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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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심리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는 학문인 '예술심리학'은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예술을 실험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대에서 약 10년 동안 학부생을 대상으로 예술심리학 강의를 진행한 오성주 교수는 책 <감사의 심리학>에서 예술심리학의 흥미로운 실험과 결론을 소개하면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뒷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예술심리학은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이고,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영감이나 광기, 시대적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예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일반 감상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통찰을 줄 수 있고,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기교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독자는 작품의 지각적 성질인 형태, 색, 크기, 대비, 구성, 내용 등이 감상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감상자의 기억, 주의, 신기성, 전문성 등의 사전 지식 역시 감상에 영향을 미침을 알게 된다. 또한 감상 행동이 은밀한 개인의 행동이기도 하지만, 그림의 가격과 화가의 명성 같은 타인의 평가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사회적 행동이라는 점도 알게 된다. 예술 경험에 대한 이러한 객관적인 접근을 통해 독자들은 감상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감상의 요령을 배울 수도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 카를로 카라의 <일몰 후>라는 작품은 정적이지만 어떤 불안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불안은 일몰 후에 오는 것일지 모르고, 아니면 일몰 후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듯이 볼안 또한 사라질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불안에 떠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시각적 무게감이 균형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시각적 무게감과 다른 심리적 무게감도 고려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왼쪽에 건물이 있고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에 원기둥 형태의 창고 같은 건물이 있다. 건물들의 시각적인 무게감으로만 보았을 때 왼쪽에 무게 중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림에는 없지만 오른쪽에 지는 해가 있기 때문에, 오르쪽은 점진적으로 어떤 일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오른쪽 공간이 마음을 붙잡는다면 심리적으로 그림의 무게가 오른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


"균형이라는 개념은 대상의 크기, 색, 형태, 움직임의 방향 등 지각적 속성에서 오는 무게감뿐만 아니라 그림의 해석에서 오는 기쁨, 행복, 우울, 슬픔 등 감정적인 무게감이 더해져서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는 실제보다 훨씬 길게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정선이 박연폭포를 보고 그 시원함을 과감하게 표현하기 위해 높이를 과장한 것이다. 저자는 과장된 높이는 시원함이라는 감정이 정점 이동을 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그림을 볼 때 과장된 것이 무엇인지를 주목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지름길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그림에서 과장은 사실상 그려지는 대상의 거의 모든 특징에서 일어날 수 있다. 대상의 크기, 색, 밝기, 형태 등의 표현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깊이, 배열, 시점 같은 기하학적 요소들도 포함된다. 작가들은 자신이 느낀 것을 과장을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점 이동은 그림 감상에 매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삭 줍는 여인들>을 포함해 화가 밀레의 그림들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전시 금지를 당했을 정도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말한다. 계급 갈등을 조장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저자는 밀레의 그림은 매우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져 그림 자체에서 과장이라고 할 만한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층민의 여러 모습 중에서 이삭을 줍는 특정한 활동을 조명한 것은 밀레의 주관적인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이 또한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흥미롭다.

"미술에서의 과장이란, 현실에서의 과장이 의미하는 거짓과 위선의 연장선이 아니라, 강조에 가까운 무엇이다. 참다운 미술 작품을 '진실한 거짓'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선택에 따른 과장은 밀레만이 아니고 모든 작가들에게 필수적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풍경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진화적 안전, 시각처리의 유연성, 수평적 안정감, 생태적 활력 뿐만 아니라 창문의 대안에 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웅장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작은 풍경화보다 큰 풍경화가 더 현실감 있고 일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와 비슷하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사람들은 좋은 풍경을 보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카페나 식당에서는 창가 자리가 가장 인기가 많고, 같은 아파트여도 조망에 따라서 집값이 크게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풍경을 보고 싶어하는 동시에 자신은 노출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좋은 풍경 자리는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면서도 자신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던 안전 본능을 제안한다. 그의 전망-도피처 이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탁 트인 전망을 통해서 바깥의 동태와 날씨를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이런 위치가 잠재적인 적이나 위협을 먼저 발견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먹잇감을 찾거나 동족의 안전을 살피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몽룡이 그린 <월매도>에서 완전한 달과 다르게 아래에 묘사된 매화 가지는 불규칙하게 뻗어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보름달의 완전한 대칭성은 매화가지 모양의 불규칙성과 대비가 되어 역동의 긴장이 흘러나온다고 이야기한다.

"달은 동양이나 서양에서 이상의 상징이다. 윌리엄 서머싯 몸은 소설 <달과 6펜스>에서 화가 폴 고갱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의 기구한 삶에 대해 그렸다. 그 소설 어디에도 '달'과 '6펜스'라는 말은 없지만, 소설의 내용으로 보아 달은 예술가가 추구하는 이상이고, 6펜스는 늘 가난에 찌든 화가의 현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몽룡도 이상은 함께 빛나지만 삶은 비뚤빼둘한 현실을 그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원격 존재감을 풍부하게 그리는 그림들로 유명하다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안개 위의 방랑자>는 높은 산 위에 서서 멀리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는 이 그림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감상자가 그림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등장인물이 뒷모습으로 표현될 경우 감상자와 인물의 시선 방향이 일치하므로 몸을 동일시하기가 더욱 쉬워지며, 이를 통해 감상자는 그림에 더 깊이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프리드리히의 작품들은 이러한 시점의 활용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 속 풍경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저자는 경북 포항의 호미곶의 대표적인 명물인 '상생의 손'이라는 작품은 사람의 손을 닮은 거대한 두 개의 손이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육지에, 다른 하나는 바다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작품의 인기는 기대 오류의 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평소에 친숙한 대상이 엄청나게 큰 크기로 눈앞에 나타날 때, 우리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먼저, 바다라는 장소에 손이 서 있는 것은 매우 낯선 배치이다. 만약 바다와 관련된 고등어나 갈치 같은 요소를 크게 세워 놓았다면, 사람들에게 이처럼 신선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둘째, 손의 거대한 크기 역시 우리의 일상적 기대를 벗어난다. 바다에 서 있는 거대한 손은 그 자체로 놀라움을 준다. 셋째, 손은 인간에게 매우 특별한 신체 기관으로, 누구나 자신의 손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손이 연결된 거대한 몸통을 상상하게 된다. 차갑고 깊은 바닷속에서 손만 위로 뻗은 모습을 떠올리면 그 상황이 뜻밖이고 신기하게 느껴지며,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긴다."

<감상의 심리학>의 저자 오성주는 예술 작품의 감성의 성공 여부는 감상하는 시간 동안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처리가 얼마나 깊에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작품 해석에 정답이란 없기에 감상 행동은 작품 창작 못지않게 창의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감상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이 책의 저자 오성주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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