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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매더
스티븐 킹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8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은 영화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장르소설과 순수소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한명이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와는 달리 그의 작품들을 정독한 사람들은 생각외로 드문데, 그 이유중에 하나는 방대한 작품 양이 아닐까 싶다. 그의
장편들은 2~3권은 기본이기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려는 독자들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일찍부터 스티븐 킹의 매니아라고 자처해 왔던 나 역시 단편모음집들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샤이닝>으로 이어지는 '스티븐 킹 제대로 읽기' 미션은 나에게 부담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그리고 덜 알려진 <로즈 매더>를 알게되고 만나게 되는 행운은 덤이었다.
고려원에서 1996년에 출판한 <로즈 매더>는 이제는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운좋게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로즈 매더>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달려가 단돈 3,500원에
구입했다. 마치 학창시절 단체소풍 갔다가 보물 찾기에서 숨은 보물을 찾아냈을 때만큼이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로즈
매더>는 <돌로레스 클레이본>, <제럴드의 게임>과 함께 스티븐 킹의 여인3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책의 겉 표지에는 로즈매더가 로즈 매더(rose madder) 빛깔로 인쇄되어 있었다. 로즈매더는 핏빛 붉은 색을 가리키는 단어이자, 14년 동안 남편에게 학대받아온 작품속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로즈 맥클런던 대니얼은 고등학교 시절 노먼 대니얼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반강제로 결혼을 한 이후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
살았다. 환상만이 그녀를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구원해줄 수 있었다. 실제로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여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하고 자기 존중감이 결여되어 있고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한다. 폭력이 사람의 숭고한 정신과 이성을 갈아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남성의 문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려깊은 솜씨로 폭력에 길들여진 여성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특유의 구성 방식으로 독자들을 작품속으로 끌어들인다.
놀이공원, 황소가면, 고대사원, 미로, 생명의 나무, 망각의 샘물 등등...
스티븐 킹은 서양의 신화적 모티프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가 많은 <로즈 매더>를 한편의
환상문학으로 탄생시켰다. 스티븐 킹은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 몽환적이면서 과학적인 자연현상인 일식을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사건과 연결시켜 독자의 탄성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런 스티븐 킹이 <로즈
매더>에서는 환상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옷장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듯, 로즈는 자신을 찾으러 온 남편을 피해 그림 속으로 달아난다.
로즈매더 빛깔의 가운을 걸친 여자가 황폐한 사원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으로 말이다. 그러나 도망친 아내를 지옥끝까지 쫒아가서라도
잡아오고야 말겠다고 작심한 노먼 대니얼 역시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 아내가 숨어 들어간 그림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현실이 아닌 그림속에서 쫒고 쫒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 즉 불가사의한 미스터리야말로 스티븐 킹의 전문분야이다.
스티븐 킹은 일찍이 '초능력을 믿지는 않지만 세상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인한 현상과 또 다른 차원의 세계는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존재하지만 이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되어 질 수 없는 것! 바로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근원이자, 스티븐
킹의 작품세계가 펼쳐지는 출발점이다.
흔히, 인간은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한다.
그게 더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진 말자.
우린 눈에 보이는 2차원 평면의 세계가 아니라 3차원의 세계인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