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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인문고전 독서
인문고전, 지금 나는 인문고전을 읽고 있는가? 집에 꽃여 있는 책장을 둘러본다. 플라톤의 『국가·정체』,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르네 데카르트의 『성찰』 등의 책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을까? 그래서 꺼내든 책이 바로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다.
나는 6학년 때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문학의 세계, 소설의 세계로 들어왔다. 이윽고 2010년이 되자, 나는 본격적으로 인문고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학교 생활 때문에 인문고전을 읽는 데에 제약이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읽었던 책이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크라튈로스』, 『소피스테스』, 『정치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던 것 같다. 이윽고, 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매력에 빠져 그의 작품을 하나씩 섭렵해나가기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영웅스티븐.망명자들』, 그리고 『피네간의 경야』 등....... 이렇게 갈수록 나의 인문고전 사랑은 늘어만 갔다. 그럴 때 나의 관심을 한눈에 사로잡은 책 한 권이 들어왔다.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였다. 사실 문학동네 카페에 가입해 있는 나로서는, 그가 '다음' 블로그에 연재하는 것을 미리 보아 온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무슨 내용이 담아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문고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도저히 이 책을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다 읽은 후, 나에게 일종의 부작용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지금 르네 데카르트의 『성찰』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혹시 내가 그것을 잘못 읽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철학고전에 담긴 천재들의 사랑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중압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꼈고, 이내 그것은 지루함으로 번져서 인문고전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 책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에 얽매여 인문고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책은 단지 인문고전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되는 안내서일 뿐이다. 더 이상 이 책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나는 지금도 인문고전을 읽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인문고전을 강제로 읽지 않는다. 나는 편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인문고전을 읽고 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정말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나는 한 떄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지성 작가는 당신이 그런 걱정을 하라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한 때는 인문고전의 초보였습니다. 지나친 부담 갖지 마시고, 인문고전이 어렵다고 느끼시면,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십시오."
나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게 한 것 같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내용, 그리고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얻어야 할 점을 알아보자.
인문고전 독서의 힘
인문고전의 힘은 얼마나 될까? 인문고전을 읽는다고 우리의 두뇌가 완전히 변할 수 있다고 믿는가? 인문고전 독서가 베스트셀러나 노벨상 수상작가의 저서를 읽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확신이 가지 않는다면 다음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자.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부모의 근심거리였다.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기 떄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모든 면에서 너무 느렸다. 지적 장애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나쁜 기억력과 산만함 그리고 불성실한 수업 태도로 교사들의 독설을 들었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대학 입학 시험에서 낙방했고,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데엔 성공하지만, 학점도 별볼일 없었고 졸업논문도 지극히 평범하여 조교 자리조차 따내지 못했다. 또한, 그는 지도교수와 반목하다가 박사학위 논문을 도중에 그만두었고, 생계 유지를 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었다. 아이는 인문고전을 열렬히 사랑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부모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집에서 문학고전을 즐겨 낭독했고, 어머니는 고전음악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또한, 의대생 막스 탈무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의 집에 방문하였는데, 천성이 따뜻하고 쾌활한 그는 아이와 금새 친해져 자연스럽게 아이의 멘토가 되었다. 인문고전 독서의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아이의 두뇌를 인문고전 독서로 바꿔주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아이에게 읽힌 첫 번쨰 책이 유클리드의 『기하학』이었고 두 번쨰 책이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열세 살에 유클리드, 열네 살에 칸트를 만나고 어떤 변화를 경험한 아이는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하고 열일곱 살에 "나는 술 대신 철학고전에 취하겠다!"라고 맹세한다.
아이는 자신의 특별한 면인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자신의 두뇌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십대에 대부분의 서양철학 고전을 독파한 아이는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보다 철학 강의를 즐겨 들었고, 친구 아버지가 알선해준 직장에 들어가서 상사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근거한 사고 훈련을 받는 데에 몰두했고, 퇴근한 뒤에는 자신이 만든 인문고전 독서모임인 '올림피아 아카데미' 회원들과 독서토론을 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 데이비드 흄의 『인간 오성론』 등을 읽었는데,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한 페이지나 반 페이지 또는 한 문단을 가지고도 며칠씩이나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칭송받고, 오늘날까지도 칭송을 받고 있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열네 살에 한 유명 미술가의 작업장에 조수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견습생들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스승조차도 그를 보고 은연 중에 많은 것을 배울 정도였다. 덕분에 그는 13년 이상을 일해야 오를 수 있는 수석장인의 자리를 6년만에 이루어냈다. 하지만 성공도 잠시, 1481년 피렌체 정부가 교황 식스투스 4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해줄 최고의 예술가들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떄, 그는 뽑히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프로로 나선 지 3년이 되도록 피렌체 예술의 주소비자인 지배층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드러내놓고 그를 무시했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 도시의 지배계층에게 삼류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그는 실날 같은 희망을 품고서 1482년에 밀라노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밀라노에 널리고 널린 중간급 장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실패한 예술가였던 그에게 인생을 통쨰로 바꿔놓을 사건이 생겼다. 바로 인문고전 독서였다. 1487년, 그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기 위해서 라틴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천재들의 사고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늘 고생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서 책을 읽어나가곤 했다. 이렇게 인생을 건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천재성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회화, 조각, 공기역학, 광학, 해부학, 식물학, 건축학, 지리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마침내 빛을 발한 이 예술가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1806년, 런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해력, 기억력 등 지적 능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특별했다. 그는 평범한 두뇌를 천재의 두뇌로 변화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두뇌를 장기간에 걸쳐서 인문고전에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인문고전 독서는 시작되었다. 그는 여덟 살부터 열세 살까지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들, 그것을 번역서가 아닌 원전으로 접했다. 엄청난 양의 인문고전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아이의 두뇌는 자연스럽게 그 저자들의 두뇌처럼 바뀌어갔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 이해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천재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접촉한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비록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평생 인문고전을 읽어나가면서 마침내 그 역시 천재가 된 것이다.
평생 인문고전에 푹 빠져 살아온 이 사람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철학, 경제학, 사회과학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논리학 체계』, 『경제학 원리』,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첫 번째, 아인슈타인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보 또는 바보에 준하든 두뇌도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천재의 두뇌로 바뀐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다 빈치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문고전 독서는 그 동안 억눌려 있던(숨겨져 왔던) 천재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밀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천재적인 사고를 하는 두뇌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위의 세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한 가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처럼 머리가 멍청해도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 다 빈치처럼 나이가 좀 들어도 인문고전 독서로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스튜어트 밀처럼 이해하지 못해도 천재처럼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문고전 독서는 지극히 평범한 또는 바보 같은 사람조차도 천재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독서이다. 그리고 인문고전 독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시작하라!
대한민국, 인문고전 독서 프로젝트
인문고전 독서, 그 힘을 알았으니 당장 읽어야겠다. 아, 그런데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책 읽기가 어렵다. 내신 관리하느라 정신 없는데 인문고전 독서 때문에 또 골치 아프라고?
이게 우리나라의 실태다.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 떄문에 그것이 무척 힘들다. 현대 사회에는 존 스튜어트 밀과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그 이유는 서양의 교육 제도와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문고전을 읽지 말고 지금의 교육 방식대로 하자고? 천만의 말씀이다.
명심하라. 지금 우리나라가 하고 있는 교육은 프러시아식 교육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프러시아식 교육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프러시아식 교육은 일종의 '생산을 위한 교육'이다. 즉, 과거에 군대 교육을 시키던 프러시아 시대의 교육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프러시아 교육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고, 또 부패된 교육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육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니,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일류 대학, 영국의 일류 대학 그리고 시카고 대학은 우리나라처럼 공부만 시키지 않는다. 그 대학들은 인문고전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을 벌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은? 암울하다. 분명 우리나라의 기세라면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치열한 독서로 우리의 두뇌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데 말이다. 이지성 작가는 그것을 한탄한다. 나 역시 프러시아식 교육 제도로 학생들을 '생산'하려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을 한탄한다. 하루 빨리 우리나라가 진보된 교육 제도로 발전하여 사람을 '생산'하는 교육이 아닌, 사람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교육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영에서도 인문고전 독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를 재패하고 있는 기업가들 또는 그들의 선조들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를 꾸준히 해 왔으며, 또 하고 있다. 외국의 기업가들뿐만이 아니라 정주영 같은 우리나라에 길이 남을 기업가들 역시 인문고전 독서를 해 왔다.
현대 우리나라의 평범한 직장인들 또는 기업가들은 인문고전 독서를 하지 않고 있어서 더 이상 발전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력과 창의력은 분명 경영에서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상상력과 창의력을 머릿속에서 마구 발산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문고전이다. 상상력과 창의력뿐만이 아니라 인문고전 독서는 우리의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또한, 인문고전 독서는 정치가에게도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서양과 동양의 위대한 정치가들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를 읽었다. 세종 대왕과 정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세종 대왕은 병자리에서도 책을 읽고,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경연'을 수차례 연 왕으로 유명하다.
현대의 정치가들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인문고전을 국민들에게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인다면, 추락했던 그들의 이미지도 점차 개선되어가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또한, 국민들도 그들로부터 동기를 받아 인문고전을 읽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지성이 꿈꾸었던 '대한민국 인문고전 독서 프로젝트'가 완성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인문고전 독서는 학생에서 대통령까지, 그리고 개인에서 국가까지,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인 것이다.
인문고전 세계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모든 일에 처음이 존재하듯이, 인문고전 독서에서도 '처음'이 있다. 모든 사람이 '처음'을 겪듯이, 모든 사람은 인문고전 독서에서 '처음'이 있다. '처음'의 낯설음과 부담감 때문에, 이제 막 인문고전 세계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장이 바로 5장이다. 이 장에서는 이지성 작가의 인문고전 체험기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이지성 작가야말로 인문고전 독서의 힘을 체험한 사람들 중 하나이며, 또한, 그 역시 인문고전 독서의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지성 작가의 고백은 인문고전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초보자의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문고전은 짧게는 100~200년, 길게는 1,000~2,000년 이상 된 지혜의 산삼이다. 이런 지혜의 산삼을 지속적으로 섭취한 두뇌가 어떻게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어렵기만 했던, 아니 차라리 고문처럼 느껴졌던 인문고전이 어느 순간 기막히게 재미있어지기 시작하고, 두뇌 속에 그 '재미'를 맛보는 순간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계속 해나가다보면 마치 벼락처럼 두뇌가 충격적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P.199)."
5장은 다름 아닌 '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실 나도 인문고전 세계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풋내기일 뿐이다. 고작해야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분명 "고문처럼 느껴졌던 인문고전이 어느 순간 기막히게 재미있어지"는 경험을 해 보았다. 그 책은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 이미 현대에 탄생한 인문고전으로 평가받는 『율리시스』는 그 유명한 '난해함'으로 인해 처음에는 읽는 것이 매우 지루했었지만, 나는 그 소설을 필사하면서 소설 속에 숨겨진 재미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인문고전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간절함과 사랑을 가지고 『율리시스』 속에 감춰진 제임스 조이스의 사랑을 엿보고 있다. 나는 『율리시스』를 통해 인문고전이 어떻게 난해함 속에 재미를 감출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소설에 참 감사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문고전은 '우리'를 위해서 해야 한다. 즉,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내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주제를 놓고 묵상"하면서 인문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그리고 온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근거한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런 간절함은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지성 작가는 인문고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던 것일까.......
어쩄든 우리는 인문고전 세계를 여행하는 초보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노하우를 보여준 후,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인 6장으로 넘어가자.
1. 해설서름 멀리하라. 해설서는 인문고전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집필한 것이지만, 초보자들이 해설서를 함부로 읽다가는 그들의 방식대로 인문고전을 이해해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자신만의 체계를 세워라. 인문고전 독서도 체계가 있다. 체계없는 독서는 무질서하다.
3. 필사하라. 중요한 것은 글자를 단순히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변화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4. 일단 저질러라. 인문고전을 읽으려면 우선 사야하지 않겠는가. 물론 빌려보는 방법도 있지만 말이다.
5. 항상 인문고전을 가지고 다녀라.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도 모르게 인문고전을 집어들어 순간적으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6. 읽은 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 그렇게 하면 독서할 때 몰랐던 부분을 순간적으로 이해하게 되거나 체계가 잘 잡히지 않았던 부분이 갑자기 확 잡힌다거나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고전 독서법, 그것은 사랑이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 인문고전 독서의 핵심은 천재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백독백습, 필사를 비롯한 모든 독서 기법들은 다만 천재들의 마음을 꺠닫는 장치에 불과하다. 천재들의 마음을 꺠닫기 위해 맹수 같은 간절함으로 덤벼드는 이유도 결국 그것에 있다.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겸허한 마음으로 인문고전을 읽는 것도 그것이다.
천재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인문고전에 사랑 역시 담아놓았다. 특히 퇴계 이황, 율곡 이이는 인문고전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재들의 인문고전을 알기 위해서는 온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읽어야 한다. 누구를 향한 사랑으로? 바로 온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말이다. 이 세상을 변화시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인문고전 독서는 무의미하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사색하고, 또한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이 인문고전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사랑이야말로 그 목적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세종 대왕, 퇴계 이황, 정약용 등의 인물은 꺠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실천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명심하라. 사랑이 없는 인문고전 독서는 우리의 두뇌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인문고전 독서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분별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나의 인문고전 독서에는 사랑과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인문고전 독서에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부족할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로 많은 성찰을 해 보았다. 그 결과, 나는 결핍된 사랑으로 인문고전을 읽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이고, 믿고 싶지 않은 결과였지만, 나는 다시 꺠달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