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가운 벽 ㅣ 트루먼 커포티 선집 5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평점 :
작가는 어찌 됐든 자신의 경험과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 인간성이 모든 소설을 불완전하지만, 매력적으로 만든다. 아니, 정말로 '완벽한' 문장과 '완벽한' 소설이 존재할까? 시대 중심으로 보든, 작가 중심으로 보든, 독자 중심으로 보든, 어떤 작품이나 고유한 결점과 장점이 있다. 그럴 때 창작하는 자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결점을 보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이 볼 수 있는 세상 너머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상상이야 가능하겠지만). 선택지는 매력을 강화하는 일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객관적인 눈과 자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차가운 벽」을 쓴 트루먼 커포티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혼란과 결핍으로 가득 찬 유년 시절을 지나, 소설의 성공으로 잠시 환락을 누렸으나, 이후의 실패는 그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배경 설명을 알기 전부터, 어렵지 않게 그의 단편 소설 속에서는 그가 지닌 결핍과 불안이 발견된다. 표제작인 「차가운 벽」을 포함한, 첫 10편의 단편 소설은 뒤틀린 인물들 간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부분을 통과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작가에게 뭔가 커다란 결핍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기이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것을 글로 담아내고 계속 고치면서 내면화하기란 보통의 정신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설 쓰기란 삶이 반영된 하나의 실험이자, 끝없는 자기 혐오와의 싸움이다.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외롭고 독특한 삶을 산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갔을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소위 말해, "왜 그리 인생을 피곤하게 사느냐?"라는 질문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태어나기를, 또 배우기를 그렇게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자신이 느낀 모든 생각과 느낌을 곱씹고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상상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가볍게 핥고 삼킨다면, 작가들은 그 생각을 수백 번, 수천 번 되새김질하며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그 결과물이 오물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독창적인 예술이 되기도 한다. 그 경계선, 즉 '완벽함'의 기준을 누구도 정할 수 없기에 소설가의 여정은 늘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
그런 측면에서 커포티의 고민이 가장 잘 느껴진 작품은 「추수감사절에 온 손님」이었다. 이 소설은 "어디 한번 비열함의 정수를 보여줄까. 오드 헨더슨이야말로 내 경험상 가장 비열한 인간이다."(p.350)로 시작된다. 오드 헨더슨이라는 인물을 비판하며 독자들을 기선제압한다. 이 기세에 눌린 독자들은 "대체 오드 헨더슨이 어떤 사람이고, 왜 비열한 건데?"라는 호기심을 품으며 나아가거나, "네가 뭔데 이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해?"라는 반발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의 가장 이상적인 시작점은 371쪽에 쓰인 "생명력이 넘치는 날이었다, 그해 추수감사절은."이라는 문장이었다. 제목이 「추수감사절에 온 손님」인 데다가, 추수감사절에 대한 서술자의 기대감과 감상이 담긴 훌륭한 표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추수감사절 대신 오드 헨더슨을 택했다. 내가 적절한 첫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20쪽이 지나서야 등장한다.
단편 소설이 소설의 정수라고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량상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아무리 거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또 대단한 이야기라고 해도 일부만 표현할 수 있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영역이다. 대신, 작가는 기법과 배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단락을 어디에 두는지가 단편 소설을 쓰는 이들에게는 늘 치열한 고민의 대상이 된다. 정직하게 사건의 시작을 초반부에 서술하는가 하면, 이 작품처럼 서술자의 감상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선택도 정답이 없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그 자유로움 속에 책임이 담겨 있으니까.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으니, 그 삶이 반영된 실험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여러모로 즐거운 체험이었다. 트루먼 커포티, 당신의 생애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는 결국 말보다는 글로, 글보다는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참 어렵다. 당신의 실패는 내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담담하게 전한다. 네가 네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여겨져도, 끈질기게 살아내자. 마음의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다시 훨훨 날아오르자. 어떤 고독과 결핍도 너를 제거할 수 없으니, 비록 짓눌리고 위축되어도 펴자. 이제 당신은 죽어서 대답할 수 없으나, 살아 있는 나는 담대히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