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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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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60-61쪽)


코스모스 제1장은 이렇게 끝난다. 700쪽이 넘는 커다란 책을 언제 다 읽을까 싶었다. 그런데 저 구절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따위 남루한 구절을 읊조리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삶의 의미를 짚어준다. 나 말고 누가 감히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칼 세이건이 말한 대로라면 나는 무척 위대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나온 것이다.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임무라면 나도 하나 갖고 싶어진다.


과학을 다루는데 서정적이다.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만 문학작품을 읽는 듯 마음이 일렁인다. 생전의 칼 세이건은 날카로우면서도 무척 낭만적인 사람이지 않았을까?


이 책은 ‘과학하기’가 무척 즐겁다고 알려준다. 과학으로 들여다보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르쳐주는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읽다보면 아래처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1. 재미있는 영화를 깊게 볼 수 있다.

“인터스텔라”를 재밌게 봤다. 하지만 보다가 너무 답답했다. 주인공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서 겪는 ‘4차원 장면’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 보기 전에 이 책을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3차원 공간을 4차원에서 보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무척 생생하고 친절하게 묘사해놓았는데 말이다.


얼마 전에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니 마법사들이 모든 방향으로 입체가 계속 생겨나며 이상하게 변형되는 공간에서 악당과 싸운다. 그냥 “인셉션에서 봤던 장면이네”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이제는 “혹시 시간을 초월한 4차원을 묘사했나?”라고 짚어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허구일지언정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는 영화가 무엇을 바탕으로 상상한 장면을 담았는지를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2. 일상을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다.


“빵-!”하고 시끄럽게 경적 울리며 지나쳐가는 자동차는 무척 짜증스럽다. 하지만 도플러 효과를 알고 나면 ‘차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날카로워지고 내게서 멀어질수록 소리가 길게 늘어지는군. 그런데 하늘의 별빛도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거구나’라고 신기해할 수 있다. 짜증이 설렘으로 바뀐다.


빛 편광분석으로 멀리 떨어진 천체의 구성 성분을 추정하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조명 설치할 때나 사진 찍을 때 맞춰보는 색온도 같은 개념을 우주 관측에서도 활용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전파 역시 빛이며, 라디오 방송 전파에서 사용하는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는 지구가 태양보다도 강렬하게 빛난다는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망막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시야의 한가운데가 아니다. 그래서 눈길을 약간 비껴 주면, 희미한 별이나 물체가 더 잘 보이게 된다.” (180쪽)


이런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군대에서 야간 사격할 때 해주는 말을 천문학자도 한다는 게 흥미롭다.



3. 재미있는 역사도 덤으로 알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형문자를 해석하는데 로제타석이 열쇠가 되었다. 그런데 “로제타석”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로제타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석판은 로제타가 아니라 ‘라시드의 돌’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 석판이 발견된 곳이 나일 삼각주에 위치한 라시드라는 마을이고 ‘로제타’는 아랍 어에 무지했던 유럽인들이 라시드를 잘못 부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587쪽)


생명 진화는 수많은 사소한 우연들이 쌓인 결과다. 과거사건 중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지구는 현재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라 페루스가 탐험대의 선원을 모집하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그래서 똑똑하고 열성적인 젊은이들도 많이 탈락했다. 이 중에 코르시카 섬 출신의 젊은 포병 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끼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사의 흥미로운 한 분기점이 아닐 수 없다. 라 페루스가 나폴레옹을 선발했더라면, 로제타석은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샹폴리옹의 상형 문자 해독은 불가능했을 게고, 근‧현대사는 여러 면에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607쪽)


“코스모스”는 우주 진화를 다룬다. 그러다보니 아주 미미한 지분만 차지할 뿐이지만, 인간이 이룩한 역사 또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역사는 역사가가 정리한 그것과는 색다르게 재미있다. 특히 고대 이오니아 자연철학이 이후의 고전 그리스 철학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학문이며, 그들을 소크라테스에 이르는 전 단계로 여길 것이 아니라 현대 과학과 같은 반열에 올려 생각해야 한다는 글쓴이 생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4. 현대 학문을 쌓아올린 사람들을 잘 알게 된다. 갑자기 ‘열공’하고 싶어진다.


인류는 한 때 미신과 맹목적 신앙의 열정 속에 살았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그저 허무맹랑한 옛날이야기일지 몰라도 중세 사람들에게 천상에 사는 신과 천사들은 의심할 여지없는 현존하는 세계였다. 그런데 그 믿음에 의심을 품은 불순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침없이 손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비난과 억압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해와 달이 불타는 바위라고 주장했다가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신성 모독’ 죄목으로 탄압 받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쓴 책은 19세기 중반까지 로마 가톨릭이 금서로 지정했고, 케플러는 달 표면에서 지구가 자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용으로 공상과학 소설을 썼다가 어머니를 마녀 사냥으로 잃을 뻔했다. 갈릴레오, 크리스티앙 하위헌스, 다윈 같은 사람들은 그저 유명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 손가락질에 분연히 맞설 줄 알았던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그렇다고 굳게 알고 있었던, 또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세계 모습이 실제로는 잘못된 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미련 없이 오류를 버리고 진리와 진실을 마주했다. 끊임없이 검증하고 또 검증하는, 때때로 자기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길고 험한 길을 외로움을 이기며 걸어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고민과 삶, 싸움은 인생을 걸고 진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지금 배우는 모든 학문은 그냥 그런 문자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 인생을 걸고 투쟁한 흔적이다. 먼지 냄새나는 두꺼운 책 더미에서 누구보다도 낭만적이었던 어떤 사람들의 향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이런저런 것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진다.



5. ‘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본다.


“태양과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상당 부분이 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분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별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소들이 다름이 아닌 행성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수소, 나트륨, 마그네슘, 철 등이라니! 물질 공동체의 신비함에 우리는 그저 놀라기만 할 뿐이다.” (64쪽)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458쪽)


내가 별에서 왔다니. 나 같은 사람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정말 ‘별에서 온 그대’였다니. 내가 곧 우주고, 당신이 곧 세계였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별처럼 환하게 잘생겨지며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냥 티끌 같은 허무한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점에 안심하게 된다. 나는 갑자기 세상에 뚝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별들이 오랜 세월 빚은 인과성의 산물이다.



6.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본다.


때때로 짜증나는 사람이 있다. 생각이 맞지 않거나, 생면부지 사이인데 옆에서 갑자기 방귀뀌고 트림하거나.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왜 저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지 깊이 슬퍼지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지구에만 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674-675쪽)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에는 국경선이 없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쥐면 부서질 것만 같은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지구는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광신,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 등이 발붙일 곳이 결코 아니다. 별들의 요새와 보루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디작은 푸른 반점일 뿐이다. … 우주에는 생명이 전혀 서식한 적이 없는 세상이 있다. 우주적 재앙의 표적이 되어 새까맣게 타버린 불모의 세상들이 우주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우리는 행운아이다.” (632-633쪽)


이런 구절을 읽고 나니 시끄럽고 무례했던 어느 아저씨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괴롭히던, 또는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도, 넓은 우주에 딱 한 명씩 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조심스레 다짐해본다. 한 명 한 명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인생은 한 번이고, 그렇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덧없이 흘려보내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고,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탐욕스러운 자들을 그냥 방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함부로 전쟁을 이야기하고, 함부로 평화를 위협하려는 움직임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7. 겸손해진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429쪽)


거대한 우주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안달복달해왔던 것들이 왠지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이지만, 내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나에게만 중요할 뿐이고, 내가 안간힘을 쓰며 이룬 것들은 거대한 세상에서 점 하나로 표현하지도 못할 미미한 흔적을 남길 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콧대가 조금은 꺾인 것 같다.



8. 위로받는다.


끝이 있는 삶이 슬펐다. 소중한 물건도, 풍경도, 인연도, 삶도 언젠가는 끝난다. 세상은 영원히 이어질 텐데 나만 문득 나타났다가 덧없이 사라진다는 숙명이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는 50-60억년 뒤에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오를 때 뜨겁게 타오르며 삼켜질 것이다. 태양도 죽는다.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은 언젠가 생을 마친다. 우주 자체도 끝이 있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든,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든, 마지막은 반드시 온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 그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운명이다. 끝이 있기에 우주도, 별도, 별 중에 하나인 태양도, 지구도, 그리고 나도 지금을 오롯이 느끼며 살 수 있다. 이 순간이 무척 소중하다.


“우주 공간을 눈여겨보면 하나의 거푸집에서 찍어 낸 것처럼 모양이 아주 비슷한 은하들이 우주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은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중력의 법칙과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 우주 어디에서든지 그대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중력 법칙과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지상에서는 물체의 낙하 운동과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회전 묘기도 지배한다.” (486쪽)


상식이 통하지 않고 가치가 혼미해지는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믿고 살아야할지 몰라 막막해진다. 그런데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그 법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그래도 내가 원칙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다.



9. 책 읽고 싶어진다. 글 쓰고 싶어진다. 마법을 부리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잠을 잘 수도 있고 놀러 다닐 수도 있는데 책을 왜 다들 읽는 것일까?


“생물학에는 반복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 가설은 모든 상황에 100퍼센트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의 발생 과정에 관해서는 비교적 잘 들어맞는다. 반복설의 핵심 내용은 개체 하나의 발생 과정이 해당 종이 겪어 온 진화의 전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개인의 지적 성숙 과정에서도 반복설이 성립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조상들이 해 온 사고의 과정들을 되풀이하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해 간다.” (331쪽)


나는 책을 읽으며 압축적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내 앞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밝혀낸 것들을 책장을 넘기며 내 존재로 만드는 중이다. 사람은 진화해왔다.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이 그 증거다. 나도 진화하는 중이다. 독서는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558쪽)


책상 앞에서 키보드 두들기는 지금, 나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의기양양해진다. 어릴 때 어깨에 망토를 두른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10. 굉장히 멀리 여행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700쪽 책 한 권에 우주가 탄생하고 인간이 땅 위에 설 때 까지 과정이 오롯이 담겼다. 빛스펙트럼을 꼼꼼히 헤집어보며 금성의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살핀다. 전파로 쏘아올린, 인류가 보낸 편지 내용도 읽어본다. 바이킹 탐사선과 함께 화성에 날아가 생명을 찾는다. 보이저 우주선을 따라 목성과 토성을 지나 태양계 밖으로 날아간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으로 돌아온다. 삶의 의미를 묻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해본다.


몇 번을 거듭 읽고 책을 덮었다. 굉장히 멀리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걱정하며 서문을 읽기 시작했다가 감동하며 뒤표지를 닫았다. 과학책인데 두꺼운 철학책 한 권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끝나면 마치 친한 친구와 헤어지는 것 같다. 이번에는 책을 덮으며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물론 다소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최신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칼 세이건은 인간 두뇌의 신경망 조합이 담은 정보량이 지구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량과 맞먹을 정도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책에서 다룬 뇌 과학 내용을 보니 두뇌가 품은 세계가 은하계보다 더 클 것이라고 나와 있다. 아마 1980년대 이후로 뇌의 비밀이 많이 밝혀진 모양이다. 그래도 옮긴이 역시 천문학자이다 보니, 천문학 부분은 최신 내용을 각주로 꼼꼼하게 달아놓았다.


최신 과학을 교과서 보듯이 충실하게 습득하고 싶다면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게 좋다. 사실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의 내용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까맣게 잊어버린, 그런데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은 과학 이야기에 관심 있다면 이 책이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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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 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
강신준 지음 / 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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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어둡다. 샤머니즘 수준으로 후퇴한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경제도 최악이다. 검은 파도 몰아치는 폭풍 속을 작은 돛단배 하나에 기대 헤매는 기분이랄까. 들리는 이야기는 많고 불안한 마음은 커진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꼼짝없이 난파하지 싶다. 그런데 내 손에 괜찮은 나침반 하나 없다.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나가야 할까?


원래 마르크스 “자본론”을 보기 전에 이 책을 입문서로 읽었다. 다른 책 읽으려고 거쳐 가는 책이어서 그랬을까. 그때는 무척 대충 읽었다. 결국 “자본론” 자체도 1-1권만 읽고 끝냈다. ‘원전’의 분량과 난이도에 질렸던 까닭이다.


얼마 전 장하준의 경제학 책을 읽었다. 통계 수치 가득한 그 책을 덮고 나서 경제 위기 문제를 밑바닥부터 긁어주는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경제 공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게 다시 “자본론”으로 돌아왔다. “자본론” 원전부터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이 책을 다시 집었다.


이번에는 꼼꼼히 읽었다. 예전에 느낀 것보다 훨씬 훌륭한 책이다. “자본론” 자체가 워낙 훌륭해서일까? 이 책을 ‘자본론 입문서’가 아니라 경제 위기를 진단한 책으로 읽어도 좋다. 그만큼 알기 쉽게, 그러면서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살기 힘든가?’라는 아픈 질문의 답을 명쾌하게 찾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가장 훌륭하다. 글쓴이, 강신준 교수는 입담이 좋다. 여러 질문을 연달아 던져가며 차근차근 친숙하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애덤 스미스가 밝혀냈듯, 모든 부유함, 즉 가치는 곧 노동시간이다. 인간이 일정 시간 수행한 노동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는 노동력과 생산수단(생산 설비, 재료)을 구매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그런데 구매할 때의 가치와 판매할 때의 가치가 동일하면 자본가의 활동은 의미가 없다.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늘어나야, 즉 구매할 때보다 더 비싸게 판매할 수 있어야 자본가가 이윤을 얻는다.


자본가는 어떻게 가치를 늘릴까? 답은 ‘노동력’에 있었다. 실제로 노동하여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죽어있는 생산수단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할 때 4(노동)시간에 해당하는 가치를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불했다. 그런데 노동자가 실제로는 8시간 일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없었던 4시간만큼 가치가 생산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늘어난 가치를 ‘잉여가치’라 한다. 이 4시간짜리 잉여가치는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본가가 가진다. 이것이 자본가가 생산을 수행하여 얻는 ‘이윤’의 실체다. ‘이윤’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빼앗은 잉여가치다. 자본주의 생산의 본질은 ‘착취’인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일단 ‘잉여가치’라는 말을 지우고 ‘이윤’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본가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다는 느낌을 지운다. 임금의 명칭도 그럴듯하게 지어낸다. 실제 한달 만큼의 노동시간(가치)이 들어있다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임금으로 주면서 “월급”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주급, 시급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실제 일한 시간에 대해, 실제 생산한 가치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모두 임금으로 지불하는 것처럼 눈속임하는 것이다.


임금은 그럼 어떻게 정해진 것인가? 마치 노동자가 실제 생산에 기여한 만큼, 실제 생산한 가치만큼 임금을 받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와 아무 상관없이 정해진다. 임금은 사실 생산이 수행되기도 전에 자본가가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우리는 일 하기도 전에 자기 임금이 얼마인지 이미 알고 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한 사원이 자기가 월급을 얼마나 받을지도 모른 채 출근하지 않는 것처럼.


현실에서 임금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가? 세상의 모든 가격은 구매자와 판매자 간 흥정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이상적으로는 노동자 임금도 사회적 최저 생계비를 하한선, 자본가 이윤이 0이 되는 지점을 상한선으로 ‘노동력 구매자(자본가)와 노동력 판매자(노동자) 사이의 협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자 수익인 임금이 늘어날수록 자본가 수익인 이윤은 줄어든다. 자본가는 이윤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임금을 어떻게든 낮출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아 자체 ‘잉여’를 충분히 쌓게 되면 굳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려들지 않을 것이고, 자본가는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상품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계속해서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본가는 노동자 임금을 ‘최저 생계비 수준’에 머물도록 강제하려 한다.


노동시장은 항상 공급과잉 상태이다. 노동력 수요자인 자본가에 비해 노동력 공급자인 노동자가 훨씬 많다. 때문에 임금은 자본가에게 유리한 방식과 수준으로 정해지기 쉽다. 이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같은 노동자 조직을 만들어 단결하고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 한다. 국가가 정한 ‘최저 임금’과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 협상으로 정한 ‘단체 협약 임금’ 같은 보호 장치는 이러한 투쟁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자본가는 자기의 유리한 입장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끊임없이 파괴하려 한다.


한편으로 자본가는 조금이라도 잉여가치를 더 많이 얻기 위해 다른 자본가와 경쟁한다. 같은 종류의 상품 가격은 시장 경쟁 속에서 평균에 맞춰지기 때문에,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보다 생산비용을 절감하여 그만큼의 초과 수익을 얻으려 한다. 특별한 잉여가치, 즉 ‘특별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생산비용 절감은 생산력 발전으로 이룬다. 노동자의 생산 능력을 효율화하여 한 명이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의 개수를 늘린다. 그럼 예전보다 더 적은 노동자를 고용하고도 예전만큼의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생산력 발전이다. 생산비용 절감은 쉽게 말해 인건비 절약인 것이다.

이렇게 잠시 개별 자본가가 사회 평균 수준에 비해 높은 이윤을 얻지만, 경쟁 속에 생산력 역시 평균 수준으로 균등해지기 때문에 특별잉여가치는 곧 사라진다. 특별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자본가들이 벌이는 경쟁으로 사회 전체 평균 생산력이 발전하고 세상이 살기 좋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은 두 가지 치명적 한계에 부딪친다.


생산력 발전(곧 생산비용 절감)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자 한 명이 생산하는 상품 개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생산과정 속 노동시간 비중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노동시간은 잉여가치를 만들어낸다.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잉여가치를 만들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것이다. 자본가가 이윤을 추구할수록 이윤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스스로 줄이게 된다(생산 내적 한계).


또한 노동시간 비중이 줄어든다는 것은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 수를 줄인다는 말과 같다. 결국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고용이 줄어든다. 노동력이 남아돌게 되고 노동시장은 노동자보다 자본가에게 더 유리하게 기울어진다. 비정규노동이 일반화된다. 고용 불안과 임금 감소가 이어진다. 이렇듯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노동자의 처우는 갈수록 열악해진다.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내도 노동자들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런데 노동자는 상품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상품이 가치를 실현하려면 판매되어야 한다. 그러나 갈수록 가난해지는 노동자는 상품을 소비할 능력을 잃어간다. 상품이 판매되지 않는다. 이렇듯 가치 생산과 가치 실현이 서로를 제약한다. 이러한 모순과 한계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 발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생산-실현 모순).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부 자본(금융기관)이 나선다. 대부 자본은 화폐를 긁어모아 산업 자본에 빌려주고 대가로 이자를 받는다. 자금을 빠르게 회전시킴으로써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자본을 효율적으로 조달하는 것이다. 대부 자본이 모을 수 있는 화폐는 실제 사회적으로 생산된 가치 총합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신용’이라는 마법으로 그 한계마저 없앤다. 어음, 수표, 주식 같이 실제로 화폐가 없어도 화폐를 대신할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들어서 유통하는 것이다. 화폐를 대신한 신용은 곧이어 신용을 대신하는 다른 신용을 낳는다. 이렇게 부풀어 오르는 신용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가치 생산과 무관하게 신용 거래만으로 차익을 얻으려하는 투기가 시작된다. 투기와 결합한 신용은 걷잡을 수 없이 거듭 팽창하지만 이는 대부분 실제 생산한 가치와 상관없는 가짜 돈, 허깨비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두 가지 문제, 생산 내적 한계와 생산-실현 모순 때문에, 투입된 자본이 많아도 가치 생산은 정체된다. 가치 생산 증가 속도가 신용 팽창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이는 발행한 신용을 실제로 존재하는 가치(의 표현인 화폐)로 결재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어느 순간 환상이 깨지면 신용에 비해 화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손에 들고 있는 신용을 당장 현금(화폐)로 바꾸려 한다. 이렇게 신용 정지-지불 요구-지불 불능-경제 활동 붕괴라는 순서를 밟으며 위기가 닥쳐온다. 경제위기, 공황은 이렇게 탄생한다.


주류 경제학, 글쓴이 표현으로는 ‘그들의 경제학’은 공황을 우발적 현상으로 바라본다. 갑자기 위기가 닥치면 화폐 발행을 늘려서 진정시킨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뉴스에서 많이 봤던 ‘양적완화’ 정책이다. 하지만 진정만 시켰지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감기약 먹는다고 감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1929년 대공황이 2008년 공황으로 다시 나타났듯, 이대로라면 공황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공황은 근본적으로 가치 생산 영역의 한계, 자본주의적 생산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 그 한계를 신용팽창으로 덮어보려다 교통사고 나는 것이 공황이다. 가치 생산의 한계, 통제 불능의 신용팽창 모두 ‘자본주의적 본성’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리의 경제학’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한다. 생산 내적 한계를 넘기 위해 자본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바꾼다.

생산력은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 자본들이 무분별하게 특별잉여가치 획득을 위해 경쟁하는 방식은 안 된다. 이를 위해 노동력 절감 없이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생산을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무정부주의적 생산’을 사회가 통제하는 것이다.

또한 생산-실현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임금 소득 감소를 억제하고 소득분배구조를 바꿔야 한다. 글쓴이는 이를 ‘사회주의’로 명명한다.


소득분배구조를 임금 소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간다. 인간 욕망의 기본적 부분(생존, 안전, 의료, 교육 …)을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임금 소득을 높여간다. 또한 임금을 자본가가 개별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결정하도록 만든다. 임금을 사회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개별 자본가가 지급할 임금을 사회적으로 지급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생산의 사회화이다. 생산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힘을 키워야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라는 노동자 조직으로 단결하여 사회를 변화시킬 역량을 모은다. 한편 생산의 사회화는 사회 전체가 생산을 공동 통제하는 것인데, 이것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확대가 필수이다. 민주적 원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에서 생산 사회화가 성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화는 실패한다. 소련 같은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것과 같이.


우리, 노동하는 사람들이 부자 되는 방법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부자 되는 방법과 다르다. 재테크는 그래서 허무하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꿈꿔야 한다.


사회주의를 설파한 마르크스 “자본론”을 해설한 책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글쓴이는 소련식 볼셰비키 혁명을 부정한다. 노동자 독재, 공산당 독재 같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모든 독재를 비판한다. 대신 민주주의 확대를 이야기한다. 강신준이 제시한 ‘미래 사회주의’를 현실에서 가장 가깝게 찾는다면 북유럽 사민주의 체제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글쓴이의 대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글쓴이는 거대 혁명을 논하는 대신 소박한 이야기로 결론을 짓는다. 부자 되려고 재테크에 목매지 말라고 거듭 충고한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외친다. 그것이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대목이 무척 좋았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해결책이 아닐까?


민주주의 형식이 갖춰졌지만 경제 정책은 비민주적으로 정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경제 정책을 대다수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관심도 갖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 얼마나 허울 좋은 이름인가. 지난 선거 때 우리는 저 구호에 열광했다. 하지만 구체적 정책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본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도 역시 살펴보지 못했다. 많이들 속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경제, 그리고 시장은 결국 정치 영역이다. 정치권력 대행자를 결정하는 1표를 행사할 때 앞으로는 경제 정책‧공약을 ‘우리 관점’에서 모두 함께 제대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제대로 한 번 뽑아보고, 잘 하는지 두 눈 퍼렇게 뜨고 감시해보는 것이 어떨까?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으면 혼내주기도 하고. 그게 민주주의 확대 아닐까?

이 때 마르크스 경제학이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 같다. 적어도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 늘어” 같은 달콤한 거짓말에 속지 않을 수 있는 튼튼한 내공을 갖게 된다. ‘원전’은 어렵고 양이 많으니 부담 없이 200페이지 약간 넘는 이 책 같은 입문서가 괜찮을 듯하다. 2010년에 나왔지만 2017년에 보기에도 어색하지 않은 책이다.




※ 강신준이 내놓은 대안을 두고 진보 지식인 사이에 논쟁이 일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논쟁 관련 기사들도 읽어보고 싶다. 다른 입문서도 읽어보고 싶다. 다른 책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어떻게 다뤘을까? 한편 노동가치론과 한계효용론 사이의 논쟁을 다룬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 부동산 이야기도 나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땅 주인, 즉 지주의 권리는 두 가지다. 토지 소유 자체에서 오는 ‘절대지대’와 토지의 쓸모 정도에서 오는 ‘차액지대’가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지대 수익은 절대지대와 차액지대의 합이다.


토지는 저마다 쓸모, 즉 생산성이 다르다. 생산성 가장 높은 토지가 가장 먼저 공급되며, 생산성 낮은 토지일수록 나중에 공급된다. 단위 면적당 생산성 높은 토지일수록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즉,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성 가장 높은 토지부터 투자가 이뤄진다.


시장 수요가 기존 공급을 넘어서면 원래 생산이 이루어지던 토지에서 모든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보다 생산성 낮은 토지가 공급되기 시작한다. 시장이 확대되는 한 계속 된다. 시장 수요가 확대될수록 1등급 토지의 뒤를 이어 2등급, 3등급 토지들이 공급되는 것이다. 강남에 이어 분당, 그 다음 일산과 판교가 개발되는 것처럼.


그런데 생산비가 올라갈수록 시장 평균 가격 역시 올라가게 된다. 이윤이 0이나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장 평균 가격이 올라가면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평균 지대 역시 상승한다. 등급 낮은 토지가 공급되면 등급 높은 토지 소유자는 그만큼의 초과 이익을 얻는다. 이 초과 이익이 ‘차액지대’다.


등급 낮은 토지로 투자가 확대될수록 등급이 상대적으로 높은 토지들의 초과 이익은 계속 늘어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 “강남불패”로 표현되는 부동산 신화가 그 사례다. 하지만 지대 수익 역시 대부자본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치 생산 영역의 한계에 종속된다. 가치 생산의 한계가 존재하는 한 지대 역시 무한정으로 확대될 수 없다. 생산이 이뤄지는 만큼 토지 투자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대 수익 역시 번거로운 생산 과정 없이 시세 차익만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 투기의 대상이 된다. 지대와 신용이 결합하는 것이다. 실제 생산 영역과 지대 수익이 서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다. 경제가 침체되고 투자가 멈추고 땅이 남아도는데 강남 부동산 가격은 계속 치솟는다. 그러다 신용 투기와 마찬가지로 파국, ‘공황’을 맞게 된다.


사실 최악의 공황은 부동산과 신용이 결합했을 때 일어났다고 한다. 플로리다 휴가주택 투기 때문에 시작된 1929년 대공황,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에 나타난 2008년 경제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2017년 현재, 무척 와 닿는 부분인 것 같다. 현재 한국은 경제 위기 폭발 직전 상태다. 생산은 줄어들고 금융권은 불안정하다. 부동산이라고 안전할까? 이미 서울 강남 아파트 매매 시세가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게다가 다들 빚내서 땅 사고 집 사왔던 그간의 관행이 쌓이고 쌓였다. 어디에서 많이 본 패턴이다. 역사에서 비극은 비슷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척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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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어떤 대선 후보가 신조어 비슷한 공약 단어를 내세울까요? 저는 기대라기보다는 그때 그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저번 대선 때 분위기처럼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돌아온탕아 2017-01-05 14:17   좋아요 0 | URL
정치권에서 사람들을 여전히 만만히 보고 눈에 확 들어오지만 알맹이는 없는 공약을 남발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달라져야 할텐데요. 이번에도 그랬다가는 유권자들에게 호되게 혼날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보는 눈이 생긴 만큼 이번 선거는 꽤 볼만할 것 같아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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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매일 경제 이슈를 보도하지만 솔직히 알아듣기 힘들다. 듣고 있으면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불쌍한 학생이 된 기분이다. 모르겠다. 그냥 세상 흘러 가는대로 끌려갈 뿐이다.

 

 

경제가 어렵단다. 철들고 나서 경제가 좋다는 뉴스를 한 번이라도 본 기억이 없다. 불황. 침체. 혼란. 실업. 대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 다들 죽어라 일하는데 그 빛나는 성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우리가 열심히 노동해서 얻은 결실이라는 게 결국 끝없는 경기 침체라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마르크스 자본론 1권을 일독했다. 마르크스 경제학 해설서도 읽어봤다. 결론은 명백했다. 자본주의는 계획 없는 과잉 생산이라는 광란의 질주를 계속하다 주기적 공황을 반복하며 붕괴한다는 것. . 그랬구나. 그래서 경제가 이토록 불안한 거구나. 큰 흐름은 짚었다. 하지만 지금 겪는 경제 불황의 격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태인지,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 뉴스에서 경제 관료와 분석가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믿어야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부족한 내 지능으로는 알기 힘들었다. 좀 더 쉽게 접근하는 책이 없을까?

 

 

장하준은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무척 쉽게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로 2008년 경제 위기를 다루지만 현재의 경제 불황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참고할만했다. 경제학 책이지만 수식이나 복잡한 도표가 없어서 보기 편하다. 아주 간단한 계산식도 쓰지 않는다. 주로 여러 경제 지표 관련 통계 수치를 비교 분석해서 제시하고 근거로 삼는다. 숫자 울렁증 있는 내가 읽기에도 불편하지 않고 쉽다.

 

 

저자의 결론은 명쾌하다. 이 모든 게 1980년대 이래 세계를 지배한 자유 시장 경제때문이다. 정확히 자유 시장 경제 시스템을 굴리는 자들, 그 시스템을 주장하고 옹호하는 자들의 시커먼 거짓말이 경제를 망치고 극심한 실업과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만든다는 것.

 

 

일단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시장 또한 정치적 결정으로 만들어지고 굴러간다. 자유 시장 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장 법칙은 사실 누군가의 정치적 결정일 따름이다. 그 결정은 철저히 부자-특히 금융 자본-의 이익을 위해 내려진다.

 

자유를 외친다. 불필요한 규제가, 정부의 간섭이 경제를 망친다고 설파한다. 오로지 시장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돈이 움직여야 기업이 살고 국가도 산다고 한다.

 

무역 혹은 시장 이익의 독식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여러 규제를 철폐한다. 국적 없는 자본 이동을 위해 자본 시장을 개방한다. 효율적 금융 시장을 만든다며 위험한 금융 상품 판매를 막기 위해 걸어놓은 규제를 없앤다. 이렇게 금융 자본이 활동하기 좋은 생태계를 만든다. 그리고는 주주와 경영자의 이익 추구가 기업 운영의 기본 원리라면서 기술 개발 등의 장기 투자를 줄이고 당장의 주가 상승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단기적 투자에 집중한다. 노동자가 가져갈 몫을 줄이고 고용 안정성을 무너뜨린다. 한편으로 거시 경제가 안정되어야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가혹하게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 물가가 안정되니 금융 투자 이익도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금리가 인상되니 실물 투자는 줄어들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장기적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규제가 사라지니 자본은 제멋대로 국경을 넘나들며 단기 이익을 찾아 치고 빠진다. 경기가 불안하게 요동치고 지옥도가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낙오한다. 하지만 이들이 힘든 이유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알아서 자기 몫을 찾아 먹지 못하는 개인적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해둔다. 기회 균등에서 멈추지 않고 결과의 평등까지 인위적으로 챙기려하다가는 시장의 생명력을 침해하고 경제를 망칠 것이라 주장한다.

 

이 모든 게 결국 금융 자본을 틀어쥔 어떤 사람들을 위한 거짓말이다. 그 사이에 그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의 적극적 경제 간섭과 규제를 이야기한다. 통계 수치가 말해준다. ‘큰 정부가 강력하게 경제를 제어하고 계획하던 1950~70년대가 자유 시장 경제가 지배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보다 모든 면에서 더 잘나갔다. 무엇보다 살기 좋았다.

 

시장은 1달러 1표 원칙이 지배하는 냉혹한 세계다. 그런 시장 법칙에 모든 것을 맡겨두면 결국 돈 많은 자들 위주로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11표 원칙이 살아있는 정치 영역이, 선출된 권력인 정부가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 중요 규제를 살리고 일정 부분 경제를 정부가 계획해야 하며 강력한 재분배 및 복지정책으로 경제 성장의 심장을 건강하게 되살려야 한다.

 

 

장하준은 어렵지 않은 언어로 굉장히 중요한 개념들을 풀어낸다. 책의 여러 진단이 크게 와 닿았다. 일단 지난 정권과 현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 성장을 위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왜 새빨간 거짓말인지 잘 알게 되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며 차례로 여러 규제를 없애던 그들의 모습. 성장을 위해서 규제 완화가 필수라던 그들의 논리. 하지만 정작 규제 완화와 장벽 철폐가 불러온 것은 성장이 아니라 침체였다. 경제 혼란의 와중에 배불린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지금도 권력을 잡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현 정부 정책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점을, 그들이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뉴스를 보면서 경제 정책을 어느 정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현실적 대안이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경제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몰랐던 경제 개념어 몇 개를 알고 가는 것은 덤이다.

 

 

인터넷 발명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세탁기 발명과 비교하면 별 것 아니라는 내용이 신선했다. 탈산업화 시대는 허상이며 제조업 기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시대를 잘못 읽고 있었나 싶었다. 이 나라, 한국 역시 제조업을 홀대하는 현실을 현실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정부 개입 경제 발전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박정희 대통령을 소환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지는 못한다. 사람들을 중앙정보부로 통제한 사실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효율적이다라는 뉘앙스로 풀어낸 대목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저임금저곡가 정책으로 고통 받은 당시 노동자와 농민의 아우성, 중앙정보부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고문 받거나 짓지도 않은 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억울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역사 서적이 아니라 경제 서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독재를 미화하는 듯 보이는 서술은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게다가 박정희 정부의 정책이 일본을 따라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굳이 일본 사례보다 한국 사례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정치적의도가 궁금해진다.

 

 

교육 투자에 대한 관점 역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저자는 교육 투자가 경제 발전으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금보다 교육 투자를 줄이고 다른 생산적부문에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는 정치가 개입하는 영역이라면서도 정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교육은 경제적으로 쓸모없는 것으로 결론내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교육 받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민주화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의 경제 개입이 해법이라는 저자의 결론에 어느 정도 수긍한 나는 크게 실망했다. 경제를 계획하고 규제하는 정부가 비민주적이라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게 될까? 그런 경제 발전을 좋게 볼 수 있을까? 이에 관해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나는 그 결론에 반대한다.

 

 

책에서 비판하는 미국식 기업들은 대부분 주주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주 자본주의.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재벌 총수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장하준은 주주가 아닌 기업가가 지배력을 유지하는 기업 모델(특히 스웨덴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 재벌 기업은 어떻게 봐야 할까? 긍정적인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매력적이다. 술술 읽다보면 경제학에 무지했던 사람이 경제 이슈에 어느 정도 식견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경제가 어려운 공식과 법칙으로 돌아가는 미지의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인간의 정책적 결정이 돈의 흐름을 바꾼다. 경제는 결국 정치다. 정치가 곧 경제다.

 

좋은 책이다. 비판적으로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리를 찾으려면 공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장하준의 책은 괜찮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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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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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 책을 여럿 알아봤다. “고종석의 문장” 1권은 문장 다듬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메모해가며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사진 블로그를 하나 한다. 찍은 사진 올리는 사진첩으로 끝내기 싫었다. 사진에 이러쿵저러쿵 감상이나 생각을 달아서 쓴다. 하지만 글이 잘 안 써진다. 글 쓰는 게 괴로워 사진도 올리지 않게 된다. 문장은 쓰는데 글을 못 쓰겠다.



그러던 어느 날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서점에서 홀린 듯이 집어 들었다.



유시민은 대학생 시절부터 믿고 읽는 작가였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으로 선배들과 ‘세미나’를 했다. 다른 책들은 너무 재미없었는데 그 책만 지금까지 기억난다. 그가 가르치는 글쓰기는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저자는 작문을 ‘문학 글쓰기’와 ‘논리 글쓰기’로 나눈다. 문학 글쓰기는 타고난 재주가 필요하지만 논리 글쓰기는 노력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이 책은 논리 글쓰기를 다룬다.



논리 글쓰기를 잘 하려면 첫째, 자신이 하는 말이나 쓰는 글이 취향 고백인지 주장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둘째, 주장하는 글이라면 반드시 논리적으로 논증해야 한다. 주장에는 근거가 따라야 한다. 근거에 논리적 동의 또는 반론이 가능한 글이 훌륭한 글이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글에 감정을 불필요하게 집어넣으면 논점에서 이탈하기 쉽다.



글은 쉽고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동의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뚜렷한 주제 의식, 의미 있는 정보, 명료한 논리, 적절한 어휘와 문장이라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반복 연습으로 기능을 익히는 것처럼 글쓰기도 적절하게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실력이 는다. 유시민은 3단계 과정을 제시한다. 실제 책에는 순서가 다르게 제시되어 있으나 맥락에 따라 재배열하였다.


1. 독해력을 키워야 한다. 독해는 그냥 글을 따라 읽기만 하는 게 아니다. 저자의 생각과 의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류와 부족한 부분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어린 나이라면 그냥 끌리는 책을 읽는 게 좋다. 그러나 청소년 이상 연령이라면 ‘전략적 독서’가 필요하다. 의미 있는 정보와 통찰을 훌륭한 문장으로 담은 책을 골라 읽어야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1-1. 훌륭한 글을 많이 보고 감각을 키운다. 또한 못난 글을 알아보고 피해야 한다. 우리말은 중국 한자말과 일본어 말투 등에 심하게 오염되었다. 한자말과 일본어 말투를 오남용하면 운율을 해치고 글이 지저분해진다. 지나치게 늘어지게 쓴 복문과 명확한 의미를 담지 않은 모호한 단어 사용 역시 글을 못나게 만든다. 좋은 책을 많이 보면 자연스럽게 못난 글을 골라내는 안목이 생겨나지만,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고 면역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발췌와 요약을 하라. 발췌는 중요한 부분을 골라 뽑는 것이고, 요약은 글을 압축하는 것이다. 남들이 자기 글에 공감해주기를 원한다면 남이 쓴 글부터 먼저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읽은 글과 책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마라. 직접 문자로 써보지 않은 지식은 자기의 것이 될 수 없다. 발췌와 요약 과정을 빼고서 글쓰기 실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3.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 한다. 메모지 들고 다니며 생각과 감상을 무엇이든 적어보고 글로 정리하여 표현하라. 운동선수가 끊임없는 연습으로 근육을 키우듯 글쓰기도 근육을 키워야 한다. 또한 자기가 쓴 글을 남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라.


3-1. 입으로 소리 내서 읽었을 때 어색한 글은 잘못 쓴 글이다. 복문은 줄이고 단문 위주로 경쾌하게 쓰는 게 좋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긴 글보다 짧은 글이 유리하다. 무엇보다 독자의 입장을 생각해서 써야 한다. 지적 허영심에 빠져 불필요하게 난해하게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1번에 해당하는 꼭지에서 ‘전략적 독서’에 도움이 되는,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들을 추천해준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항상 혼란스러웠다. 덕분에 독서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3번에 해당하는 꼭지에서는 실제 사례를 들어 저자가 직접 좋은 글로 고쳐 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움이 많이 된다.



“고종석의 문장” 같이 문장 자체를 어떻게 깔끔하게 고쳐 쓰는가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중요한 것을 간략히 언급해주기는 한다). 어떤 글쓰기 책처럼 당장 활용이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팁이나 작문 전략을 ‘찝어’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참 좋았다. 이 책은 글쓰기를 즐길 수 있다는, 글쓰기로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책이다. 글 잘 쓰는 방법을 직접 하나하나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차라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잡아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생전 써보지 않았던 서평을 이렇게 작성하여 남긴 것으로 그 변화를 증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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