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라서 여행 온 숙소에서 백석의 시를 읽는다.참 귀여운 시인이다. 읽다 보니 이 사람은 먹는 걸 참 좋아했구나 생각이 든다. 또한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게 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매번 시를 쓸 때마다 고향땅의 수많은 맛있는 음식들과 그걸 함께 나누어먹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외롭고 궁핍한 절을 보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으며 나도 숙소 천장을 잠시 응시해 본다.아무튼 평안도 사투리에 대한 각주를 찾아 읽어볼 마음만 있다면. 두고두고 한 번씩 생각날 아름다운 시와 노래들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은 어떠할지.++ 다만, 해방과 분단 후 북한에서 썼다는 시들은 뭐랄까... 도저히 못 읽어주겠다. 당대에 북한 체제에서 살아간 지식인들의 사정이 어떠했을지 엿볼 수 있는 참고 자료 정도는 될 수 있겠다. 거기서 살아남아보려고 어거지로 당의 나팔수 역할을 해야 했지만, 결국 핍박을 받고 힘겹게 말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평생 묵묵히 사진을 진지하게 찍어온 어느 예술가와의 인터뷰집이다. 그의 작업 관점과 방식, 태도를 볼 수 있어서 좋은 책. ˝사진 강의 노트˝ 이후 퍼키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겸허하면서도 날카롭고, 한편으로 따뜻한 그가 참 좋다. 나는 아래 말이 마음에 무척 깊게 남았다.˝아마도 우리가 사진가이므로 삶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진정으로 삶이 경이롭기 때문이지요.˝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시에 갔다가 한정식 작가의 ˝고요˝ 시리즈에 반해서 그의 교수 시절 저서를 사서 읽어봤다. 절판 된지 오래라 중고 서점을 뒤져서 구했다.무려 ˝개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옛스러운 책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잘 읽힌다. 사진 좋아하는 털보 아저씨가 ‘어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고 애정어린 참견을 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랄까. 아무튼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핵심을 찌르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침 흘리며 읽을 것이니.이 책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배움은, 사진은 그림이라기보다 글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회화가 아니라 이야기다. 한 편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짤막하지만 울림을 크게 주는 시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 없는 걸 상상으로 지어낼 수 없다. 현실을 포착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주제가 있어야 한다.나의 사진이 예술에 닿는다는 건 까마득한 일이겠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디선가 본듯한 근사한 그림을 흉내낸 예쁜 사진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이걸 왜 찍는 지 생각하기 전에, 그럴듯한 소재를 그럴듯한 구도와 색상으로 담으려고 덤벼들기 바빴지는 않았나.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고 그들이 무엇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일은 사진이라는 즐거움을 더 깊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초기 불전인 ˝니까야˝를 모두 모아놓은 책이다. 니까야는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불교인 대승불교에서 중시하는 금강경이나 화엄경 같은 대승경전이 아니다. 대승불교에서는 한역되어 ˝아함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원래는 초기 불교와 남방 불교 계통의 불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나는 이걸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3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무시무시한 분량이다. 그나마 중복이나 무의미한 반복 부분은 빼고 간추린 게 이 정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걸 다 읽는데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지금은 두 번째로 읽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처럼 끝까지 쭉 읽어보는 건 읽다가 지쳐서 사실상 포기했다. 그냥 생각날 때 조금씩 읽어보고 있는 중.무시무시한 분량이지만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불교에서 신화나 신비주의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심플하게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내용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쪽으로 오면 된다. 그게 아니라 절에 가서 불경 외고 복을 빌고 싶다면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천수경이나 소리 내어 읽으면 되겠다.이 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굳이 요약하자면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한바탕 꿈이고 환영˝이라는 것. 부처는 그걸 알아차리고 꿈에서 깨는 방법을 살아생전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도 가르쳤고, 그 기록을 초기 형태에 가장 가깝게 모아놓은 게 ˝니까야˝다.사성제가 무엇이고 12연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8정도는 어떻게 닦아가는 것인지 끝없이 반복해서 알려준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읽어나갈 수만 있다면, 읽다 보면 어느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알 수 있게 된다.나는 그 어떤 심리학이나 인지과학보다도 불교의 가르침이 인간 내면의 핵심에 깊이 다가가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괴롭다면, 마음이 괴로운 게 괴롭다면 시간을 내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단, 처음부터 쉬운 부분만 찾아 읽으려 하거나 하면 다 허사다. 꼭 처음에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읽어야 한다. 반복되는 이야기 같아도 계속 가야 한다. 그럼 어느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숫나티파타 중) 살아가는 게 어떤 느낌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된다.요즘엔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조금씩 펴서 읽어보고 있다. 그럼 신기하게도 위로가 된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나를 괴롭게 하는 이 모든 게 결국 환영일 뿐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게 되기 때문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