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속에 숨다
그레그 도슨 지음, 유영희 옮김, 잔나 아르샨스카야 도슨 / 살림Friend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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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 피아니스트(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전적 이야기로 유명하다. 역시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일찍이 스필버그로부터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을 의뢰받았던 로만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필버그의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명한 영화를 나는 이제서야 접하게 되었고, 이 영화의 원작으로 착각하여 읽은 책이 바로 그레그 도슨의 <빛 속에 숨다>였다. 이 책 역시 우크라이나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 그레그 도슨은 자매 중 언니인 잔나 아르샨스카야 도슨의 친아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필만의 이야기 못지 않게 감동적이다. 오히려 스토리 전개로 볼때 어린 시절 피아노 신동에서 출발한 성장 과정과 나치의 선전대 소속 연주 경력 및 그후 미국에서의 삶 등등..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한편의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아마 시기적으로 좀 더 일찍 나온 스필만의 <피아니스트> 때문에 묻힌 게 아닌가 싶다.

 

 

무대 위에 오름으로서 무대 뒤에 숨다.

 

특히,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점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잔나 아르샨스카야가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과거를 애써 묻어두려고 했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튿히 성공한 유대인일수록 자신의 '과거'를 널리 알리려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이 이토록 그녀를 머뭇거리게 하고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숨도록 만들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의 원제인 <Hiding In the Spotlight>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잔나와 두 살 어린 동생 프리나는 집단학살장소(드로비츠키 야르)로 향하는 행렬에서 극적으로 도망쳐나온 후, 신분을 감추고 가짜 이름으로 나치를 위한 위문공연을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청중 앞에서 연주를 한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들을 향해 무대인사를 한다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무대 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으며 자신을 널리 드러냄으로써 무대 속에 자신을 감추고 무대 뒤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던 잔나의 삶은 그후 '드러냄'과 '숨는것' 사이의 복잡미묘한 싸움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글쓴이가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 책을 완성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엄마가 사실을 말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아 끈질기게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지적한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인과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신은 그녀에게 요구하지도 않은 음악적 재능과 함께 유대인과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운명도 함께 주었다.

그녀는 운명을 거부하지도 순응하지도 않은 채,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살아만 남으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와 음악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열정과 사랑을 위해 매순간 혼신을 다했을 따름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삶에 대한 그녀의 이와같은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태어난 우크라이나라는 곳은 걸출한 천재 음악가들을 유난히 많이 배출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스탈린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의 지원 속에 체계적인 음악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잔냐와 프리나 역시 이런 시스템 속에서 음악 신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3살 그녀의 운명이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모스크바 음악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이미 고향인 베르단스키에서 하리코프로 이주해 훌륭한 음악가들 밑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었다. 죽음의 행렬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후, 빼어난 그녀의 연주실력은 그녀의 목숨을 살렸다. 그리고 살아 남은 그녀는 18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나치 소속의 연주단원으로 쉴 새 없이 많은 공연을 하면서 이른바 성공에 이르는 '만시간의 (연습)시간'을 자의반 타의반 거치게 된다. 아마도 이런 과정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그녀를 성공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끌었을 것이다.

 

 

신은 가혹한 운명일수록 행운의 여신도 동행시킨다.

 

잔나는 분명 불운 속에서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행운의 여신은 그녀에게 여러차례 강림했지만 푼크 카제르네 난민 수용소 소장인 래리 도슨과의 만남만큼 극적인 것도 없으리라. '신의 한수'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만약, 그에게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었더라면...?

혹은, 그에게 조금만 더 현실적인 감각이 있었더라면...?

무엇보다도, 그에게 잔나와 같은 음악 신동인 동생 데이비드가 없었더라면...?

잔나의 운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으리라.

 

 

한편, 우리는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의 비인간성과 스탈린의 이중성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비운을 새롭게 알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유럽(폴란드)과 동양(러시아)의 가운데에 자리하여 언제나 두 세력간 충돌의 희생양이 되어야만했다. 1991년까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었다가 소련의 해체후 독립되었으나 최근 동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으로 다시한번 나라의 운명이 뒤흔들리고 있다.

 

동유럽과 맞닿아 있는 탓에 히틀러의 공격에 제일 먼저 노출되었으며, 스탈린의 반유대인 정책과 맞물리면서 우크라이나는 소련 정부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만다. 그러므로 동유럽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기전에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잔나는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하지만 동생 프리나의 강력한 반대로 주저앉고 만다. 프리나는 잔나보다 죽음의 행렬에서 조금 늦게 탈출하여 어쩌면 조부모와 부모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도 가족이 없는 고향, 음악적 방면에서도 항상 언니의 그림자에 가려 있어야만 했던 그곳은 프리나에게는 지어버리고 싶은 과거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프리나의 어린애다운 고집과 질투가 죽음의 늪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잔나의 옷깃을 붙잡고 만다. 마치 운명처럼...

 

전쟁이 끝난후, 소련 정부는 제3국을 선택할수도 있었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애국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기는 커녕, 매국노로 누명씌워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다. 공산주의 체제의 치부를 가리고 강력한 독재를 실시하기 위해 선택한 악랄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잔나처럼 유대인도 음악 신동도 아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미 내가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거나 혹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위쪽 지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떠했을까...?

.

.

.

생각해 보니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고작해야 6,70여년 전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살아간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행동을 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고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되새기고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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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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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었다. 1993년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다.

비록 이야기는 80년대초 일본의 거품 경제가 정점을 향해 달려갈 때부터 전개되지만, 작품 속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정확히 1990년도다. 1964년 생인 작가 역시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80년대에 20대를 보내고 막 서른에 접어든 시기였으리라.  

 

'실체를 잘 바라보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 라는 말이 있다.

자세히 보겠다는 욕심에 실체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기형적으로 왜곡된 모습만을 보게 된다. 사회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뒤를 이어 일본 사회를 실시간으로 그려내는 작가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야말로 현장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현장에 경도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실체를 파악할 줄 아는 지적인 작가라 하겠다.

 

 <화차>는 바로 작가의 '현실 속에서 거리두기를 통한 현실 표현'이란 특징이 처음으로 부각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내를 자동차 사고로 어이없이 잃은 형사 혼마는 아내의 먼 친척(구리자카 가즈야)으로부터 갑자기 사라져버린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녀의 이름은 세키네 쇼코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세키네 쇼코가 되고 싶었던 신조 교코였다. 

 

세키네 쇼코는 어릴 때부터 행복이라는 걸 느껴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옛날의 자신. 지금의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언제나 초조했던 것이다. 그건 우연히 쇼코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라서라든지 성적이 나빠서라고 하는 그런 개별적인 요인에서 파생된 초조함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바람이 살아가는 동력이며, 그 초조함이야말로 그가 하나의 개인이라는 증거이다.

세키네 쇼코는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 현명하지 못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게도 바랐던 자신의 모습을 찾는 대신에 그러한 모습을 찾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거울을 산 것이다. -p287

 

그 철근과 같은 존재 의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그녀는 그런 여자다. 그리고 그런 여자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p128~129

'신조 교코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으면 더 이상 평화로운 인생은 기대할 수 없다' 그녀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p305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는 결국 '지긋지긋한 현상황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다'는 동일한 소망 때문에, 하나는 타인에게 목숨을 잃고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렇지만 둘 다 끝끝내 행복해지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둘다 실패자이자 피해자다. 

 

작가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들을 이런 상황으로까지 몰고간 사회구조일 것이다. 세키네 쇼코의 개인파산신청을 도와줬던 변호사의 입을 통해 '한번 사채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한 점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회구조'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영악하고 계산적이며 자기방어적인 사람의 편을 들어주고, 마음씨 착하고 여린 사람은 가차없이 차버리는 그런 곳이다.

 

순박한 세키네 쇼코가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미어지고....

신조 교코의 집요함과 잔인함에 치가 떨리면서도 한편으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이 사회에 화가 난다.

 

그렇다면,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는 아무런 죄가 없단 말인가?

 

작가는 범죄의 구성과 방법 그리고 해결 등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치 자세하게 심지어 불필요한 설명까지 덧붙이기를 망설이지 않으면서도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라는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철저한 '거리두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들의 인간성이나 성품을 최대한 단순하게 그려냄으로써-혹은 독자의 감정이입을 방해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유보시키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이는 물론 사회구조에 원인과 책임을 묻겠다는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한편으론 모든 범죄를 발생 원인과 동기에만 무기 중심을 둠으로써 소위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범인옹호론을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을 지배하거나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 대한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세키네 쇼코 및 신조 교코와 같은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모두 그들과 똑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가 불쌍하긴 하되,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는 지난 2000년도에 처음으로 이 책이 번역 출판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2~3년 뒤 소위 '카드대란'이 일어났다. 1997년 아시아경제위기로 고꾸라진 경제를 내수소비 신용금융으로 이끌어보겠다는 과욕이 불러온 결과였다.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문구로 유명한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에 온 사회가 매혹된 채, 그 누구도 카드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이 책은 그저 그런 책으로 독자들의 관심권 밖에서 맴돌다가 2010년대에 와서야 동명 영화가 제작되면서 새롭게 관심을 받게 된 경우다.

 

만약,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당시 <화차>라는 책이 출간되던 2000년대 초반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우리가 좀 더 귀를 기울렸더라면 어땠을까?

과거에 얽매여 이웃나라 일본이라면 무조건 손가락질부터 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타산지석으로 삼았더라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땠을까?

최소한 '카드대란' 사태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일본이 밉고 싫더라도 이 점만은 잊지 말자!

일본은 우리보다 한걸음 아니 두 세걸음 앞서가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걸 말이다.

 

 

내가 이 작품을 알게 된 계기는 실제 한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재조명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오갈 데 없는 '쉼터'에 있는 젊은 여성을 40대 여성이 취업시켜 주겠다면서 데리고 나와서는 약물로 죽이고는 자신과 그녀의 신분을 맞바꿔치기 한 사건이었다. 죽은 여인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사망신고를 한 그녀는 미리 가입해 놓았던 생명보험의 법정수령인을 죽은 여성의 이름으로 바꿔놓은 후 보험금을 받으려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이처럼 보험금을 노린 사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하여 그 사람으로 행세하려는 사회 병리적 현상(소위 '리플리 증후군')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인터넷의 가상 세계와 소셜네크워크 속에서의 '나'와 현실 세계의 '나'라는 두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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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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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서평집이다.

원제를 보니 『Dancing with Mrs, Dalloway』 직역하면, '댈러웨이 부인과 춤을' 정도가 되려나... ? <댈러웨이 부인>이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의 장편 소설 제목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저자인 실리어 블루 존슨(Celia Blue Johnson)는 출판 편집자로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영미 소설을 중심으로 총 55편의 작품과 작가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렵거나 현학적인 문학평이나 작품론은 절대로 아니고,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작가의 실제 삶을 주로 다루고 있다. 비록, 영미권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 한국인에게도 매우 친근하고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와 <007 시리즈>가 모두 소설이 원작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고, 단 한편의 작품만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과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의 하퍼 리(Harper Lee)는 전혀 다른 이유로 소위 '단 한편의 작가'로 남게 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류시인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에게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벨 자(bell jar)』라는 소설작품이 있다는 것과 『몽테 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닥터 지바고(Doktor Zhivago)』『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제인 에어(Jane Eyre)』등이 그 당시 일어났던 실제사건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탄생했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그러고 보면, 작가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요리조리 짜맞추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한두 편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다 가지만, 정작 자신이 한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란 사실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위대한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던 이야기 속의 실제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이 명작으로 재탄생하여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작가란 바로 남들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현실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내는 사람들이다. 마치, 별 볼일 없는 시꺼먼 갯벌 속에서 조개와 게, 낙지 등을 건져 올리는 것처럼...

 

 

나는 종종 타인의 독서일기라 할 수 있는 서평집 등을 통해 앞으로 읽을 책들을 결정하곤 하는데, 이 책을 통해서도 아주 요긴한 정보를 얻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 55편을 중심으로 개인적 취향과 더불러 독서 계획을 짜봤더랬다.

 

 

#_01 번쩍스치는 황홀한 순간

 

 -안나 카레니라_레프 톨스토이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

1872년 1월, 안나 스테파노바 피로고바라는 여인이 톨스토이 자택 근처의 기차역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톨스토이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남자와 내연 관계였단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급기야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여인을 불쌍히 여겨 주인공 이름을 '안나'라고 짓고, 그 외모는 알렉사드르 푸슈킨의 딸 마리아 하르퉁의 모습으로 그렸단다.

 

 

-호빗_J.R.R. 톨킨

 

바로 얼마 전에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다.  톨킨이 C.S 루이스와 함께 '잉클리스'라는 문학 동아리 회원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으나, 둘 사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았던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경쟁관계였을지도...

 

 

-동물농장_조지 오웰

 

공산주의 특히 소련의 위선적 모습을 가장 신랄하게 지적한 책이라 하겠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Eric Arthur Blair)다. 조지 오웰이 작가가 된 배경은 다소 특별했다.

실리어 블루 존슨이 밝히지 않은 그 특별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젊은 시절 조지 오웰(George Orwell) 은 대영제국주의 경찰로 식민지인 미얀마에 파견 근무를 하던 중, 우연히 코끼리 한마리를 사살하게 된다. 코끼리 한마리가 난동을 피운다는 소식을 접한 조지 오웰이 현장에 도착하니 코끼리는 이미 흥분을 가라앉히고 얌전히 풀을 뜯고 있었다. 그는 그냥 뒤돌아설 수도 있었지만 현장에 모여있는 미얀마인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코끼리를 향해 총 한발을 쏜다. 그런데 단번에 죽었으면 좋았을 코끼리가 죽지 않고 30분 넘게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 바로 이순간, 조지 오웰은 권위에 복종하여 불필요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은 자신의 행동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후, 조지 오웰은 작가가 되어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의 미숙한 자아'에 끝없는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나는 비록 이 책을 읽은 기억은 없지만, 이 책이 전하는 주제만큼은 잘 알고 있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_C.S 루이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호빗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루이스 캐럴과 C.S 루이스를 혼동했더랬다.

이 작품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3대 환타지 문학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나니아 연대기> 일곱 작품 중 한 작품이다. 

올 한해 목표가 환타지 문학에 제대로 입성하는 것이니만큼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읽어보리라. 

 

 

-백 년 동안의 고독_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작품은 대학 시절 읽었는데, 읽는 도중 스토리가 이해되지 않아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역시 남들은 명작으로 손꼽고 있지만 나에겐 재미없어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_02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프랑켄슈타인_메리 셀리

 

 

나는 그동안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작품의 작가가 글쎄 남성이 아닌 여성이란다!

역시 선입견은 무섭고도 무서운 것인가 보다. 어째서 나는 그동안 끔찍한 괴물이나 잔인한 살인자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남성이 만들어냈다고 단정지었던 걸까? 이 두가지 사실만으로도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봐야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_루이스 캐럴

 

너무 너무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듯...

어렸을때도 나는 이런 류의 만화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더랬다. 이 작품 역시 남다른 비하인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잘 알다시피,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학장으로 새로 부임한 헨리 리델 가족이 옥스퍼드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캐럴은 헨리의 네 자녀(해리, 로리나, 앨리스, 에디스)와 친분을 맺게 된다. 캐럴은 특히 셋째 앨리스를 가장 아꼈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는 루이스 캐럴이 네명의 아이들과 함께 배를 타고 템즈 강을 탐험하면서 즉석해서 만들어 들려준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엔 없지만 내가 알기론 어린 앨리스에 대한 캐럴의 관심이 집착에 가까워지자 아이들의 부모는 더 이상 아이들과 캐럴이 어울리지 못하게 한다. 그후 캐럴은 앨리스를 떠올리며 이 이야기들을 종이에 옮겼고 앨리스가 성년이 되자 정식으로 청혼했으나 거절 당했다고 한다.

 

 

-파리 대왕_윌리엄 골딩

 

이 작품은 십대 시절에 읽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84년 노벨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이고, 나 역시 그당시 사춘기에 막 접어든 나이로 이 책을 접했던 것 같다. 어떻게 이 작품이 우리집 서가에 꽂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빌리지도 사지도 않았음은 확실하다. 

줄거리를 살펴보니, 제대로 기억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에게『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이란 작품은 '명작' '고전'으로만 가슴 깊이 기억될 뿐, 왜 명작이고 고전인지는 모르는 셈이다. 이런 책은 반드시 다시 읽어봐야 한다.

 

 

#_03 현실 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

 

-오만과 편견_제인 오스틴

 

『제인 에어』를 비롯해서 당시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두툼한 명작들을 어렵사리(?) 읽은 후부터는 왠지 모르게 제인 오스틴 작품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여성적이고 섬세한 심리묘사와 배경묘사등은 종종 읽는 이들을 질리게 만들지 않던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야겠다.

 

 

-톰 소여의 모험_마크 트웨인

 

어렸을 적 내가 즐겨보던 TV만화영화 중 하나였다.

미국 작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종종 영국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와 비견되는 인물이다. 후자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작품속에 고스란히 반영했다면, 전자는 '개척'과 '모험'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19세기를 그려 널리 사랑받았다.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주인공 길이 1920년대로 돌아가 헤밍웨이와 나누던 대화 중, "미국문학은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에서 출발한다"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작 같은 작품이지만 작품성으로 보나 이후 현대문학에 끼친 영향으로 보나, 『톰 소여의 모험』을 훨씬 능가한다. 그러므로 마크 트웨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은 바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 하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우디 앨런도 인정한 사실을 실리어 블루 존슨이 거부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녀는 왜 '허클베리 핀' 대신 '톰'을 선택한 걸까?

 

 

-셜록 홈즈_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시리지는 읽고 싶으나 너무 방대해서 솔직히 엄두가 안난다.

참!

아서 코난 도일이 의대를 졸업한 의사란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간호사 출신이었던 애거사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코나 도일 역시 추리범죄소설 작가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둘 다 자신이 갖고 있던 의학적 전문지식으로 약품과 신체구조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살인과 범죄를 계획하고 묘사하는게 훨씬 쉽웠을테니 말이다. 

 

 

-댈러웨이 부인_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는 후대 여성에게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라 하겠다. 아마도 템즈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지... (근데, 작가와 작품의 뒷이야기를 풀어놓은 이 책에서는 이 점이 언급되지 않은 게 다소 이상하다.) 한편, 그녀의 작품은 난해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댈러웨이 부인』의 경우엔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읽어봐야겠다.

앞에서 밝혔다시피, 이 책의 원제가 <Dancing with Mrs,Dalloway>로 보아, 실리어 블루 존슨 역시 이 작품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기에 자신의 책제목으로 삼을 만큼 매료되었던 걸까? 

 

 

-위대한 개츠비_F. 스콧 피츠제럴드

 

이 작품은 학창시절 학교 필독도서로 읽은 것 같다. 그런데 줄거리나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는 것으로 보아 조금도 감동받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작품들은 예전에 한번 읽었다는 점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실제론 안 읽은 것이나 진배없는대도 말이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봐야 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를 보고는 더욱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과 바다_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일찍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를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산 적이 있었더랬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자유분방함과 삶에 대한 치열한 열정 및 여유로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시니컬(cynical)한 자세까지 헤밍웨이야말로 내 마음 속 영웅이다.

역시나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도 멋진 멘트를 날리더라.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나에게 이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이미 읽은 사람과 앞으로 읽을 사람으로...

 

 

-닥터 지바고_보리스 파스레르나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함께 조만간 최대한 빨리 읽을 예정이다. 영화 역시 수십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너무 명작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리메이크 되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 아닌게 아니라 그 어떤 감독이 이 작품을 다시 만들어보겠다고 섣불리 나설 수 있겠는가.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레르나크 역시『닥터 지바고』단 한편의 장편소설만을 남겼다.

 

 

#_04 어둠 속 저편, 영감이 떠오르다

 

 

-몽테 크리스토 백작_알렉상드르 뒤마

 

반드시 그것도 최대한 빨리 읽고 싶다. 올초, 도서관의 비치 상황을 보니 모두 5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머뭇거리다 대출하지 못한 작품이다. 한번에 5권씩 대출이 되는데 언제나 다른 책이 대출된 상태라서 5권을 통째로 빌릴 수가 없었더랬다.

 

 

-죄와 벌_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사춘기 끄트머리에 읽었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악령』『백치』『카라마조프의 형제들』등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의 4대 명작은 다 읽어보았다. <죄와 벌> 역시 실제 일어났던 사건 속에서 작가가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란다. 소위 '이야기 거리'를 위해 프랑스 법정을 뒤지고 다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아주 이례적인 사건 하나를 접하게 된다. 

피에르-드랑수와 라스네르라는 박식하고 자의식 넘치며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진정한(?) 살인마를 만나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여느 범죄자와는 확연히 달랐던 그의 모습 속에서 문학적 영감을 찾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으나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알콜과 도박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갔으니 범죄자처럼 '정상'이라고 할 순 없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잘 알다시피, 도스토예프스키를 빼놓고는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20세기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이다. 작품 못지 않게 작가 역시 호기심과 궁금증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을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앵무새 죽이기_하퍼 리

 

내 인생의 10대 명작 중 하나다. 

아마도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작가인 하퍼 리와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시 들어도 여전히 재밌고 신기할 따름이다. 그녀는 자비심(?) 넘치는 친구 부부가 생일 선물로 1년치 생활비를 준 덕분에 자신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을 쓸 수 있었다.

실리어 블루 존슨에 따르면, 얼마전 하퍼 리가 한 인터뷰에서 왜 두번째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바보가 되느니 차라리 침묵하겠다'라고 했단다.

첫작품이 예상을 뛰어 넘어 대성공을 거두면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20대라는 나이는 때이른 예상치 못한 성공이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퍼 리야말로 그 전형이라 하겠다.

 

 

#_05 영감을 찾아 떠난 위대한 여정

 

-모비 딕_허먼 멜빌

 

이 작품도 읽고 싶다. 거대한 꼬리지느러미로 사람을 들어올려 새하얀 빙하 위로 내동댕이 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너무도 강하게 남아 있다. 참고로, 작가는 한때 고래잡이 선원으로 일한 바 있으며, 18세기 초중반 고래잡이가 성행할 당시, 남미 칠레 연안의 모카 섬 인근에서 어마어마한 향유고래 한마리가 포착되었다. 이름은 모카 딕! 하먼(Herman Melville)의 작품 『모비 딕(Moby Dick)』은 바로 모카 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었다. 

 

 

-야성의 부름_잭 런던

 

이 책은 이 서평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 러쉬(Gold Rush)'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개'의 시선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를 끌었다.

'야성의 외침' '야성이 부르는 소리'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봐서 매우 재미있는 작품일 것 같다. 여러 출판사에 의해 여전히 새롭게 번역/출판된다는 건, 그만큼 여전히 무시못할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니까...

 

 

-제인 에어_샬롯 브론테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한 후, 읽은 책이다. 그러니까 고3 겨울방학이라고 해야겠다.

그 당시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보다는 집안 가득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로 인해 질식할 것만 상황에서 도망치고 또 도망쳤더랬다. 책 속으로... 책 속으로...

<제인 에어> 역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두개를 서로 섞어 만들어낸 작품이란다.

그 당시 리즈라는 도시에 사는 부부의 이야기가 널리 회자되었단다. 내용인 즉, 가정교사였던 아내가 남편에게 이미 또 다른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두 여자가 서로의 존재를 모르도록 철저히 이중생활을 해왔던 남편이란 사람은 첫번째 아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변명을 했단다. 한편, 영국 헤더세이지를 방문했던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는 그곳에서 가까운 '노스 리스 홀'이라는 귀족의 영지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사연인 즉, 안주인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 저택의 어느 방에서 감금된 채 생활을 하다가 불이 났는데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샬롯 브론테는 이 두가지 사건을 뒤섞어 '제인 에어(Jane Eyre)'를 창조했던 것이다.

 

 

마의 산_토마스 만

 

역시 『제인 에어』를 읽을 즈음 읽었던 작품이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 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그중 하나다. 독특하고 남다른 분위기로 주제의식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_06 내 삶의 현장의 곧 이야기다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_마거릿 미첼

 

이 나이되도록 아직 원작을 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고 후회스럽다. 원작과 영화를 다 섭렵(?)해야겠다. 그런데 언제가 좋을까? 이번 봄...? 아니면 다가올 여름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_켄 키지

 

처음 알았다.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기쁘다.

검색해 보니 영화와 책 모두 있구나!

 

 

-생쥐와 인간_존 스타인 벡

 

존 스타인 벡(John Steinbeck) 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을 대학 시절 읽었다. 아마도 절친의 추천으로 읽게 된 듯...

줄거리를 언뜻 보니 범상치 않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일으킨 범죄는 무죄인가? 아니면 유죄인가? 라는 아주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명문대(스탠포드) 재학 중이었던 작가가 세상을 배운 곳은 강의실이 아니라 고된 노동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존 스타인 벡은 잊을 수 없는 사건 하나를 목격한다. 

스타인 벡과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일꾼 하나가 해고되었다. 그러자 평소 그를 잘 따르고 좋아하던 약간 지능이 떨어지던 또 다른 일꾼이 친구를 잃은 분노와 충격에 사로잡혀 길길이 날뛰다가 농장주의 배를 쇠스랑으로 찔러버린 사건이었다. 이 끔찍한 살인 현장에 있었던 스타인 벡은 '누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라고 회고했다. 그후, 스타인 벡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에 의한 악행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슴에 담고 살게 된다. 그리고 탄생한 작품이 바로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 』이다. 이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낯선(?) 서평집을 읽은 가치로는 충분하다.

 

 

-카지노 로얄_이언 플레밍

 

생소한 제목의 이 작품은 영화 <007>의 원작으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1,2차 세계대전 시 영국 첩보국 소속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단다.

2011년도에 번역 출판된 책이 있으니 읽어봐야겠다. 

영화와는 색다른 재미와 감동이 배어 있을 듯...

특히, 실리어 블루 존슨이 요약해 놓은 줄거리를 보니, 마지막 결말이 너무 마음에 든다.

 

 

-벨 자_실비아 플라스

 

테드 휴즈(Ted Hughes)의 아내로 자신의 데뷰 소설인『벨 자(bell jar)』가 출간된지 일주일만에 생을 마감했다. 나는 일찍이 그녀의 작품과 자살 이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자살 방식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그녀는 남편 테드 휴즈의 외도 사실에 절망한 나머지 가스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 넣은 채 밸브를 열었다.

실리어 블루 존슨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가 죽은 테드 휴즈는 그녀의 상속인 자격으로 그녀의 시와 일기를 발표했는데,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대거 삭제했다는 바판에 시달렸고, 그녀의 묘지에 새겨진 '휴즈'라는 그의 성 또한 집요하게 지워지는 수모를 당했단다. 그리고 그에 대한 또 다른 놀라운 사실 하나는 실비아 플라스와 이혼한 후 결혼한 애시어 웨빌도 몇 년 후 플라스와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어린 딸과 함께....

참고로,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명 '벨 자(bell jar)'는 진공상태의 실험용 유리병을 뜻하는데, 그녀에게 세상은 숨 쉴 공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벨 자' 같은 답답한 곳이었음을 상징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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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65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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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뱀파이어(흡혈귀) 물 중,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1897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순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발칸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던 '불사귀(不死鬼)' 전설에 15세기 루마니아에 실존했던 블라드 체페슈라는 영주를 모티프로 한다.

'드라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그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의 공격을 막아낸 용감한 장수였지만 군법이나 법을 어긴 병사와 민간인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벌주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번역자(이세욱)에 따르면, 동유럽 발칸 지역은 서유럽에 비해 기독교의 수용이 수백년이나 뒤늦게 시작되었지만 그 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단다. 그래서 동유럽 사람들 특히 슬라브인들이 조상 대대로 믿어왔던 토속 민간 신앙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기독교가 밀려들어오면서 기존의 전통과 신흥 종교가 충돌하게 되었고, 이런 현상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 바로 작품 속에서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으로 나오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이었단다.

 

작품은 조너선 하커라는 신참 변호사가 영국에서 저택을 구입한 고객 드라큘라 백작에게 법률 서비스를 하기 위해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있는 백작의 성(城)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괴기소설답게 긴장감 있게 전개되는 도입부분은 자연스럽게 에드가 앨렌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떠올리게 만든다. 찾아보니, 역시나 <어셔가의 몰락>이 50여년이나 앞선, 1839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브램 스토커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 중 한명에게 '아서(어셔)'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드라큘라>를 포함하여 17편의 작품 대부분이 공포 추리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스토커가 그만큼 이쪽 방면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포의 작품도 애독 내지는 탐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스토커가 포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이야기는 주요 등장인물 여섯 명 중, 조너선 하커와 미나 하커 부부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존 수어드 박사의 일기를 통해 전개된다. 이들은 펜으로 종이에 기록할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엔 새로운 발명품이었을 타자기와 축음기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세 사람의 일기가 번갈아가며 나열되어 있어, 마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 밖에도 브램 스토커는 '일기(기록)' 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 당시 영국 신사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기 절제와 반성(되돌아보기) 그리고 지성의 추구라는 시대적 가치관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진 모르지만 영혼의 안식을 얻지 못한 망자(亡者)가 밤마다 무덤에서 나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피를 마신다는 발칸 지방의 민간설화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진 뱀파이어 법칙(?)을 형성하게 된 데에는 18세기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영국(서유럽)과 그들이 믿는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었다.

 

소위, '뱀파이어 법칙'이란,

일출에서 일몰사이에는 그들은 주로 은신처(관 속)에서 죽은 듯이 휴식을 취하고, 해가 진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며, 신선한 피를 마시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고 해서 흡혈귀들이 아무나 공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처음에는 반드시 사람의 초대를 받아야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참고로,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얻은 바 있는 <렛미인> 이라는 작품이 이런 흡혈귀들의 습성을 가장 잘 이용한 것 같다. 

 

한편, 일단 흡혈귀에게 물린 사람은 흡혈귀를 '주인님'으로 모시면서 서서히 흡혈귀로 변해간다. 그리고 (존 수어드 박사의 환자인 동물탐식증에 걸린 렌필드를 드라큘라 백작이 조정했듯이) 일부 사람들은 흡혈귀에 의해 손쉽게 조정된다. 이들은 또한 신출귀몰하고 자연현상이나 짐승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개나 다른 것들로 변신할 수도 있다. 

 

흡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으로는 햇빛, 마늘, 십자가, 성체 등등으로 하나같이 기독교의 상징물들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19세기 후반에 쓰여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을 필두로, 그후 100여년 넘게 재창조(?)된 뱀파이어 작품들이 결국은 '토속 신앙(기타 종교포함)에 대한 기독교의 압도적 승리'라는 일관된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주인공들은 역마차와 전차, 기차 및 화물여객선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뿐만 아니라 전화와 전보 그리고 축음기와 타자기 등등 당시 신기술에 의한 발명품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이성과 지성 및 과학적 탐구'로 대표되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의 시대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사이자 변호사인 반 헬싱 선생을 비롯해서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부유하고 정의로우며 영국 신사 숙녀로서 일말의 손색도 없다. 이 점 역시 19세기 후반 영국인이 추구하던 가치관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름이 '믿음의 아버지'라는 뜻인 구약성서의 아브라함인 아브라함 반 헬싱 선생이야말로 선으로 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적 지식과 지성을 갖춘 인물로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인인 퀸시 모리스는 드라큘라 백작을 물리치는 마지막 순간에 죽음으로써 그 당시 미국인은 신대륙을 개척했으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최강국으로 세계 질서을 새롭게 만들어가던 영국은 하루가 다르게 경제가 발달하고 사회질서가 재편되고 현대화되어가는 동시에 추리공포문학이 싹트고 발전하는 가장 좋은 터전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샤록 홈즈의 코난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가 모두 영국인이라는 점 역시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영국인들은 도대체 왜 공포 추리소설에 열광한 걸까?

 

브램 스토커의 <드라큐라> 역시 흡혈귀인 백작이 수 백년 동안 머물던 자신의 안식처를 떠나 영국으로 잠입해 들어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려 동시에 3명의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은 매혹적인 여성인 루시를 첫번째 희생양으로 삼아 새로운 흡혈귀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비록, 여섯명(이중 한명은 여성이다.)의 용감한 인물들에 의해 계획이 좌절되어 다시 고향 트란실바니아로 돌아가려다가 결국은 최후를 맞이하지만...

이처럼 영국인들은 어째서 나날이 부강해지고 발전하는 자신들의 영토 위에 흡혈귀가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공포문학은 역설적이게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회에서 유난히 발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사회의 변화 속도를 당대인들이 따라가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감과 과거와 현대 사이의 정신적 간극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 부조리 현상들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이와 같은 심리적 불안전한 상태를 공포와 추리 소설을 통해 해소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탄생을 단순히 토속 신앙에 대한 기독교의 절대적 승리만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 속에서 드라큘라 백작 뿐만 아니라 백작의 성에 감금되어 있을 때 조너선이 마주쳤던 세 명의 젊은 여성들 또한 수려한 미모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후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흡혈귀들은 성적인 매력이 더 한층 강조된다.

 

영원한 젊음과 어딘지 모르게 남다른 매력과 인간보다 더 강하고 인간적인 흡혈귀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흡혈귀'는 공포를 통해 사회 부조리 현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부산물이라기보다는 소비 지향적이고 외모 지상주의인 현대사회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 듯 하다.

 

'거울'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떠올랐는데,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처음 도착했을때 조너선은 그 넓은 성 어디에서도 거울을 찾을 후 없어 면도를 하는데 애를 먹는다. 

 

잘 알다시피, 흡혈귀는 거울에 비춰지지 않는다. 이는 흡혈귀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좁은 틈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는가 하면 연기처럼 공중 위로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흡혈귀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 즉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한 상상에 불과할 뿐임을 의미한다. 연기나 빛이 거울에 비춰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동안 우리가 접해왔던 현대 뱀파이어 물들은 하나같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을 고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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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인터넷으로 영화 한편을 봤다.

이유는 작년 말 극장에서 봤던 영화와 여러모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하나는 바다에서 일어난 조난을 다룬 영화고, 또 다른 하나는 우주에서 일어난 조난을 다룬 영화다. 둘 다 등장인물은 손에 꼽을 만큼 적고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 복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헐리우드산이지만 헐리우드적이지 않은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둘 다 죽음 직전에서 목숨을 건져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이는 아마도 등장인물과의 감정이입에 충실했던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감독의 '배려'이리라.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는 매순간 소멸('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승률은 아쉽게도 절반을 넘지 못한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전승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결국 인간도 소멸을 피할 순 없다.

 

두 영화속 주인공들 역시 예기치 못한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 치다가 결국엔 '죽을 준비를 한다'.  한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음을 고백하는 유서를 적은 종이쪽지를 유리병 속에 담아 바다위에 띄우고... 또 다른 한명은 지구로 돌진하는 우주선 안에서 사고로 먼저 떠난 4살짜리 딸을 떠올리면서 "I'm ready!" 라고 외친다. 이 단 한마디가 어찌나 가슴을 파고 들던지...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강물 위를 내리치는 것처럼 돌직구가 되어 내 마음속으로 날아들었다.

 

러시아가 자국의 인공위성을 폭파시킴으로써 야기된 재난으로 우주 미아가 된 주인공이 중국의 우주정거장 티엔궁으로 피신하고 중국의 우주 비행선 선저우를 타고 지구로 불시착한다는 내용에 소원해진 미-러 관계와 긴밀해진 미-중 관계를 순식간에 떠올린 못쓸 직업병(?)조차 용서가 되더라.


나에게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I'm ready!"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치지 않으면, 그날 하루를 견뎌내기 힘들었던 절망의 나날들이 있었다. 하루하루 매순간을 몸부림치며 죽을 듯이 이 악물고 참아내던 시간들...

한때는 상처였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 내몸 구석구석을 떠다닌다.


난, 실패 많이 한 사람이다. 

명석한 두뇌를 타고난 것도 아니고, 인내심이 남들보다 강한 것도 아니었다. 

남들은 한번에 합격하는 사소한 시험에서도 자주 고배를 마시곤 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도 쉽지 않았다. 국문학이란 게 배울 땐 재밌었는데 막상 밥벌어먹으려니 쓸 데가 없었다.

 

독서와 문학으로 다져진 예민한 감수성이 오히려 독이 되어 무수한 거절과 실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나를 공격하고 무너뜨렸다.

접시물처럼 얕디 얕지만 현재 나를 지켜주는 내 지식의 원천과 자긍심의 발로는 사실 수많은 거절과 좌절 속에서 시작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섣부른 성공은 교만을 부르지만 진정한 실패는 교훈을 준다.


각설하고...


한편, 이 두편의 영화는 모든 철학 종교 예술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인간은 결국엔 죽을 건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결국, 소멸하는 존재라면 이렇게 살다가나 저렇게 살다가나 매일반이지 않은가....?

 

맞다! 결과는 동일하다.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어찌됐든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죽으며, 이 결과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바뀔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혹은 '저렇게' 라는 삶의 과정일 뿐이다.

 

정해진 결과에 가변적인 과정!

이것이 바로 인간이 처한 운명이고, 결과(죽음)를 바꿀 순 없지만 그래도 과정(삶)에 열중해야 하는 이유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죽기'때문이다.

 

인간의 위대한 도전과 수많은 발견 그리고 창조는 인간의 유한성에 기초한다.

만약, 우리가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인류의 모든 신과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물주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조물주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단 한번뿐'인 삶의 매순간 순간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감각세포를 발달시키고 감정선을 극대화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멸하는 '나'의 존재를 영원히 각인시키기 위한 작업이나 노력도 게을리 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나의 삶을 타인의 삶과 구분짓기 위한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어떤 것에도 감동받지 않고 아름다움 또한 느끼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로 존재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모짜르트의 선율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주보다도 넓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작품들도 없었을 것이고...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그 모든 예술적 행위들과 감동의 스포츠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건, 불멸의 존재가 아닌 소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소중한 건, 결국 언젠간 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가족이, 혹은 친구가 끔찍하게 좋은 이유 역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이 예쁜 건 언젠간 지기 때문이듯 말이다.

우리가 삶의 결과가 아닌 삶의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 역시 결국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바로 그 이유 하나때문에 특별하다.

 

영화 <올 이즈 로스트>와 <그래비티>가 특별한 건,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즉, Are you ready? 를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상기하게 만든다. 

이 질문에 응답할지 말지... 만약 한다면 어떤 답을 할지는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감동적인 것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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