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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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즉에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주변에서 하도 유명하다기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권을 잠깐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 책을 굳이 읽어볼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았기에 책 서두에 나오는 플라톤의 파이돈 이야기만 읽고 덮었다. 입시 공부에 지쳐있었던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만 읽었으면 됐지 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참 아쉽다.



중요한 건 신화에 대한 지식을 머리에 욱여넣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느끼고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를 내 안에 간직하는 것이었다. 이윤기의 책이 이런저런 내용의 오류 시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신화를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할 게 아니라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중요한 건 얼마나 정확한 내용인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마음을 쾅 하고 때리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윤기는 참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흑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이 장애물들은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게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권 서문 중에서



내가 이십 대 때 이 글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20년이 지나 사십 대에 읽는 이 책에 가슴이 문득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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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글쓰기 - ‘좋아하는 마음’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문장 수업
미야케 카호 지음, 신찬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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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안 하고 집어 든 책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괜찮았던 책. ‘최애‘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글로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인데 사실 글쓰기 일반론으로 받아들여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모든 글은 좋아하고 아끼는 무언가에 대한 기록이니까.



‘독자를 정확히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지를 잊지 말라‘는 내용과 ‘중요한 건 어휘력이 아니라 세분화하는 능력‘이라는 내용이 특히 도움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세분화라는 것은 ‘그냥 좋다‘가 아니라 왜 좋은가를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언어화해보라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글쓰기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취향이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고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실하게 언어화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곧 나를 찾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로 이어질 것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문득 스레드 같은 SNS에 툭툭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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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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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났다. 꾸역꾸역 어려운 산을 오르는 것 같은 책을. 등산을 지레 포기하게 할 만큼 무섭고 험한 산은 아니다. 적당히 쉬운 길이 섞여 있어서 재미있게 오를 수 있다. 마침내 선 정상에서는 상상 못할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회에 대해, 그리고 관계에 대해. 물음표가 많아지는 책은 좋은 책이리니.

이 책은 아주 단순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인간과 사람은 다르다. 그러니까 양자를 혼동하지 말자.‘
저자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저 짤막한 문제의식을 풀어내기 위해 인류학과 사회학, 그 외 다양한 분야의 지성이 소환된다.

생물학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종으로서 모두 동일하고 동등하게 타고 태어나는 기본값이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되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집단 안에서 자기 장소를 갖고 환대 받아야 사람이다. 그래야 사람으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의 리그 안에 들면 사람이고, 들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이 있어왔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든, 이방인이든, 여성이든.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건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챙기는 것이다. 환대 받고 환대하는 것이다. 설자리를 받고 설자리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좀 더 인간다워지는, 아니 ‘사람다워‘ 지는 길은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갈수록 더 넓혀가는 상상력을 키우고 발휘하는 것일 테다. 그것이 근대정신이고, 현대 시민 사회가 전제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고, 발전해갈 것이다.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비좁은 마음과 좁다란 시야를 갖고 있으니까. 여전히 같은 나라나 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등급의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격에 맞는 아파트 단지나 동네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작은 차를 탄다는 이유로, 같은 급의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타 등등 이처럼 저열한 이유로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 든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도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책이었다. 한 번쯤 깊이 읽어보기를 격하게 추천하고 또 추천한다.


**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기 위해 교사로서 많이 고민해왔다. 그 모든 일은 결국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사람으로 환대 받고 자리를 잡으며 살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리라. 그렇게 하지 않으려 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장기적으로는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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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의 조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정현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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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역자 서문에서 말하듯 ˝요약력˝에 대한 내용을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내용을 핵심적인 20%와 나머지 80%로 나누는 안목과 능력을 키우고 싶다. 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이 뭘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지를 미리 생각해 보라는, 그렇게 핵심 키워드 몇 가지를 골라서 항상 염두에 둔 상태로 책을 한 번 읽어보라는, 그렇게 하면 책의 중요한 내용이 자석에 달라붙듯 나무에 매달리듯 할 거라는 저자의 제언이 무척 값지다.

또한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다 읽어야 한다는 고집을 버리라는 내용도 반가웠다. 책 한 권을 남김없이 다 읽어 내려고 하지 말고 중요한 20%를 찾아서 빠르게 취하는 방법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내버릴 수 있는 능력도 생길 것이라는 내용인데. 내가 딱, 한 번에 두세 권의 책을 꼭 왔다 갔다 하면서 읽는 편이라 이 부분의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던 게 ‘이렇게 하는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달까.



요약을 하는 능력, 뭔가를 잘하고 뭔가에 통달한 사람을 보고 명시적 지식뿐만 아니라 암묵적 지식을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과 욕심, 이런 것들이 사람을 한 분야에서 탁월한 위치에 오르게 한다는 말인데. 그런데 이 책은 요약력을 강조하는 책인데도 내용을 요약하기 어렵다. 내용의 구조가 어지럽게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쓴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점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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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박태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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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주요 사항을 주요 쟁점이 되어왔던 주제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현대사 개설서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 내용이 나오고, 2000년대부터 2010년대의 내용도 상당히 다루어 흥미로운 책이다. 역사 교사로서 전공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읽기 좋은 책이었다.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다. 각 장마다 지나치게 길지 않은 분량으로 서술하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나는 아래 내용들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신탁통치 논쟁 뒤에 숨은 미국과 소련의 숨겨진 의도 :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대충 수습하여 던져놓고 발을 빼고 싶어 했다는데.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성에 대한 객관적 사실 : 유엔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은 사실은 말이야, 당시 유엔이 결정한대로 총선거를 실제로 실시했던 38선 남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이지. 이건 차후 북한이 혹시라도 붕괴할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한국 정부는 오로지 남한 지역에 대한 합법성만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통치권이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

박정희의 민주 공화당의 성격 : 의외의 인물들이 많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군부와 구 자유당 세력이 대다수였지만, 좌익 출신과 혁신 계열 인사들도 포진해있었다. 뭐 그렇다 한들 공화당 자체의 성격은, 글쎄...

베트남 파병 군인들의 전투 수당 문제 : 전쟁터로 끌고 가놓고 수당을 제대로 안 주고 강제 저축을 시킨 나라라니!

1971년 대선의 정책 대결과 김대중의 대중경제론,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 :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저 신자유주의 정권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 제3의 길에 가까운 그것이었다니. 사실 그것도 신자유주의를 사민주의와 절충한 것이기는 하다만.

87년 체제(민주화의 시간)와 97년 체제(세계화의 시간) : 민주화의 환희의 시간은 짧았고, 세계화가 가져다준 무한 경쟁의 지옥은 길었다.

햇볕정책의 오랜 방향성: 햇볕정책은 사실 70년대 박정희 정부 때부터 지속된 움직임이었다.

NLL을 여태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NLL은 정전 협정에서 얘기된 바 없고, 게다가 정전 협정은 다른 문제도 많았다지. 북한 쪽 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거. 게다가 7.7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10.4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우리 손으로 그것을 내던져버렸다. 그래서 NLL 문제는 여태 표류 중.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문제의 문제점 : 노무현 정부는 사실 한국에서의 방위 부담을 줄이려던 미국의 의도에 성급하게 걸려들었던 것.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나올 때마다 미국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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