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내가 읽고 싶고 또 쓰고 싶은 작품을 발견했다. 

미야베 미유키. 그녀는 90년대 초반부터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시대 미스터리작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그녀를 그녀의 작품을 너무 늦게 만났다. 등단과 동시에 일본의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마니아층까지 있는 그녀의 작품들이 어째서 국내에는 2008년도에서야 번역 소개되기 시작한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의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작가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한, 혼조 후카가와 지역에 전해내려오는 일곱가지 전설을 모티브로 그린 작품이다. 한쪽으로만 잎이 나는 갈대, 한밤중 나그네의 뒤를 쫓는 등롱, 낚시꾼을 홀리는 해자, 잎이 지지 않는 모밀밤잣나무, 깊은 밤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축제음악, 천장을 부수며 내려오는 거대한 발 그리고 꺼지는 법이 없는 사방 등등...


미스터리물이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시종일관 인간애를 잃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 본연의 심성인 '공포'를 자극하지만 기이함과 두려움보다는 연민과 애잔함이 잔뜩 묻어난다. 그래서 좋다.


사무라이의 시대였던 에도시대에는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취급받았던 만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졌을 터이고, 이런 공포스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괴담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람들을 좌절과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도시괴담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도시를 떠다니는 괴담들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소문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사회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한 추리소설처럼 독자에게 한껏 공포감만을 전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미스터리한 인간의 심리를 논리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시선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대단히(?) 교훈적이고, 그래서 어쩌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냉혹한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따스한 한잔의 차와도 같은 위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 역시 히코지로부터 오랜만에 위로를 받지 않았던가.


어린아이의 약속이다......

히코지는 생각했다. 이미 잊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히코지는 쓸쓸함을 억누르며 자신을 타일렀다.

                                                                                                   -외잎 갈대 中-


맞다. 중요한 건 약속의 이행 여부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잊혀진 그 약속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배웅하는 등롱>의 오린 역시 매일밤 주인 아가씨의 사랑 기원을 위해 절까지 가서 경내의 자갈을 주워와야 한다. 칠흙같이 깊은 밤. 어린 소녀의 뒤를 소리없이 따르는 등롱...등롱을 든 사람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지만 분명 소녀의 안전을 지켜주려는 것이리라. 한편, 이기심으로 가득찬 주인 아가씨는 결국 짝사랑의 대상이 자신의 집안을 노린 도적떼의 끄나풀이라는 걸 알고 애꿎게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세이스케를 쫓아내고 만다.


오린은 그날 밤. 다시 한번 에코인을 향해 걸었다. 오늘 밤에 배웅하는 등롱이 따라온다면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라도 확인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오린을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가웠고, 발소리는 철로 만들어진 물건을 두드리듯 날카로운 소리가 되었다. 한동안 걷다가 돌아본다. 오린을 따라오는 것은 흐릿한 달뿐이었다. 긴장된 밤공기 너머로도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ㅡ오린을 좋아하는 누군가. 많이 좋아하는 누군가.

오린은 그저 어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배웅하는 등롱 中-


인간은 한없이 연약하고 순수한 존재이면서 또한 한없이 이기적이고 악하기 그지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역시 인간이야말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의 일곱편 작품 모두에는 후카가와를 지키는 오캇피키(경찰)인 에코인의 모시치 대장이 등장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코난 도일이 샤록홈즈를 애거스크리스티가 포아로와 미스 마플을 창조했듯, 모시치 대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포아로나 미스 마플 그리고 모시치 대장 등은 혼란과 공포속에서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함을 풀어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난세에 대중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기다리는 영웅 즉 '메시아'로도 비춰진다. 


끔찍한 사건 사고와 흉흉한 각종 괴담들이 끊이지 않은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모시치 대장과 같은 인물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유약진이다 -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5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닭털 같은 나날> <핸드폰> <고향하늘아래노란꽃>에 이어 네번째로 접하는 류전윈의 장편소설이다. 단편 모음집인 <닭털 같은 나날>을 읽었을 때는 그저 '얼떨떨'했다. 작가에 대해 잘 몰랐고 작품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대표작인 <핸드폰>을 읽으면서 '천재작가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살짝했으나 <고향하늘아래노란꽃>을 읽고는 그저 '의심'만으로 끝났다고나 할까. 작품이 별볼일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작가를 알면 알수록 기대감이 뭉게뭉게 커져가다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대약진(大躍進)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에 출생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나는 유약진이다: 我叫刘跃运>라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듣자하니, 2007년도 당대문학상을 수상했고, 그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었다고 한다. 이러니 부푼 풍선마냥 기대감이 두둥실 커질 수밖에...

 

이야기는 유약진(刘震运)이라는 허난성 낙수출신의 공사장 조리사를 둘러싸고 펼쳐진다.

유약진은 마누라 황효경을 동창인 이갱생에게 빼앗기고  그 댓가로 받은 6만원짜리 지불 약정서가 들어있는 가방을 청면수 양지라는 도둑에게 소매치기 당한다. 청면수 양지는 꽃뱀 사기단인 장단단 일행에게 걸려 훔친 가방을 빼앗긴다. 소매치기 당한 가방을 찾아 나선 유약진은 청면수 양지를 미행하다가 그가 엄격(유약진이 일하는 공사장의 사장)의 집인 베토벤 빌라를 털다가 걸려 도망치던 와중에 구리(엄격의 부인)의 핸드백을 줍게 된다. 그 명품 핸드백 속에는 USB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USB에는 엄격과 가(贾)주임 및 인씨의 부정부패 현장과 불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격은 USB로 가주임을 협박하여 은행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USB를 잃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엄격과 가주임은 서로 먼저 USB를 차지하려고 사람을 풀면서,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와 쫒기고 쫒기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어수룩하기 그지 없던 유약진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그 자신도 어느덧 잔꾀를 부려 남을 속이면서 스스로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게 된다. 즉, 이야기는 한 마리의 선량한 양이 생존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가며 한 마리의 거친 늑대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름도 성도 없는 농민공들, 미장원의 미용사와 마사지걸, 소매치기, 얼후 연주로 구걸하는 걸인, 부패 공무원, 위공촌의 신장사람들, 흥신소 직원, 부동산 개발업자, 가짜 술 제조업자, 제3자(불륜남, 불륜녀), 오리 잡이, 행상 등등...

 

'유약진'은 어쩌면 이들 모두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법없이도 살았을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베이징이라는 대도시에서 생존을 위해 노동을 팔고 몸을 팔고 양심을 파는 '유약진'들...

 

<나는 유약진이다>는 중국 당대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허풍, 과장 및 해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는 우연성의 남발과 골계미를 통해 당시 사회를 고발했던 고대소설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지나친 과장과 허풍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을 때 곧잘 차용되는 방식으로, 당대 중국사회는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옌롄커라는 작가는 중국인의 가장 큰 단점으로, 흔히 장점이라고 알려진 헤픈 '낙천성'을 지적한 바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웃음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역사의 상처에 눈물 흘리기 보다는 집단 망각으로 역사의 아픔을 지워버리려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와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 당대 소설답지 않게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며 지나치게 슬프다. 그래서 더욱 사실적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작가는 무릇 동시대와 동시대인에 대해 애정 어린 눈길과 진심이 담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는 진정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류전윈의 작품을 읽고 웃다 보면 불연듯 작가가 시대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한바탕 웃음으로 잊어버려도 괜찮은 현실인지...

과연,

그렇게 쉽게 잊혀지고 지워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사소한 삶인지...

 

 

무릇, 모든 소설가들은 문학소설과 대중소설 사이에서 고민한다. 대중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집요하게 추구하지 않듯, 문학작품으로서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작품의 재미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재미보다는 주제와 작가정신에 몰입하는 편이다. 

 

소위, 한 나라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읽는 도중 배꼽을 빼다가도 마지막 책장을 다 넘기고나면 깊은 사색과 공명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해야 한다. 읽고 나도 아무런 울림이나 여운이 남지 않는다면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중소설에 불과할 뿐 시대상을 반영한 순수문학작품으로 불리울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유약진이다>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생존을 위해 타락하는 중국 기층민들의 삶을 이해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삶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봐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종종 이해 불가능한 중국 사회와 현대 중국인의 천태만상을 고발한 것인지... 

 

수많은 강줄기들이 결국은 바다로 모이듯, 열 갈래 백 갈래로 퍼져나간 이야기의 종착점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모아져야 한다. 작가는 단순히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구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가지 뻗듯 이야기는 제법 속도감 있게 전개되지만, 인물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이나 애정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감이 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보다는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데 급급하다 보니, 독자로서는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을 할 수도 없고 그들을 가슴 깊이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냥 등장인물들이 잔인하다거나 바보같다거나 무식하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이 점이 바로 작가가 처음부터 추구했던 것이라면 물론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대중소설이든 문학소설이든 좋은 소설은 말해주지 않고 보여주어야 한다. 작가의 설명이 지나치게 많으면 독자의 상상력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상 미디어 매체가 발달한 요즘 같은 세상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소설책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독서라는 과정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부디, <나는 유약진이다>라는 소설이 중국 당대 소설의 전부이자 한계가 아닌, 또 다른 도약이요 모색이길 기원해 본다. 

 

끝으로, 번역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인명과 지명을 외래어 표기법 원칙에 맞추지 않고 한자 독음 그대로 표기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한다. 이름있는 역자이므로 중국어을 한국어로  옮길 때에는 인명과 지명은 1910년을 기준으로 그 이후면 현지음 발음 즉 중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고, 그 이전이면 한국인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한자 독음대로 표기하되 한자(번체자)를 괄호안에 병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본문에 '형씨'라는 인물이 나온다. 형씨는 흥신소 직원으로 위장한 경찰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본문 495페이지 중간에 방준덕이 유약진을  "형씨!"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의 형씨란 성씨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끼리 서로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본문을 읽어내려가면서 앞에서 지적한 형씨라는 인물과 잠시 잠깐 혼동을 하였다. 이처럼 불필요한 혼동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임에도 불구하고, 역자가 굳이 '형씨'라는 표현을 선택한 까닭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녀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도살장을 배경으로 한 인질극이다.

인질은 청각장애인 아동 8명에 성인 여성 2명이다. 납치범과 협상가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 펼쳐지지만 처음부터 줄곧 협상가의 판정패이다. 협상가의 심리묘사는 잘 드러나는 반면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납치범에 대한 심리묘사는 매우 부실하다. 작가로서는 막판 대반전을 위해 납치범의 진심을 독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말이다. 

 


납치범은 물욕에 빠진 경찰 간부와 여자 친구의 도움으로 사전에 철저히 짜여진 계획에 따라 범행을 저지르고 또 탈옥하여 납치행각까지 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납치 사건으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여주인공에 의해 결국은 '자유'를 눈앞에 두고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다만, 장애인들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에페'를 협상가와 동일시하는 부분이나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의 슬픈 과거와 납치범으로부터 용감하게 아이들을 탈출시키는 행동 사이의 필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제 프리 디버의 작품들은 국내에도 여러 권이 번역 소개되어 있고 '마니아'층도 형성되어 있는 것같다. 정통 추리문학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긴 하지만 요즘은 범죄스릴러물이 대세인가 보다. 캐이블방송의 미드나 허리우드 영화만 보더라도 SF나 범죄수사물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part01-플롯과 구조>의 저자 제임스 스콧 벨 역시 여러 권의 대중소설들을 분석하며 일종의 공식을 도출해내지 않았던가. 그는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려면 정신없이 사건 사고를 만들어 내고 의외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성공한 대중소설 작가 중에는 제프리 디버도 포함되어 있다.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 역시 성공한 대중 스릴러 작품들이 갖고 있는 근사한 주인공 및 탄탄한 플롯과 구조라는 '요소'들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이상의 대중소설들이 순수문학작품보다는 읽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편이긴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낯선 장르인 것 같다. 남들은 재미있다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긴다는 제프리 디버의 작품을 나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공부하듯이 읽어 내려 갔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별 두개라는 평가와 리뷰는 순전히 개인적 '느낌'이자 '생각'일 따름이라는 걸 밝히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은 류전윈의 첫 장편 소설로 원제는 故鄕天下黃花 (1991) 이다. 다른 중국 소설의 제목처럼 참 낯설다. 류전윈의 또 다른 작품 제목 역시 <닭털 같은 나날>로 한국 독자들에게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 다 원문을 직역했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굳이 알듯말듯한 제목 번역으로 한국독자들의 외면 아닌 외면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었다.

 

그런데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작품의 주제를 그렇게 잘 담아낸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제목을 의역한다는 건 책임감 있는 번역자로서는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원제목보다 더 나은 제목을 도출해 낼 수 없다면 원제목 그대로 직역하되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리라.

 

 

 

이 책의 역자 역시 이 점을 고려하여 역자후기에서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번역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장례때 노란꽃 즉 황화(黃花)를 가슴에 다는 풍습이 있었고 이런 점을 감안해 보면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이란 곧 고향에서 벌어진 연이은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내공이 엿보이는 번역가의 후기에는 '고향 마을 죽음의 연대기'와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을 놓고 적잖은 고민을 한 흔적 역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녹녹찮은 분량의 작품을 읽는 과정은 좋은 작가와 작품을 독자에게 알리고 전달하기 위해 역자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름뿐인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정이 들어선 민국3년.

마을에서 대대로 촌장을 독점해오던 리(李)씨네로부터 촌장 자리를 빼앗아온 쑨(孫)씨네 젊은 촌장 쑨뎬위엔이 목 졸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들을 청부살인업자에게 잃은 쑨라오위엔은 역시 양아들 쉬부다이를 시켜 리라오시의 목숨을 노린다. 쉬부다이의 살인 계획은 미수에 그치지만 리라오시가 놀라 죽는 바람에 쑨씨네 마부 펑씨와 부엌일꾼 라오더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이때부터 전개되는 두 집안의 복수 혈전은 아들 손자代까지 이어지고 이 두 집안의 일꾼과 소작농인 마을 사람들의 운명도 시대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공산당과 국민당 그리고 일본군이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비적까지 날뛰던 시절, 사람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목숨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비적질이나 하던 쉬부다이가 촌장이 되고 쑨마오단은 일본군 앞잡이로 활약하며 쑨뎬위엔의 여덟살 어린 아들 쑨스건은 청년이 되어 팔로군에 들어가고 리라오시 둘째 아들 리원우의 아들 리샤오우는 국민당에 둥지를 튼다. 그리고 영원한 부촌장이었던 루헤이샤오의 아들 루샤오투는 다황와의 비적이 되어 노략질을 일삼고...


마침내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지주를 몰아내고 토지 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소작농의 아들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들어선다. 지주 리라오시의 소작농이었던 자오샤오거우는 지주의 첫째 아들 리원나오-돈20원 아끼려다 일찌감치 목숨을 잃는다-에게 겁탈 당해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아무 말도 못했지만 그의 아들 자오츠웨이는 달랐다. 그는 지주를 몰아내고 토지 분배를 도맡아 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허상에게 권좌를 내줄 때까지 마을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한다.


과거 지주에게 착취당했던 이들이 공산당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자 그들의 권력 남용 및 횡포 또한 지주의 그것보다 더 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세상도 바뀐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남 세상을 제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권력 쟁탈전을 벌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피해는 아무것도 모르고 따르기만 하던 '라오바이싱(老百姓)'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노동자 농민의 나라가 세워지지만 착취당하고 고단한 노동을 감내하는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의 희생은 언제나 이름도 없는 일반 민중의 몫인 것이다. 한때의 좋은 호시절을 누렸던 사람들 역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 뿐이다. 격변의 시대에 사람들의 목숨은 말 그대로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갈린다. 한국도 6.25전쟁을 겪으면서 이데올로기가 헤집고 간 역사적 상흔을 아직도 안고 있지 않은가. 이청준은 작품 <소문의 벽>등을 통해 이처럼 '선택의 기로'에 몰린 사람들의 심정을 '전깃불'에 대한 공포로 묘사한 바 있다.


류전윈이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아마도 '일반 대중 즉 라오바이싱(老百姓)은 언제나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강요받으며 그 속에서 희생을 당한다'라는 역사의 본질일 것이다. 공산당이 지주를 비판하고 주자파를 공격하는 조반파의 방식은 대단히 민주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온 마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저마다 한마디씩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고 이와 같은 발언을 통해 지주의 잘잘못을 따지니 이보다 더 잘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한 것도 없지 않은가.


정치적으로 민주 제도가 정착된 지금.
현대인들 역시 이들 '라오바이싱(老百姓)'처럼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는 언제나 직업 정치인이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언제나 대중이 진다. '조금 빨리 혹은 조금 나중에'의 순차적 차이만 있을 뿐 역사의 거친 물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은 지난 세기 동안 공산주의 혁명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를 겪었으며 이에 대한 문학적 고찰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류전윈의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 역시 이와 같은 신역사주의 혹은 신사실주의 문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세상이 영원할 것 같지만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뀐다. 세상이 또 한번 바뀌면 새로운 역사주의 소설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이다.


류전윈의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은 분명 좋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상당히 긴 시간을 배경으로 많은 인물들이 명멸해가는 역사소설의 작가로서 류전윈은 좀더 세심했어야 했다.

 

 

본문 속에서 쑨뎬위엔의 첫번째 부인 징씨부인은 남편이 사망할 당시 35세였고 아들 쑨스건이 자살하기 위해 연립에서 뛰어내려 두 다리를 못쓰게 된 후 76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리라오시 일가는 민국3년에 촌장 자리를 쑨뎬위엔에게 빼앗기고 위안스카이가 정변을 일으켜 왕정을 복고시키자 쑨뎬위엔을 죽인다. 또한 본문에서는 쑨뎬위엔이 2년 동안 촌장을 했다고 나와 있으니 그의 사망 연도는 1915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1915년 당시 35세인 징씨부인이 76살에 타계했다면 1956년도에 사망한 것인데 그녀의 죽음은 문화대혁명 이후(1966년~1968년)의 일로 나와있다. 아무래도 10년 가까운 시차가 존재한다. 번역의 오류가 아니라면 분명 작가의 착오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 밖에도 역자인 김재영씨의 말에 따르면, 자오츠웨이와 쑨스건 역시 나이차이가 10세이상 나므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년기를 함께 보낸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번역 작업 과정에서 류전윈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는데 매우 놀라는 눈치더란다. 이 작품은 90년대 초반에 나왔고 중국에서도 상당히 많이 팔린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연도의 오류를 십년이 넘도록 원작가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 역시 적잖히 놀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말 그대로 '전설'이 된 작품이다.

스티븐 킹은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고, 이후 수많은 좀비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하면서 널리 회자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서양식 귀신인 '좀비'와 '흡혈귀'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자연과학과 결합시켜 인류의 멸종과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작품의 도입과 중간부분은 공포소설이 갖고 있는 모든 특징적 요소들을 배제하고 있다. 좀비의 출현과 공격 조차도 대단히 밋밋하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다. 이는 구성의 실패라기 보다는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데에는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작가의 철저한 계산의 결과로 보인다. 불필요한 공포심이 최대한 배재된 작품은 오히려 세기말적인 스산함을 한껏 드러내면서 '인류 마지막 종의 최후'를 가장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순간 가족과 이웃들이 흡혈귀로 변한다. 주인공은 낮에는 코마상태에 있는 흡혈귀들-한때는 같은 종족이요, 이웃이었지만-의 가슴에 쇄기를 박아 제거하거나 음식 등을 구하며 보내고, 해가 지면 흡혈귀들의 공격에 시달린다. 2~3년 동안 흡혈귀만 상대하던 주인공에게 '사람' 그것도 젊은 여인이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이끌리고 그녀 역시 주인공에게 의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주인공 곁을 떠나고 만다. 그들이 곧 찾아 올거라는 경고의 메세지만 남긴 채...

결국, 주인공은 그녀의 경고대로 진화한 흡혈귀들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소설은 흡혈귀에 얽힌 오래된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인류의 멸종과 함께 전혀 새로운 종족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란 여러 종족이 멸종해가고 새로운 종족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과정의 반복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인류학에서 인류의 진화 단계를 원인()ㅡ원인()ㅡ구인()ㅡ신인() 등으로 구분하는데, 흔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원인()에 해당되며, 호모에렉투스 즉 자바원인은 원인()에, 네안데르탈인은 구인()에 속하며,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인류의 직접적 조상인 신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진화의 단계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구인()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과 신인()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는 진화의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DNA적으로 전혀 다른 별개의 종(種)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된 것이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언제나 진화의 승자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현생 인류의 관점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현생 인류의 마지막 남은 인종이 힘겹게 고군분투하다가 최후를 맞이하면서 결국 '전설'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마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에렉투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에 실패하면서 차례로 '전설'속으로 사라져 버렸듯이...


이처럼 리처드 매드슨은 패자의 관점에서 현생 인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아득히 먼 과거인 지난 1950년대에 말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나는 전설이다>를 '레전드'의 반열에 올려 놓은 직접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스티브 킹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결심하게 만들고, 그 후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을 불러 일으킨 영화와 소설의 모티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