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품절


짧은 호흡에 모두 읽어내렸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을 뼈대 삼아 긴장감 있게 이야기가 잘 짜여서일까.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넓은 만주를 외롭게 내달린 그의 족적이 너무 생생해서일까. 외롭게 악의 시대와 분투하다 서른한 살에 죽은, 영웅의 외투를 벗은 안중근의 젊은 날을 만났다.

문장은 역시나 간결하고 이야기 흐름은 흐리멍덩하지 않고 또렷하다. 세세한 내러티브는 작가의 상상으로 새로 엮었지만 사건의 줄기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없는 낭설과 군더더기는 모두 뺐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그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토와 기타 주변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 대목 중에 단편적으로 잘라서 보면 간혹 작가의 역사관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시대를 그렇게 끌고 간 대세의 흐름과 침략자를 정당화한 논리, 한국의 비극에서 한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의 상황 인식의 어떤 단면을 느끼게 해주는, 그렇게 안중근이 걸어간 길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광복절 새벽부터 띄엄띄엄 읽기 시작해서 책을 덮으니 광복절 다음날 새벽 네 시다. 되지도 않는 명분과 말의 성찬을 앞세워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힘으로 휘젓고 집어삼킨 그 시대가 새삼 너무 슬프다. 그런 시대에 총을 들어 이토를 쏘아 죽인, 자기를 스스로 변호하지도 않은, 담담하게 포수와 무직으로 스스로를 진술한 안중근의 청춘과 담배팔이를 전전하다가 말없이 그와 함께 총을 들었던 우덕순의 청춘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홀연히 던져버린 그들의 젊은 날과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 같은 사람의 젊은 날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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