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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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시대마다 대표적인 교양 서적이 있는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가 있었고, 최근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그렇다. 아마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기준이 되는 도서도 바뀌겠지만, 2018년 당시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신선한 충격과 좋은 인상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아, 201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들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그리고 불현듯 나는 그 이전에 필수 교양이었던 『코스모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 펼치는 순간, 생각 이상으로 놀라운 여정이 날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 이 책은 방송 원고에 기반하여 작성되었고, 그 덕분인지 풍부한 시각 자료들이 이해를 도왔다. 그래서 나는 한결 편하게 칼 세이건이 이끄는 코스모스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왜 공간으로서의 우주(space)도, 세계로서의 우주(universe)도 아닌 코스모스(cosmos)인가? 그것은 이 우주를 이끄는 원리가 균형과 조화이며, 여전히 우주는 거대한 질서 아래에서 운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인간은 분명 『코스모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우주 공간에 남아 있는 지적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할 수도 있기에,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는 지극히 작고 연약한 행성이지만, 그곳의 거주민들은 특별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피엔스가 있기 전부터 코스모스는 존재했다. 그리고 인류의 시대가 지난 후에도 그것은 존속할 것이다. 코스모스 이전의 모습, 코스모스 이후의 세계는 이 책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다. 지금 펼쳐진 무한에 가까운 우주 공간, 그리고 바로 옆(이라고 표현했지만, 수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에 있는 행성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인류에게는 커다란 숙제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와 잠깐 비교해 보자면, 아무래도 시대의 관심사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칼 세이건이 염려한 것은 자기 파멸의 가능성이었다.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우주 탐사선의 원동력은 동일하다. 인간의 의지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여정은 종말을 고할 수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도 비슷한 측면에서 접근하지만, 그 소재는 사뭇 다르다. 그는 인공지능이 낳게 될 새로운 인류에 대해 탐구했다. 어쩌면 세상을 떠난 물리학자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인류보다 뛰어난 지성'은 이미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어떤 공간도 아닌, 작은 컴퓨터 속에서 말이다. 사피엔스도, 코스모스도 시간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것에게 현재, 과거, 미래의 기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피엔스는 단지 진화할 뿐이며, 코스모스는 계속 흘러갈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질서가 파괴되고, 또 새로 세워진다. 이 놀라운 신비를 잊고 살기에는 이 우주가 너무나 아름답다.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에서 우주 연구에 대한 지원이 멈춘 까닭이 '지구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과학자들이 세운 계획 두 개(지구를 포기하는 대신 대안이 될 수 있는 행성으로 이주하거나 정거장을 세우는 일)가 동시에 실현되는 결말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중력 방정식을 풀게 해준 장본인이 곧 미래의 인류라고 암시함으로써 끊임없이 그 희망을 다음 세대에 넘겨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지금의 세상에 희망이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아도, 칼 세이건이 예측했듯이, 코스모스는 계속될 것이다. 불확실한 시간과 공간에 대해 무작정 낙관하거나 비관기보다 정확한 분석과 기술로 그 질서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의 작은 말과 행동 하나하나도 우주의 균형의 일부이니까.


 거대한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남겨놓아야 한다. 나는 우리가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리는 행위나, 반대로 물을 아껴쓰는 습관이 세상을 결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소중함은 그 자리에 머무를 때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코스모스를 조율할 만큼 현명하지도, 강력하지도 않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다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다음의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여전히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빛의 한계를 넘어서기에 우리는 너무나 느려 보인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코스모스와 비례하는 존재이다. 코스모스의 시간과 공간이 확장되는 속도에 사피엔스는 맞추어 간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 보잘 것 없고 스러질 육신이 담고 있는 정신은 모든 우주를 품을 만큼 거대하다. 작음 속에 위대함이 숨어 있고, 위대함 속에 작음이 담겨 있다. 이것이 코스모스가 보여준 신비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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