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인터넷으로 영화 한편을 봤다.

이유는 작년 말 극장에서 봤던 영화와 여러모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하나는 바다에서 일어난 조난을 다룬 영화고, 또 다른 하나는 우주에서 일어난 조난을 다룬 영화다. 둘 다 등장인물은 손에 꼽을 만큼 적고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 복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헐리우드산이지만 헐리우드적이지 않은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둘 다 죽음 직전에서 목숨을 건져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이는 아마도 등장인물과의 감정이입에 충실했던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감독의 '배려'이리라.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는 매순간 소멸('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승률은 아쉽게도 절반을 넘지 못한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전승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결국 인간도 소멸을 피할 순 없다.

 

두 영화속 주인공들 역시 예기치 못한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 치다가 결국엔 '죽을 준비를 한다'.  한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음을 고백하는 유서를 적은 종이쪽지를 유리병 속에 담아 바다위에 띄우고... 또 다른 한명은 지구로 돌진하는 우주선 안에서 사고로 먼저 떠난 4살짜리 딸을 떠올리면서 "I'm ready!" 라고 외친다. 이 단 한마디가 어찌나 가슴을 파고 들던지...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강물 위를 내리치는 것처럼 돌직구가 되어 내 마음속으로 날아들었다.

 

러시아가 자국의 인공위성을 폭파시킴으로써 야기된 재난으로 우주 미아가 된 주인공이 중국의 우주정거장 티엔궁으로 피신하고 중국의 우주 비행선 선저우를 타고 지구로 불시착한다는 내용에 소원해진 미-러 관계와 긴밀해진 미-중 관계를 순식간에 떠올린 못쓸 직업병(?)조차 용서가 되더라.


나에게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I'm ready!"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치지 않으면, 그날 하루를 견뎌내기 힘들었던 절망의 나날들이 있었다. 하루하루 매순간을 몸부림치며 죽을 듯이 이 악물고 참아내던 시간들...

한때는 상처였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 내몸 구석구석을 떠다닌다.


난, 실패 많이 한 사람이다. 

명석한 두뇌를 타고난 것도 아니고, 인내심이 남들보다 강한 것도 아니었다. 

남들은 한번에 합격하는 사소한 시험에서도 자주 고배를 마시곤 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도 쉽지 않았다. 국문학이란 게 배울 땐 재밌었는데 막상 밥벌어먹으려니 쓸 데가 없었다.

 

독서와 문학으로 다져진 예민한 감수성이 오히려 독이 되어 무수한 거절과 실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나를 공격하고 무너뜨렸다.

접시물처럼 얕디 얕지만 현재 나를 지켜주는 내 지식의 원천과 자긍심의 발로는 사실 수많은 거절과 좌절 속에서 시작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섣부른 성공은 교만을 부르지만 진정한 실패는 교훈을 준다.


각설하고...


한편, 이 두편의 영화는 모든 철학 종교 예술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인간은 결국엔 죽을 건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결국, 소멸하는 존재라면 이렇게 살다가나 저렇게 살다가나 매일반이지 않은가....?

 

맞다! 결과는 동일하다.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어찌됐든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죽으며, 이 결과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바뀔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혹은 '저렇게' 라는 삶의 과정일 뿐이다.

 

정해진 결과에 가변적인 과정!

이것이 바로 인간이 처한 운명이고, 결과(죽음)를 바꿀 순 없지만 그래도 과정(삶)에 열중해야 하는 이유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죽기'때문이다.

 

인간의 위대한 도전과 수많은 발견 그리고 창조는 인간의 유한성에 기초한다.

만약, 우리가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인류의 모든 신과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물주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조물주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단 한번뿐'인 삶의 매순간 순간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감각세포를 발달시키고 감정선을 극대화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멸하는 '나'의 존재를 영원히 각인시키기 위한 작업이나 노력도 게을리 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나의 삶을 타인의 삶과 구분짓기 위한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어떤 것에도 감동받지 않고 아름다움 또한 느끼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로 존재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모짜르트의 선율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주보다도 넓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작품들도 없었을 것이고...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그 모든 예술적 행위들과 감동의 스포츠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건, 불멸의 존재가 아닌 소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소중한 건, 결국 언젠간 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가족이, 혹은 친구가 끔찍하게 좋은 이유 역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이 예쁜 건 언젠간 지기 때문이듯 말이다.

우리가 삶의 결과가 아닌 삶의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 역시 결국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바로 그 이유 하나때문에 특별하다.

 

영화 <올 이즈 로스트>와 <그래비티>가 특별한 건,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즉, Are you ready? 를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상기하게 만든다. 

이 질문에 응답할지 말지... 만약 한다면 어떤 답을 할지는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감동적인 것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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