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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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5년 중국에서 출판되자마자 5禁(출판, 게재, 광고, 비평, 인용)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섬서성 탄광 붕괴 사고로 사망한 장스더(张思德)동지를 추모하기 위해 행한 연설로 유명한《为人民服务(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모욕(?)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은 5금조치를 당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고 중국 대륙을 제외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옌례커라는 작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1958년생으로 20여년 가까이 인민군대에서 '복무'한 작가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탄생할 수 없었으리라. 그만큼 폐쇄적인 중국 사회에서도 가장 큰 베일에 싸여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나약함과 타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품은 겉으로는 '외설'적인 통속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과 사랑에 대한 존엄을 그리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로 맹세한 주인공 우다왕의 육체적 사랑은 마침내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되지만 결국은 자식을 얻을 수 없었던 늙은 사단장과 그의 젊은 아내를 위한 '복무'에 다름 아니었다.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고 당연시 하는 중국 공산주의 사회가 결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개개인의 이익으로 점철되어 있는 커다란 먹이사슬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체,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길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우다왕이 마오쩌둥의 어록을 갈갈이 찢어버리며 사랑을 맹세하는 류롄의 그 '사랑'을 어찌 의심할 수 있으리오.

 

휘날리는 오성홍기와 울려퍼지는 의용군행진곡(중국의 國歌) 속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외쳐댄 사회가 결국은 '위선'이라는 걸 인민들이 쉽게 깨닫기 어려운 것처럼 우다왕에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의 참뜻을 이해한다는 건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우다왕은 '인민을 위해 복무'한 댓가로 가족의 도시 호구와 번듯한 직장 등 그가 그토록 원했던 모든 걸 얻는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랑을 잃어버린 댓가라는 걸 알고 있기나 한걸까.  

 

좋은 소설이 반드시 재미있는 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즐거움만을 위해 소설을 읽지는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옌례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재미없는 소설이지만 일독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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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
서명수 지음 / 아르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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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은 신문기자인 저자가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접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단상이다. 저자가 글을 쓰던 2006년도는 베이징 올림픽을 코 앞에 둔 시점이라 중국 사회의 변화가 그 어느때보다 컸던 시기다.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은 기대와 희망 속에서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했고 저자 역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 역사적인 순간들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비 록 책이 나온 이후 5년이란 세월이 흘렀기에 지금의 중국 및 중국인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2002년 당시 내가 접했던 중국인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있는 독서가 되었다. 특히, 저자가 윈난 여행길에서 만났던 노교수 부부의 모습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20대 중반의 지식층이었던 그들이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에 의해 비판받고 결국은 한살배기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저장성의 한 시골마을로 떠나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을까...

 

무 려 십년이다. 강산도 바뀐다는 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건너왔을까. 저자의 질문에 말을 아꼈다는 노부부... '그래,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문화대혁명은 이들 노교수 부부처럼 무고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세상이 바뀐 틈을 이용하여 권력과 부를 쌓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테고, 젊은 혈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발산한 홍위병 출신의 가해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던 이들은 모두 동시대를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중국의 라오바이싱인 것이다. 류전윈이나 옌롄커(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허난성 출신이다) 등 요즘 온통 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당대 중국작가들의 신역사주의(혹은 사실주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다코우(五大口)의 지질대학 교수 사택에 거주한다는 그들 노부부를 바라보는 내 눈길은 경건함도 아니고 애틋함도 아닌, 아니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는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저장성의 원저우와 장쑤의 쑤저우식 경제발전 모델을 비교한 부분이나 중국식 지역감정의 현장인 허난인에 대한 차별은 중국에 대한 좁디 좁은 내 안목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자 또한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평범한 외국 유학생이라면 결코 접근하기 어려웠을 798의 예술가나 민영기업가들 그리고 벼락부자등을 취재하여 그들의 일과 삶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어설픈 감상이나 겉핥기식 취재기가 아니라 저자의 심도 있는 시각과 관점이 잘 어우려져 중국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메세지를 전달해 준다.

 

다만, 기자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출판사측의 세심한 뒷마무리가 있었다면 발각되지 않을 '실수'였는데 아쉽다. 아마 저자도 출판된 책을 보며 안타까워했을 것 같다. 좋은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좋아야 독자의 선택을 받고 또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어찌됐던 저자의 열정과 장기간에 걸친 취재로 탄생한 책이 어쩌면 앞으로 중국 현대사의 한켠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책이 불필요한 실수로 인해 평가절하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자의 말'에 언급되어 있는,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는 그 중국인 친구-부친은 인민해방국 장교로 한국전에도 참전했고 북한에서도 5년 머물렀다 귀국했으나 문화대혁명때 탄압받아 옥살이를 하다 결국 옥사하고, 아들인 그 친구 역시 이런 아버지의 '신분'때문에 대학을 졸업했었도 직장을 배정받지 못했고, 그래서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는-에 대한 이야기가 본문에서 나올 것이라 기대했으나 기대는 실망과 아쉬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마, 예민한 문제라고 판단하여 '자체검열'로 누락됐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끝으로, 중국인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최근의 내 화두(?)를 정리하는 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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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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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이 알려진 위화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의 현대 소설에서 매혈(賣血)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인 것같다. 

 

내공 있는 역자의 이름에 이끌려 우연히 읽게 된 옌롄커(阎连科)의 장편소설 <딩씨 마을의 꿈(丁莊梦)> 역시 '매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처럼 해학적 도구로써 매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매혈과 이로 인한 에이즈(AIDS)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작가는 한국어 번역본에 부치는 작가의 말에서 '2005년 중국에서 이 작품이 출판된 직후 바로 5금(5禁: 출판, 홍보, 게재, 각색, 비평등을 금지하는 것)조치가 내려져 더 이상 중국의 독자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무지몽매한 인민들로 하여금 피를 팔게 하고, '열병(작품에서는 AIDS 대신 열병이라 표현함)'으로 죽어나가는 인민들에게 약 대신 관을 판매하여 또 다시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딩후이'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인민들에게 매우 위험한 책으로 비춰졌을 것이고 그래서 판매금지가 되었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붉은 기운이 감돈다. 그냥 붉은 것도 아니고 검붉다. 붉은색은 중국을 상징한다. 이 세상에서 중국인들만큼 붉은 색을 선호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옌롄커라는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중국을 대표하는 붉은색으로 중국인을 대표하여 중국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핏발 선 붉은 필체로 고발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역자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심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바로 '참회의 정신'이라고 일갈한다. 서양의 문화 특히 독일의 문학이 과거의 잘못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참회'를 바탕으로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는 반면, 현재의 중국에게 과거란 둘 중 하나이다. 널리 알려 자랑하고픈 영광의 과거와 깨끗이 지워 없애 버려야하는 잊혀진 과거가 바로 그것이다. 종이와 나침반 화약을 발견한 과거는 영광의 과거이고, 국가가 주도한 매혈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은 깨끗이 지워 없애야 하는 잊혀진 과거인 것이다.

 

작가 옌롄커의 잘못이라면 이런 잊혀진 과거를 다시 상기하고자 한 것 뿐이다. 작품 속 화자가 이미 죽어 땅에 묻힌 '딩후이'의 12살 어린 아들이라는 점 역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책임이 있고 죽어서도 갚지 못할 죄라는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책장을 무겁게 넘기고 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딩씨 마을의 꿈을 앗아간 중국의 꿈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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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1월 중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교포분으로부터 장쯔이 주연의 영화 <大爱>가 최근 개봉됐는데, 옌례커의 <딩씨 마을의 꿈>을 원작으로 한 것 같다고 한다. 이미 죽은 7살짜리 꼬마가 작중 화자로 나온다니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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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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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꿈속의 자살

- 그림자 감옥

- 이불방

- 매화 비가 내리다

- 이다치가의 도깨비

- 여자의 머리

- 가을비 도깨비

- 재티

- 바지락 무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 미야베의 작품이다. <괴이> 역시 에도를 배경으로 한, 아홉편의 괴담으로 묶여 있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속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오캇피키 '에도인의 모시치'가 등장하는 데 반해, <괴이>에서는 꿈속의 자살과 바지락 무덤 등을 제외하고는 오캇피가 등장하지 않으며 등장한다 하더라도 역할은 매우 미비하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전설을 기본 얼개로 한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면 <괴이>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한 시대 미스터리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작에 비해 '사회성'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이한 이야기>를 일본판 '전설의 고향'이라고 한다면 <괴이>는 일본 고대판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나 할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인간인 것 같다.

 

시골 논 속의 저수지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매화나무 숲, 가을비로 흐릿해진 그곳에서, 오쓰타는 도깨비를 만났다고 한다. 도깨비와 눈이 마추쳤다고 한다.

그 도깨비의 정체는, 때마침 이렇게 저수지 수면에 비친 오쓰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어르신이 먼발치에서 보았다고 호소하던 도깨비도 매화나무 숲에 서 있는 오쓰타의 모습, 소작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오쓰타의 모습, 그녀 자체가 아니었을까.

차가운 가을비에 사람의 가죽이라는 가면이 녹아, 본모습을 드러내고 서 있는 도깨비의 모습이 아니었을 까.                                                                                     

                                                                                              -가을비 도깨비 中-

 

'악마는 언제나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가메이도 마을의 어느 지주집 어르신과 일꾼 소개소의 주인 도미조에게 오쓰타는 착한 천사의 모습으로 비춰졌듯, 시게타로 역시 오신에게는 착하디 착한 남자친구의 모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던 오쓰타는 어째서 오신을 해치지도 않고 오히려 남자친구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했던 것일까. 가을비에 녹아 내린 자신의 본모습을 가을비 속에서 회상하고는 자신과 같은 악마에게 희생될 것이 뻔해 보이는 오신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오쓰따 역시 처음부터 악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하녀에 불과했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서히 악독해졌을 것이다. 물론, 힘든 상황에 처한 모든 이들이 범죄의 구렁덩이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가을비 도깨비>는 귀신이나 원령은 사실 따지고 보면, 악한 인간이나 억울한 영혼들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처럼 동양의 괴담 속 주인공들은 이유없이 사람을 해치는 서양의 좀비나 귀신들과는 다르다.   

 

진정한 두려움과 공포는 '무지(不知)' 즉 '미스터리(mystery)'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지적 영역의 한계. 곧 두려움과 공포의 원천은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인간 그리고 그 심리에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제가 보기에는 당신들이 훨씬 더 무서워요. 병자나 노인이나 죄인을 모두 아다치 가에 밀어 넣어 가두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얼구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지요. 그 '도깨비'는 당신들이 토해 낸 더러움을 전부 빨아들이고 짊어져 주고 있는데,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멀리 하려고만 해요. 당신들은 그렇게 깨끗한가요? 당신들은 그렇게 옳은가요?"

                                                                                             -이다치 가의 도깨비 中-


고용 하녀출신으로 사사야로 시집을 오게 된 며느리가 도깨비와 함께 사는 시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시어머니 역시 고용 하녀출신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니혼바시도리초의 조수야''라는 비단 도매상에서 하녀 고용살이를 했단다. 그런데 실은 그녀는 조슈야의 주인이 하녀에게 손을 대서 태어난 아이였다. 조슈야의 안주인은 남편의 부정으로 태어난 그녀를 예뻐할리 없었기에 그녀는 하녀아닌 하녀로 성장했더랬다. 부친이 말년에 이르러 올바르게 성장한 딸을 데리고 고향인 구와노 여관마을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만 고향 마을에서 중병에 걸리고 만다. 사찰에서 병치레를 하던 모녀는 결국 마을의 흉가나 마찬가지인 이다치 가에서 머물게 된다. 병든 주인이 타지에서 작고하자 본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시신을 거두어 갔다. 그리고 딸은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이다치 가에 홀로 남져져 도깨비와 친구가 되었다. 사실, 도깨비는 사람들이 멀리하는 병들고 더러운 '기(氣)'가 모인 것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도깨비와 함께 살게 된 화자의 시어머니는 젊은 여자 혼자 몸으로 에도에 돌아와 붓 가게의 행수와 가저을 꾸리고 지금의 사사야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종종 자극적인 스토리의 작품을 읽다 보면 '구성'의 정교함을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하곤 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역시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이다치 가의 도깨비>라는 작품 역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빼어난 '플롯'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면 어느 순간 머리속이 텅 빈 것처럼 도무지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해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분명 생생한 체험의 뒷끝이 남아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망각되어 버린......

 

이는 훌륭한 단편 소설의 특징이다. 치밀한 구성과 배경으로 독자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초대하되, 축제가 끝나고 초대받은 손님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축제가 즐거웠다는 느낌만 남을 뿐 구체적인 축제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작품 속에서 구현된 주제가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이 잘 기억나는 영화나 작품을 보면 솔직히 주제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지 않은가. 주제의 구현에 실패했으니 남는 건 형식 즉 내용 뿐인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서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작가들과 구별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녀와 그녀의 작품을 알게 되어 기쁘다.

 

참고로,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작들을 접하면서 일본 에도 시기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인의 철저한 장인정신이라든지 가업을 이어가는 풍토 등은 에도 시기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도제형식과 엇비슷한 에도 시대의 고용살이는 신분사회의 주종관계과 실력위주의 사회질서가 절묘하게 혼합된 형태로 지금의 '일본정신'을 탄생시켰다. 작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혼신을 다해 연구 노력한 끝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과 영역'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에도시대의 상인들이과 평민들의 생존 방식이자 현대 일본의 성공신화를 이끈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맏딸이라고 칭해지는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 소설 뿐만 아니라 현대 추리 소설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그녀의 현대 추리소설인 <모방범>, <화차>, <이유>, <낙원> 등등을 만나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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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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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한때의 끌림일 뿐이다.'

 

중국대륙출신 미국작가인 하진의 <기다림>은 '절대적 사랑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는 보편적인 상식에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이다. <기다림>은 중국 현대사의 오점이기도 한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시기를 다룬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정치적인 비난도 불운한 시대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거친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어느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이야기일 뿐이다.

 

무지(木基: 하진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중국 동북지역에 있는 가상의 도시이름)시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는 쿵린에게는 고향마을에 부모님의 강압에 못이겨 결혼한 아내 류수위와 딸 화가 있다. 류수위는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족'을 한 시골 아낙네로 어느모로 보다 인텔리인 쿵린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고아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간호사 우만나는 남자친구 둥마이에게 버림받은 후, 점잖고 지적인 쿵린을 사모하게 된다. 쿵린 역시 그런 우만나와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 그러자면 우선 아내와 이혼을 해야만 한다.

 

린은 조금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관 동무, 저, 저는 제 아내와의 이혼을 허락해주십사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희 부부는 6년 동안 떨어져 살았으며 더 이상 부부로서 애정이 없습니다."

(...)

린이 말을 마치자 재판관이 그녀를 바라봤다.

"류수위 동무, 마지막으로 동무에게 묻겠소. 동무는 남편에게 미련이 남아 있소?"

"그럼요, 물론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마음이 흔들린 듯그녀는 신음을 내뱉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시오?"

"예"

-하진, <기다림>, 시공사 186p~187中-

 

결국, 쿵린은 아내와의 합의 이혼에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간다. 그동안, 불미스러운 일들을 겪은 데다가 혼기까지 놓쳐버린 우만나에게는 쿵린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마침내 법적으로 이혼이 가능한 세월이 흐르고 아내 류수위도 무지시 법원에서 이혼에 동의하게 된다. 드디어 쿵린과 우만나는 기나긴 기다림을 끝내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쿵린과 만나는 40대 중, 후반의 나이지만 쌍둥이 아들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아내 만나의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서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져간다. 졸지에 아내의 병간호와 쌍둥이 아들을 돌보게 되면서 쿵린 역시 피폐해져만 간다.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정말 그 여자를 사랑해?

린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겨우 대답했다.

그렇다고 생각해. 우리는 18년 동안이나 서로 기다렸잖아. 그 정도 세월이라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고도 남아. 아니지. 세월이 증명하는 건 하나도 없어. 사실 너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냥 한때 반했던 것뿐이야. 하지만 기회가 없어서 그게 사랑으로 커지거나 발전하진 않았지.

(...)

너는 사랑이 뭔지 몰라. 사실 18년을 기다렸다고 하지만, 그건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이었을 뿐이야.

(...)

그 세월 동안 너는 몽유병자처럼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한거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끌려가면서 말이야. 외부의 압력에, 너만의 환상에, 스스로를 내면화한 규정에 끌려가면서, 좌절과 수동적인 태도 때문에 너는 잘못된 길로 간 거야. 자기한테 허용되지 않은 일들이야말로 마음속 깊이 원하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하진, <기다림>, 시공사, 454p~456中-

 

'사랑이란 한때의 끌림이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18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 긴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쿵린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람에게는 가슴 떨리는 사랑보다는 편안한 잠자리와 따듯한 식사가 있는 가정이 더더욱 절실한 법이다.

뜨거운 끌림도 사랑도 없는 결혼이라고 생각했지만 쿵린은 이혼한 아내 류수위에게서 가정의 따스함과 평온함과 함께 삶의 행복을 느낀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혹은 계산적인 사랑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하진의 <기다림>은 사랑의 본질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이질성'이야말로 비주얼적 요소와 환타지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현대 문단에서 하진의 작품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주된 이유이리라.  

 

18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끝에 만나는 결국 쿵린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쌍둥이 아들까지 출산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제 더이상 뛰기를 거부한다. 

사랑이, 그녀의 삶을..

그녀의 생명을...

그녀의 심장을...

소진시켜 버린 것이다.

 

우만나는 분명 사랑 가득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분명 사랑이 필요하지만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될 수 없다'는 본질을 너무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하진의 <기다림>은 무려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품에 있었던 작품이다. 최근 장시간의 독서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몸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본의 아니게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오히려 쉬엄 쉬엄 긴 호흡으로 읽어내려갔기에 작품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비록 재미와 감동은 덜 하지만 긴 여운을 가져다 준, 보기 드물게 훌륭한 작품이다.


사랑 역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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