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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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난 소설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대답은 저마다 다르다. 대체적으로 훌륭한 작가의 기준은 현실을 얼마나 그대로 반영했는지, 또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로 결정된다. 토마스 만의 작품은 마지막 특성에 있어서 독보적인 영역을 지닌다. 자전적 체험과 평소에 지닌 생각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이루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공감 또는 감정의 해방(카타르시스)을 경험하며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에 대한 '끌어내기'의 작업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그의 세계에 진입하는 이는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이 자신의 의식으로 전이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토니오 크뢰거』 역시 좋은 작품이지만, 처음으로 읽었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나에게는 조금 더 인상 깊었다. 두 작품 모두 예술가의 숙명적인 고민을 다루고 있지만, 후자가 한층 더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예술가에 한정된 토니오 크뢰거의 갈등은 보편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 『베네치아의 죽음』은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끈질기게 추격하여 어떤 인상을 남기는 데에 성공했다. 더구나 콜레라가 주는 불길한 인상과 다가오는 재난 등은 여전히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전염병의 존재를 애써 숨기려는 당국과 사람들에게 서서히 퍼지는 불안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잠시나마 생각나게 했다. 


 『토니오 크뢰거』의 대표적인 장면은 "문학은 절대 직업이 아니라 저주"라는 토니오의 선언이다. 토마스 만은 모든 작가들이 거쳤던 딜레마를 서슴치 않게 내뱉는다. 시민성과 예술성의 대립은 단순히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의 고민을 뛰어넘는 무엇이다. 이를 테면, 작가는 남들과 어떻게든 구별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외로움이나 가난함 따위는 얼마든지 감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말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 속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하거나 단념하고, 어떤 이는 사회와 타협하다 못해 처음에 지녔던 의식을 상실한다. 대부분의 창작자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겨내야 한다. 이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연적인 긴장감과 두려움을 저주의 굴레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토마스 만은 조금 더 솔직한 마음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을까? 작가는 치유받기 위해 글을 쓰는 법이다. 고통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나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서사를 보면서 지나친 자의식은 독이라는 생각도 했다. 아셴바흐는 전염병에 의해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잡아먹혔다. 그에게는 충분히 베네치아를 떠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타지오가 없는 삶은 그에게 죽음과도 같았다. 과도한 지식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차라리 그가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잃을 것이 없었다면 조금 더 적극적일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는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있었다. 타지오와 대화를 몇 마디라도 나누었다면, 아셴바흐가 가진 집착은 사그라졌으리라.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받는 자의 마음속에 신을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그 작가는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했다. 


 섬세하고 여린 두 작가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확보하려면, 끌어내기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어떤 책을 읽을 때, 특히 소설을 읽을 때 특정한 교훈을 얻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해왔다. 그 교훈 한 줄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라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 안에 나의 감정을 담아내거나 끌어내는 작업 자체가 유의미함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는 존재는 작가 자신임을 인지한 순간부터였다. 소설을 읽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찰나의 깨달음과 느낌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나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독서와 창작은 고통을 수반한다. 누군가의 세계에 침투하는 것도,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도 쉬운 여정은 아니다. 하지만 피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돌아보았을 때, 내가 걸었던 길은 누군가가 잘 따라올 수 있게 잘 닦여 있기 마련이다. 그 기쁨이 모든 시름을 능가하기에, 나는 기어이 아픈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인식은 타락일세. 그래서 우리는 단호하게 인식을 배척하고, 오로지 아름다움, 다른 말로 표현ㅇ하자면 단순함과 위대함과 새로운 근엄함, 제2의 자연스러움과 형식만을 얻으려고 줄곧 노력할 뿐일세. - P135

너처럼 푸른 눈을 가질 수만 있다면. 토니오는 생각했다. 너처럼 모든 세상과 잘 지내며 행복하게 어울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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