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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평점 :

차례
- 꿈속의 자살
- 그림자 감옥
- 이불방
- 매화 비가 내리다
- 이다치가의 도깨비
- 여자의 머리
- 가을비 도깨비
- 재티
- 바지락 무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 미야베의 작품이다. <괴이> 역시 에도를
배경으로 한, 아홉편의 괴담으로 묶여 있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속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오캇피키 '에도인의 모시치'가
등장하는 데 반해, <괴이>에서는 꿈속의 자살과 바지락 무덤 등을 제외하고는 오캇피가 등장하지 않으며 등장한다 하더라도
역할은 매우 미비하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전설을 기본 얼개로 한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면 <괴이>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한 시대 미스터리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전작에 비해 '사회성'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이한 이야기>를 일본판 '전설의 고향'이라고 한다면 <괴이>는 일본 고대판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나
할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인간인 것 같다.
시골 논 속의 저수지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매화나무 숲, 가을비로 흐릿해진 그곳에서, 오쓰타는 도깨비를 만났다고 한다. 도깨비와 눈이 마추쳤다고 한다.
그 도깨비의 정체는, 때마침 이렇게 저수지 수면에 비친 오쓰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어르신이 먼발치에서 보았다고
호소하던 도깨비도 매화나무 숲에 서 있는 오쓰타의 모습, 소작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오쓰타의 모습, 그녀 자체가 아니었을까.
차가운 가을비에 사람의 가죽이라는 가면이 녹아, 본모습을 드러내고 서 있는 도깨비의 모습이
아니었을
까.
-가을비 도깨비 中-
'악마는 언제나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가메이도 마을의 어느 지주집 어르신과 일꾼 소개소의 주인 도미조에게 오쓰타는 착한 천사의 모습으로 비춰졌듯, 시게타로 역시
오신에게는 착하디 착한 남자친구의 모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던 오쓰타는
어째서 오신을 해치지도 않고 오히려 남자친구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했던 것일까. 가을비에 녹아 내린 자신의 본모습을 가을비 속에서
회상하고는 자신과 같은 악마에게 희생될 것이 뻔해 보이는 오신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오쓰따 역시 처음부터 악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하녀에 불과했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서히 악독해졌을 것이다. 물론, 힘든 상황에 처한 모든 이들이
범죄의 구렁덩이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가을비 도깨비>는 귀신이나 원령은 사실 따지고 보면, 악한 인간이나 억울한 영혼들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처럼 동양의 괴담 속 주인공들은 이유없이 사람을 해치는 서양의 좀비나 귀신들과는 다르다.
진정한 두려움과 공포는 '무지(不知)' 즉 '미스터리(mystery)'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지적 영역의 한계. 곧 두려움과 공포의 원천은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인간 그리고 그 심리에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제가 보기에는 당신들이 훨씬 더 무서워요. 병자나 노인이나 죄인을 모두 아다치 가에 밀어 넣어 가두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얼구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지요. 그 '도깨비'는 당신들이 토해 낸 더러움을 전부 빨아들이고 짊어져 주고 있는데,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멀리 하려고만 해요. 당신들은 그렇게 깨끗한가요? 당신들은 그렇게 옳은가요?"
-이다치 가의 도깨비 中-
고용 하녀출신으로 사사야로 시집을 오게 된 며느리가 도깨비와 함께 사는 시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시어머니 역시 고용 하녀출신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니혼바시도리초의 조수야''라는 비단 도매상에서 하녀 고용살이를
했단다. 그런데 실은 그녀는 조슈야의 주인이 하녀에게 손을 대서 태어난 아이였다. 조슈야의 안주인은 남편의 부정으로 태어난 그녀를
예뻐할리 없었기에 그녀는 하녀아닌 하녀로 성장했더랬다. 부친이 말년에 이르러 올바르게 성장한 딸을 데리고 고향인 구와노
여관마을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만 고향 마을에서 중병에 걸리고 만다. 사찰에서 병치레를 하던 모녀는 결국 마을의 흉가나 마찬가지인
이다치 가에서 머물게 된다. 병든 주인이 타지에서 작고하자 본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시신을 거두어 갔다. 그리고 딸은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이다치 가에 홀로 남져져 도깨비와 친구가 되었다. 사실, 도깨비는 사람들이 멀리하는 병들고 더러운 '기(氣)'가 모인
것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도깨비와 함께 살게 된 화자의 시어머니는 젊은 여자 혼자 몸으로 에도에 돌아와 붓
가게의 행수와 가저을 꾸리고 지금의 사사야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종종 자극적인 스토리의 작품을 읽다 보면 '구성'의 정교함을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하곤 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역시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이다치 가의 도깨비>라는 작품 역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빼어난 '플롯'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면 어느 순간 머리속이 텅 빈 것처럼 도무지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해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분명 생생한 체험의 뒷끝이 남아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망각되어 버린......
이는 훌륭한 단편 소설의 특징이다. 치밀한 구성과 배경으로 독자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초대하되, 축제가 끝나고 초대받은
손님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축제가 즐거웠다는 느낌만 남을 뿐 구체적인 축제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작품 속에서 구현된 주제가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이 잘 기억나는 영화나 작품을 보면 솔직히 주제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지 않은가. 주제의 구현에
실패했으니 남는 건 형식 즉 내용 뿐인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서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작가들과 구별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녀와 그녀의 작품을 알게 되어 기쁘다.
참고로,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작들을 접하면서 일본 에도 시기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인의 철저한 장인정신이라든지 가업을 이어가는 풍토 등은 에도 시기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도제형식과
엇비슷한 에도 시대의 고용살이는 신분사회의 주종관계과 실력위주의 사회질서가 절묘하게 혼합된 형태로 지금의 '일본정신'을
탄생시켰다. 작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혼신을 다해 연구 노력한 끝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과 영역'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에도시대의 상인들이과 평민들의 생존 방식이자 현대 일본의 성공신화를 이끈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맏딸이라고 칭해지는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 소설 뿐만 아니라 현대 추리 소설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그녀의 현대 추리소설인 <모방범>, <화차>, <이유>, <낙원> 등등을 만나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