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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
서명수 지음 / 아르테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은 신문기자인 저자가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접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단상이다. 저자가 글을 쓰던 2006년도는 베이징 올림픽을 코 앞에 둔 시점이라 중국 사회의 변화가 그 어느때보다 컸던 시기다.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은 기대와 희망 속에서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했고 저자 역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 역사적인 순간들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비 록 책이 나온 이후 5년이란 세월이 흘렀기에 지금의 중국 및 중국인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2002년 당시 내가 접했던 중국인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있는 독서가 되었다. 특히, 저자가 윈난 여행길에서 만났던 노교수 부부의 모습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20대 중반의 지식층이었던 그들이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에 의해 비판받고 결국은 한살배기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저장성의 한 시골마을로 떠나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을까...
무 려 십년이다. 강산도 바뀐다는 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건너왔을까. 저자의 질문에 말을 아꼈다는 노부부... '그래,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문화대혁명은 이들 노교수 부부처럼 무고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세상이 바뀐 틈을 이용하여 권력과 부를 쌓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테고, 젊은 혈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발산한 홍위병 출신의 가해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던 이들은 모두 동시대를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중국의 라오바이싱인 것이다. 류전윈이나 옌롄커(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허난성 출신이다) 등 요즘 온통 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당대 중국작가들의 신역사주의(혹은 사실주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다코우(五大口)의 지질대학 교수 사택에 거주한다는 그들 노부부를 바라보는 내 눈길은 경건함도 아니고 애틋함도 아닌, 아니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는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저장성의 원저우와 장쑤의 쑤저우식 경제발전 모델을 비교한 부분이나 중국식 지역감정의 현장인 허난인에 대한 차별은 중국에 대한 좁디 좁은 내 안목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자 또한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평범한 외국 유학생이라면 결코 접근하기 어려웠을 798의 예술가나 민영기업가들 그리고 벼락부자등을 취재하여 그들의 일과 삶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어설픈 감상이나 겉핥기식 취재기가 아니라 저자의 심도 있는 시각과 관점이 잘 어우려져 중국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메세지를 전달해 준다.
다만, 기자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출판사측의 세심한 뒷마무리가 있었다면 발각되지 않을 '실수'였는데 아쉽다. 아마 저자도 출판된 책을 보며 안타까워했을 것 같다. 좋은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좋아야 독자의 선택을 받고 또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어찌됐던 저자의 열정과 장기간에 걸친 취재로 탄생한 책이 어쩌면 앞으로 중국 현대사의 한켠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책이 불필요한 실수로 인해 평가절하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자의 말'에 언급되어 있는,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는 그 중국인 친구-부친은 인민해방국 장교로 한국전에도 참전했고 북한에서도 5년 머물렀다 귀국했으나 문화대혁명때 탄압받아 옥살이를 하다 결국 옥사하고, 아들인 그 친구 역시 이런 아버지의 '신분'때문에 대학을 졸업했었도 직장을 배정받지 못했고, 그래서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는-에 대한 이야기가 본문에서 나올 것이라 기대했으나 기대는 실망과 아쉬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마, 예민한 문제라고 판단하여 '자체검열'로 누락됐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끝으로, 중국인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최근의 내 화두(?)를 정리하는 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