나는 마야에게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야는 키나에게 화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키나는 마야의 아가미가 넓어질수록, 자신의 예지력과 생물과의 교감 능력 또한 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 대문에 '일어났으면 좋았을' 말들을 더 많이 꺼내놓는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아빠가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배급받은 케이크의 촛불을 단번에 껐더가면 하는 것들을. 한번 속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멈출수가 없다. 나조차 들여다보기 무서웠던 과거가 중단되지 않고 펼쳐진다."

무해한 천국보다 지옥의 복잡함을 사랑하는 한 남자는 자신이 존엄한 생명에 대해서 저질렀던 비극적인 악행을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마야를 알리체로부터 지켜낼 것이라는 결심을 한다.

"개와 로봇을 실험체에 붙여 한 세트로 구성한 트리플 데커는 내가 유일하게 로열 헤더로 참여한 프로젝트다. 내 키메라는 65개 종을 섞은 암컷인데, 한 개체를 성공시킬 때마다 사용되고 죽어나간 실험동물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65종이라니. 우리는 신을 만들려던 것일까? 신들은 인공 포궁 속에서 자주 사산됐고, 쓸데없이 연약했고, 태어나자마자 미치거나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서로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녀들과 숲의 번영은 연결되어 있다. 이 숲은 마야의 성장과 더불어 자라났고, 무성해졌고, 권역을 넓혀나갔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연이 마치 마야의 '맞춰서' 자라도록 누군가 설계한 것일까? 이곳도 유리 돔을 씌운 개미들의 서식처럼 누군가의 실험실인가?"

"그 순간 나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희생이 없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고 했다. 이 이상한 별에서, 사후도 우주도 꿈속도 환각도 아닌 구식 화성에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악몽 속으로 뛰어들었고, 몇 번이나 파도에 휩쓸려 난파되고 혀가 잘리고 새에 쪼이면서 이 자리에 서 있다. 모두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화려하기만 한 화면보호기 같은 알리체는 상대방에게서 데이터를 빌려 형상으로 바꿀 뿐 독자적인 감각이 없는 상태다. 이 책에서 알리체가 별들을 파괴하고, 중력을 고무줄처럼 늘려가며 밤도 낮고 없는 시간을 건너뛰어 불사에 가까운 존재가 됐지만 타인이라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얻은 것은 우주적 허무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모습을 담아내어 인상적이다.

"내가 누리지 못한 뭔가가 마야에게는 있다. 저 의기양양한 푸른 숲을 보라. 윤슬이 반짝거리는 호수는 어떻고! 지구의 한 자락을 옮겨놓은 것 같은 숲과 호수는 마야가 단기간에 화성을 정복했음을, 그야말로 제대로 테라포밍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착생식물 하나, 금속 곤충 하나 변변히 키워내지 못한 내 고향 별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나의 성장은 주변 은하를 파괴하는 데만 쓰였다. 거미가 떠나버린 거미줄, 무의미하게 패턴만 이루고 있는 거미줄.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그것뿐이다. 왜? 왜?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마야가 어떻게 해줄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책은 벼룩 콜린스가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하여 여운을 남긴다.

"마침표를 넘어서는 공간을, 그 미지의 세계를, 책장이 덮이고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죽음 너머의 페이지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우주까지 나가봤지만 사후 세계는 미지의 곳이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피를 빨아먹고 높이 뛰어 오를 것이다. 누군가 공중으로 솟아오른 내 모습을 본다면 문장 끝에 찍히는 마침표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난 그런 것이 좋다.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인 것이 좋다. 이제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에 다다랐고,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내 모습을 여러분에게 공개하겠다. 자, 똑똑히 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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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사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 교사와 학생의 마음건강을 위한 교육 멘토링
조벽 지음 / 해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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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민원, 학생 생활지도, 행정 엄부 등 수업보다는 부수적인 업무가 교사들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교권 침해로도 이어져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실제로 청년 교사 10명 중 8명이 이직 및 사직을 고민하고 있고, 전체 교사 4명 중 1명은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현 교육 제도나 시스템 환경에서 교사들은 피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일은 그야말로 힘겹다. 교육자로서 의욕을 잃고, 교직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밀려오는 지금, 교사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요즘 교사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40여 년간 지구 100바퀴를 돌며 국내외 교육현장을 경험하고, 수많은 교육정책가, 교사, 학부모들을 만나며 21세기 교육 리더십을 실천해오며 교육정책과 교수법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최고의 교육 멘토인 조벽 교수는 다시 교사로서 자긍심을 일깨우고, 의미 있는 교사로서 살아각기 위한 지혜를 전한다. 변화한 시대를 반영한 교육 비전을 세우고, 교사의 역할과 학습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실천해야 할 해법을 제기한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교육자들에게 멘토링하듯 교육 매체에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수정하고 보퉁하여 새롭게 엮었다.

이 책은 '1부 새로운 교육을 위한 뜻을 세우다, 2부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3부 교사와 학생들의 마음건강을 돕는 심리 기술'이라는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전통적인 학교와 교육과 가정의 종말이 시작된 지금, 우리에게는 원대한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이 그리는 미래에는 최소 세 가지 모습이 선명하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한국인이 한국 제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인재로 빚어졌기 때문에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둘째, 산학협력을 넘어서 산학통합 교육이 활발하다. 셋째, 복지가 소비사업이 아니라 교육사업화로 탈바꿈해서 성장 동력이 되어 있다. 이처럼 저자는 지금의 교육 문제에 골몰해서 절망에 빠지는 대신 새로운 미래를 그려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입시 방식만 수정되는 교육에서 입시가 아니라 입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입지란 '뜻을 세우다'라는 말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이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러한 생각을 해보고 꿈과 비전을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입지가 목적이고 입시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목적 없이 수단에 매달리는 건 무의미합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가장 빠른 보트를 확보했는데 앞에 놓인 곳이 폭포라면 재앙입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부하느라 너무나 많은 학생이 방황하고 불행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과 실력을 오로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소인배의 삶으로 내몰리다 보니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한국 교육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입시정책은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존 틀은 유지하면서 부차적인 면들을 끝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게 아니라 아예 교육의 중심을 옮기고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성공적인 교육혁명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첫째, 패러다임 이동이 간단명료해야 하고, 둘째, 교육혁명에는 새로운 가치관(윤리관)이 등장해야 하며, 셋째, 혁명 과정에 피비린내가 나지 말아야 한다고 전한다.

"교육은 입시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이 교육의 두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자는 지식 전달자 역할의 교사는 도태되고 지혜를 전달해 주는 멘토 역할의 교사는 각광받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식 전달 교육은 죽은 교육이고, 지혜 전수 교육이야말로 사람이 살아있는 생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인생 교육이며, 구체적으로 마음이 살아있다는 뜻에서 인성 교육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교사가 학생에게 스승으로 다가가는 길만이 학생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그럴 때만 교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교권 회복을 위해서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첫째, 교육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하고, 둘째, 교권이 확보된 미래를 상상해야 하며, 셋째, 교사가 다시 스승이라고 불리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는 지혜 전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교육문제를 꼬이고 엉킨 실타래로 인식하는 바람에 교육 중심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표면만 뜯어 고치거나 새롭게 겉포장만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실타래가 아니라 교과과정, 학생평가, 대학입시와 더불어 생활지도, 학생인권, 교복, 급식, 교원양성 시스템과 교권 등 수많은 크고 작은 요소들이 서로 세밀하게 연결된 거미줄 같습니다. 각 요소들이 사방팔방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거미줄은 어느 부분도 잘라내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교육은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가 아니라 중심 잡고 균형을 이룬 거미줄입니다."

저자는 사람은 그저 생존하는 게 아니라 비전이나 꿈을 지니고 성장하는, 단어 그대로 '어른으로 되어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하는 어른으로 커가는 것이다. 교육자는 이 과정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희망이 없는 터전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학업중단 청소년'이라는 명칠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상에 붙이는 이름에 우리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해결책의 기본 방향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그들을 '학업중단 청소년'이 아니라 '탈학교 난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교육 현장 역시 학교가 변해야 하며, 학교가 희망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교육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한'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학업중단 청소년'이라고 하면 마땅히 해야 하는 학업을 중단한 학생을 탓하는 발상입니다. '탈학교 난민'이라고 하면 마땅히 희망을 베풀어야 하는 교육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학교와 교육행정에 책임이 있다는 발상입니다. 우리 교육자를 참으로 아프게 하는 말이지만, 아이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어른이 책임지겠다는 성숙한 자세를 보일 때 해결책이 등장하겠지요."

저자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게 없는 경우가 숨겨진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보금자리, 보살핌, 양육, 지지, 지도가 없을 때 숨겨진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어둡고 추운 그늘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줄 수 있는 따뜻한 방법은 교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숨어있는 아이들의 감정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천덕꾸러기와 싸움쟁이들 중에는 애착손상을 입고 숨겨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행동만 보고 야단쳐서 자제시키고 벌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은 컴컴하고 싸늘한 인간관계에 마음이 잔뜩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따스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아버지, 교사, 관리자 등 집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감정을 차단하면 그와 불가피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다른 사람은 정서적 연결결핍 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감정 차단은 고통을 주는 벌같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권력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선별적 차가움이 남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와 같기에 잔인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서적 베풂은 가장 위력적인 나눔이며 가장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감정이 차단되어 소중한 사람과 함게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공유하지 못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관계는 죽습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해야 관계가 삽니다. 내 주변 사방에 테두리를 쳐서 고립시키면 모두 남이 되어버립니다."

저자는 창의력은 정신 차린 상태에서 발휘된다고 말한다. 정신을 집중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비전'이 된 상태이고, 정반대로 정신 차림은 시야가 확 트이는, 알아차림이 확장된 상태이다. 보이지 않던 해결 방안들을 볼 수 잇는 혜안이 생긴 상태이고, 기존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직관과 영감을 만날 수 있는 창의적인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시야를 트이게 하는 정신 차린 상태에서 내 인생에 이루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때 내 인생이 가장 가치로운가에 대한 답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정신 차림은 진로, 꿈과도 직결되어 있다.

저자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는 다르다고 말한다. 세상은 지속적인 하나지만 세계는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다. 세상은 모두에게 같지만 세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세상은 생존과 투쟁이 있으나 세계는 나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성장과 창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 사는 게 힘들더라도 우리는 각자 행복한 세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자신의 세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세계를 더 좋고 멋지게 만들어보는 게 순서입니다."

저자는 교육은 아이들의 스펙을 높게 쌓아주는 게 아니라 좋은 스토리가 나오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스펙 쌓기는 피 터지는 경쟁을 해야 베스트가 될 수 있고, 나머지는 다 실패자가 되지만, 스토리는 남과 얼마나 다르냐의 개념으로, 베스트가 아니라 유니크가 핵심 키워드라고 이야기한다. 스토리는 유사성이 아니라 유일성이 핵심이며, 남과 얼마나 다른가가 자신만의 경쟁력이 된다.

"유니크한 사람은 남과 경쟁하지 않고도 경쟁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스펙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를 보여준다면 스토리는 살아온 모습과 살아가는 방법과 인간의 품격(인생)을 보여줍니다. 인성은 벼락공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시험 날 컨디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인성은 오랜 기간에 걸친 학습으로 닦이는 실력입니다."

저자는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알아야 남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되지 않는다로 말한다. 깨어있어야 거짓에 고종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직감에 귀기울여 가짜 뉴스를 감별하고, 확신이 없는 일들에 활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외부 세상이 가짜인지 진실인지를 알아차리려면 내가 먼저 거짓이 없고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오감이 시끄러운 소음이라면 직감은 정말 잔잔한 음악입니다. 소음을 꺼야 잔잔한 음악이 들립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자기조율 상태를 유지하는 기술을 평상이 실천하도록 도와주세요."

저자는 진로 선택은 현시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원하는 미래에서 현시점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서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답이 나온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저자는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마음속을 들여다보는데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한다.

"진로는 내다보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행복한 나나을 보내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봐야 합니다. 성공하고 행복한 '미래의 내'가 '오늘날의 나'에게 "이리 와. 여기가 바로 네가 가장 원하는 곳이야'라고 손짓하면서 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 행복한 나의 미래 모습에 이끌려야 합니다."

저자는 배려과 과배려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배려하다고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곧바로 중단한다. 둘째, 힘든 상황에서 불평 또는 하소연하지 않으려면, 스트레스 받아서 생기는 부정적 감정이 넘쳐나지 않게 하려면, 내 안에 스트레스를 담아낸 용량을 키워야 한다. 마음은 베풀수록 더 깊고 넓어지고, 그런 마음의 용량이 커지면 어떤 스트레스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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