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은 류전윈의 첫 장편 소설로 원제는 故鄕天下黃花 (1991) 이다. 다른 중국 소설의 제목처럼 참 낯설다. 류전윈의 또 다른 작품 제목 역시 <닭털 같은 나날>로 한국 독자들에게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 다 원문을 직역했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굳이 알듯말듯한 제목 번역으로 한국독자들의 외면 아닌 외면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었다.

 

그런데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작품의 주제를 그렇게 잘 담아낸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제목을 의역한다는 건 책임감 있는 번역자로서는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원제목보다 더 나은 제목을 도출해 낼 수 없다면 원제목 그대로 직역하되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리라.

 

 

 

이 책의 역자 역시 이 점을 고려하여 역자후기에서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번역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장례때 노란꽃 즉 황화(黃花)를 가슴에 다는 풍습이 있었고 이런 점을 감안해 보면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이란 곧 고향에서 벌어진 연이은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내공이 엿보이는 번역가의 후기에는 '고향 마을 죽음의 연대기'와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을 놓고 적잖은 고민을 한 흔적 역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녹녹찮은 분량의 작품을 읽는 과정은 좋은 작가와 작품을 독자에게 알리고 전달하기 위해 역자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름뿐인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정이 들어선 민국3년.

마을에서 대대로 촌장을 독점해오던 리(李)씨네로부터 촌장 자리를 빼앗아온 쑨(孫)씨네 젊은 촌장 쑨뎬위엔이 목 졸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들을 청부살인업자에게 잃은 쑨라오위엔은 역시 양아들 쉬부다이를 시켜 리라오시의 목숨을 노린다. 쉬부다이의 살인 계획은 미수에 그치지만 리라오시가 놀라 죽는 바람에 쑨씨네 마부 펑씨와 부엌일꾼 라오더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이때부터 전개되는 두 집안의 복수 혈전은 아들 손자代까지 이어지고 이 두 집안의 일꾼과 소작농인 마을 사람들의 운명도 시대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공산당과 국민당 그리고 일본군이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비적까지 날뛰던 시절, 사람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목숨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비적질이나 하던 쉬부다이가 촌장이 되고 쑨마오단은 일본군 앞잡이로 활약하며 쑨뎬위엔의 여덟살 어린 아들 쑨스건은 청년이 되어 팔로군에 들어가고 리라오시 둘째 아들 리원우의 아들 리샤오우는 국민당에 둥지를 튼다. 그리고 영원한 부촌장이었던 루헤이샤오의 아들 루샤오투는 다황와의 비적이 되어 노략질을 일삼고...


마침내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지주를 몰아내고 토지 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소작농의 아들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들어선다. 지주 리라오시의 소작농이었던 자오샤오거우는 지주의 첫째 아들 리원나오-돈20원 아끼려다 일찌감치 목숨을 잃는다-에게 겁탈 당해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아무 말도 못했지만 그의 아들 자오츠웨이는 달랐다. 그는 지주를 몰아내고 토지 분배를 도맡아 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허상에게 권좌를 내줄 때까지 마을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한다.


과거 지주에게 착취당했던 이들이 공산당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자 그들의 권력 남용 및 횡포 또한 지주의 그것보다 더 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세상도 바뀐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남 세상을 제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권력 쟁탈전을 벌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피해는 아무것도 모르고 따르기만 하던 '라오바이싱(老百姓)'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노동자 농민의 나라가 세워지지만 착취당하고 고단한 노동을 감내하는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의 희생은 언제나 이름도 없는 일반 민중의 몫인 것이다. 한때의 좋은 호시절을 누렸던 사람들 역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 뿐이다. 격변의 시대에 사람들의 목숨은 말 그대로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갈린다. 한국도 6.25전쟁을 겪으면서 이데올로기가 헤집고 간 역사적 상흔을 아직도 안고 있지 않은가. 이청준은 작품 <소문의 벽>등을 통해 이처럼 '선택의 기로'에 몰린 사람들의 심정을 '전깃불'에 대한 공포로 묘사한 바 있다.


류전윈이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아마도 '일반 대중 즉 라오바이싱(老百姓)은 언제나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강요받으며 그 속에서 희생을 당한다'라는 역사의 본질일 것이다. 공산당이 지주를 비판하고 주자파를 공격하는 조반파의 방식은 대단히 민주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온 마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저마다 한마디씩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고 이와 같은 발언을 통해 지주의 잘잘못을 따지니 이보다 더 잘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한 것도 없지 않은가.


정치적으로 민주 제도가 정착된 지금.
현대인들 역시 이들 '라오바이싱(老百姓)'처럼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는 언제나 직업 정치인이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언제나 대중이 진다. '조금 빨리 혹은 조금 나중에'의 순차적 차이만 있을 뿐 역사의 거친 물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은 지난 세기 동안 공산주의 혁명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를 겪었으며 이에 대한 문학적 고찰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류전윈의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 역시 이와 같은 신역사주의 혹은 신사실주의 문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세상이 영원할 것 같지만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뀐다. 세상이 또 한번 바뀌면 새로운 역사주의 소설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것이다.


류전윈의 <고향하늘 아래 노란꽃>은 분명 좋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상당히 긴 시간을 배경으로 많은 인물들이 명멸해가는 역사소설의 작가로서 류전윈은 좀더 세심했어야 했다.

 

 

본문 속에서 쑨뎬위엔의 첫번째 부인 징씨부인은 남편이 사망할 당시 35세였고 아들 쑨스건이 자살하기 위해 연립에서 뛰어내려 두 다리를 못쓰게 된 후 76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리라오시 일가는 민국3년에 촌장 자리를 쑨뎬위엔에게 빼앗기고 위안스카이가 정변을 일으켜 왕정을 복고시키자 쑨뎬위엔을 죽인다. 또한 본문에서는 쑨뎬위엔이 2년 동안 촌장을 했다고 나와 있으니 그의 사망 연도는 1915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1915년 당시 35세인 징씨부인이 76살에 타계했다면 1956년도에 사망한 것인데 그녀의 죽음은 문화대혁명 이후(1966년~1968년)의 일로 나와있다. 아무래도 10년 가까운 시차가 존재한다. 번역의 오류가 아니라면 분명 작가의 착오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 밖에도 역자인 김재영씨의 말에 따르면, 자오츠웨이와 쑨스건 역시 나이차이가 10세이상 나므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년기를 함께 보낸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번역 작업 과정에서 류전윈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는데 매우 놀라는 눈치더란다. 이 작품은 90년대 초반에 나왔고 중국에서도 상당히 많이 팔린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연도의 오류를 십년이 넘도록 원작가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 역시 적잖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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