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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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말 그대로 '전설'이 된 작품이다.

스티븐 킹은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고, 이후 수많은 좀비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하면서 널리 회자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서양식 귀신인 '좀비'와 '흡혈귀'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자연과학과 결합시켜 인류의 멸종과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작품의 도입과 중간부분은 공포소설이 갖고 있는 모든 특징적 요소들을 배제하고 있다. 좀비의 출현과 공격 조차도 대단히 밋밋하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다. 이는 구성의 실패라기 보다는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데에는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작가의 철저한 계산의 결과로 보인다. 불필요한 공포심이 최대한 배재된 작품은 오히려 세기말적인 스산함을 한껏 드러내면서 '인류 마지막 종의 최후'를 가장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순간 가족과 이웃들이 흡혈귀로 변한다. 주인공은 낮에는 코마상태에 있는 흡혈귀들-한때는 같은 종족이요, 이웃이었지만-의 가슴에 쇄기를 박아 제거하거나 음식 등을 구하며 보내고, 해가 지면 흡혈귀들의 공격에 시달린다. 2~3년 동안 흡혈귀만 상대하던 주인공에게 '사람' 그것도 젊은 여인이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이끌리고 그녀 역시 주인공에게 의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주인공 곁을 떠나고 만다. 그들이 곧 찾아 올거라는 경고의 메세지만 남긴 채...

결국, 주인공은 그녀의 경고대로 진화한 흡혈귀들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소설은 흡혈귀에 얽힌 오래된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인류의 멸종과 함께 전혀 새로운 종족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란 여러 종족이 멸종해가고 새로운 종족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과정의 반복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인류학에서 인류의 진화 단계를 원인()ㅡ원인()ㅡ구인()ㅡ신인() 등으로 구분하는데, 흔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원인()에 해당되며, 호모에렉투스 즉 자바원인은 원인()에, 네안데르탈인은 구인()에 속하며,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인류의 직접적 조상인 신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진화의 단계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구인()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과 신인()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는 진화의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DNA적으로 전혀 다른 별개의 종(種)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된 것이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언제나 진화의 승자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현생 인류의 관점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현생 인류의 마지막 남은 인종이 힘겹게 고군분투하다가 최후를 맞이하면서 결국 '전설'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마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에렉투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에 실패하면서 차례로 '전설'속으로 사라져 버렸듯이...


이처럼 리처드 매드슨은 패자의 관점에서 현생 인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아득히 먼 과거인 지난 1950년대에 말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나는 전설이다>를 '레전드'의 반열에 올려 놓은 직접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스티브 킹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결심하게 만들고, 그 후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을 불러 일으킨 영화와 소설의 모티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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