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속에 숨다
그레그 도슨 지음, 유영희 옮김, 잔나 아르샨스카야 도슨 / 살림Friend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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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 피아니스트(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전적 이야기로 유명하다. 역시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일찍이 스필버그로부터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을 의뢰받았던 로만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필버그의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명한 영화를 나는 이제서야 접하게 되었고, 이 영화의 원작으로 착각하여 읽은 책이 바로 그레그 도슨의 <빛 속에 숨다>였다. 이 책 역시 우크라이나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 그레그 도슨은 자매 중 언니인 잔나 아르샨스카야 도슨의 친아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필만의 이야기 못지 않게 감동적이다. 오히려 스토리 전개로 볼때 어린 시절 피아노 신동에서 출발한 성장 과정과 나치의 선전대 소속 연주 경력 및 그후 미국에서의 삶 등등..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한편의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아마 시기적으로 좀 더 일찍 나온 스필만의 <피아니스트> 때문에 묻힌 게 아닌가 싶다.

 

 

무대 위에 오름으로서 무대 뒤에 숨다.

 

특히,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점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잔나 아르샨스카야가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과거를 애써 묻어두려고 했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튿히 성공한 유대인일수록 자신의 '과거'를 널리 알리려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이 이토록 그녀를 머뭇거리게 하고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숨도록 만들었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의 원제인 <Hiding In the Spotlight>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잔나와 두 살 어린 동생 프리나는 집단학살장소(드로비츠키 야르)로 향하는 행렬에서 극적으로 도망쳐나온 후, 신분을 감추고 가짜 이름으로 나치를 위한 위문공연을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청중 앞에서 연주를 한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들을 향해 무대인사를 한다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무대 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으며 자신을 널리 드러냄으로써 무대 속에 자신을 감추고 무대 뒤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던 잔나의 삶은 그후 '드러냄'과 '숨는것' 사이의 복잡미묘한 싸움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글쓴이가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 책을 완성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엄마가 사실을 말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아 끈질기게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지적한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인과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신은 그녀에게 요구하지도 않은 음악적 재능과 함께 유대인과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운명도 함께 주었다.

그녀는 운명을 거부하지도 순응하지도 않은 채,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살아만 남으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와 음악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열정과 사랑을 위해 매순간 혼신을 다했을 따름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삶에 대한 그녀의 이와같은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태어난 우크라이나라는 곳은 걸출한 천재 음악가들을 유난히 많이 배출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스탈린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의 지원 속에 체계적인 음악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잔냐와 프리나 역시 이런 시스템 속에서 음악 신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3살 그녀의 운명이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모스크바 음악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이미 고향인 베르단스키에서 하리코프로 이주해 훌륭한 음악가들 밑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었다. 죽음의 행렬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후, 빼어난 그녀의 연주실력은 그녀의 목숨을 살렸다. 그리고 살아 남은 그녀는 18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나치 소속의 연주단원으로 쉴 새 없이 많은 공연을 하면서 이른바 성공에 이르는 '만시간의 (연습)시간'을 자의반 타의반 거치게 된다. 아마도 이런 과정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그녀를 성공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끌었을 것이다.

 

 

신은 가혹한 운명일수록 행운의 여신도 동행시킨다.

 

잔나는 분명 불운 속에서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행운의 여신은 그녀에게 여러차례 강림했지만 푼크 카제르네 난민 수용소 소장인 래리 도슨과의 만남만큼 극적인 것도 없으리라. '신의 한수'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만약, 그에게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었더라면...?

혹은, 그에게 조금만 더 현실적인 감각이 있었더라면...?

무엇보다도, 그에게 잔나와 같은 음악 신동인 동생 데이비드가 없었더라면...?

잔나의 운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으리라.

 

 

한편, 우리는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의 비인간성과 스탈린의 이중성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비운을 새롭게 알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유럽(폴란드)과 동양(러시아)의 가운데에 자리하여 언제나 두 세력간 충돌의 희생양이 되어야만했다. 1991년까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었다가 소련의 해체후 독립되었으나 최근 동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으로 다시한번 나라의 운명이 뒤흔들리고 있다.

 

동유럽과 맞닿아 있는 탓에 히틀러의 공격에 제일 먼저 노출되었으며, 스탈린의 반유대인 정책과 맞물리면서 우크라이나는 소련 정부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만다. 그러므로 동유럽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기전에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잔나는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하지만 동생 프리나의 강력한 반대로 주저앉고 만다. 프리나는 잔나보다 죽음의 행렬에서 조금 늦게 탈출하여 어쩌면 조부모와 부모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도 가족이 없는 고향, 음악적 방면에서도 항상 언니의 그림자에 가려 있어야만 했던 그곳은 프리나에게는 지어버리고 싶은 과거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프리나의 어린애다운 고집과 질투가 죽음의 늪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잔나의 옷깃을 붙잡고 만다. 마치 운명처럼...

 

전쟁이 끝난후, 소련 정부는 제3국을 선택할수도 있었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애국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기는 커녕, 매국노로 누명씌워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다. 공산주의 체제의 치부를 가리고 강력한 독재를 실시하기 위해 선택한 악랄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잔나처럼 유대인도 음악 신동도 아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미 내가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거나 혹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위쪽 지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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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고작해야 6,70여년 전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살아간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행동을 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고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되새기고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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