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부탁해 - 온전한 자존감과 감정을 위한 일상의 심리학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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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인상은 좀 별로였다. 책의 절반이 말랑말랑한 그림이다. 글자 크기도 크고 줄 간격도 넓고.

 

괜찮은 책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았다. 그런데 막상 펴보니 책장사들이 대충 찍어내서 파는 책 같아서 놀랐다. 표지하고 페이지를 예쁘장하게 만들어놓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알맹이 없는 내용을 끼워 넣은, 신간코너에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책인가 싶었다. 일단은 글쓴이를 믿고 샀다. 그가 쓴 다른 책을 참 재미있게 읽어본 적이 있으니까. 그냥 가볍게 읽어보자 생각하고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그런데 읽다보니 마냥 책장을 빠르게만 넘길 수는 없었다. 읽을수록 단단한 알맹이가 느껴지는 책.

 

이번 책에서는 글쓴이가 그동안 쓴 심리학책들의 요점을 추려 모아 놓은 듯하다. 실험 사례나 일화들을 많이 뺐다. 소개는 하더라도 내용이나 과정을 자세히 넣지는 않았다. 대신 글쓴이의 통찰과 조언을 많이 넣었다. 빤한 말도 있지만 귀담아들을만한 이야기도 많다.

 

이 책은 무척 가볍게 펼 수 있다. 어려운 말이 나오지 않고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던 이야기가 많다. 생각해보니 그게 이 책의 미덕이다. 뻔하고 많이 들어봤던 말이라도 그걸 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어떤 조언이 내게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는 조언의 내용보다 조언의 전달 방법에 달려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말들이 무척 설득력 있어서 여러 내용이 마음에 묵직하게 와 닿는다. 예전에 흘려들었던 말들을 이번에는 귀담아 듣게 된다. 빠르게 훑어볼 수도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읽어보면 더 좋은 책이다. 게다가 일반적 통념을 깨는 내용들도 꽤 있다.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독감 예방주사 몇 번 맞는다고 평생 독감을 앓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에 맞춰 맞아 놓으면 독감에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심하게 앓지 않고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책 몇 권 읽는다고 곧바로 잘 사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지쳐서 마음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꺼내서 위로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물며 그 위로와 통찰이 알맹이 없는 헛소리가 아니라 많은 연구와 실험으로 검증된 것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음의 예방주사 같은 책이다. 많이 꺼내볼수록 약효가 잘 듣는.

 

 

우리는 우리를 해치는 나쁜 환경을 과감하게 거부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의지를 신경 쓰기보다 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삶의 모든 순간은 온전히 내가 할 경험들이다. 따라서 모든 결정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 내려야 한다. p194.

 

 

이 책은 내가 내 마음을 잘 추스르면서 건강한 마음으로 살려면 어떤 것들을 잊지 말고 챙겨야 하나를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줄기는 자존감이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감정.

 

마크 리어리 등의 학자들은 자존감은 어떤 것의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그럭저럭 잘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삶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고 그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 그 결과로서 건강한 자존감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남이 나보다 더 행복해보이든, 나보다 더 잘 나가든 말든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말이다. 따라서 건강한 자존감은 급조하기 어렵다. ‘나는 내가 좋다는 주문을 천 번을 외우더라도 진심으로 지금의 삶이, 내 모습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럽지 않으면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p90-91.

 

 

원론적이지만 무척 옳은 말이다. 내가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데 얕은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튼튼한 자존감은 갑자기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다. 내 삶이 내 마음에 들어야 정말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싫은 일은 되도록 피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조금씩 해나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작은 벽돌을 쌓아올리다 보면 큰 집을 지을 수 있다. 글쓴이는 무척 소박하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매 순간 진실로 살아 있는 삶을 살자.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하기 싫은 일, 자신의 꿈이나 가치관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나와 맞는 길을 걷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 행복하다하고 느낄 수 있는 일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더라도 스스로 뿌듯하다거나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p92-93.

 

나 자신이 가장 크게 자존감을 걸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만약 자존감 지지대가 스쳐가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거나 극단적으로 어느 하나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건 좀 위험하다. 자존감을 (평가에 취약한) 외적인 무엇보다 나의 내적 가치에 더 많이 걸어두는 것이 좋다. 당신의 중요한 가치, 또는 당신이 좋아하는 당신만의 특징에 자존감을 걸어두라는 얘기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 ‘사과를 잘 깎는 내가 좋아’,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좋아’, ‘미식가인 내가 좋아등등, 누가 뭐라고 하든 나 스스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특성들을 자잘하게 개발해두는 것이다. p76-79.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사람들과 관계를 건강하게 맺기 힘들다. 마음은 생각날 때마다 자기감정을 잘 추스르고 챙기는 과정 속에 건강해진다. 감정이 끓어오를 때 그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고, 마음을 쉴 수 있게 즐거운 일을 찾고, 내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일들은 굳이 부딪치지 말고 피하면서.

 

감정이 발생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 사람들(감정과 관련된 사건을 재평가해 본 사람들), 즉 성급히 부정적 감정으로 빠져들기 전에 잠깐하고 외쳐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 모든 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 잠깐!’하고 외쳐보면서 감정을 조금씩 조절해보자. p142-143.

 

한두 시간 짬을 내어 정말 확실하게 재충전을 해주는 게 좋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쉬는 것도 좋지만 잠깐 동안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느껴주는 것도 좋다. 특히 힘들 때 즐거움을 느껴주면 육체적으로 푹 쉬는 것 못지않게 큰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효과가 사라지고 떨어졌던 수행이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바버라 프레드릭슨 등의 학자들은 스트레스 지우개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p152-153.

 

스트레스 지우개. 멋진 말이다. 읽다가 나의 스트레스 지우개는 뭔지 생각해봤다. 그리고는 조이스틱을 하나 질렀다. 앞으로는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집에서 쉴 때 스트리트파이터라도 한 판씩 하려고 한다. 쓸데없어 보이지만 뭐 어때? 당장은 시간낭비 같아도 잠깐 이렇게 쉬어갈수록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데.

 

 

일상적인 스트레스는 별 일 아닌 듯 무시해도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큰 스트레스보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크게 해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의미나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게 좋다.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하면 게으르다고 보는 시선들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편하게 살자. 이런 작은 스트레스들의 해로움을 알고 나면 실은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장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관리이자 투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p184-185.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보통 삶의 조언 같은 걸 건넨다는 책에는 꼭 꼰대 같은 말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아파야 청춘이라느니,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성장한다느니 같은. 그게 다 누구를 위한 말인가? 적어도 정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아픔을 위로해주는 말인가, 아니면 더 많이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말인가?

 

그런데 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말인가. 고통을 찾아서 겪을 필요가 없다니. 가급적이면 편하게 살자니. 그게 내게 가장 좋은 투자라니. 저 구절을 읽고서 이 책 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글쓴이부터 흔해빠진 꼰대와 다른, 무척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사람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인간관계다. 사람은 사람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고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건 관계 자체보다 그걸 받아들이는 내 마음, 내 태도라고 한다. 상황은 내가 보는 것처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비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실제로 더 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두려움이 오히려 소외를 불러올 수 있다.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주 미묘해도 표시가 나게 마련이고(불안해하는 눈빛, 굳어 있는 표정, 움츠러든 몸 등) 금세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는군같은 메시지를 준다. 두렵고 미숙할 뿐이지만 상대방의 머릿속에서는 나를 불편해하거나 탐탁지 않아한다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p215-217.

 

어떻게 보면 무척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잘 까먹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참 뻔하다. 사람을 좀 더 편하게 대하라는 것. 그러나 무척 지키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떠올려보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해보면 좋을까? 글쓴이는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려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완벽하고 뛰어난 아이라서 내가 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좋고 취향이 비슷하며 엉뚱해서 등등, 사소하고 다양한 이유 때문에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또한 나를 다양한 이유 때문에 좋아할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좀 더 편안하게 사람을 대하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사그라질 것이다. p220-221.

 

 

글쓴이는 전에 냈던 책에서 사회심리학 내용을 알기 쉽게 소개했다. 이번 책은 그보다는 내 마음을 잘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심리학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 하나 읽었다고 바로 예전보다 더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실천해보면 도움이 되는 것들을 여럿 알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럴 때마다 이 구절도 떠올려봐야겠다.

 

실패는 유리가 힘을 받아 깨지는 과정과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철이 두드림으로 단련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p265.

 

 

오늘은 그럼 뭐부터 해볼까? ! 일단 조이스틱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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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스트레스 지우개‘는 책입니다. 가끔 마음이 울적해지면 중고책 서점에 가서 책을 많이 고릅니다. ^^

돌아온탕아 2017-05-29 20:57   좋아요 0 | URL
정말 부러운 지우개입니다. 그게 최고지요! 저도 책으로 지우개를 삼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cyrus 2017-05-29 21:21   좋아요 0 | URL
부럽긴요. 지갑 안에 있는 돈도 순식간에 지워져요. 절제가 제일 중요해요. ㅎㅎㅎ

돌아온탕아 2017-05-29 22:07   좋아요 0 | URL
지름중에 제일 무서운게 책 지름이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