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히 많이 알려진 위화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의 현대 소설에서 매혈(賣血)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인 것같다.
내공 있는 역자의 이름에 이끌려 우연히 읽게 된 옌롄커(阎连科)의 장편소설 <딩씨 마을의 꿈(丁莊梦)> 역시 '매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처럼 해학적 도구로써 매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매혈과 이로 인한 에이즈(AIDS)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작가는 한국어 번역본에 부치는 작가의 말에서 '2005년 중국에서 이 작품이 출판된 직후 바로 5금(5禁: 출판, 홍보, 게재, 각색, 비평등을 금지하는 것)조치가 내려져 더 이상 중국의 독자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무지몽매한 인민들로 하여금 피를 팔게 하고, '열병(작품에서는 AIDS 대신 열병이라 표현함)'으로 죽어나가는 인민들에게 약 대신 관을 판매하여 또 다시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딩후이'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인민들에게 매우 위험한 책으로 비춰졌을 것이고 그래서 판매금지가 되었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붉은 기운이 감돈다. 그냥 붉은 것도 아니고 검붉다. 붉은색은 중국을 상징한다. 이 세상에서 중국인들만큼 붉은 색을 선호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옌롄커라는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중국을 대표하는 붉은색으로 중국인을 대표하여 중국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핏발 선 붉은 필체로 고발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
역자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심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바로 '참회의 정신'이라고 일갈한다. 서양의 문화 특히 독일의 문학이 과거의 잘못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참회'를 바탕으로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는 반면, 현재의 중국에게 과거란 둘 중 하나이다. 널리 알려 자랑하고픈 영광의 과거와 깨끗이 지워 없애 버려야하는 잊혀진 과거가 바로 그것이다. 종이와 나침반 화약을 발견한 과거는 영광의 과거이고, 국가가 주도한 매혈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은 깨끗이 지워 없애야 하는 잊혀진 과거인 것이다.
작가 옌롄커의 잘못이라면 이런 잊혀진 과거를 다시 상기하고자 한 것 뿐이다. 작품 속 화자가 이미 죽어 땅에 묻힌 '딩후이'의 12살 어린 아들이라는 점 역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책임이 있고 죽어서도 갚지 못할 죄라는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책장을 무겁게 넘기고 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딩씨 마을의 꿈을 앗아간 중국의 꿈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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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1월 중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교포분으로부터 장쯔이 주연의 영화 <大爱>가 최근 개봉됐는데, 옌례커의 <딩씨 마을의 꿈>을 원작으로 한 것 같다고 한다. 이미 죽은 7살짜리 꼬마가 작중 화자로 나온다니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