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번역은 창작에 비해 중요성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번역가는 작가에 비해 사회적 지위나 지명도가 훨씬 낮다.

그러나 출판 시장의 3/4이 외서 번역물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번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흔히, 감동적인 작품을 접하게 되면 작가의 뛰어난 실력만을 높게 평가할 뿐, 번역가의 숨은 노력을 인정해주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이처럼 사회적 관심이 적은 만큼 번역가들의 작업 방식과 삶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번역은 내 운명: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6>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스페인어) 번역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6명의 번역가들이 풀어 놓은 이야기를 엮은 수필집이다.

 

 

개인적으로 이종인 번역가가 쓴 <번역은 글쓰기다>라는 에세이집을 흥미롭게 읽었을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중국어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비록 언어권은 다르지만 동종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영어권과 일본어권은 번역의 역사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 츨판되는 물량 자체가 많다보니 저자 못지 않은 지명도를 갖춘 번역가들도 여럿 있다. 영어권 뿐만 아니라 일본어권만 보더라도 양억관 김난주부부와 양춘옥-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및 권남희 번역가 등도 열혈 팬(?)을 거드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권에서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진 전문 번역가가 딱히 없는 것 같다. 물론, 김태성 번역가가 현대 중국 문학작품을 상당히 많이 번역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열심히 소개하고 있지만 중국소설은 아직까지 영어나 일본 소설만큼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지 못한 관계로 일단 양적인 부분에서 불리(?)하다 하겠다. 앞으로,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발달하면서 중국어 역서들이 널히 읽히게 되면 중국어 번역 분야에서도 지명도 있는 번역가가 등장하리라고 본다.

 

 

 

자, 그럼 번역을 운명으로 여기는 6인의 번역가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우선, 촘스키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강주헌씨다. 그는 지금까지 번역 작업한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번역가로 살아가는 일상들을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당히 솔직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 특히, 박사학위를 취득한 동년배들이 주로 대학에 몸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문 번역가의 길을 선택한 그의 삶을 보면서 뭐랄까... 부끄러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숙연함이 들었다.

 

 

일본어 번역가인 권남희씨는 밝히고 싶지 않았을수도 있는 개인사-이혼-를 당당히 거론(?)하면서 번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이런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번역가들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흔히, 전문직 프리랜서의 대명사로 알려진 번역가라고 하면 상당수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하면서 고소득을 올리는 '골드칼라' 직종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이런 이들에게 권남희 작가는 삶에 대한 치열함과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무장한 번역가의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요즘 일본어 번역서들을 자주 읽는데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토야마 아키코와 온다 리쿠의 작품을 꼭 읽어봐야겠다. 그 자체로도 한편의 '작품'이라 할만한 그녀의 '역자후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같다.

 

 

이 밖에도 한국에 마류야마 겐지의 작품을 처음 소개한 김춘미 번역가 역시 중견 번역가로 손색이 없다. 특히, 강단에서 강의하시는 분답게 번역의 이론과 실천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좋은 번역이란 우선 언어적 문화적으로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두 번째로는 원문의 분위기와 정서를 충분히 전달하되 원작의 리듬 호흡 문체적 특징을 충실히 재현해야 하고, 세번째로는 번역된 텍스트가 그 나라의 문학작품으로도 매력적인 읽을 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음 속 깊이 새겨 둘만 하다.

 

 

아시아출신 작가로서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번역가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문학과 미국 문화를 융합시킨 작가로 알려진 그의 글로벌적인 분위기는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스콧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등 미국 소설들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잉태되었다는 김춘미 번역가의 지적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어쩌면...

나에게 '번역'이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내 어릴 적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

 

 

스페인 문학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멀게는 <돈키호테>로 가깝게는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거미여인의 키스>등의 작품으로 고급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나 역시 국문학도였던 시절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는 매우 어렵다는 생각에 도중에 포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연극뿐만 아니라 세계문학필독서에 일찌감치 이름이 올라가 있어 제목만큼은 낯설지 않은데 아직까지 읽어 보지 못해 유감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 문학 번역가로 손꼽히는 송병선 교수의 말에 따르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적인 문체로 그리고 마누엘 푸릭은 사람의 교묘한 심리를 포착하는데 명수라고 하니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두 작가의 작품만큼은 잊지 말고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할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만나 보리라.

 

 

특히, 송병선교수는 출판사에서 번역을 의뢰받는 '수동적 번역'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당 국가의 문학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능동적인 번역'을 강조하고 있다. 번역 일이 없다고 푸념하기에만 바쁜 '초짜' 번역사들에게 좋은 '정문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이종인 번역가는 지금까지 몇 권의 번역서를 낸 말 그대로 '초짜' 번역가인 나에게 모름지기 번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번역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직업적 소명의식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분이다. 물론, 나는 이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분이 쓰신 에세이집을 통해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진정한 번역가'의 자세를 배웠다는 뜻이다.

 

 

훌륭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지적은 번역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자세이건만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종인 번역가에 따르면 번역가란 영사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상들을 고스란히 비추어주는 영사 스크린이 되어야 한단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 주지만 독자적인 생각이나 관념을 투영시켜지 않는, 순수한 '백지와 같은 존재'야말로 진정한 번역가의 모습이리라. 또한 이종인씨는 훌륭한 번역서로서 정영목의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와 함께 일본어 번역가인 양억관이 번역한 <식스티 나인>을 꼽고 있어, 그의 해박한 독서세계와 폭넓은 관용의 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여섯번째 번역가로 소개된 최정수 번역가는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 <연금술사>를 번역한 이란다.

물론, 번역가들은 누구나 자신이 번역한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하지만 베스트셀러는 소수의 선택받은 번역가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역자의 뒤늦은 고백에 따르면 <연금술사>는 번역 출판된지 2~3년 후 뒤늦게 입소문을 타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니, 베스트셀러가 될 것임을 알고 번역을 결정하는 번역가는 거의 없는 듯 하다.

 

 

참고로,

너무 너무 유명한 책이라서 나 또한 2년전-그러니까 읽을 사람들은 거의 다 읽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뭐야?' '이게 끝이야? 무슨 베스트셀러가 이 모양이람.' 하고 푸념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최정수 번역가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에게 <연금술사>는 무지무지 따분하고 재미없는 책으로 기억되어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의 독서력이 아직 세계적인 명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낯선 작품 흐름과 구성에 따른 '낯가림'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왜 그렇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그리고 나는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당연히' 파울로 코엘료를 프랑스 등지의 유럽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더랬다. 그런데 최정수 번역가의 소개에 따르면 코엘료는 브라질 출신 작가로 모국어인 브라질어(포루투갈어)로 작품을 쓰지만 주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남미와 유럽 문학은 접할 기회가 별로 없거니와 나에게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멀리 하게 되는 것 같다.

 

독서도 지나친 편식은 곤란한 법.

하여,

최정수 번역가가 소개한 아니 에르노라는 여류작가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그녀는 1984 <아버지의 자리>로 르노도 문학상을 수상했단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한 낫고 싶지 않은 질병 '사랑', 아니 에르노가 말한 누리기 힘든 사치 '열정', 이런 것들은 반드시 살아 숨쉬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살면서 어떤 대상에 사랑과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일 것이다. 내겐 '번역'이란 작업이 그 대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정수(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 <번역은 내 운명> -

 

 

6인의 전문 번역가들은 하나같이 번역가로 살아가는 애로사항 중 하나로, 만만찮은 작업 난이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번역료와 그나마 번역료 지불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거나 심지어 받지 못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번역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열정을 피력하고 있다. 그만큼 번역이란 그 어떠한 경제적 보상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희열과 만족을 가져다 주는 '자기 몰입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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