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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평점 :
어쩐지 긴 글을 읽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두꺼운 책에 설렜다. 그 방대한 이야기가 주는 도전, 모험을 시작할 때의 설렘, 그리고 여정의 끝에 성장하게 될 나에 대해 기대했다. 그러다 나는 긴 글을 쓰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된 무모한 돌진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이라는 것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한가로이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긴 소설을 써 왔다. 때로는 이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이 소일거리 내지는 자기만족을 위한 무의미한 일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야 납득하는 것은, 내가 접했던 모든 책이, 내가 만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돈키호테』를 도서관의 서가에서 고른 이유는 나 역시 『돈 키호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나 『성경』처럼 나의 인생을 지대하게 바꾸지는 못했어도, 어린 시절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상당히 일조했다. 소설에 담긴 모험들을 나 역시 사랑했고, 돈 키호테가 지향하는 가치를 마찬가지로 동경했다. 처음에는 산초의 편에 서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기사의 여정에 코웃음을 쳤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며 변화하는 그의 모습에 동화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것이다. 미련한 자조차 현명하게 만들어 버리고, 무모한 자를 용감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그러한 힘이 있다. 각자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은 크든 작든, 좋든 싫든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설령 그 사람과 전혀 무관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돈키호테』는 『돈 키호테』라는,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불멸의 고전을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작품을 읽었기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세르반테스를 '반태수'로, 세비야를 '서울'로 일대일대응시켜 번안하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여정이, 평범하고 때로는 한심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그 끝에서 성숙해진다. 그 안에 수많은 인생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삶은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낳기도 한다. 진솔의 도전은 그녀의 기억 속 돈키호테였던 장영수에게 닿아, 마침내 그조차 변화시키게 된다. 그들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소소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준다.
아마 여정의 중간에서 힘듦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진솔의 고민과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서야, 그 서사들이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어떤 이야기던 간에 결말을 무시한 채 판단할 수 없다 했던가, 한 권의 책을 덮기 전까지는 섣불리 평가할 수 없고, 인생이 끝을 맺기 전까지 함부로 잣대를 매길 수 없다. 각 등장인물의 고민을 과소평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한 권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음 여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멈추고 싶어도 삶은 지속되듯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므로 배움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다. 돌아볼 틈도 없이 나는 인생의 또 다른 모험 속으로 휘말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버거웠으나, 이제 그 모험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나의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하다. 찰나에 남아 있던 불안마저 기대로 바꾸게 되었다. 돈 키호테로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고? 한번이라도 마음을 열고,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떤지. 나이와 상황 때문에 두렵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가난과 실패보다 우리의 인생이 크다. 어떠한 역경도 여정을 끝낼 만큼 강력하지 않다.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 그것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 모두 세상을 이루는 귀중한 캐릭터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주목되는 세상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