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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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존재를 다루지만 외계인이 뭔가-예를 들면 대화를 시도한다든가, 싸움을 걸어온다든가 하는-를 전혀 하지 않는 SF 소설.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생각에 빠지고 여러 가지로 말하고 행동한다. 외계의 존재는 아무것도 안 하지만 인간들은 도리어 이것저것 해보려다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다.



명작은 명작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존의 모든 ‘좌표계‘를 무시하는 세상에서 빙빙 도는 짜릿함도 느끼고, 자유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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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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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을 보고 피에르 부르디외를 떠올렸다면 낚인 거다. 사실 나도 낚였다. 부르디외를 언급하되 부르디외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사회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책이 아니다. 주어진 질서와 그 안에서 각자도생하는 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남을 밟고 올라서는 법을 부르디외 이론의 파편을 빌려서 말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부르디외를 찾지 말고 자기 계발을 찾으세요.

그러나 꽤나 쓸만한 책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자기 계발서라면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그쪽 업계의 모범생 같은 책이랄까? 읽다 보면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 노력해 보고 싶어진다. 사실 크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에 호소력과 설득력을 더했을 뿐. ‘더 큰 그릇을 품고, 더 너그럽게 굴며, 더 나은 사고와 행동을 하고, 더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는 건 바로 이런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퍼질러 앉아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잘나가고 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니 너도 알아두면 좋아‘라고 말한다. 다만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돈이 많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역시나 빠져있으니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며 그러기에는 그다지 쓸모없는 책이라는 말이다. 가볍게 읽으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길. 연애를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듯 삶도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인상적인 부분 몇 군데를 표시해두었다가 가끔 찾아 읽어보며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고 정신 차리는 용도로 쓰면 좋겠다.

+
상류층이 스스로를 어떻게 타자와 구분 짓는지, 그리고 상류층의 그러한 행태를 그보다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수식해 주는지를 엿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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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1
김경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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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기존과 다른 느낌으로 다루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임진왜란에서 있었던 일을 너무나 많이 들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떤 측면에서는.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무슨 무슨 전투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으며 누가누가 활약했는지. 아, 이런 이야기에 조금 지쳤다면.

당시 명, 조선, 일본 사이의 관계가 어떠했고,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각자 어떠했는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전황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없다. 대신에 이왕에 터져버린 전쟁을 세 나라가 어떻게 풀어나갔고, 어떻게 마무리하려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특히 종전 협상을 다루는 대목이 무척 재미있다. 7년을 끌었던 이 전쟁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협상이 반 이상이다. 장수들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사람을 보내 말을 걸고 이것저것 재본다. 어차피 전쟁이라는 것의 본모습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당시 세 나라가 각자 가졌던 입장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 이게 아닌데‘하며 쩔쩔매면서도 겉으로는 자기들이 다 이기고 있는 척 뻔뻔하게 큰소리치면서 세게 나온다. 에헴 하며 전쟁에 끼어든 명나라는 대국의 체통을 지키는 동시에 수렁에 빠진 전쟁에서 손해 역시 보지 않는 길을 찾느라 헤맨다. 명나라와 일본이 서로 손익을 따지는 사이 중간에 낀 조선은 자다가 갑자기 얻어맞은 장본인이면서도 가슴만 치고 소리는 내지르지 못하는, 뭔가 짠한 모습이다. 유린 당하는 나라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내면과 면모,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경쟁과 그 후일담, 나름대로 노력하는, 그러면서도 책임 소재는 슬쩍 피해 가고 왕권은 그것대로 챙긴 알뜰살뜰한 선조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조금이라도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책을 만들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읽는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고,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깊이에 비해 문장들이 꽤나 경쾌하게 읽힌다.






**

책을 읽고 문득 든 생각이다. 반도의 조그마한 이 나라는 자의든 타의든 강대국의 다툼에 끼어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아프고 억울해도 외마디 비명 하나 지를 겨를 도 없이 맷돌에 콩 갈듯 처절하게 갈려나갈 수밖에 없다.



잘 하고 있습니까, 대한민국 정부? 이 양반들이 학습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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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체력 이것은 살기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
피톨로지 지음, 한동석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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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읽다가 오랜만에 꺼내서 다시 읽는다.

홈트레이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책이다. 나도 처음에 홈트를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도구 없이 체중 만으로 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 운동인 맨몸 스쾃, 푸시업, 플랭크, 버피 테스트를 하는 올바른 자세와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따로 배우지 않는다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동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피톨로지 팀은 유튜브도 운영한다. 공중파 방송 촬영분도 있고, 다른 운동 유튜브와 비교해도 참 잘 만들어 놓았다. 유튜브를 보면 좀 더 직관적인 영상 설명을 보며 따라 할 수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면 좋다.

그러나 집에서 스스로 하는 운동은 어딘가 나가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고독하고 의미도 찾기 힘들며 시간도 잘 내지 않게 된다. 나는 8년 전에 이 책을 읽으며 운동하다 결국에 실패하고서는 어딘가에 넣어두었다가 지금에 와서 다시 꺼냈다. 이제는 나이도 먹었고 그때보다는 ‘이 정도 운동이라도 해야 진짜 살 수 있겠다‘라는 동기 부여가 더 잘 된다. 일단 스쾃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에는 100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160개 정도 한다. 그래. 이거라도 해야 사람 꼴을 갖추고 살 수 있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시 부르기, 아니 다시 읽기를 하니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부분에 더 시선이 많이 간다. 운동을 해야 하는 생물학적 이유와, 무엇보다도 건강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식사 방법 부분이다. 왜 이걸 그때는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 방법 파트보다 이쪽 내용이 더 좋다.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한 부분이 무섭게 와닿았고, 특히 좋았던 건 건강하게 먹으려고 이것저것 지키기 힘들다면 이렇게라도 하라는 내용이었다.

˝식판의 밥을 담는 부분에 반찬을 담고, 반찬을 담는 부분에 밥을 담아서 먹는다.˝

직장 구내식당에서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하지만, 이제 나는 밥을 정말 최소한만 담아서 탄수화물 섭취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맞다.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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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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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호흡에 모두 읽어내렸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을 뼈대 삼아 긴장감 있게 이야기가 잘 짜여서일까.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넓은 만주를 외롭게 내달린 그의 족적이 너무 생생해서일까. 외롭게 악의 시대와 분투하다 서른한 살에 죽은, 영웅의 외투를 벗은 안중근의 젊은 날을 만났다.

문장은 역시나 간결하고 이야기 흐름은 흐리멍덩하지 않고 또렷하다. 세세한 내러티브는 작가의 상상으로 새로 엮었지만 사건의 줄기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없는 낭설과 군더더기는 모두 뺐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그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토와 기타 주변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 대목 중에 단편적으로 잘라서 보면 간혹 작가의 역사관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시대를 그렇게 끌고 간 대세의 흐름과 침략자를 정당화한 논리, 한국의 비극에서 한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의 상황 인식의 어떤 단면을 느끼게 해주는, 그렇게 안중근이 걸어간 길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광복절 새벽부터 띄엄띄엄 읽기 시작해서 책을 덮으니 광복절 다음날 새벽 네 시다. 되지도 않는 명분과 말의 성찬을 앞세워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힘으로 휘젓고 집어삼킨 그 시대가 새삼 너무 슬프다. 그런 시대에 총을 들어 이토를 쏘아 죽인, 자기를 스스로 변호하지도 않은, 담담하게 포수와 무직으로 스스로를 진술한 안중근의 청춘과 담배팔이를 전전하다가 말없이 그와 함께 총을 들었던 우덕순의 청춘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홀연히 던져버린 그들의 젊은 날과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 같은 사람의 젊은 날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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