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약진이다 - 늑대를 속여야 하는 한 남자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5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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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닭털 같은 나날> <핸드폰> <고향하늘아래노란꽃>에 이어 네번째로 접하는 류전윈의 장편소설이다. 단편 모음집인 <닭털 같은 나날>을 읽었을 때는 그저 '얼떨떨'했다. 작가에 대해 잘 몰랐고 작품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대표작인 <핸드폰>을 읽으면서 '천재작가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살짝했으나 <고향하늘아래노란꽃>을 읽고는 그저 '의심'만으로 끝났다고나 할까. 작품이 별볼일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작가를 알면 알수록 기대감이 뭉게뭉게 커져가다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대약진(大躍進)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에 출생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나는 유약진이다: 我叫刘跃运>라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듣자하니, 2007년도 당대문학상을 수상했고, 그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었다고 한다. 이러니 부푼 풍선마냥 기대감이 두둥실 커질 수밖에...

 

이야기는 유약진(刘震运)이라는 허난성 낙수출신의 공사장 조리사를 둘러싸고 펼쳐진다.

유약진은 마누라 황효경을 동창인 이갱생에게 빼앗기고  그 댓가로 받은 6만원짜리 지불 약정서가 들어있는 가방을 청면수 양지라는 도둑에게 소매치기 당한다. 청면수 양지는 꽃뱀 사기단인 장단단 일행에게 걸려 훔친 가방을 빼앗긴다. 소매치기 당한 가방을 찾아 나선 유약진은 청면수 양지를 미행하다가 그가 엄격(유약진이 일하는 공사장의 사장)의 집인 베토벤 빌라를 털다가 걸려 도망치던 와중에 구리(엄격의 부인)의 핸드백을 줍게 된다. 그 명품 핸드백 속에는 USB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USB에는 엄격과 가(贾)주임 및 인씨의 부정부패 현장과 불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격은 USB로 가주임을 협박하여 은행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USB를 잃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엄격과 가주임은 서로 먼저 USB를 차지하려고 사람을 풀면서,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와 쫒기고 쫒기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어수룩하기 그지 없던 유약진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그 자신도 어느덧 잔꾀를 부려 남을 속이면서 스스로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게 된다. 즉, 이야기는 한 마리의 선량한 양이 생존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가며 한 마리의 거친 늑대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름도 성도 없는 농민공들, 미장원의 미용사와 마사지걸, 소매치기, 얼후 연주로 구걸하는 걸인, 부패 공무원, 위공촌의 신장사람들, 흥신소 직원, 부동산 개발업자, 가짜 술 제조업자, 제3자(불륜남, 불륜녀), 오리 잡이, 행상 등등...

 

'유약진'은 어쩌면 이들 모두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법없이도 살았을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베이징이라는 대도시에서 생존을 위해 노동을 팔고 몸을 팔고 양심을 파는 '유약진'들...

 

<나는 유약진이다>는 중국 당대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허풍, 과장 및 해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는 우연성의 남발과 골계미를 통해 당시 사회를 고발했던 고대소설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지나친 과장과 허풍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을 때 곧잘 차용되는 방식으로, 당대 중국사회는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옌롄커라는 작가는 중국인의 가장 큰 단점으로, 흔히 장점이라고 알려진 헤픈 '낙천성'을 지적한 바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웃음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역사의 상처에 눈물 흘리기 보다는 집단 망각으로 역사의 아픔을 지워버리려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와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 당대 소설답지 않게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며 지나치게 슬프다. 그래서 더욱 사실적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작가는 무릇 동시대와 동시대인에 대해 애정 어린 눈길과 진심이 담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는 진정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류전윈의 작품을 읽고 웃다 보면 불연듯 작가가 시대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한바탕 웃음으로 잊어버려도 괜찮은 현실인지...

과연,

그렇게 쉽게 잊혀지고 지워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사소한 삶인지...

 

 

무릇, 모든 소설가들은 문학소설과 대중소설 사이에서 고민한다. 대중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집요하게 추구하지 않듯, 문학작품으로서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작품의 재미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재미보다는 주제와 작가정신에 몰입하는 편이다. 

 

소위, 한 나라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읽는 도중 배꼽을 빼다가도 마지막 책장을 다 넘기고나면 깊은 사색과 공명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해야 한다. 읽고 나도 아무런 울림이나 여운이 남지 않는다면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중소설에 불과할 뿐 시대상을 반영한 순수문학작품으로 불리울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유약진이다>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생존을 위해 타락하는 중국 기층민들의 삶을 이해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삶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봐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종종 이해 불가능한 중국 사회와 현대 중국인의 천태만상을 고발한 것인지... 

 

수많은 강줄기들이 결국은 바다로 모이듯, 열 갈래 백 갈래로 퍼져나간 이야기의 종착점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모아져야 한다. 작가는 단순히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구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가지 뻗듯 이야기는 제법 속도감 있게 전개되지만, 인물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이나 애정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감이 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보다는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데 급급하다 보니, 독자로서는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을 할 수도 없고 그들을 가슴 깊이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냥 등장인물들이 잔인하다거나 바보같다거나 무식하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이 점이 바로 작가가 처음부터 추구했던 것이라면 물론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대중소설이든 문학소설이든 좋은 소설은 말해주지 않고 보여주어야 한다. 작가의 설명이 지나치게 많으면 독자의 상상력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상 미디어 매체가 발달한 요즘 같은 세상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소설책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독서라는 과정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부디, <나는 유약진이다>라는 소설이 중국 당대 소설의 전부이자 한계가 아닌, 또 다른 도약이요 모색이길 기원해 본다. 

 

끝으로, 번역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인명과 지명을 외래어 표기법 원칙에 맞추지 않고 한자 독음 그대로 표기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한다. 이름있는 역자이므로 중국어을 한국어로  옮길 때에는 인명과 지명은 1910년을 기준으로 그 이후면 현지음 발음 즉 중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고, 그 이전이면 한국인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한자 독음대로 표기하되 한자(번체자)를 괄호안에 병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본문에 '형씨'라는 인물이 나온다. 형씨는 흥신소 직원으로 위장한 경찰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본문 495페이지 중간에 방준덕이 유약진을  "형씨!"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의 형씨란 성씨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끼리 서로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본문을 읽어내려가면서 앞에서 지적한 형씨라는 인물과 잠시 잠깐 혼동을 하였다. 이처럼 불필요한 혼동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임에도 불구하고, 역자가 굳이 '형씨'라는 표현을 선택한 까닭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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