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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공격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평점 :
자연주의는 비정한 자연의 원리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양식으로 알려져 있고, 에밀 졸라는 그것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처절하게 저항하는 그의 장편 소설에 익숙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졸라의 단편선에 사뭇 놀랐다. 처음에는 「방앗간 공격」이 장편 소설인 줄 알고, 등장인물과 배경이 다음 장에서 바뀌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대로 끝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갓 약혼한 도미니크와 아버지, 그리고 삶의 터전이었던 방앗간이 프로이센군의 침략으로 완전히 파괴되는 현실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의 운명이 가혹한 탓에 소설가가 그것을 보상해 주길 바랐으나, 전쟁은 현실에서도 그랬듯이, 평범한 자들이 영위한 터전을 앗아가 버렸다. 나는 다시 한 번 전쟁의 참혹함에 분노했다.
첫 번째 작품의 여운이 가시고, 내가 구매한 이 책이 단편선임을 알게 된 이후에는 조금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작품은 「올리비에 베카유의 죽음」이었는데,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붕괴 사고가 일어남으로써 주인공은 흙더미에 깔려 생존을 갈망한다. 오늘날에는 각종 시나리오에서 많이 다루어져서 신선한 맛이 덜하지만, 터널과 기차라는 문명의 이기가 군중의 삶을 파괴한다는 소재는 꽤 충격을 주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 주인공의 사투를 무릅쓰고 그를 끝내 죽이는 결말은 나에게 씁쓸한 여운을 주었다.
이 두 작품의 비극에 비해 나머지 세 작품은 비교적 일상적이다. 그렇다고 「나이스 미쿨랭」에서 주인공이 내린 결단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폄하할 수 없다. 또한, 「샤브르 씨의 조개」에서 은밀한 일탈을 저지른 엑토르와 에스텔, 수르디 부부의 합작이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사건들은 그들의 인생에 매우 중대한 일들이었다. 에밀 졸라는 각 인물이 내리는 선택이 서로에게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 세밀하고 정감 있게 묘사한다. 때로는 차가운 사실만 전달하다가도, 따뜻한 유머를 섞기도 하다.
결국 하나의 '주의'로 작가의 모든 경향을 설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연주의는 배경이자 지향점일 뿐이다. 에밀 졸라 역시 조금 모자라지만, 기꺼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친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 반드시 혁명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소설만 쓸 필요는 없다. 작가가 행동적인 삶을 살았고, 불의를 견디지 못하는 성격인 것은 진작에 알았다. 이 단편집을 통해 에밀 졸라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다. 그는 경직된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작품 속에 살아 움직이는 친절한 이야기꾼이다. 때로는 마음을 쓰리게 하고, 때로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그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