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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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의 완역본을 보고 들떠서 이 시리즈를 구매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책의 뒷면에 소개된 『그림형제 동화전집』과 『안데르센 동화전집』에 매료되었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거의 다 유랑한 지금, 나의 마음속에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훨씬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라는 결론과 그림형제 동화가 조금 더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결론을 동시에 품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에, 지나간 이야기를 보는 것은 어쩌면 고리타분하거나 뒤처진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영감을 준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이 책을 되짚어보려고 한다.


 19번째 이야기, 「어부와 그의 아내」는 소원을 들어주는 가자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부가 우연히 가자미를 잡게 되는데, 그 가자미는 자신을 놓아주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말한다. 어부는 소원을 빌지 않고 가자미를 놓아주고, 이 사실을 아내한테 말하자 아내는 당장 가자미를 다시 잡아 소원을 빌라고 재촉한다. 실제로 가자미는 소원을 들어주었고, 어부의 아내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큰 소원을 요청한다. 마침내 그녀는 신이 되게 해달라고 어부를 재촉하고, 어부가 그 말을 가자미에 전달하는 순간, 그들이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지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동화의 오랜 소재인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어쩌면 그 흔한 소재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동화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78번째 이야기인 「노인과 손자」는 효(孝)와 관련된 동화이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있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를 난로 뒤편에서 밥을 먹게 하고 진흙으로 빚은 접시에 음식을 준다. 어느 날 노인이 접시를 깨뜨리자, 며느리가 잔소리를 퍼붓는다. 얼마 후 어린 손자가 방바닥에서 나뭇조각을 짜맞춘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크면 부모님께 드릴 음식을 담을 여물통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한다. 즉,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할아버지에게 가한 푸대접을 보고, 나중에 똑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부모는 눈물을 쏟고, 이후 아버지를 정성으로 보필한다. 불효자들은 자식들에게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할 수 있는 사실을 1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으로 풀어내어서, 꽤 여운이 남았다. 


 164번째 이야기인 「게으른 하인츠」는 말 그대로 게으른 성격의 하인츠와 그의 아내 트리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 게을러서 집안일을 소홀히 하고, 자신들의 게으름에 대해 변명하는 모습이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167번째 이야기인 「천국에 간 농부」에서는 가난한 농부가 천국문의 입구에 도착한다. 그는 먼저 입장한 부자가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자신도 똑같이 대접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다. 이에 그는 성 베드로에게 천국이 지상에서처럼 일부 사람만이 편애를 받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천만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당신은 부자와 똑같이 천국의 모든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은 매일 오지만, 아까 온 사람 같은 부자는 백 년에 겨우 한 사람밖에 오지 않는답니다. (873쪽)

 그림형제 동화와 안데르센 동화 모두 성경의 가치관에 기반한 동화가 많다. 그중에서 이 동화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에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이와 비슷한 맥락이 176번째 이야기인 「수명」이다. 신이 모든 피조물의 수명을 정하고 있을 때, 나귀와 개와 원숭이는 수명을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인간은 30년이었던 자신의 수명을 늘려달라고 요청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처음 30년은 인간의 수명으로, 이후의 18년은 나귀의 수명으로, 다음 12년은 개의 수명으로, 나머지 10년은 원숭이의 수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귀의 수명일 때는 온갖 수고를 맡고, 개의 수명일 때는 구석에서 불평만 늘어놓고, 원숭이의 수명일 때는 바보가 되어 웃음거리로 살아간다. 아이들의 동화라기에는 인간의 삶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림형제 동화가 인생에 대한 성찰을 풍부하게 담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의 동화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무겁거나 지나치게 잔인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안데르센 동화보다 훨씬 냉혹하게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상력은 언제나 세계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동화 전집을 읽은 이유도 그 당시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하지 않았는가? 나에게도 큰 도전이고, 이러한 동화들을 모아 출판하려는 출판사의 의지도 큰 도전이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그림형제 동화전집』은 전 세계 곳곳에서 시작한 생각의 흐름을 이어보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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