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ellion 반역
이소영 지음 / 일송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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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18일, 나는 『반역』의 번역 및 독서를 끝마쳤다. 작년 11월 13일 책을 구매한 이후로 정확히 370일 후다. 그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꾸준히 『반역』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물론 그 실력은 많이 미숙했지만. 600쪽이 넘는 소설을 다 끝마쳤다는 사실에 우선 속이 개운하다. 사실 초창기엔 이걸 언제 다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이렇게 끝내고 보니 600쪽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매우 짧게만 느껴진다. 이래서 번역가들이 번역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번역가는 돈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번역을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번역한다. 나 같은 경우 다른 사람에게 이소영 작가의 『반역』을 알리고 소개하기 위해 번역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얻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가 이 소설을 출간했을 때, 얼마나 큰 파장이 일어났는가. 중학교 2학년밖에 안 되는 소녀가 고대 로마의 스파르타쿠스 반란에 대해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써내다니! 각종 언론이 그녀를 칭찬했고 오영숙 전 대학총장도 "모든 언령층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그 결과 출간 한 달만에 2쇄를 찍는 등, 중학생이 낸 책 치고는 큰 이변을 낳았다. 하지만 2011년인 지금, 비록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녀와 그녀의 책은 잊혀져 버렸다. 저자가 『반역』을 쓰게 될 수 있었던 동기가 담긴 『영어 영재 소영이의 영어 정복법』은 출간되었으나 오영숙 총장이 번역하기로 되어 있는 번역판 『반역』은 아직도 근간 상태에 놓여 있다. 궁금해서 메일을 보내도, 감감무소식이다(그것이 내가 『반역』의 번역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도 이 소설을 번역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번역의 잘못으로, 도리어 이 책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이소영이라는 저자의 유명세라면 몰라도, 적어도 책만큼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독자들에게 『반역』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책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일 뿐이다.

 

 『반역Rebellion』은 기원전의 전쟁이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전쟁에 관한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인만큼, 저자는 그 당시 로마의 역사의 흐름을 잘 꿰고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막 등장한 시점, 마르쿠스와 술라의 로마 내전으로 정치파벌 간의 분쟁이 고조되었던 시점, 점점 안일해지면서 썩어가던 로마 사회를 번쩍 깨어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노예 반란이었다. 당시 로마 최고의 갑부로 알려진 크라수스 장군은 군단을 편성하여 그를 진압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노예들은 모두 십자가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진다. 이것이 배리 스트라우스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서술된 반란의 전체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이소영 작가는 이 역사에 사랑, 질투, 그리고 한 청년의 성장을 집어넣어 흥미롭고 아름다운 한 편의 역사소설을 탄생시켰다.

 

 『반역』의 주인공 옥타비우스(이 인물은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스파르타쿠스 반역의 주요 진압자가 아니라, 훗날 남은 노예들을 진압하는 역할에만 그친다)는 야심이 있지만 마음이 약하고 순진한 청년이다. 그에게는 루키우스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호전적이고 거칠다. 또한, 그는 카푸아의 총독의 아들이기도 하다. 옥타비우스 역시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이다. 두 귀족 청년은 어느 날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를 보러 갔는데(사실 옥타비우스가 루키우스에게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지만) 거기서 옥타비우스는 뛰어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와 눈을 마주치며 미묘한 관계를 이루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는 스파르타쿠스의 상대도 살려줘야 한다는 연설로 스파르타쿠스의 호의를 사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경기장에 찾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를 로마에 있는 크라수스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옥타비우스는 로마에 가기 전에 아버지 마르쿠스에게 받은 의문의 두루마리를 카이사르에게 넘겨주고 '삼촌'으로 설정된 크라수스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의 집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탐욕적이라 옥타비우스는 오래 있지 못하고 두루마리에 써져 있는 어느 평민구역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그는 몰락한 정치인의 아들인 티투스와 만나는 데(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왠일인지 율리우스도 있었다. 옥타비우스는 그의 말을 통해 티투스와 자신이 형제 관계임을 알게 된다. 한편, 카푸아에 남겨진 루키우스는 스파르타쿠스와 싸움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이 소설의 시작이다. 내가 너무 장황하게 쓴 것 같지만, 이것이 전체 45장 중 4장까지의 줄거리의 최대 요약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당신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 나는 번역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소설의 완전한 이해였다. 나는 『반역』 속의 모든 사건과 감정을 기억한다. 글라베르의 습격을 알린 군단병이 혹시 죽을까 봐 초조해 한 적도 있고, 루키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에 찬 기대를 한 적도 있다. 『반역』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로마인이 되어 있었다. 감정의 공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옥타비우스의 마음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소설 속에 담겨진 숨은 주제 의식까지.

 

 『반역』은 당시 정치 상황을 신랄하게 고발함으써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비교하게끔 한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고, 믿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해도 되는지 묻고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자기 입으로 고백한다. 난 그저 내가 믿는 것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3백 명의 군단병을 서로 죽이게 하는 비인간적 행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한편, 로마인의 태도 역시 우리에게 많은 점을 던져준다. 이미 패배한 노예군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할 필요는 있었을까? 노예들이 전염병과 추위로 죽어가는 데도 개인의 영광과 명예 때문에 그들을 포위하는 것이 인간적인 행동일까? 중학생 2학년이 던지는 문제치고는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이다.

 

 우린 『반역』을 읽으며 많은 슬픔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꿈을 잃어버린 슬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슬픔까지. 우린 『반역』을 읽으며 많은 아픔을 보게 될 것이다. 육체적인 아픔, 정신적인 아픔, 그것을 동시에 얻는 아픔까지. 그러나 잊지 마라.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바로 'smile'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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