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었나?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질문이다.
19세기 후반은 일본 역사에서 가장 큰 변동이 일어났던 시기이며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은 그 중심에 있는 사건이다. 너무 유명한 사건이고 너무 잘 알려진 시기라 이를 다루는 책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여러 책들 중에 거의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시기를 메이지 국왕의 서사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일본 근대사에 정통한 서양인이 정리한 메이지 국왕 시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기본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서술하기는 하지만 일본이나 일본 왕실을 찬양하여 불편한 기분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 책이다. 비판할 지점은 과감하게 비판하면서도(예를 들면 대만 침략이나 한국 강제 병합에 대해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 시대에 이루어낸 성취를 우호적으로 평가한다. 그냥 그 정도의 지점에 서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 책이 특별한 지점은, 메이지 국왕의 아버지 치세부터 본인 치세까지의 일들을 국왕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당시 시대의 모습을 무척 천천히,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우리가 쉽게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일본 왕실의 전통 의례 모습이라던가, 일본 국왕에게는 통치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종교적인 색채를 띤 의식을 주관한다거나 단카(일본의 전통 시가의 일종)를 잘 짓는 일이 더 중요한 일로서 요구되었다는 따위의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메이지 국왕이 태어나서 장성하고 죽는 과정이 일본이 전근대 국가에서 서구화된 근대 국가로 바뀌어가는 여정과 포개진다. 주인공은 국왕이지만 때때로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들(이를테면 사이고 다카모리라던가, 우리 입장에서 잊을 수 없는 이토 히로부미라던가)이 이야기를 앞에서 끌고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과 관계가 있었던 주변 국가들-중국, 조선, 러시아 등-의 사정도 역시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너무 구체적이라 내용이 길게 늘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옛날이야기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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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 왕조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무척 가슴이 아프다.
일본이 조선(대한 제국)을 강제 병합한 건 야만스럽고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비난만 해서는 우리가 배울 게 없을 것이다. 일본이 멀쩡한 나라 하나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왜 망하는 길로 가게 되었는가를 짚어봐야 할 일이다. 막바지의 조선 왕실, 그리고 위정자들은 무척 어설펐고, 무능했고, 때때로 지독하게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문제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나라를 당시에 이끌었던 사람들의 선택과 책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에 일본은 가능했지만 우리는 불가능했던, 일본은 취했지만 우리는 취하지 못했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자. 그럼 지금 이 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으며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