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안에서 - 1%의 차이가 만드는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 프레임 안에서 1
데이비드 두쉬민 지음, 정지인 옮김 / 정보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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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한 사진을 보게 될 사람에게는 프레임 안의 세상이 존재하는 전부다. p28.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내겐 너무 익숙하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남들에게는 ‘처음 보는 사진’이다. 처음 보는 사진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느끼게 할까. 아니, 매력을 떠나서 어떻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사진을 만들까.


사진을 찍어서 내보인다는 건 내가 본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행위다.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행위다.


내가 발견한 이 세계의 인상적인 한 조각을 그저 나 혼자 담아놓고 싶다면 아무렇게나 찍어도 된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하지만 내가 발견한 그것을 남들도 알아보길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레임 안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지, 어떻게 내용을 담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내 생각을 남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면 말을 조리 있게 요령껏 해야 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런 걸 잘 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딱딱할 수도 있는 내용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쓴 재주가 좋다. 내용을 보지 않고 책에 실린 사진만 봐도 즐겁다. 글쓴이가 찍은 사진들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탁월하니까.


카메라를 만지고 사진을 나오게 하는 기초부터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다가 ‘아. 내 사진은 왜 맨날 제자리지?’라고 느껴본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에도 카메라와 렌즈를 다루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대개 이런 식이다. 어떻게 다뤄야 사진이 좀 더 의도한 바에 맞게 나오는지에 대한 팁들.







패닝을 할 때 자동초점을 사용하면, 해결되는 것보다 생기는 문제점이 더 많다. 나는 수동 초점 모드에서 피사체가 지나갈 지점에 대고 미리 렌즈의 초점을 맞춰놓고, 조리개를 잔뜩 조여 넓은 피사계 심도에 의지한다. p45.


렌즈의 선택을 “피사체가 얼마나 멀리 있지?”하는 단순한 문제로만 환원하는 것은 문제를 말도 안 되게 단순화시키는 일일 뿐 아니라, 사진의 외양에 미묘한 효과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일이기도 하다. p65.


망원렌즈는 깔끔하지만 광각렌즈는 산란하다. p70.







글쓴이가 거듭 강조하는 말이 있다. ‘비전’이다. 이 책은 그 비전을 찾는 방법부터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도록 틀을 짜고 표현하는 방법까지 두루 다룬다. 반드시 어떻게 하면 잘 된다는 말을 해주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걸 생각해보면 좋은지를 알려준다.







사진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암시하고자 한다면 그 사진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어야만 한다. p90.


성급하게 한 장소의 표면만 스쳐 지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물론 흔치 않은 일이지만 심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둘러서 사진을 찍을 때는 대체로 엽서 사진과 같은 전형적이고 진부한 사진만 나온다. p184.


갈등이 없으면 이야기도 없다. 사진이 이야기다운 것을 포함하거나 암시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갈등이 있어야 한다. p94.


그것은 미묘하게 해야 한다. 꼭 자유의 여신상을 넣어야겠다면, 숨어 있는 작은 디테일로 만들어 다른 디테일과 대조를 이룰 수 있게 할 방법을 찾아보라. 그런 사진은 “그래, 이게 바로 뉴욕이지”하고 말하지, “이봐요! 이건 뉴욕이야! 알아차리셨나? 뉴욕이라니까!”하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 그것은 선택과 배제의 행위이며, 자신이 그 장소에서 한 경험을 가장 강렬하게 반영하는 요소들은 포함시키고, 무의미한 디테일은 제외하는 일이다. p199.







책 한권 읽는다고 금방 사진을 잘 찍게 되지는 않는다. 책을 제본이 떨어지도록 읽었지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할지 여전히 막막하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이 더 나아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읽는다고 바로 그게 내 자신이 되지는 않지만, 책에 담긴 무언가를 나도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하는. 노력을 해보는 계기가 되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돌아보는 글을 쓰며 나도 기대해본다. 언젠가 내 사진도 좋아지겠지? 언젠가 내가 하는 고민들이 동물적 감각이 되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되겠지?







재현적 사진은 “베를린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해석적 사진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베를린은 이랬습니다. 그리고 나는 베를린에 대해 이렇게 느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차이는 아내의 여권 사진과 약혼할 때 내가 아내를 찍은 사진의 차이와 같다. … 후자의 경우 아내에 대한 사랑과 성격에 대한 이해, 그리고 기술과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써서 그것을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여권 사진은 “그녀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말한다. 남편이 찍은 사진은 “그녀는 나에게 이런 존재다. 이것이 내가 그녀에 대해 갖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이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p166.







책에서 가장 깊게 와 닿은 구절이다. 재현적 사진과 해석적 사진의 차이. 특별한 사진은 피사체를 내 시각으로 해석한 사진이다. 그런 사진만이 탁월한 사진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를 특별하게 담은 사진을 탁월하게 남기는 것. 가장 보고 싶은 누군가를 뷰파인더로 바라볼 때 가장 또렷한 사진이 남는다. 지나간 시간의 나도 그랬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나도 그럴 것이고.


이 구절을 읽으며 글쓴이가 사진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을 담아서 할 것. 내 사진도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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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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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러시아 소설을 꺼내 읽는다. 뻔한 제목에 끌렸던 것일까?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골랐다


옛날 러시아 소설은 대사가 왜 이렇게 길까? 그 시절에는 원고료를 글자 수대로 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길게 늘어진 말들이 읽기 힘들었지만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보니 어느새 주인공 입장이 되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역시 '대가'는 달라.


주인공은 이웃집에 사는 처녀를 깊이 좋아하게 된다. 그는 애가 타지만 그녀는 마음을 줄듯 말 듯 아리송하고 여유 있다. 어떨 땐 차갑게 밀어내다가 어떨 땐 따뜻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은 그녀보다 나이도 내면도 아직 너무 어려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남자보다 여자가 빨리 크기 마련이니까.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남자는 너무 근사해서 주인공이 평소에 열등감을 품었던 사람. 그리고 주인공 가까이에 있던 사람. 주인공은 안절부절하기만 하다 그렇게 사랑을 놓친다. 주인공 내면의 무언가도 크게 바뀐다.  그는 더 이상 무언가를 뜨겁게 좇지도, 원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다.


참 불쌍하다. 길고 자세히 묘사해서 읽는 나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여자가 하는 말과 행동에 따라 하늘을 날다가 바닥에 곤두박질치기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귀엽다. 우리, 한 번쯤 이래보지 않았나요? 아니, 지금도 이러고들 있지 않나요?


이 구절이 무척 깊이 와닿았다.


아마도 너의 아름다움의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맞다.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 가능성을 믿는 마음 때문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가능성을 만든다. 그렇게 스스로 믿고 살았던 시간에 나는,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며 아름답게 세상을 비췄다.


나는 지금 어떤지 돌아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는 걸 잘 알기도 한다. 난 그렇게 아름다운 젊음에서 슬쩍 멀어져왔나 보다. 나도 이렇게 칙칙한 세계로 밀려나온 것인가. 하지만 꿈을 계속 꾸고 싶다. 벌써 그러기엔 뭔가 억울하다. 주어진 가능성에 맞춰 살기보다 가능성을 만들어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이 내는 빛을 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빛을 비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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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펌 -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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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가 지겹다면, 자기계발서가 쓸데없다는 걸 알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아니 자기계발을 비판하는 책이다.

 

항상 긍정적이어야 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이어야 하고, 새로운 걸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어야 하고, 뭔가 계속 배우고 채우고 발전해야 한다는 말에 지치는 시대다. 이 책은 그런 말들을 철학으로 시원하게 꾸짖는다. 그런 말들이 왜 나쁜지, 그 이면에 어떤 배경이 숨어있는지도 짚어본다. 그런 말들이 어떻게 삶의 뿌리를 흔들고 누군가에게, 조직 사회에,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게 만드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아실현 쓰나미는 고분고분하고 유연한 노동력을 원하는 시장의 요구를 지원하고 부추겼다. 자아실현은 더 이상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 도움이 되도록 계발하고, 심지어 자본으로 삼아야 하는 내면의 자아가 우리 안에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제도에 대한 진짜 저항은 자아든 무엇이든 찾기 위해 우리 안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자아를 찾고 계발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고도 떳떳하게 사는 길에 있다. p55.

 

 

삶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최선의 삶이 따로 정해져있으며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사람들이 많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속절없이 따라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진짜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아무리 뜨겁게 내달려도 결국 누군가의, 조직의, 자본의 충실한 노비가 될 뿐이다. 자기 스스로 단단하게 빚은 정체성도 없이 남의 말대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글쓴이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휘둘리지 말고 자기의 뿌리를 내리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계발서가 해법을 일러준다면, 철학책은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 해법이 남이 정해놓은 답으로 이르는 길이라면 태도는 나의 정체성을 쌓아올리는 디딤돌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몇 백 곱절은 어렵다. 명쾌하고 간단하게 말하는 자기계발서보다 어려운 말로 아리송하게 더듬거리는 철학책이 이해하기 어렵듯이. 그렇다면 철학을 가르쳐주는 책보다 철학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은 어떨까?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하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우선 아래 두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는 투덜댈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 투덜댄다고 긍정적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지라도 투덜댈 수 있어야 한다. p86.

 

인생이 힘든 건 진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힘들지 않은 척 살아야 하는 게 문제다. 불평과 비판은 단지 상황을 견디는 방법만은 아니다. 투덜댈 자유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라야 우리는 일종의 인간적 존엄을 갖출 수 있다. p85-86.

 

우리 일상에서 투덜대기는 죄악이다. 투덜대는 사람은 아무도 좋게 생각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투덜대기는 죄악이 아니라 해방이고 존엄성이다. 일상이, 사회가, 조직과 집단이 마냥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지 않은 상황을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는 언뜻 듣기에 그럴듯할지 몰라도 대부분 문제 상황을 마주보지 않고 도망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그렇게 도망만 다닐 수 있을까? 마주 봐야 한다. 나쁜 건 나쁘다고 떠들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한다.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존엄하고 성숙한 사람이다. 아이의 입에서 처음 나온 아니요는 성숙과 독립을 향해 내딛는 중요한 첫 걸음을 의미한다. 이런 저항은 자율성을 향한 첫걸음이다. p100.

 

존엄함이란 최신 유행을 좇는 대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존엄함은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일관된 정체성을 구축하고 지키려는 노력이다. 존엄함의 반대는 노상 라고 말하는 것이다. p101.

 

우리는 부정보다는 긍정이 옳다고 가르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긍정보다 부정이 옳을 때도 있다. 뭔가를 부정한다는 건 타자의 압력으로부터 자기가 믿는 바를 지켜내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모든 제안과 요청에 라고 말하고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워 보일 수는 있어도 자기를 지킬 수는 없다. 글쓴이는 자기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뭔가 대답하기 전에 한숨 돌리면서 의심해보는 일이라 한다.

 

의심할 때 우리는 으레 글쎄요라고 답한다. 그러니 글쎄요라는 대답을 늘 준비해두라. 달리 말해, (검증되지 않은 확신으로) “긁어 부스럼만들지 말고 그냥 놔둬라. p110.

 

 

그럼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까?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은 그 뿌리를 내 안에 굳게 내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를 좀 더 발전시키고 뭔가를 더 배우고. . 이래서는 또 반복이다. 글쓴이는 답을 에서 찾지 말고 에서 찾으라 한다.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채우고 나를 바라봐도 내가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라는 옹색한 껍데기를 벗어나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내 안으로 파고들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고 같이 서있을 수 있는 나무를 찾는다면 어떨까? 답은 나무 한 그루에 있는 게 아니라 숲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안이 아니라 밖을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문화, 자연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열쇠가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자아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문화사의 구성물이자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우리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p45.

 

사실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별로 없다. 반면에 우리와 서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책임을 다하다보면 우리가 진짜우리 자신인지 아닌지는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p60-61.

 

우리는 내면의 자아나 일련의 틀에 박힌 성격 특성들로 우리가 누구인지가 본질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에 익숙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약속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의무는 그냥 그냥 귀찮지만 해야할 일이 아니라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일이다. p212-213.

 

 

글쓴이의 재료는 스토아 철학이다. 책을 읽다보면 에픽테토스,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말도 만날 수 있다. 글쓴이는 왜 고대 철학을 다시 들고 나왔을까?

 

고대 그리스인은 폴리스라는 자그마한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나타나 그 울타리를 부수었다. 망가진 울타리 바깥에 광대한 제국이 있었다. 안락한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에서 떠다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넓은 세계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제국, 그리고 그 뒤의 로마 제국 시대에도. 이렇게 스토아 철학이 태어났다.

 

우리 시대와 헬레니즘 시대는 닮은 점이 많다. 끝이 안 보이는 세계 앞에 내던져졌다는 점에서, 특히 마음껏 노닌다기보다는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다닌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으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길을 찾고 걸어가는 태도가 어때야 좋을지를 알 수 있는 지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도 나를 쉽게 흔들지 못하게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야겠다. 아니, 나부터 나를 그만 휘두르는 게 좋겠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에 따르면 지나치게 바쁜 사람은 과거를 응시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곳저곳에 있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단단히 서 있지 못한다. 침착하고 잔잔한 마음은 삶의 구석구석을 산책할 힘이 있다. 그러나 너무 바쁜 마음은 무거운 멍에를 지기라도 한 듯 몸을 돌려 뒤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어두운 나락으로 사라져버린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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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당신을 위하여 - 철학 범우문고 15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범우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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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끌리는 책이 있다.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라니. 왠지 나 같은 사람-찬바람을 피해 전기장판 끌어안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34세 남성-이 보라고 쓴 책 같다. 무슨 내용이 들었을까?

 

 

저는 혼자서도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 한 번도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습니까? 울적한 기분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습니까? 당신은 생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 자극을 주는 약물을 복용해 본 적은 없습니까?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어 미친 듯이 자동차를 몰아본 적은 없습니까? 당신의 근면한 활동, 잘난 체 하는 행위 등은 결국 당신이 이렇다고 꼬집어 부를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절망적인 외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p19.

 

눈에 띄는 구절이 책 앞머리에 있다. 혼자 영화보고 울적한 기분에 술 마시고 하는 건 나도 해봤다. 마지막 문장을 곱씹어 본다. 왠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이렇다 꼬집어 부를 수 없는 위험이 무엇일까? 아마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은 불안과 외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쭉 읽어보니 무척 종교적인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라로 끝난다. 나처럼 종교적이지 않은 속세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종교 이야기를 걷어내고 읽으면 좋은 내용이 꽤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외롭게 하는 게 무엇인가를 다룬 구절.

 

 

우울증과 히스테리는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둘 다 마음이 병들고’ ‘순조롭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며 마음이 너무 긴장하여 기대를 하거나 지나치게 갈망을 하거나 열띤 감정을 갖고 있는 것, 즉 자아광란狂亂에까지 이를 정도로 지나치게 자기 몰두를 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만 걱정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끝없이 자아의 주위를 돕니다. p63.

 

글쓴이는 우울증을 이렇게 진단한다. 한 마디로 우울한 사람은 너무 자기에게만 빠져 들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자기 안의 세계에 묶여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갉아 먹게 되기 마련이니까.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병아리는 그 안에 갇혀 죽는다.

 

에고이스트란 자기의 자아를 유별나게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갖고자 원하면서 그것을 찾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려하나 제대로 못 찾는 사람입니다. 에고이스트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은 항상 확증을 받고 싶어 하며 몹시 예민합니다. 그래서 어떤 비평의 그림자도 그들에게는 절망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이 중요합니다. p135.

우울증, 자기중심, 이기주의는 실제로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 특성이며 정말 기분 나쁜 것들입니다. p64.

 

너무 자기에게 몰입하면 불행해진다. 자기만 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은 외롭고 아플 수밖에 없다. 내가 나를 외롭게 하고 아프게 찌른다.

 

나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힘들고 피곤하다고 내 감정과 내 상황만 살피며 지내지는 않았는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지만 그렇다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눈과 귀는 바깥으로 열어 놓아야 제 몫을 다할 수 있다. 내가 스스로 만든 틀에 스스로 갇히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때 행복합니까? 나는 이럴 때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을 바라지 않거나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때 행복합니다. 요컨대 어떤 인간이나 어떤 사건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겼을 때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만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을 때가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때입니다. p136.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과중한 근심은 전연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무엇에 헌신할 때 사람들은 왜소한 자연의 한계선을 넘어서서 자신의 힘보다 훨씬 위대한 힘의 결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기주의의 극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가장 건강한 사람이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는사람이며 어떤 이념의 힘에 의해 승화承華된 사람인 것입니다. p68.

 

하지만 글쓴이가 내놓은 처방은 왠지 마뜩치 않다.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을 때에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나보다 더 큰 세계에 발을 들이고 힘껏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모든 걸 내던지면 어떻게 될까? 일 잘 하고 사람 잘 챙겨서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야 있겠지만 내 안은 텅 비게 되지 않을까? 그런 게 행복일까? 그런 게 충만함일까? 그러다가 결국 삶 자체를 공허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꽤 봤다. 나는 그런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뭔가에 몰두하는 것만큼 나를 잘 챙기는 일도 중요하다. 너무 내 안에 갇혀있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잃어버리는 것도 안 될 일이다. 무엇이든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나를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바치라는 말은, 조금 극단적으로 보자면 신에게 모든 걸 바치라고 외치는 광신도나 국가와 집단의 영광을 부르짖는 파시스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물론 글쓴이는 그런 불순한의도에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다만 윤리적인 삶을 종교적 관점에서 너무 딱 잘라서 말하는 게 불편하다. 도움이 될 말만 가려서 본다면 시간낭비를 하게 하는 책은 아니다.

 

죽음을 주제로 쓴 구절이 마음에 든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본질적으로 외롭다.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외면하지만 결국은 누구나 죽게 된다. 글쓴이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꿋꿋하게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귀담아 들을 말이다.

 

생물학적인 죽음은 한번뿐이겠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번 죽습니다. 출생조차 말하자면 하나의 죽음입니다. 모체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춘기에 맞이하게 되는 유년 시절과의 결별, 처녀성의 상실, 성적 능력의 사라짐, 나이가 먹어 아름다움을 잃는 일, 자식들의 분가, 애인의 죽음, 환상과의 결별, 자기의 자질과 계획들의 포기, 이 모든 것들이 모두 그때그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이나 모든 체념도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별 없이는 발전이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결별은 잃음이면서 동시에 얻음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낯익은 것을 포기하기 싫어하고 변화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성장의 아픔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용감하게 그런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왜 최후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합니까? 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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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 눈빛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떤 장소에 서 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것에서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 알 이유도, 알 방법도 없다. 나와 그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빛. 그 빛을 기록하는 작은 카메라를 집어 든다. 결과는 내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를 보일 수도, 고양된 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절대 알지 못하기를 희망한다. p58.

 

 

나는 사진을 왜 찍을까?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어딘가 가는 길이다. 또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시간이 남는다. 그러다 뭔가 내 눈에 들어온다. 그게 왜 눈에 밟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슬쩍 건드렸다.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다 사진으로 남긴다. 찍어놓은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고 보면 몇 개가 눈에 띈다. 다시 보니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옮긴다. 그러다보면 별로 특이할 것도 없었던 장면을 이제부터 특별하게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의 한 조각과 어쩌다 마주친다. 미리 어떤 장소나 주제를 정해두고 찍은 사진보다 이렇게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남긴 사진이 훨씬 더 많다. 사진과 삶은 서로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이 계획과 구상으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만나는 상황은 대부분 우연히 내게 닥치는 일들이다. 우리는 필연보다는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대상이 누구든, 무엇이 되었든 그게 우리가 사진 찍는 일을 대하는 가장 소박한 태도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삶은 짧고 한 번 밖에 없다. 찰나를 영원히. 사진은 티끌처럼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허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강의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책에는 사진 잘 찍는 기술을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사진을 왜 찍고 다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때때로 어떻게?’ 보다 ?’를 짚어봐야 한다.

 

 

사진 자체는 사진 속의 내용과 그 사진을 바라보는 구경꾼 사이에 걸쳐있는 다리일 뿐이다. p57.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 p81.

 

 

책 군데군데 카메라를 잘 다루고 사진을 이리저리 예쁘게 잘 고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잘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지당한 말이다. 보지도 못한 걸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다. 좋은 사진은 좋은 시각에서 나온다. 그럼 잘 보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글쓴이가 강조하는 덕목은 섬세함이다.

 

 

우리 문화에서 본다는 것의 목적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데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게 바로 줄이다. 그런데 개의 털이 햇빛 속에서 반짝일 때, 한 밤 중에 어둠 속에서 넓은 방 안을 어슬렁거릴 때, 그 모습은 어떤가? 반가울 때나 두려울 때 흔드는 꼬리, 갸우뚱거리는 머리, 그 작은 몸으로 쏟아내는 무언의 메시지는 어떤가? 킁킁거리며 방 안을 분주히 돌아다닐 때 자아내는 생동감은 어떤가? p66.

 

 

섬세한 감각을 가지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명명하고 분류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습관에 돈 문제가 깊이 끼어있다는 필립 퍼키스의 통찰이 놀랍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전체를 포착하도록 노력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직관과 본능을 신뢰하지 않고 전체를 포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p41.

 

늘 같은 렌즈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렌즈가 제공해주는 시야에 익숙해지면 전체를 훨씬 빨리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줌렌즈야말로 악마의 작품이다. 줌렌즈는 대상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경우가 드물며, 더 중요한 이유는, 사진가의 진정한 시각을 구축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p41.

 

한 가지 주제로 사람, 장소, 물건, 여러 가지 물건이 섞인 것 필름 한 통을 찍는다. p71.

 

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히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p75.

 

 

섬세함을 기르고 잘 보기 위해 짚어보거나 해볼 만한 연습 과제가 몇 가지 있다. 특히 75페이지의 과제는 꼭 한 번 해봐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책 맨 마지막 부분에 있다. 나도 니오타니가 되고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항상 삶을 신기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할 게 없는 삶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니오타니란 분명히 생물학적 성장이 끝나는데도 의식 안에선 호기심, 상상력, 장난치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들 같은 초기 성장 단계를 여전히 밟아나가며, 어린 시절의 감성과 환상들을 그대로 간직한 어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생물학적 용어라고 한다. 연로한 예술가들 대개가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고 했다. “니오타니는 긍정적인 징후에요.” 존은 이어서 말했다. “또한 그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던 일등공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죠.” 겨울 하늘을 가르는, 헐벗은 나뭇가지를 스치며 날아가는 새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 순간,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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