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미래 - 세계 경제의 운명을 바꿀 12가지 트렌드
다니엘 앨트먼 지음, 고영태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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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예측이 빗나갔을때 질타와 비난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예측이 맞았다 하더라도 후폭풍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후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10cm높아진다고 예측했다고 하자. 만약 이 예측이 빗나간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지만 반대로 예측대로 해수면이 10cm나 상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예측이 맞았다고 기뻐만 할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변화를 가늠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 까닭은 일종의 '경고음'과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미래일수록 불가항력적인 예측일수록 경각심을 높인다면 얼마든지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 수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옛말처럼 미리미리 대비를 철저히 하면 재앙을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봤을때, 기자출신 경제학자인 대니얼 앨트먼이 2011년 현재 내다본 <10년후 미래>는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특히, 그는 다수의 학자들이 중국의 부상과 지속적인 성장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추락'을 점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로 손꼽힌다. 일단, 중국의 성장은 '수렴현상'에 근거하고 있는데 경제학에서 '수렴이론'이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들이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결과적으로 국민소득 측면에서 한 곳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니엘 앨트먼은 이와같은 수렴현상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수렴이론에 따라 발전하지 않은 국가들 또한 많다고 주장한다.


예 를 들면, 전후 독일과 일본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 6,70년대 독일과 일본은 미국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실현했으며 특히 80년대에는 일본이 미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세상을 뒤덮었지만, 결론적으로 독일과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은 고도 성장이후 장기침체에 빠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는 더이상 독일과 일본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저자는 <10년후 미래>에서 중국이 규모면에서는 향후 10년 안에 잠시잠깐 미국을 앞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미국에게 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술 혁신이 수반되지 않는 성장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투명성 결여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를 결정적인 장애 요소로 꼽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성장이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다.


지적된 문제점들을 해결한다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다만, 이런 '딥팩트(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내재돼 있어 단기간에 변하기 힘든,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통칭. 예를 들면 지정학적 위치, 정치제도, 법률, 인구, 교육수준 등등)'의 수정 혹은 변화는 최소 수십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지 십수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여, 중국이 향후 십년 안에 미국을 따라 잡아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밖에도 <10년 후 미래>에서는 경제공동체로 묶여 있는 유럽연합(EU)의 몰락을 점치고 있다.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의 현 상황을 볼때, 저자의 지적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27개국을 회원국으로 둔 유럽연합은 회원국 간의 발전 단계의 차이와 이익의 공통 분모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분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다. 마찬가지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역시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경제적 이익이 골고루 돌아갈 때에는 팀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이익이 불균등하거나 분배할 이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팀의 해체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듯이 말이다.

 

대니얼 앨트먼이 그려낸 10년 후 미래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인구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선진국들은 향후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세계 각국 특히 선진국의 중상류층들은 낮은 세금과 저렴한 물가 그리고 사회적 인프라가 잘 확립되어 있는 국가와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갈 것이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공간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으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영어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며, 이들이 선호하는 지역 역시 영어 사용이 가능한 곳이거나 그들만의 배타적 공간을 형성할 개연성이 크다.


이 와 같은 현상으로 후진국들은 인재유출 현상을 심각하게 겪게 되고 성장 동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은 모습에 가장 근접한 곳으로는 '두바이'나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겠다. 두바이나 싱가포르는 전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모여들어 '미들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출신 국가나 인종을 막론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저임금 서비스직종에는 인건비가 낮은 국가에서 건너온 이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다니엘 앨트먼은 행후 정치제도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특징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는 바, 특히 남미와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며, 세계 각국의 정권은 '좌'와 '우'를 시계추처럼 오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화는 국가와 국가간의 격차는 줄어들었으나 국가 내부에서의 양극화는 오히려 더욱 심화시켰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을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지 1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탐욕적인 금융시스템은 규제의 칼날을 피해 지하로 숨어 들면서 일명 '금융 암시장'의 형성을 예고했으며,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혜택을 누리는 반면 후진국들은 이로인해 더욱 가난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후진국들은 미흡한 정치운영과 부패한 지도자들로 인해 선진국과 불리한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고, 탄소배출권 거래로 후진국들은 더욱 더 심한 환경파괴와 오염에 시다리게 될 것이다. 

 

대충 살펴본 10년후 미래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미래에 대한 예측은 적중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인류의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에 있음을 기억하자.


한국은 그 어느 사회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가변성이 큰 나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니엘 앨트먼의 <10년후 미래>는 '유비무환'의 교훈을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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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사랑일까 - 불륜에 숨겨진 부부관계의 진실
리처드 테일러 지음, 하윤숙 옮김 / 부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하는 또 하나의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불륜에 숨겨진 부부관계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미국에서 1982년도에 초판이 출판되었다. 철학교수인 저자는 1990년 개정판 서문에서 '개방적인 미국사회에서도 책이 처음 출간되자 흥미위주의 그렇고 그런 삼류에세이물로 취급받거나 대학교수가 불륜에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조장한다는 등 여론의 질타를 받았단다. 특히, 금욕적 종교주의자나 불륜으로부터 가정이 파탄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산층 여성들-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내과 전문의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항의'가 가장 컸단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확립한 이후, 불륜은 지역과 인종을 막론하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일부일처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처럼 불륜이라는 현상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다양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후 또 하나의 필독서가 탄생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에릭 프롬이 '눈(독서)'과 '머리(사고)'로 <사랑의 기술>을 썼다면, 리처드 테일러는 '귀(인터뷰)'와 '눈(관찰)'으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불륜에 관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신문 광고를 내고 불륜 행위를 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 60대 노교수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의 고백을 들으면서 불륜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한다.

 

 

'불륜이 결혼을 망치는 게 아니라 '끝난 결혼'이 불륜을 낳는다!'

 

냉담한 아내와 지루한 남편이 배우자의 불륜을 부르는 온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이 비도덕적이고 심지어 불법적인 행위로까지 간주되어왔던 '불륜'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음은 일견 당연해보인다.

 

특히, 남자는 본능적으로 불륜에 빠질 소지가 여자보다 훨씬 높다는 주장에 다다르면 남성우월주의자로 비춰져 페미니스트들의 '표적'이 되기십상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하여 책장을 넘겨보다 보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별과 불륜 및 이혼에 대한 해박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남성들이 바람을 피우는 데에는 생물학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바람을 잘 피우는 남성 유형'은 딱히 없다고 봐야 한다. 즉, 남자들에게는 바람을 피우는 이유가 남성성의 증명과 이를 통한 자신감 확인인 측면이 강해서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에 대해 냉담한 남자는 성인군자아니면 정서적으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남성의 경우 알콜중독이나 일중독 혹은 등산이나 낚시 등등 과도한 취미 활동에 집착 혹은 몰입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아내는 정서적 공허감에 허덕이다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면 예상외로 쉽게 넘어가면서 소위 '불륜'에 빠지게 된다고 역설한다.

 

 

흔히,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남편을 둔 아내들의 성적 일탈은 이처럼 남편의 무관심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한다. 이때 불륜에 빠지는 상대 남자는 객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남편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허다해서 아내의 불륜과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된 남편이 "내가 도대체 그 놈팽이보다 못한 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와 같은 남편의 반응은 한편으론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남편일수록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형편없는 그 '놈팽이'가 그동안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해왔거나 몰랐던 아내의 가치와 재능을 알아보고 진심으로 격려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깨닫기 못한다.

 

 

자, 여기에서 리처드 테일러는 소위 '바람둥이 남자'의 유형을 도출해 낸다.

여자에게 인기 있는 남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외모나 조건 등에서 뛰어난 점이 없거나 오히려 평균 이하인 경우가 허다하다. 대머리에 게으르거나 종종 품행이나 인품이 나쁜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남자들이 바람을 피울거라고는-즉, 이성에게 매력적일거라고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남자들은 여자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의 욕구란 바로 정서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고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성적인 매력이나 혹은 기타 돈이나 사회적 지위등에 이끌려 불륜에 빠진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그저 일부 특수한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사실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들은 성적인 매력이나 행위 자체에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특히, 젊고 매력적이며 능력있는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면 '바람둥이 여자'의 유형은 없는 걸까?

리처드 테일러는 상담 결과, 불륜에 빠지는 여자의 유형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섹시하고 세련미가 넘치는 여자가 아니라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여성일수록 애정결핍 상태에 빠져 있으며,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한 여성의 경우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종종 부적절한 관계에 빠지곤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여성은 상대 남자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시켜 어린 시절 만족되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이처럼 불륜행위가 충족되는 않은 어린 시절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불륜은 반복될 소지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내제되어 있는 본질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았거나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부정(父情)을 어떻게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겠는가? 이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린 딸을 키우는 부모 특히 아빠들이 어떤 식으로 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하는지 새겨 들을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불륜이 발생하는 원인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 불륜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불륜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언제나 허무하고 씁쓸하게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러므로 저자는 배우자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면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충고'한다. 폭풍우가 거세게 휘몰아칠때는 그 어떤 바람막이도 부질없듯이 묵묵히 지켜보면서 배우자의 불륜과 일상(결혼생활)을 분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감정의 동요를 막을 수 있다. 특히, 남편의 부정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며, 아내의 부정은 남편이 무능하거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다. 폭풍우는 언젠간 그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엔 산뜻한 태양이 떠오른다.

 

 

남자들 중에는 종종 자신의 불륜을 아내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거나 심지어 두 여자를 한자리에서 마주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봤지! 나, 이런 남자야!"라는 말을 은연중에 다른 남자들에게 과시함으로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확인하면서 자존감을 높이려는 심리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리처드 테일러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하기도 한, 이와 같은 남성들의 행동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정서적 모욕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질타한다. 한때의 자기 과시와 만족이 결혼생활을 되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아가며 인생을 통털어 되돌이킬 수 없는 절대절명의 실수라고 지적하다. 왜냐하면 이런 남편의 불륜을 폭풍우로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여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장한다.

어쩔 수 없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그리고 배우자 곁을 떠날 생각이 없다면 무덤까지 안고 가는 비밀로 덮어두어야 한다고...

 

그리고 저자는 불륜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제3자에게도 비밀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타인의 불륜을 '약점'으로 이용해서도 화제로 삼아서도 안되며 우정 운운하며 당사자의 배우자들에게 알리는 불찰을 저질러서도 결코 안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불륜 당사자 혹은 관계자가 취해야 할 현명한 태도를 언급하면서 글을 맺는다.

 

 

 

만약,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거나 본인이 불륜에 빠졌다면,

 

첫번째 규칙: 염탐하거나 몰래 뒤를 캐지 말라.

두번째 규칙: 증거를 들이대거나 함정에 빠뜨리지 말라.

세번째 규칙: 상황에서 벗어나 있으라.

네번째 규칙: 질투의 감정에 빠지지 말라.

다섯번째 규칙: 죄의식에 빠지지 말라.

여섯번째 구칙: 불륜 사실을 알리지 말라.

 

 

불륜 당사자라면,

 

첫번째 규칙: 상대의 욕구를 알아야 한다.

두번째 규칙: 정직해야 한다.

세번째 규칙: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말라.

네번째 규칙: 최후 통첩을 날리지 말라.

다섯번째 규칙: 불륜 사실을 폭로하지 말라.

여섯번째 규칙: 버리지 말라.

 

 

불륜으로 이혼에 직면하게 되었다면,

 

1단계: 변호사를 개입시키지 말라.

2단계: 필요에 대한 평가

(추가설명: '원하는 것' 또는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것의 목록을 간단하게 작성한다)

3단계: 누가 더 필요한지 비교한다.

4단계: 별거합의, 첫번째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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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알라딘중고서점 강남점까지 일부러 찾아갔더랬다. 내가 원하는 책이 입고되었기 때문이다.

정가의 1/2밖에 되지 않는 가격에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새것이나 다름없는 책을 품에 안았다.

바로 스티븐 킹의 <살렘스 롯>이다.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살렘스 롯>은 한가롭기만한 뉴잉글랜드의 한 마을에 어느날 갑자기 흡혈귀가 출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언뜻 보기에 그렇고 그런 공포소설로 보이지만 작품이 던지는 주제의식은 사뭇 묵직하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훨씬 더 전에 쓰여진 작품이건만 놀라우리만치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추고 있다.

 

다들 요즘 뉴스 보기가 겁난다고 한다. 그 어떤 공포추리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훨씬 더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강력범죄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혹은 인간이기를 거부한 또 다른 '인종'에 의해 저질러진 것만 같다. '괴물의 탄생'이라는 선정적인 부제처럼...

 

다시 스티브 킹의 작품 얘기로 돌아가보자.

일찍이 스티브 킹은 인터뷰에서 <살렘스 롯>에서 정말로 무서운 건 흡혈귀 자체가 아니라 흡혈귀의 출몰을 불러온 '마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통과 교류가 단절된 마을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하며 경쟁 일변도로 치닫는 마을...

스티븐 킹은 작품속에 흡혈귀를 등장시켜 소통 부재인 현대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4가구 중 1가구가 1인가구라고 한다. 앞으로 20년 뒤인 2030년이 되면 그 비율은 1/3로 높아질 전망이란다.

다닥다닥 벽을 마주하고 들어서 있는 집들...

서로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익명의 바다...

일대일 대면접촉보다는 최첨단 기기를 통한 간접접촉이 주류가 된 사회...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소위 '괴물의 탄생'을 부채질한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강력범죄자들은 가족과 인연을 끊고 혼자 생활해 왔으며 변변한 직장이나 친구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사회적 관계망의 부재야말로 괴물의 탄생을 불러온 온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고로,

흥 미로운 점은 얼마전에 자수한 한 용의자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평범한 젊은이로 아버지가 공개수배사진을 보고 아들임을 직감한 후, 아들을 설득하여 자수하게 했다고 한다. 만약 이 아버지가 자식의 범죄를 모르는 척 했거나 아니면 '너 같은 놈은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하며 외면했다면 그 용의자는 아마도 서서히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범죄를 반복하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괴물로 변해가지 않았을까.

 

가족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부모의 역할과 도리는 무엇이며 인간의 길은 또한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해준다.

.

.

.

벌써 가을이다.

장르추리소설을 탐독하다 문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쪽빛 하늘만 계속되었으면 싶다.

그럼, 그 하늘 아래 세상도 아름답기만 할 것같은데...

 

 

ㅡ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을 읽다가 문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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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매더
스티븐 킹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8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은 영화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장르소설과 순수소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한명이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와는 달리 그의 작품들을 정독한 사람들은 생각외로 드문데, 그 이유중에 하나는 방대한 작품 양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장편들은 2~3권은 기본이기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려는 독자들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일찍부터 스티븐 킹의 매니아라고 자처해 왔던 나 역시 단편모음집들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샤이닝>으로 이어지는 '스티븐 킹 제대로 읽기' 미션은 나에게 부담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그리고 덜 알려진 <로즈 매더>를 알게되고 만나게 되는 행운은 덤이었다.


고려원에서 1996년에 출판한 <로즈 매더>는 이제는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운좋게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로즈 매더>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달려가 단돈 3,500원에 구입했다. 마치 학창시절 단체소풍 갔다가 보물 찾기에서 숨은 보물을 찾아냈을 때만큼이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로즈 매더>는 <돌로레스 클레이본>, <제럴드의 게임>과 함께 스티븐 킹의 여인3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책의 겉 표지에는 로즈매더 로즈 매더(rose madder) 빛깔로 인쇄되어 있었다. 로즈매더는 핏빛 붉은 색을 가리키는 단어이자, 14년 동안 남편에게 학대받아온 작품속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로즈 맥클런던 대니얼은 고등학교 시절 노먼 대니얼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반강제로 결혼을 한 이후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 살았다. 환상만이 그녀를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구원해줄 수 있었다. 실제로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여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고 자기 존중감이 결여되어 있고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한다. 폭력이 사람의 숭고한 정신과 이성을 갈아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남성의 문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려깊은 솜씨로 폭력에 길들여진 여성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특유의 구성 방식으로 독자들을 작품속으로 끌어들인다. 


놀이공원, 황소가면, 고대사원, 미로, 생명의 나무, 망각의 샘물 등등...

스티븐 킹은 서양의 신화적 모티프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가 많은 <로즈 매더>를 한편의 환상문학으로 탄생시켰다. 스티븐 킹은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 몽환적이면서 과학적인 자연현상인 일식을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사건과 연결시켜 독자의 탄성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런 스티븐 킹이 <로즈 매더>에서는 환상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옷장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듯, 로즈는 자신을 찾으러 온 남편을 피해 그림 속으로 달아난다. 로즈매더 빛깔의 가운을 걸친 여자가 황폐한 사원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으로 말이다. 그러나 도망친 아내를 지옥끝까지 쫒아가서라도 잡아오고야 말겠다고 작심한 노먼 대니얼 역시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 아내가 숨어 들어간 그림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현실이 아닌 그림속에서 쫒고 쫒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 즉 불가사의한 미스터리야말로 스티븐 킹의 전문분야이다.

스티븐 킹은 일찍이 '초능력을 믿지는 않지만 세상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인한 현상과 또 다른 차원의 세계는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존재하지만 이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되어 질 수 없는 것! 바로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근원이자, 스티븐 킹의 작품세계가 펼쳐지는 출발점이다. 


흔히, 인간은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한다.

그게 더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진 말자.

우린 눈에 보이는  2차원 평면의 세계가 아니라 3차원의 세계인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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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번역은 창작에 비해 중요성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번역가는 작가에 비해 사회적 지위나 지명도가 훨씬 낮다.

그러나 출판 시장의 3/4이 외서 번역물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번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흔히, 감동적인 작품을 접하게 되면 작가의 뛰어난 실력만을 높게 평가할 뿐, 번역가의 숨은 노력을 인정해주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이처럼 사회적 관심이 적은 만큼 번역가들의 작업 방식과 삶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번역은 내 운명: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6>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스페인어) 번역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6명의 번역가들이 풀어 놓은 이야기를 엮은 수필집이다.

 

 

개인적으로 이종인 번역가가 쓴 <번역은 글쓰기다>라는 에세이집을 흥미롭게 읽었을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중국어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비록 언어권은 다르지만 동종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영어권과 일본어권은 번역의 역사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 츨판되는 물량 자체가 많다보니 저자 못지 않은 지명도를 갖춘 번역가들도 여럿 있다. 영어권 뿐만 아니라 일본어권만 보더라도 양억관 김난주부부와 양춘옥-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및 권남희 번역가 등도 열혈 팬(?)을 거드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권에서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진 전문 번역가가 딱히 없는 것 같다. 물론, 김태성 번역가가 현대 중국 문학작품을 상당히 많이 번역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열심히 소개하고 있지만 중국소설은 아직까지 영어나 일본 소설만큼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지 못한 관계로 일단 양적인 부분에서 불리(?)하다 하겠다. 앞으로,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발달하면서 중국어 역서들이 널히 읽히게 되면 중국어 번역 분야에서도 지명도 있는 번역가가 등장하리라고 본다.

 

 

 

자, 그럼 번역을 운명으로 여기는 6인의 번역가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우선, 촘스키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강주헌씨다. 그는 지금까지 번역 작업한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번역가로 살아가는 일상들을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당히 솔직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 특히, 박사학위를 취득한 동년배들이 주로 대학에 몸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문 번역가의 길을 선택한 그의 삶을 보면서 뭐랄까... 부끄러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숙연함이 들었다.

 

 

일본어 번역가인 권남희씨는 밝히고 싶지 않았을수도 있는 개인사-이혼-를 당당히 거론(?)하면서 번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이런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번역가들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흔히, 전문직 프리랜서의 대명사로 알려진 번역가라고 하면 상당수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하면서 고소득을 올리는 '골드칼라' 직종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이런 이들에게 권남희 작가는 삶에 대한 치열함과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무장한 번역가의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요즘 일본어 번역서들을 자주 읽는데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토야마 아키코와 온다 리쿠의 작품을 꼭 읽어봐야겠다. 그 자체로도 한편의 '작품'이라 할만한 그녀의 '역자후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같다.

 

 

이 밖에도 한국에 마류야마 겐지의 작품을 처음 소개한 김춘미 번역가 역시 중견 번역가로 손색이 없다. 특히, 강단에서 강의하시는 분답게 번역의 이론과 실천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좋은 번역이란 우선 언어적 문화적으로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두 번째로는 원문의 분위기와 정서를 충분히 전달하되 원작의 리듬 호흡 문체적 특징을 충실히 재현해야 하고, 세번째로는 번역된 텍스트가 그 나라의 문학작품으로도 매력적인 읽을 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음 속 깊이 새겨 둘만 하다.

 

 

아시아출신 작가로서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번역가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문학과 미국 문화를 융합시킨 작가로 알려진 그의 글로벌적인 분위기는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스콧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등 미국 소설들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잉태되었다는 김춘미 번역가의 지적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어쩌면...

나에게 '번역'이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내 어릴 적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

 

 

스페인 문학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멀게는 <돈키호테>로 가깝게는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거미여인의 키스>등의 작품으로 고급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나 역시 국문학도였던 시절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는 매우 어렵다는 생각에 도중에 포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연극뿐만 아니라 세계문학필독서에 일찌감치 이름이 올라가 있어 제목만큼은 낯설지 않은데 아직까지 읽어 보지 못해 유감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 문학 번역가로 손꼽히는 송병선 교수의 말에 따르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적인 문체로 그리고 마누엘 푸릭은 사람의 교묘한 심리를 포착하는데 명수라고 하니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두 작가의 작품만큼은 잊지 말고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할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만나 보리라.

 

 

특히, 송병선교수는 출판사에서 번역을 의뢰받는 '수동적 번역'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당 국가의 문학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능동적인 번역'을 강조하고 있다. 번역 일이 없다고 푸념하기에만 바쁜 '초짜' 번역사들에게 좋은 '정문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이종인 번역가는 지금까지 몇 권의 번역서를 낸 말 그대로 '초짜' 번역가인 나에게 모름지기 번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번역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직업적 소명의식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분이다. 물론, 나는 이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분이 쓰신 에세이집을 통해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진정한 번역가'의 자세를 배웠다는 뜻이다.

 

 

훌륭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지적은 번역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자세이건만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종인 번역가에 따르면 번역가란 영사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상들을 고스란히 비추어주는 영사 스크린이 되어야 한단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 주지만 독자적인 생각이나 관념을 투영시켜지 않는, 순수한 '백지와 같은 존재'야말로 진정한 번역가의 모습이리라. 또한 이종인씨는 훌륭한 번역서로서 정영목의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와 함께 일본어 번역가인 양억관이 번역한 <식스티 나인>을 꼽고 있어, 그의 해박한 독서세계와 폭넓은 관용의 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여섯번째 번역가로 소개된 최정수 번역가는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 <연금술사>를 번역한 이란다.

물론, 번역가들은 누구나 자신이 번역한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하지만 베스트셀러는 소수의 선택받은 번역가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역자의 뒤늦은 고백에 따르면 <연금술사>는 번역 출판된지 2~3년 후 뒤늦게 입소문을 타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니, 베스트셀러가 될 것임을 알고 번역을 결정하는 번역가는 거의 없는 듯 하다.

 

 

참고로,

너무 너무 유명한 책이라서 나 또한 2년전-그러니까 읽을 사람들은 거의 다 읽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뭐야?' '이게 끝이야? 무슨 베스트셀러가 이 모양이람.' 하고 푸념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최정수 번역가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에게 <연금술사>는 무지무지 따분하고 재미없는 책으로 기억되어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의 독서력이 아직 세계적인 명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낯선 작품 흐름과 구성에 따른 '낯가림'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왜 그렇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그리고 나는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당연히' 파울로 코엘료를 프랑스 등지의 유럽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더랬다. 그런데 최정수 번역가의 소개에 따르면 코엘료는 브라질 출신 작가로 모국어인 브라질어(포루투갈어)로 작품을 쓰지만 주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남미와 유럽 문학은 접할 기회가 별로 없거니와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멀리 하게 되는 것 같다.

 

독서도 지나친 편식은 곤란한 법.

하여,

최정수 번역가가 소개한 아니 에르노라는 여류작가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그녀는 1984 <아버지의 자리>로 르노도 문학상을 수상했단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한 낫고 싶지 않은 질병 '사랑', 아니 에르노가 말한 누리기 힘든 사치 '열정', 이런 것들은 반드시 살아 숨쉬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살면서 어떤 대상에 사랑과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일 것이다. 내겐 '번역'이란 작업이 그 대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정수(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 <번역은 내 운명> -

 

 

6인의 전문 번역가들은 하나같이 번역가로 살아가는 애로사항 중 하나로, 만만찮은 작업 난이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번역료와 그나마 번역료 지불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거나 심지어 받지 못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번역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열정을 피력하고 있다. 그만큼 번역이란 그 어떠한 경제적 보상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희열과 만족을 가져다 주는 '자기 몰입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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